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기억이라 정확히 어떤 대목이었는지는 제대로 기억나지 않지만, 소설 삼국지연의를 보다보면
장비가 상대에게 '앉아서 오줌싸는 계집처럼…' 운운하며 도발하는 장면이 나온다.
예나 지금이나 남자는 서서 오줌을 싸고, 여자는 앉아서 오줌을 싸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주
보편적인 모습인 것이다. 그 자세 자체가 하나의 성적 정체성을 상징할 정도로 말이다.
요즘, 아니 사실 생각보다 꽤 됐다. '소변 앉아싸기' 운동. 남자들도 소변을 앉아서 싸자는 운동이다.
아마도 여자 형제나 엄마로부터 "변기에 조준 좀 똑바로 해" 또는 "변기커버 좀 제발 내려놔라" 하는
잔소리 한두번 안 들어본 사람 없을 것이다.
소변 묻은 질척한 변기커버에 앉는다거나, 심지어 잠결에 화장실에 갔다가 커버를 올려놓은 변기에
엉덩이 풍덩! 한 쓰라린 추억이 트라우마라도 되었는지 해외의 여성운동가들은 일찌기 남성들을 대상
으로 소변 앉아싸기 캠페인을 벌여왔다. 실제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기도 했단다. 학교에서 앉아서
싸기를 교육하고, 아예 공공장소에서 남성용 소변기를 일부 철거까지 한 나라도 있을 정도라고 하니.
게다가 더 놀라운건, 한국도 어느샌가 이 캠페인이 퍼져서 생각보다 적지 않은 수의 남자들이 이미
앉아서 소변을 본단다. 놀라운 일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나름대로 이해해 줄 수 있는 일이긴 하다. 성기 구조상 앉아서 쌀 수 밖에 없는
여성의 입장에서 봤을 때 소변이 묻은 더러운 변기커버에 앉는 경험이나 풍덩! 하는 경험은 짜증 그
자체일 수 밖에 없고, 부부 간 협조가 일반화 된 세상이라고 해도 화장실 청소의 몫은 여전히 아내의
몫인 경우가 많은 이상 청소 문제 때문에라도 '남성의 앉아쏴'를 여성들이 선호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위생 문제도 있다. 서서 싸게 될 경우 여기저기 오줌 방울이 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아무리 조준을
잘하더라도 분자 단위의 소변 방울은 화장실 여기저기에 튀기 마련인데(칫솔에까지도!) 아무래도
위생을 고려할 때 찝찝한게 사실이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단순히 합리성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일이 많다. 아무리 실리가 명분보다 더 크다고 하더
라도 때로는 명분을 버리기 어려운 일이 있듯이, 아무리 앉아쏴의 장점을 나열하더라도 도저히 받아
들이기 어려운 일들이 있는 법이다.
바로 남자된 입장에서 앉아서 소변 보는게 그렇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래, 어차피 똥 쌀 때도 앉아서 싸는거, 소변 볼 때도 앉아서 쌀 수도 있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내미
들을 위해 앉아서 싸 줄 수도 있다. 소변 볼 때마다 다소곳하게 바지 내리고 얌전히 앉아 오줌 싸고
일어난다고 멀쩡한 고추가 떨어져 나가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남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여전히 납득가지 않는 불쾌한 기분이 남는다. 옹졸하다고 할 지
모르겠지만 자존심이 짓밟힌 기분마저 든다.
암만 생각해도 어디가서 당당히 자랑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만약 아내가 제 딴에는 배려하는 남편을
자랑한답시고 "우리 남편은 저를 위해서 앉아서 소변 봐요!" 하고 어디서 떠들고 다니기라도 한다면
그곳에 있는 다른 남자들 앞에서 고개도 못 들 것 같다.
왜일까.
소변의 '서서쏴'는 인류가 두 발로 걷기 시작한 이래 남성들이 지난 수백만년간 익숙하게 행해온
배설의 방식이다. 한 개인의 입장에서도 기십년간 행하여왔으며 그렇게 정립되어 행해온 배설의
방식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현대의 남성들은 바꾸라고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다.
배설의 시간이 어떤 시간인가. 가장 은밀하면서도 안락함이 보장되어야 하는 시간 아닌가. 일부의
스카톨로지 애호가 아닌 다음에야 배설하는 순간만큼은 배우자에게도 공유하지 않는 지극히 개인
적인 시간이다.
지금 남성들은 그런 시간마저 그녀들에게 참견당하며,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 방식이 편한 방식이기라도 하면 말도 안 한다. 기존의 방식보다 훨씬 불편하며 번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다(남성 화장실의 회전율이 왜 여성 화장실의 회전율보다 높겠는가. 여자들이
화장실에서 진짜 화장하는 시간 같은 것을 제외하더라도 말이다) 소변의 뒷처리, 소위 '털기'에도
용이하지 않은 자세다. 위생을 위해서 앉아서 싼다며 제대로 털지못해 팬티에 오줌 한두방울 지린
다면 그건 어이없는 역설 아닌가.
여기서 앉아쏴 주의자들의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면 남자들의 편의를 위해서 여자들은 앞으로도 계속 비위생적인 변기커버에 앉아야 하느냐고.
그래, 바로 그 점이다.
당초 문제점은 잘 짚어냈다. 서서 소변을, 그것도 변기커버조차 올리지 않고 소변을 봐버린다거나
변기커버를 올리고 소변을 봐놓고선 다시 내려놓지 않아서 다음 차례에 여자가 이용할 때 황당한
경험을 하게 만드는 바로 그 문제.
그럼 그걸 해결하면 되는거 아닌가. 아주 솔직하게 까고서 말해보자. 왜 '앉아쏴' 운동을 하는가.
위생이니 배려니 존중이니 하는 포장지 벗겨놓고 말해보자면 남자들이 변기커버에 질질 흘려놓
거나 변기커버를 제대로 안 해놔서 귀찮고 짜증나니까 하는 운동 아닌가.
옳거니, 그럼 그걸 고치면 된다. 엉뚱하게 반발을 사가며 개헛지랄 할 필요 없다.
당당히 남자들에게 '변기커버를 올리고 소변을 보시오', '변기커버를 올리고 소변을 본 이후에는
그것을 잘 내려놓으시오' 라는 캠페인을 더 열심히 펼치라는 것이다. 그것까지는 얼마든지 '상식과
배려'의 영역에서 이해해 줄 수 있는 영역이다. 앉아쏴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남성성과 평생 몸에
배인 습관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위험한 도발인데 왜 굳이 멀고도 험한 길을
싸우면서 힘들게 돌아돌아 가는가.
똥 쌀 때도 어차피 앉아서 오줌 싸는데 평소에는 왜 그렇게 못하냐는 무식한 주장도 제발 좀 관두
기를 바란다. 똥을 싸야하니 어쩔 수 없이 앉아서 싸는 방식을 매번 모든 소변에까지 대입하라는
것은 어차피 차야하니 365일 내내 오버나이트 사이즈 생리대 차고 돌아다니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위생 문제로 따지고 드는 사람도 있는데, 음식물의 분해에 필요한 대장균이 포함된 대변과는 달리
소변에는 단 하나의 세균조차 원칙적으로는 존재해서는 안되는 것이 우리 몸의 구조다. 신진대사
과정의 요산이나 크레아틴 등의 부산물이 섞여있기는 하나, 적어도 분자 단위의 소변 방울이 치약
에 미세하게 튀는 것을 걱정할 정도로 불결한 물질은 아니라는 소리다. 소변에 세균이 섞여있다면
병원부터 갈 일이다.
어차피 대변 보고 물 내릴 때 깜박하고 변기 뚜껑 한번 안 닫고 내리면 그게 수백배는 더 불결한
행위이며 그런 식의 걱정이면 어차피 화장실과 세면실의 일체형 구조 화장실 자체가 문제인데다
애시당초 철저히 관리하지 않으면 세균의 온상이나 다름없는 것이 바로 칫솔이다. 쓸데없는 것에
걱정할 시간이 있다면 차라리 맛나는거 많이 먹고 근심걱정 덜하고 스트레스 덜 받는 일이 면역력
증진과 보다 건강한 미래를 위한 길이다.
아울러 '앉아쏴'를 이미 실천하는 남자들에게.
그것이 강요에 의한 것이던, 진정 아내에 대한 배려이던, 과거의 적지 않은 패미니스트 남성들이
그랬듯이 '다른 남자들을 마초라고 내려다보며 앞서 나가는 남자의 이미지를 소유하고 싶어하는
허영'이던…
무엇이든 상관없고 어쨌든 결과적으로 본인이 그렇게 불편함을 감수함으로서 한 가정의 여성들
에게 심적 안락을 제공해준다면 다행한 일이며 그 가정에 국한해서는 아름다운 일일지도 모르겠
지만 그것은 거기에서 끝날 일이다.
자신이 수십년간 행해온 원초적인 행위의 방식을 갑자기 바꾸라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황당한
주장 앞에 어이없음을 토로하는 또 다른 남성들을 무슨 마초의 화신이나 시대에 뒤떨어진 무식한
사람들 마냥 매도할 여력이 있다면 그런 헛지랄을 할 시간에 거칠어진 아내의 손마디나 한번 더
잡아주는 것이 더 사랑받을 수 있는 길임을 귀뜸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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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줌 앉아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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