유부녀의 라면
사실 농담으로 던진 말인데 그녀는 진담으로 받았다. "정말요? 음, 그럼 주말에 일요일에 놀러 오세요" 아니, 어쩌면 그녀도 진담없이 던진 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없는 놈 마냥 진짜로 문자를 오늘 놀러가도 되냐고 보냈고 그녀도 마침 남편 님도 어디가고 집에 아무도 없는 통에 완전 심심하다며 쿨하게 놀라오라고 했다. 물론 그녀는 설마 내가 혼자...
View Article스타일박스의 아들
나는 요즘 아버지의 젊은 시절이 담긴 한 온라인 텍스트 페이지에 푹 빠져있다. 약 30여 년 전에는 그것을 '블로그'라고 부른 모양이다. 구 시대의 전자식 컴퓨터로, 인터넷(지금으로 말하자면 아주 원시적인 형태의 하이퍼넷 같은 것이다)에 접속해서 단순히 텍스트 또는 이미지 파일 (당시의 이미지 파일은 그저 시각 정보만을 제공하는 형태였다)로 구성된 내용들을...
View Article좋은 밤
오늘은 그녀와 만난지 2년째 되는 날. 작년의 오늘은 까맣게 잊고 넘어가는 바람에 하마터면 깨질 뻔 하지 않았는가. 아무리 그래도 잊을게 따로 있지, 하겠지만 신제품 런칭 일정 맞추느라고 잠도 못자고 회사에서 살다시피 하던 상황 속에서 힌트 한번 주지 않고서야 사람이 잊는게 어쩌면 더 당연하지 않느냐고 변명해 본다. 사실 그리고 원래 평소에 기념일 같은 거...
View Article불면증
----------------------------------------------------------------------------------------------------화장실로 들어서자 귀와 가슴을 쿵쿵대며 울리는 음악이 잦아들며 귀가 조금 편안해진다. "후우…"새삼 저 밖이 얼마나 시끄러운 곳인지 느끼게 된다. 여기 화장실 안은 오늘 밤의...
View Article"오빠는 도대체 내 어디가 좋다고 맨날 그래요?"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승희는 소리쳤다.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그냥 뭐… 니가 좋으니까"그러자 승희는 더 짜증난다는 얼굴로 말했다."오빠도 감정이 있을거 아니에요. 왜 맨날 오빠는 내가 짜증을 내도 흥, 못되게 굴어도 흥 그래요?감정이 없어요? 왜 사람이 그렇게 솔직하지 못해요? 내가 오빠를 못 믿는 이유가 바로 그거에요. 오빠처럼 참기만 하는 사람이...
View Article오줌 앉아싸기
오래된 기억이라 정확히 어떤 대목이었는지는 제대로 기억나지 않지만, 소설 삼국지연의를 보다보면 장비가 상대에게 '앉아서 오줌싸는 계집처럼…' 운운하며 도발하는 장면이 나온다. 예나 지금이나 남자는 서서 오줌을 싸고, 여자는 앉아서 오줌을 싸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주보편적인 모습인 것이다. 그 자세 자체가 하나의 성적 정체성을 상징할 정도로 말이다....
View Article개소리들
1얼마 전 OO일보의 모 여 기자가 메일로 인터뷰 요청을 해왔다. 삼포 세대에 관한 기획기사를 취재 중이라며 인터뷰가 가능하냐는 것이었다. 어떤 경로로 취재를 요청하게 됐느냐고 메일로 되묻자 일전에 삼포 세대 관련해 작성한 짧은 망상글을 보고 검색해서 제의를 한 모양이다. 나름 재미있는 방향의 기획기사다 싶었지만, 돈도 안되는데 얼굴까지 팔리는 일인데다...
View Article그 남자
"어제 소개팅 어땠어?"정윤이의 물음에 솔직하게 "그냥 그랬어"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정윤은 "왜? 별로야?" 하고 물었고 "잘 모르겠어. 싫진 않은데 뭐 딱히 좋지도 않아. 그냥 착해" 하고 그에 대한 인상을 말했다. 정윤은"착하면 됐네 뭐. 생긴건 어때? 뭐하는 사람이야?" 하고 다른 질문들은 연이어 던졌다.…커피를 마시며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View Article친구들
오빠와 헤어진지 일주일이 지났다. 불과 일주일 사이에 살이 3kg이나 빠졌다. 여전히 식욕도 없고, 우울하기만 하다. 친구들 말 때문에 헤어졌다며 이 귀 얇은 등신 같은 년아, 하고 내 등짝을 때리던 엄마도 이젠 내 눈치를 본다. 내가 집 안에 들어서면 벌써 집 전체의 분위기가 어두워진다. 며칠 전, 거실에서 엄마와 내 이야기를 하던 아버지의 말이 여전히...
View Article각 남성잡지 의인화
1. 에스콰이어 나이 서른 여섯. 금융업계 종사. 슬슬 자기 스스로도 칼 같은 라인의 섹시함보다는 어른스럽고 무게감 있는스타일의 패션을 추구하기 시작. 전성기 때는 어마어마한 여성 편력을 자랑했지만 지금은 적당히 정리하고자기와 동급, 혹은 그보다 상위 계층의 S급 여성을 함락시키는데에 더 관심이 있는 상태. 솔직히 20대 여자애들을 함락시키는 것은 너무나...
View Article새벽 2시 13분
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앵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앵- 모두가 고된 잠에 빠져있던 그 시간. 내무실에 갑작스러운 싸이렌이 울렸다. 고참들은 반사적으로 몸을 튕기듯 일어났고, 모두들 떠지지도 않는 눈을 억지로 떠내며 출동 상황을 확인했다.A형이었다. 재빠른 인준은 총알같이 몸을 일으키고는 불을 켰다. 다들 번개같이 자기 앞의 관물대 문을 열고 환복를...
View Article남측 정부
"과거 남측에 있던 미제 괴뢰정부의 경우, 미제의 지원과 인민의 고혈을 짜낸 독재정치로 일시적인 부를축적하기는 하였으나, 모두 자본주의 기득권 돼지들의 몫으로 돌아갔을 뿐 인민들은 굶어죽기 일쑤였다,하고 이거이 력사는 설명하고 있지비. 보라우"교사의 설명에 이어진 처참하게 앙상한 아이들의 영상에 학생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본주의 사상에찌들어 패륜의...
View Article[박지성 상무의 강남 야구장(81)] "오빠, 좋아?"
* 본 컨텐츠는 19세 미만의 이용자에게는 권장되지 않습니다. 박지성 상무의 강남 야구장(81) - "오빠, 좋아?" "어휴, 박지성 상무님, 잘 지내십니까?"태준의 전화에 굵직한 목소리로 "어휴, 최 사장님 이게 얼마만이십니까. 아 요즘 너무 연락이 뜸하셔서 아예 도 닦으러 산으로 가신 줄 알았습니다" 하고 너스레를 떠는 강남 야구장 박지성 상무....
View Article잊혀진 한국의 맛을 찾아서 - 남산 코렁탕
"할머니, 저 왔습니다. 어휴 춥다" 춥다 못해 살이 에이는 칼바람을 뚫고 텅빈 가게 안으로 한 남자가 들어선다. 삐쩍 마르고 자기 얼굴 1/3을 가리는 큰 뿔테 안경을 쓴, 별로 몸이 건강해보이지 않는 전형적인 룸펜 스타일의 남자. 뜨끈~하고 고소한 코렁탕의 향이 온 가게 안을 채우는 가운데, 금방 안경에는 희뿌연 김이 서린다."허이구미, 또 왔냐 이...
View Article"예뻐보일 생각 하지마, 알았어?"
"예뻐보일 생각 하지마, 알았어? 내숭 떨고 그래봤자 안 예뻐보여, 이거 할 때는 제일 열심히 하는게이뻐보이는거야, 알았지?"안무가 김 선생님의 말에 그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김 선생님 특유의 파워 넘치는 "자, 그럼 다시!" 하는 큐 싸인과 함께 연습이 재개되었다. 연습 3시간째. 슬슬 몸이 기억을 시작해 간다. 빠르고 강한 비트의 음악에 맞춘...
View Article설연(雪緣)
눈이 그토록 펑펑 내리던 날. 까페 안의 사람들 모두가 금요일 밤의 설레임을 안고 웃고 떠들던 그 때.나와 혜윤만 마치 다른 장소에 있기라도 한듯 어색하고 우울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까페 안에 울려퍼지던, 빠른 비트로 편곡된 캐롤 음악은 그 아이러니함을 더욱 극대화시키고 있었다. "미안해"나의 말에 혜윤은 애써 할말을 찾는 듯 입술을 떨다가 다시 입을...
View Article대리 분투기
대리 분투기 직장인의 꽃이라 불리는 '임원직', 그리고 최소한의 신뢰와 영업상의 이유로 인한 일부 영업직의 '가라 대리'를제외하면, 직장 생활을 통틀어 가장 빛나는 승진의 때는 바로 '대리 승진' 때가 아닐까. 드디어 말단 사원에서 벗어나는...
View Article서울 첫 사랑
"여어""아 됐어, 자! 피곤해죽겠어. 잘 하지도 못하는게 만날 밝히기는!""지미…됐다, 궁뎅이나 치워라. 푹 퍼져 가지고 남산만 해가지고는. 여자가 이게이게…요즘엔 다들 미시미시하는데 말이야…""어이고, 사돈 남말 하네. 오줌 쌀 때 그게 보이기나 해? 뱃살 좀 빼. 민망해죽겠다""크, 에효, 됐다, 됐어" 간만에 봉사 한번 해줄까 싶어 마누라 옆구리를...
View Article영화 'ONE DAY'
"영화 안 볼래?" "내일요?" "지금" 월요일 출근을 앞두고, 충동적인 일요일 저녁 10시 50분의 뜬금없는 제안. 내 전화를 받고 전화기 저 편 에서 그녀는 3초간 망설이는 듯 했지만 곧 "좋아요" 하고 OK싸인을 냈다. "그런데 무슨 영화에요?" "ONE DAY라고…앤 헤서웨이 나오는 영화야. 내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 영화야. 재밌을 듯" "알았어요,...
View Article[박지성 상무의 강남 야구장(82)] 비 지나간 뒤
민희는 잠에 빠져들었고 나는 커튼 틈 사이로 비치는 창 밖의 조명을 따라 훑다가 다시 모텔 방 안을 한번살폈다. 이래봐도 특실이라고 나름 방이 넓다. 주말 7만원의 숙박비가 그리 아깝지는 않은 정도의 방이다.나는 문득 고개를 살짝 틀어 잠에 빠져든 민희의 얼굴을 살폈다. 전형적인 고양이상의 얼굴.예쁘고 세련된 스타일. 자기 주관 확실하고 고집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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