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농담으로 던진 말인데 그녀는 진담으로 받았다.
"정말요? 음, 그럼 주말에 일요일에 놀러 오세요"
아니, 어쩌면 그녀도 진담없이 던진 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없는 놈 마냥 진짜로 문자를
오늘 놀러가도 되냐고 보냈고 그녀도 마침 남편 님도 어디가고 집에 아무도 없는 통에 완전 심심하다며
쿨하게 놀라오라고 했다. 물론 그녀는 설마 내가 혼자 가리라고는 상상도 안 했을 것이다. 아마도 전의
정모 때처럼 태경, 문식이랑 같이 모일 줄 알았나보다.
하지만 나는 혼자 갔다. 왕년에 이태리에서 산 돌체 앤 가바나 빤쓰를 챙겨입고.
"어서오세요"
머리를 매만지며 문을 열어준 그녀. 하지만 내 뒤에 아무도 없자, 저으기 놀란 눈치다.
"저기, 혹시 혼자 오신 거에요?"
"그럼 누구랑 따로 오겠어요"
"아"
유부녀와 외갓남자가 한 집에 같이 있자 곧바로 분위기가 어색해진다.
"시장하시죠? 라, 라면 끓여내올께요"
그녀는 서둘러 주방으로 자리를 피한다. 무척이나 당황한 눈치다. 나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신혼은
지났다 치더라도 아직 애가 없는 집이라 그래도 풋풋한 신혼의 냄새가 가득하다. 몰래 침대에 코를
박고 냄새도 맡아본다. 향긋한 샤프란 향기 속에 조금은 쿰쿰한 삶의 냄새가 배어있다.
노을이 지는 시간. 창 밖으로 아이들이 공 차고 뛰노는 소리가 들려온다.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그리
덥지 않다. 채광도 좋아 노을이 방 안 가득 들어온다. 나도 이런 집에서 가정을 꾸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노곤함이 밀려온다.
나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 무렵, 그녀가 "기다리셨죠" 하며 꽃게 라면을 끓여내왔다. 오늘의 이 방문
자체가 이 꽃게 라면에 대한 찬양글에서 나온 일이다.
"같이 드시죠?"
"아니에요, 저는 사실 이미 밥 먹었어요"
수줍게 말하는 그녀. 유부녀라고는 해도, 여인이 수줍음 타는 모습은 언제봐도 귀엽다. 나는 젓가락을
들어 한 입 후룩 먹어본다. 카, 맛나다. 아차하면 정말 맛없어지는게 이 라면인데 맛나게도 끓여왔다.
"맛있네요. 그럼 어디 맛나게 먹어볼까?"
후룹, 후루룹, 후룹, 훕, 후루룹
일본에서는 면발을 먹을 때 소리를 내면서 먹어야 예의라던가. 가히 쪽바리다운 쌍놈의 문화라 할만
하지만 확실히 면은 소리를 내며 먹어야 더 맛이 나는 법이다. 나는 일부러 더 후룩거리면서 먹었다.
"김치도 참 맛있네요. 직접 담그시는 거에요?"
"친정에서 보내주신 김치에요. 떨어지면 사 먹고"
"아 어머님이 김치 솜씨가 끝내주시네요"
"그쵸? 저도 그 반만 배웠어도 남편한테 사랑받을텐데"
"사랑 충분히 받으실 거 같은데"
부럽다. 남편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아내라니. 어쨌든 라면을 먹는다. 한 개를 다 먹었다. 그래도 내 배는
차지 않았다.
"혹시 밥 남은거 없나요?"
"아, 있어요. 잠시만요"
그녀는 한쪽 무릎을 세우더니 곧 일어나 거실로 가서 밥을 떠온다. 한 덩이, 두 덩이, 세 덩이. 손도 크다.
저걸 혼자 어떻게 다 먹나.
"어휴, 많이도 퍼오셨네. 이걸 어떻게 다 먹죠?"
"어머, 제가 손이 좀 커서. 푸다보니 이렇게 됐네요. 드실만큼 드시고 남기세요"
"네에. 어휴, 벨트 끌르고 먹어야겠다"
난 일부러 바지벨트까지 풀렀다. 그녀는 살짝 고개를 돌렸다. 귀엽다. 밥 두 덩이를 큼지막하게 떠서 라면
국물에 푹푹 말았다. 그녀의 푸짐한 정성을 생각해 세 덩이 다 먹으련다. 우적우적, 김치가 정신없이 입에
들어가고 배 안에서 면발이 불기 전에 다 쓸어넣기 위해 쉴새없이 내 턱은 움직인다.
쩝쩝 챱챱 맛나다. 한낱 라면이지만 맛나다. 그녀가 끓여준 라면이니까. 유부녀의 라면이니까.
정신없이 라면을 다 먹고 나서 상을 치우고 나는 헉헉댄다. 배가 남산만하다. 터질 것 같다. 난 벨트를 풀어
이제 바지자크로 조금만 더 내려가면 팬티까지 노출되는 판임에도 그대로 배를 내민 채 헉헉댔다.
"정말 잘 먹었습니다 어휴"
"정말 잘 드시더라구요. 보는 제가 더 고마웠어요. 남편이 그 반만 잘 먹었어도 정말 좋겠네"
"남편 님이 소식하시는 편이세요?"
"네, 제 반도 안 먹는다니까요. 근데도 배는 항상 남산만해요. 어휴"
"허허"
그리고 문득 대화가 끊어졌다. 어느새 노을도 져가고 바깥은 조금씩 어둠에 물든다. 그러고도 한참을
우리 둘은 어색한 침묵 속에-시간으로는 몇 분 되지 않았겠지만- 그대로 앉아있었다.
"어머, 불 켜야겠네"
많이 어색했던지 그녀가 어색하게 일어나 불을 켜려고 했다. 나는 물었다.
"남편 님이 언제 오시죠?"
"밥 먹고 온다고 했으니, 한…8시 9시쯤에 올 거예요"
"그래요"
몸을 일으키며 불을 켜려던 그녀에게 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남편 님 올 때까지…아직 한 두시간 남았네요"
"네에"
짧은 침묵 속에서 그녀의 목구멍으로 침이 꼴깍 넘어가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속삭였다.
"라면 값…하고 싶어요"
내 말이 무슨 뜻인지 그녀가 이해하기까지 찰나의 시간, 그리고 그에 대한 긍정도 부정도 아닌 무반응을
내가 승락으로 받아들이기까지의 또 짧은 정적이 지났다. 나는 몸을 일으켰고 그녀는 또 한 발자국 내 곁
으로 다가왔다.
내 손길은 그녀의 손등을 완면하게 스쳐지났고, 곧이어 두 손길은 포개어졌다. 하지만 방 안에 가득한
라면 냄새를 새삼 의식한 그녀는 뒤늦게 뜬금없이 "상 좀 치우구요" 하고 나를 가볍게 밀쳐냈다.
상을 내어가는 그녀의 뒷태를 바라보며 문득 한 소박한 가정에 대한 죄책감을 느꼈지만, 그보다는 묘하
고도 아늑한 분위기의 이 집의 안방을 나의 존재로 더럽히고픈 충동이 더 강렬했다.
"정말요? 음, 그럼 주말에 일요일에 놀러 오세요"
아니, 어쩌면 그녀도 진담없이 던진 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없는 놈 마냥 진짜로 문자를
오늘 놀러가도 되냐고 보냈고 그녀도 마침 남편 님도 어디가고 집에 아무도 없는 통에 완전 심심하다며
쿨하게 놀라오라고 했다. 물론 그녀는 설마 내가 혼자 가리라고는 상상도 안 했을 것이다. 아마도 전의
정모 때처럼 태경, 문식이랑 같이 모일 줄 알았나보다.
하지만 나는 혼자 갔다. 왕년에 이태리에서 산 돌체 앤 가바나 빤쓰를 챙겨입고.
"어서오세요"
머리를 매만지며 문을 열어준 그녀. 하지만 내 뒤에 아무도 없자, 저으기 놀란 눈치다.
"저기, 혹시 혼자 오신 거에요?"
"그럼 누구랑 따로 오겠어요"
"아"
유부녀와 외갓남자가 한 집에 같이 있자 곧바로 분위기가 어색해진다.
"시장하시죠? 라, 라면 끓여내올께요"
그녀는 서둘러 주방으로 자리를 피한다. 무척이나 당황한 눈치다. 나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신혼은
지났다 치더라도 아직 애가 없는 집이라 그래도 풋풋한 신혼의 냄새가 가득하다. 몰래 침대에 코를
박고 냄새도 맡아본다. 향긋한 샤프란 향기 속에 조금은 쿰쿰한 삶의 냄새가 배어있다.
노을이 지는 시간. 창 밖으로 아이들이 공 차고 뛰노는 소리가 들려온다.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그리
덥지 않다. 채광도 좋아 노을이 방 안 가득 들어온다. 나도 이런 집에서 가정을 꾸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노곤함이 밀려온다.
나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 무렵, 그녀가 "기다리셨죠" 하며 꽃게 라면을 끓여내왔다. 오늘의 이 방문
자체가 이 꽃게 라면에 대한 찬양글에서 나온 일이다.
"같이 드시죠?"
"아니에요, 저는 사실 이미 밥 먹었어요"
수줍게 말하는 그녀. 유부녀라고는 해도, 여인이 수줍음 타는 모습은 언제봐도 귀엽다. 나는 젓가락을
들어 한 입 후룩 먹어본다. 카, 맛나다. 아차하면 정말 맛없어지는게 이 라면인데 맛나게도 끓여왔다.
"맛있네요. 그럼 어디 맛나게 먹어볼까?"
후룹, 후루룹, 후룹, 훕, 후루룹
일본에서는 면발을 먹을 때 소리를 내면서 먹어야 예의라던가. 가히 쪽바리다운 쌍놈의 문화라 할만
하지만 확실히 면은 소리를 내며 먹어야 더 맛이 나는 법이다. 나는 일부러 더 후룩거리면서 먹었다.
"김치도 참 맛있네요. 직접 담그시는 거에요?"
"친정에서 보내주신 김치에요. 떨어지면 사 먹고"
"아 어머님이 김치 솜씨가 끝내주시네요"
"그쵸? 저도 그 반만 배웠어도 남편한테 사랑받을텐데"
"사랑 충분히 받으실 거 같은데"
부럽다. 남편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아내라니. 어쨌든 라면을 먹는다. 한 개를 다 먹었다. 그래도 내 배는
차지 않았다.
"혹시 밥 남은거 없나요?"
"아, 있어요. 잠시만요"
그녀는 한쪽 무릎을 세우더니 곧 일어나 거실로 가서 밥을 떠온다. 한 덩이, 두 덩이, 세 덩이. 손도 크다.
저걸 혼자 어떻게 다 먹나.
"어휴, 많이도 퍼오셨네. 이걸 어떻게 다 먹죠?"
"어머, 제가 손이 좀 커서. 푸다보니 이렇게 됐네요. 드실만큼 드시고 남기세요"
"네에. 어휴, 벨트 끌르고 먹어야겠다"
난 일부러 바지벨트까지 풀렀다. 그녀는 살짝 고개를 돌렸다. 귀엽다. 밥 두 덩이를 큼지막하게 떠서 라면
국물에 푹푹 말았다. 그녀의 푸짐한 정성을 생각해 세 덩이 다 먹으련다. 우적우적, 김치가 정신없이 입에
들어가고 배 안에서 면발이 불기 전에 다 쓸어넣기 위해 쉴새없이 내 턱은 움직인다.
쩝쩝 챱챱 맛나다. 한낱 라면이지만 맛나다. 그녀가 끓여준 라면이니까. 유부녀의 라면이니까.
정신없이 라면을 다 먹고 나서 상을 치우고 나는 헉헉댄다. 배가 남산만하다. 터질 것 같다. 난 벨트를 풀어
이제 바지자크로 조금만 더 내려가면 팬티까지 노출되는 판임에도 그대로 배를 내민 채 헉헉댔다.
"정말 잘 먹었습니다 어휴"
"정말 잘 드시더라구요. 보는 제가 더 고마웠어요. 남편이 그 반만 잘 먹었어도 정말 좋겠네"
"남편 님이 소식하시는 편이세요?"
"네, 제 반도 안 먹는다니까요. 근데도 배는 항상 남산만해요. 어휴"
"허허"
그리고 문득 대화가 끊어졌다. 어느새 노을도 져가고 바깥은 조금씩 어둠에 물든다. 그러고도 한참을
우리 둘은 어색한 침묵 속에-시간으로는 몇 분 되지 않았겠지만- 그대로 앉아있었다.
"어머, 불 켜야겠네"
많이 어색했던지 그녀가 어색하게 일어나 불을 켜려고 했다. 나는 물었다.
"남편 님이 언제 오시죠?"
"밥 먹고 온다고 했으니, 한…8시 9시쯤에 올 거예요"
"그래요"
몸을 일으키며 불을 켜려던 그녀에게 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남편 님 올 때까지…아직 한 두시간 남았네요"
"네에"
짧은 침묵 속에서 그녀의 목구멍으로 침이 꼴깍 넘어가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속삭였다.
"라면 값…하고 싶어요"
내 말이 무슨 뜻인지 그녀가 이해하기까지 찰나의 시간, 그리고 그에 대한 긍정도 부정도 아닌 무반응을
내가 승락으로 받아들이기까지의 또 짧은 정적이 지났다. 나는 몸을 일으켰고 그녀는 또 한 발자국 내 곁
으로 다가왔다.
내 손길은 그녀의 손등을 완면하게 스쳐지났고, 곧이어 두 손길은 포개어졌다. 하지만 방 안에 가득한
라면 냄새를 새삼 의식한 그녀는 뒤늦게 뜬금없이 "상 좀 치우구요" 하고 나를 가볍게 밀쳐냈다.
상을 내어가는 그녀의 뒷태를 바라보며 문득 한 소박한 가정에 대한 죄책감을 느꼈지만, 그보다는 묘하
고도 아늑한 분위기의 이 집의 안방을 나의 존재로 더럽히고픈 충동이 더 강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