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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측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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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남측에 있던 미제 괴뢰정부의 경우, 미제의 지원과 인민의 고혈을 짜낸 독재정치로 일시적인 부를
축적하기는 하였으나, 모두 자본주의 기득권 돼지들의 몫으로 돌아갔을 뿐 인민들은 굶어죽기 일쑤였다,
하고 이거이 력사는 설명하고 있지비. 보라우"

교사의 설명에 이어진 처참하게 앙상한 아이들의 영상에 학생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본주의 사상에
찌들어 패륜의 극에 달했던 과거 남조선 사진이라면서 왠일인지 사진 중간중간 배경으로 초대 수령님을
찬양하는 동상이나 구호들이 보이는 것이 좀 이상하기는 하였으나, 그런 점에 의아함을 품기에는 2010년
대의 가난한 남조선의 모습이 보여주는 비쥬얼의 충격이 너무나 심했다.

"과거 2010년대의 남조선의 경우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고, 쑤술을 할 때 마취약이 없어서 쌩으로 쑤술을
했다하는데 그거이 똑똑한 사실입네까?"
 
반장 림수철이 눈물까지 흘리며 손을 들어 질문했고, 교사 강구철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은
말이 없어졌다. 가슴 아픈 '민족의 역사'에 슬퍼하였으며, 썩어빠진 당시의 '남측 정부'에 분개했다. 





     
                                                             남측 정부






2040년. 근 30년 가까이 무장 투쟁을 계속해왔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이제 정말로 슬슬 한계에 다달해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 국가요인들의 목에 걸린 막대한 현상금에 의해 끊임없는 밀고와 배신이 이어졌고
철저한 토벌령에 의해 이제 무장세력이라고 남은 것은 뿔뿔히 흩어진 1개 대대 전력 정도가 전부였다. 

그나마 대부분의 병력이 소총 정도의 무장이 전부였으며, 군복도 과거 '대한민국 정부'의 마지막 군복인
디지털 픽셀 군복을 아직까지 입고 있는게 현실이었다. 더욱 처참한 것은 그들의 허리춤에 달린 수통 중
일부는 무려 1세기 전 한국전쟁 당시 쓰인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낙동강 하류 부근, 지하 땅굴 임시 아지트에서는 대한민국 정부의 수반들과 '국군' 장성들이 '최후의 
투쟁'을 놓고 격론을 벌이고 있었다. 그래봐야 14명이 전부일 따름이지만.

"더이상…투쟁이 의미가 있겠습니까"

신일수 내무부 장관은 침통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그 누구도 그 말에 쉽게 토를 달지 못했다. 지난
2일, 김준우 통일노동당 부위원장 기습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국군의 전력의 거의 1/3에 해당하는
2중대가 그 자리에서 전멸당했다. 또한 부통령 김준일 장군과 최태환 외무부장관이 밀고로 잡혀가
즉결처형을 당하면서 '대한민국 국군'의 마지막 한줌 세력은 사실상 전투 의지를 상실했다.

게다가 철저한 토벌령 이면으로 '사상전향자'에 대해서는 후한 포상을 내리는 통일조선 정부의 새로운
정책 탓에 배신이 더욱 가속화 되었다. 그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는 이제 항복을 하느냐, 최후의 최후에
해당하는 마지막 일격을 다시 한번 준비하느냐의 기로에 서있었다.

"그래도, 이대로 포기하면 지난 30년 간의 투쟁이, 그리고 지난 100년간 존재했던 이 나라의 역사는
철저히 왜곡되고 소멸됩니다. 이대로 멈출 수는 없습니다"

육참 총장 겸 선봉 1중대장 민진식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적화 통일 직전까지 교사로 활동했던
그는 얼마 전 손자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신분을 숨기고 아직까지도 대한민국 괴뢰정부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은 뭐하는 사람들이야?"

민진식의 입 속에서야 '자유 민주주의의 마지막 등불'이란 말이 맴맴 돌았지만 이미 철저한 세뇌식
역사 재교육을 받은 아들 내외 앞에서 그런 말을 꺼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그나마 아들은 
어린 시절 그에게 받은 역사 교육의 영향으로 적당히 눈치를 보느라 심한 말을 하지 않았지만 며느린
달랐다.

"뭐긴 뭐야 테러리스트들이지. 이슬람 테러반동종자들이랑 똑같은 놈들인거야"

그녀의 말에 손자는 또 물었다.

"남조선은 그렇게 미쳐 돌아갔다는데 어떻게 남측 정부가 멀쩡히 존재할 수 있었어? 그 시절 남측
인민들은 바보 아니야?"

그 말에 며느리는 힐끔 진식을 쳐다보았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은 채로 대답했다.

"인민들이 굶어죽어도 사리사욕 채우기 바쁜 놈들이었고, 독재를 했으니까. 해마다 거의 30만명이
넘는 인민들이 굶어죽었는데도 아무도 총칼이 무서워서 대항할 생각도 못했지" 
"에효… 망할 자본주의…"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진식은 생각했다. 이대로 자신들의 전쟁이 패배로 끝나면, 영원히 역사는
왜곡될 것이라고.

물론 진실을 알고 있는 2천만의 '前 한국인'들이 존재하는 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는 분명
어떤 식으로든 구전될 것이며 아무리 서적과 슈퍼넷을 통제하고 국가간 교류를 차단하더라도 엄연
히 존재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대한민국에 대한 세계 각국의 공정한 기록'은 존재하겠지만…

그래봐야 기성세대에 대한 끝없는 사상재교육과 철두철미하게 시행되는 학생들에 대한 '조선력사'
교육이 계속되는 한 2010년대의 찬란했던 대한민국은 어떤 식으로든 왜곡되어 한반도인들에게 
기억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야 아무리 외국에서 자료들을 들이밀더라도, 창조론 원리주의자에게 진화론 들이미는 수준의
반응 밖에 얻지 못할테니까.

적화통일 당시 세계 10위권이었던 대한민국의 경제력을 불과 30여년만에 세계 60위권으로 추락시킨
'북측'의 무능력함과, 당시의 남북 처지를 거꾸로 왜곡시켜 교육하는 그들의 어이없는 선동… 부모,
조부모 세대가 피와 땀으로 일으켜 세운 나라의 추락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본 이로서 느끼는 한탄
스러움은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어도 그 억울함을 다 설명하지 못하는 데가 있었다.



"그러면 어쩌잔 말이오. 모두 칼 빼들고 자살돌격이라도 합니까? 어차피 끝난 싸움이오…"

몇 시간에 걸쳐 격론이 벌어졌지만, 그 내내 그저 눈을 감은 채로 입을 다물고 있던 김지운 대통령은
천천히 의자 밑에서 국새를 꺼냈다. 적화 통일 이전의 대한민국 정부가 쓰던 국새이자, 이 무장투쟁
중인 반 공산독재 집단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유일한 증명.  

"안됩니다"
"안됩니다 대통령 님!"

지금 이 시점에서 대통령이 국새를 꺼내는 것은 항복 문서에 조인하고자 함을 눈치챈 국군 장성들이
눈물을 쏟으며 그것을 반대했다. 

하지만 이 자리의 그 어느 누군들 그 문서에 조인하고 싶겠는가. 그저 모두가 처참한 결말을 맞이할
바에야 수뇌부의 희생을 대가로 암약 중인 '마지막 자유 민주주의 국민'들의 목숨이라도 보전하기
위한 결단임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김지운 대통령은 눈물을 터뜨리는 모두에게 나지막히 말했다.

"비록 역사에 우리가 '대한민국 정부'가 아닌… 남측 괴…" 

지금 통일조선의 '력사' 교과서에서 사용되는 '남측 괴뢰정부'라는 표현을 차마 입에 올릴 수 없었던지
김지운 대통령은 멈칫하다 다시 말을 이었다.

"'남측 정부'로 표시되고 누명을 뒤집어쓰더라도… 언젠가는… 진실된 역사는 진실을 후대에 전달할
것임을, 나는 믿소"

그의 손에 들린 무거운 국새가 항복문서에 선명한 자국을 남겼고, 그렇게 '대한민국 정부'의 마지막
투쟁도 끝이 났으며 훗날 통일조선은 남한 인구 통합정책을 위해 '남측 괴뢰정부'라는 공식 표현을
'남측 정부'로 수정했다.

다만 여전히 '대한민국 정부' 라는 표기는 인정되지 않았으며 해당 표현을 사용할 경우 사상보안법에
의거하여 최고 사형에 처해졌다.


그 이후에도 약 30년간 더 이어진 김씨 일가의 독재와 쇄국 정책으로 인해 통일 조선의 국력은 끝없이
추락하다 드디어 발발한 군사 쿠데타에 의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지만, 적화통일 이후 약 60년 간
이어진 '북한식 쇄국정책'이 한반도에 가져온 여파는 실로 처참했다. 

한 저명한 경제학자는 과거 역사 속의 한 인물의 말을 빌려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이 가난한 나라가 재건되려면 최소한 100년은 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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