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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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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한국의 맛을 찾아서 - 남산 코렁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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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저 왔습니다. 어휴 춥다" 

춥다 못해 살이 에이는 칼바람을 뚫고 텅빈 가게 안으로 한 남자가 들어선다. 삐쩍 마르고 자기 얼굴 
1/3을 가리는 큰 뿔테 안경을 쓴, 별로 몸이 건강해보이지 않는 전형적인 룸펜 스타일의 남자. 뜨끈~
하고 고소한 코렁탕의 향이 온 가게 안을 채우는 가운데, 금방 안경에는 희뿌연 김이 서린다.

"허이구미, 또 왔냐 이 눔아! 뭘 얼마나 쳐먹으러 왔어! 그리 쳐먹고도 부족하두냐, 지미 육시를 할 놈!"

주인장 할머니는 오늘도 구수한 욕을 푸지게 한 사발 내주신다. 

"헤헤, 저야 항상 잊을만 하면 이 맛이 생각이 나서. 으 춥다, 얼른 한 그릇 주세요" 
"지둘려 이 눔아, 끓어야 내주지, 찬 거 묵고 체해서 나가다 뒤지면 우짤라구? 니 염까지 해주랴?"

그래도 어느새 할머니의 정감 어린 표정에는 은은한 흐뭇함이 감돈다. 코렁탕 외길 28년. 코렁탕 제조
에는 내 이 나라에서 손구락에 꼽힌다 싶을 정도의 장인이 되었건만 어느새 코렁탕은 더이상 아무도 
먹지 않는 음식이 되어버렸다. 부글부글 끓는 가마솥의 코렁탕을 바라보다 욕쟁이 할마이는 상념에
빠졌다.

한때는 테레비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 열에 하나는 여기서 다 한 그릇씩 잡쉈는데. 요새는 아무도 당최
찾지를 않는다. 조간만 간판을 내릴 예정이다. [남산 대공분식] 이 간판 하나로 기십년을 장사했는데.
씁쓸한 생각에 할머니는 입맛을 다셨다. 

룸펜은 가방에서 가져온 그 콤퓨타인지 뭔지를 식탁 위에 꺼내놓고 또 뭘 쭈물딱 거리고 있다. 뜨끈허이 
끓은 뽀오얀 솥을 휘휘 젓던 할매는 물었다.

"그것이 그 콤푸타인가 뭔가 그거냐?"
"예, 할머니. 컴퓨터예요. 제가 이걸로 먹고 삽니다"
"먹고 살기는 지미럴, 만날 그거하다 쳐먹는게 고작 이 코렁탕이여?"
"하핫"

적당히 끓을만큼 끓자, 할매는 불을 줄이고 담백허니 진한 국물을 뚝배기에 국자로 듬뿍듬뿍 담았다. 
밥을 말아서 내가는 코렁탕의 특성상 국은 뜨끈하되 밥은 찬밥이어야했다. 그래야 맛이 좋고 코에 그
밥알이 오래 남아 알싸한 그 맛을 증대시킨다. 

"쳐묵어라 이 눔아"

이십수년간 뚝배기를 맨 손으로 날라 아예 양 손 모든 손가락 마디에는 굳은 살이 배겼다. 맨 손으로
뚝배기를 그 젊은 놈 식탁 우에다 날라다주고, 이어 항아리에서 아까 꺼내온 고춧가루 듬뿍 뿌린 맛
좋은 깍두기도 한 그릇 내갔다.

코렁탕 한 그릇에 깍두기 한 접시, 소금 반 종지. 이게 이 가게의 불문율이다. 수저는 없다. 

"잘 먹겠습니다"
"예끼 이 눔아"

할매는 저만치 가서 구석에 가만히 요렇게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이윽고 남자는 안경을 슥 벗어놓곤
찬밥을 말아 그리 뜨겁지 않은 코렁탕에 입김을 또 후후 불었다.

"걍 쳐먹어 이눔아. 뜨실 때 먹어야 맛나"
"아 그래두요, 할머니두 참"

청년은 웃으며 손사레를 쳤다. 그리고는 조금 더 입김을 불어 코렁탕을 식힌 뒤 가만히 그 코렁탕이
가득 든 뚝배기를 들어 얼굴빼기로 가져갔다. 가만히, 가만히 뚝배기를 기울여 그 뜨신 국물이 뚝배
기를 타고 흘러, 청년의 인중으로, 그리고 콧 속으로 가만히 흐르기 시작했다.

"크흥"

뜨신 국물이 연한 콧 안쪽을 타고 흐르자 청년은 눈을 질끈 감으며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그
찌릿짜릿한 맛은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밥알 들어간다~ 콧구멍 더 벌려라 이 눔아"

껄껄 웃으며 할매가 외치자 청년은 코를 벌름거렸다. 조금씩 흐르던 코렁탕의 줄기는 조금 더 굵어
졌고 그 뜨신 국물을 따라 밥알들이 한알 두알씩 청년의 콧구멍 속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끄윽, 끄윽"
"더, 더, 더 벌려 이 눔아"

과거에 통일미로 코렁탕을 말던 시절에는 그 알알이 흩어지기 쉬워 콧 속에 채우기도 좋았는데 언
제부턴가는 쌀이 찰져서 코렁탕의 맛이 아주 좋지가 않았다. 코렁탕이 몰락한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중국산 찐쌀이 도입되고 나서는 다시 예전의 그 맛을,
전부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까지는 재현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래봐야 예전만 못하지만.

"끄으윽, 끄으"

반대쪽 콧구멍에 콧물이 콧물거품이 되기 시작했다. 남자는 코렁탕이 그토록 맛나던지 오만상을
찌푸리며 겨우겨우 코렁탕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국물이 얼굴 전체에 쏟아지기 시작하고
밥알들이 두 콧구멍을 가득 채울 무렵, 뇟 속까지 전해진 미칠듯한 짜릿함에 남자는 전기에라도 
감전된 양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렇게 맛좋냐 이 눔아" 

껄껄 웃는 할매와 뚝배기를 손에서 놓쳐 깨뜨리며 바닥에 쓰러진 청년. 할매는 신나게 웃으면서
"하이고, 잘 묵었다 이 눔아. 이제 고만 쳐묵고 퍼뜩 가자~" 하면서 청년의 콧구멍에 가득 낀
밥알들을 파내주었다. 그리고 주방에서 떠온 찬물 한 바가지를 끼얹자 청년은 겨우 다시 정신을
차렸다.

"잘 먹었습니다"

할매는 흐뭇하게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맛나게 묵었으니 이제 가서 푹 한숨 자. 찌질거리지 말구"
"예 할머니"

둘은 정겹게 서로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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