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아버지의 젊은 시절이 담긴 한 온라인 텍스트 페이지에 푹 빠져있다.
약 30여 년 전에는 그것을 '블로그'라고 부른 모양이다. 구 시대의 전자식 컴퓨터로, 인터넷(지금으로
말하자면 아주 원시적인 형태의 하이퍼넷 같은 것이다)에 접속해서 단순히 텍스트 또는 이미지 파일
(당시의 이미지 파일은 그저 시각 정보만을 제공하는 형태였다)로 구성된 내용들을 눈으로 읽고, 또
텍스트로 반응하는 형태의 아주 낡은 정보 소통 매체지만… 그 내용만큼은 아주 흥미로웠다.
은퇴한 이후에도 쉬지 못하고 야간 경비 시스템 관리일을 나가시는 아버지의 초라한 등을 보면, 저
사람이 정말 이 글을 쓴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이질적이긴 하지만 아주 가끔 엄마가 집을 비울 때
"이거는 남자끼리 하는 이야기다?"
라면서 꼭 내 친구 같은 표정을 지으며 이런저런 장난을 할 때의 모습을 보노라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저렇게 마누라한테 꽉 쥐여 살면서 답답한 일상을 겨우겨우 채워나가는, 진짜 섹스라고는 딱 우리 엄마
하고만 해봤을 것 같은 양반이 정말로 이 글을 쓴 사람이라니. 정말로 놀랍다.
처음에는 나 역시 당연히 그냥 전부 소설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이 아버지의 구 PC에 남은 사진들로
모든 것이 사실로 드러났을 때 나는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아버지의 화려한 과거만큼이나, 그것을 평생토록 완벽하게 속인 연기력도 놀랍다. 아니 가끔은 분명히
그런 날도 있었을 것 아닌가. 자신의 화려한 과거를 자랑하고 싶다거나, 아니면 엄마에게 뭐 사실은 나
이랬었어, 하고 말하고 싶어진다거나. 뭐 그러는게 당연한거 아닌가. 그 모든 것을 숨긴 아버지가 새삼
정말로 놀라웠다.
"흐음"
오늘도 난 알바를 마치자마자 집으로 돌아와 NC를 켜고 하이퍼넷에서 구입한 변환기에 아버지의
구 PC를 물려 국가 중앙전산부 기록망에 접속해 인터넷 로그를 뒤졌다.
열람기간 2010년부터 2015년까지의 체크박스를 마인드 터치했고 STYLEBOX를 검색하자 수억 단위의
검색항목이 떴다. 그리고 몇십 페이지를 사라라락 눈으로 훑으며 넘기자 다시 stylebox.egloos.com의
DB 기록이 보였다. 난 그 열람을 초이스했다.
구 시대 '인터넷'의 기록이라서 내 NC에서 촉감이나 후각 등 인식보조장치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지만
그저 이렇게 눈으로만 훑어내려가기만 해도 충분히 즐거웠다. 언젠가 우리나라도 이웃나라들처럼 과거
인터넷 로그들의 NC DB화 작업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훨씬 거대하고 중요한 인터넷 페이지의
기록조차 아직 손도 안 대고 있는데 이런 기록문화 후진국에서 개인 기록의 NC DB화라니, 그런 것을
기대하는 건 어림없는 소리겠지. 사실 아무도 오래된 인터넷 기록 따위는 관심도 갖지 않지만.
솔직히 나조차도 지하실에서 이 '생각보다 짧은 시간' 책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 책에 실린
몇 가지 이야기가, 언젠가 할아버지에게 들은 아버지의 유년기와 일치한 내용이 아니었다면 나 역시
절대로 아버지의 구 PC를 어떻게 뒤져볼 생각을 하거나, 인터넷 망 따윈 접속할 일이 없었을테니까.
'젊은 시절 아버지의 글'을 죽 읽어나가다보니 웃음이 나왔다. 시대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기는 해도,
그때 그 시절 아버지의 고민들은 지금의 내가 하는 고민과 닮은 데가 있었다. 물론 내가 더 상황이
나쁘지만.
경제적 자립 문제… 하기사 그래도 아버지는 이미 20대부터 자취를 하며 자유롭게 살기라도 했지.
난? 맥도날드에서 시급 13만원씩 받으면서 겨우 연명하는 싸구려 청춘 주제에 무슨 놈의 자취인가.
그리고 성적인 글들도…기왕 유전자를 물려줬으면 말빨이나 센스도 좀 같이 물려주던가. 분명히
아버지는 젊었을 때 화려하게 놀았던 것 같은데 나는 뭐야. 맨날 어디가도 재미없다는 소리나 듣고,
글도 머리도 다 후지고. 으휴.
'실화' 카테고리의 글도 글이지만 '소설'이나 '망상' 카테고리의 글도 재미있었다. 내가 그 양반의
아들이라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정말로 나는 그 글들이 좋았다. 왠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겹쳐
보이는 글도 있고, 분명 일부는 아버지가 젊은 시절 겪었던 일들이렸다.
그리고, 그래서 부러웠다.
평생을 초라하고 힘 없는 가장으로 산 아버지이지만, 그래도 그는 한창 시절 놀만큼 놀았잖는가.
그런데 난.
난 뭐지.
하루 5시간씩 주 4일제로 쌔가 빠지게 풀 타임 근무해봤자 월급 천만원 겨우 넘기는 좆같이 우울한
환경 속에 무슨 놈의 즐거운 인생인가. 물론 이래봤자 노인들은 "우리는 주 5일 하루 8시간 근무가
기본이었고 심하면 막 12시간씩도 일하고 그랬어!" 하고 호통을 치지만 그건 그 때 그 시절의 극단
적인 이야기들 아닌가. 그때 그 시절 이야기를 하면 안 되지.
답답한 마음에 난 센스비전을 켰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나는 수면채널을 틀었고, 수면동조 파장에 감응한 나는 곧 몰려오는 피로
에 그대로 침대로 향했다. 너무 졸립다.
"아…다 읽어봤냐?"
"비밀 글로 묶인 글들 빼구요"
아버지가 30년 전에 쓴 블로그 글들을 읽어봤다는 내 말에 아버지는 픽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개똥글들이지 뭐. 재밌었냐?"
"네. 몇 개는 좀 황당한 글도 있었지만요"
"흐, 미친 글도 좀 많았지. 난 그게 좋았어.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준다는게. 웃어주면 더 좋고"
난 공감하며 말했다.
"너무너무 진솔한 글들이 좋았어요. 그리고 그 시절에 벌써 아버지가 커밍아웃을 하기도 했었
다는 사실이 너무너무 자랑스럽구요. 친구들한테 자랑하니까 완전 쿨하시다며 좋아해요"
하지만 내 말에 아버지는 다소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커밍아웃이라니"
난 픽 웃었다.
"아 다 읽어봤다니까요? 게이 글이 그렇게 많던데요. 진짜 아버지가 너무너무 자랑스러워요. 제
친구들 다 놀래요. 그때 그 시절에 커밍아웃하고 당당히 남자랑 사귀다니. 게다가 게이이신데도
아이를 낳기 위해 엄마랑 결혼까지 하다니. 전 진짜 감동했어요. 게다가 그런데도 엄마한테는
모든 것을 숨기고 사랑하며 지금까지 수십년을 살아오셨잖아요"
솔직히 난 아버지가 너무나도 존경스럽다. 그가 한 평생을 그토록이나 아내에게 져주면서 살았던
것은, 그의 본성에 깔린 동성애를 억누르며 '나'를 위해 어머니에 대한 배우자로서의 의무에 너무
나도 충실했기 때문인 것이 분명했으니까.
"아냐 임마, 나는 완전 이성애자야. 게이 글은 그냥 웃길려고…"
귀엽게도 아버지는 나에게 숨기려고 했지만 난 크게 웃었다.
"아 참, 아부지, 내가 엄마한테 말할까봐요? 절대로! 절대로! 말 안 할께요. 저는 진짜 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위대한 사람 같아요. 그리고 요즘에는 그런거 절대로 흉 아니에요"
아버지는 어이없다는 듯 "어휴, 어휴… 멍청한 자식. 저러니 맨날 국어 점수가 60점을 못 넘지"
하고 고개를 젓고 방을 나섰다.
무슨 의미로 하는 말인지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어쨌든 나는 오늘도 다시 아버지의 블로그 글을
읽는다.
생각보다 짧은 시간… 그래, 그는 지금 다시 한번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부정했지만, 뭐, 30년의
세월은 그가 다시 이성애자로 변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고, 어쩌면 정말로 생각보다 짧은 시간
인지도 모르겠다.
30년 전의 아버지를 보며, 나는 내 삶의 새로운 비전을 오늘도 그렇게 열심히 그 안에서 찾으려
한다. 그의 과거는 오늘의 나와 너무나 닮았기에.
약 30여 년 전에는 그것을 '블로그'라고 부른 모양이다. 구 시대의 전자식 컴퓨터로, 인터넷(지금으로
말하자면 아주 원시적인 형태의 하이퍼넷 같은 것이다)에 접속해서 단순히 텍스트 또는 이미지 파일
(당시의 이미지 파일은 그저 시각 정보만을 제공하는 형태였다)로 구성된 내용들을 눈으로 읽고, 또
텍스트로 반응하는 형태의 아주 낡은 정보 소통 매체지만… 그 내용만큼은 아주 흥미로웠다.
은퇴한 이후에도 쉬지 못하고 야간 경비 시스템 관리일을 나가시는 아버지의 초라한 등을 보면, 저
사람이 정말 이 글을 쓴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이질적이긴 하지만 아주 가끔 엄마가 집을 비울 때
"이거는 남자끼리 하는 이야기다?"
라면서 꼭 내 친구 같은 표정을 지으며 이런저런 장난을 할 때의 모습을 보노라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저렇게 마누라한테 꽉 쥐여 살면서 답답한 일상을 겨우겨우 채워나가는, 진짜 섹스라고는 딱 우리 엄마
하고만 해봤을 것 같은 양반이 정말로 이 글을 쓴 사람이라니. 정말로 놀랍다.
처음에는 나 역시 당연히 그냥 전부 소설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이 아버지의 구 PC에 남은 사진들로
모든 것이 사실로 드러났을 때 나는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아버지의 화려한 과거만큼이나, 그것을 평생토록 완벽하게 속인 연기력도 놀랍다. 아니 가끔은 분명히
그런 날도 있었을 것 아닌가. 자신의 화려한 과거를 자랑하고 싶다거나, 아니면 엄마에게 뭐 사실은 나
이랬었어, 하고 말하고 싶어진다거나. 뭐 그러는게 당연한거 아닌가. 그 모든 것을 숨긴 아버지가 새삼
정말로 놀라웠다.
"흐음"
오늘도 난 알바를 마치자마자 집으로 돌아와 NC를 켜고 하이퍼넷에서 구입한 변환기에 아버지의
구 PC를 물려 국가 중앙전산부 기록망에 접속해 인터넷 로그를 뒤졌다.
열람기간 2010년부터 2015년까지의 체크박스를 마인드 터치했고 STYLEBOX를 검색하자 수억 단위의
검색항목이 떴다. 그리고 몇십 페이지를 사라라락 눈으로 훑으며 넘기자 다시 stylebox.egloos.com의
DB 기록이 보였다. 난 그 열람을 초이스했다.
구 시대 '인터넷'의 기록이라서 내 NC에서 촉감이나 후각 등 인식보조장치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지만
그저 이렇게 눈으로만 훑어내려가기만 해도 충분히 즐거웠다. 언젠가 우리나라도 이웃나라들처럼 과거
인터넷 로그들의 NC DB화 작업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훨씬 거대하고 중요한 인터넷 페이지의
기록조차 아직 손도 안 대고 있는데 이런 기록문화 후진국에서 개인 기록의 NC DB화라니, 그런 것을
기대하는 건 어림없는 소리겠지. 사실 아무도 오래된 인터넷 기록 따위는 관심도 갖지 않지만.
솔직히 나조차도 지하실에서 이 '생각보다 짧은 시간' 책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 책에 실린
몇 가지 이야기가, 언젠가 할아버지에게 들은 아버지의 유년기와 일치한 내용이 아니었다면 나 역시
절대로 아버지의 구 PC를 어떻게 뒤져볼 생각을 하거나, 인터넷 망 따윈 접속할 일이 없었을테니까.
'젊은 시절 아버지의 글'을 죽 읽어나가다보니 웃음이 나왔다. 시대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기는 해도,
그때 그 시절 아버지의 고민들은 지금의 내가 하는 고민과 닮은 데가 있었다. 물론 내가 더 상황이
나쁘지만.
경제적 자립 문제… 하기사 그래도 아버지는 이미 20대부터 자취를 하며 자유롭게 살기라도 했지.
난? 맥도날드에서 시급 13만원씩 받으면서 겨우 연명하는 싸구려 청춘 주제에 무슨 놈의 자취인가.
그리고 성적인 글들도…기왕 유전자를 물려줬으면 말빨이나 센스도 좀 같이 물려주던가. 분명히
아버지는 젊었을 때 화려하게 놀았던 것 같은데 나는 뭐야. 맨날 어디가도 재미없다는 소리나 듣고,
글도 머리도 다 후지고. 으휴.
'실화' 카테고리의 글도 글이지만 '소설'이나 '망상' 카테고리의 글도 재미있었다. 내가 그 양반의
아들이라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정말로 나는 그 글들이 좋았다. 왠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겹쳐
보이는 글도 있고, 분명 일부는 아버지가 젊은 시절 겪었던 일들이렸다.
그리고, 그래서 부러웠다.
평생을 초라하고 힘 없는 가장으로 산 아버지이지만, 그래도 그는 한창 시절 놀만큼 놀았잖는가.
그런데 난.
난 뭐지.
하루 5시간씩 주 4일제로 쌔가 빠지게 풀 타임 근무해봤자 월급 천만원 겨우 넘기는 좆같이 우울한
환경 속에 무슨 놈의 즐거운 인생인가. 물론 이래봤자 노인들은 "우리는 주 5일 하루 8시간 근무가
기본이었고 심하면 막 12시간씩도 일하고 그랬어!" 하고 호통을 치지만 그건 그 때 그 시절의 극단
적인 이야기들 아닌가. 그때 그 시절 이야기를 하면 안 되지.
답답한 마음에 난 센스비전을 켰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나는 수면채널을 틀었고, 수면동조 파장에 감응한 나는 곧 몰려오는 피로
에 그대로 침대로 향했다. 너무 졸립다.
"아…다 읽어봤냐?"
"비밀 글로 묶인 글들 빼구요"
아버지가 30년 전에 쓴 블로그 글들을 읽어봤다는 내 말에 아버지는 픽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개똥글들이지 뭐. 재밌었냐?"
"네. 몇 개는 좀 황당한 글도 있었지만요"
"흐, 미친 글도 좀 많았지. 난 그게 좋았어.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준다는게. 웃어주면 더 좋고"
난 공감하며 말했다.
"너무너무 진솔한 글들이 좋았어요. 그리고 그 시절에 벌써 아버지가 커밍아웃을 하기도 했었
다는 사실이 너무너무 자랑스럽구요. 친구들한테 자랑하니까 완전 쿨하시다며 좋아해요"
하지만 내 말에 아버지는 다소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커밍아웃이라니"
난 픽 웃었다.
"아 다 읽어봤다니까요? 게이 글이 그렇게 많던데요. 진짜 아버지가 너무너무 자랑스러워요. 제
친구들 다 놀래요. 그때 그 시절에 커밍아웃하고 당당히 남자랑 사귀다니. 게다가 게이이신데도
아이를 낳기 위해 엄마랑 결혼까지 하다니. 전 진짜 감동했어요. 게다가 그런데도 엄마한테는
모든 것을 숨기고 사랑하며 지금까지 수십년을 살아오셨잖아요"
솔직히 난 아버지가 너무나도 존경스럽다. 그가 한 평생을 그토록이나 아내에게 져주면서 살았던
것은, 그의 본성에 깔린 동성애를 억누르며 '나'를 위해 어머니에 대한 배우자로서의 의무에 너무
나도 충실했기 때문인 것이 분명했으니까.
"아냐 임마, 나는 완전 이성애자야. 게이 글은 그냥 웃길려고…"
귀엽게도 아버지는 나에게 숨기려고 했지만 난 크게 웃었다.
"아 참, 아부지, 내가 엄마한테 말할까봐요? 절대로! 절대로! 말 안 할께요. 저는 진짜 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위대한 사람 같아요. 그리고 요즘에는 그런거 절대로 흉 아니에요"
아버지는 어이없다는 듯 "어휴, 어휴… 멍청한 자식. 저러니 맨날 국어 점수가 60점을 못 넘지"
하고 고개를 젓고 방을 나섰다.
무슨 의미로 하는 말인지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어쨌든 나는 오늘도 다시 아버지의 블로그 글을
읽는다.
생각보다 짧은 시간… 그래, 그는 지금 다시 한번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부정했지만, 뭐, 30년의
세월은 그가 다시 이성애자로 변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고, 어쩌면 정말로 생각보다 짧은 시간
인지도 모르겠다.
30년 전의 아버지를 보며, 나는 내 삶의 새로운 비전을 오늘도 그렇게 열심히 그 안에서 찾으려
한다. 그의 과거는 오늘의 나와 너무나 닮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