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저 컴퓨터 하나 새로 맞출까요?"
"너 컴 산지 1년도 안 되지 않았냐? 왜?""아 그냥, 아 뭔가 되게 느리고, 첨에는 이 정도 사양이면 무난하다 싶었는데 또 막상 써보니 그게 아니더라구요""하 새끼. 돈도 많네. 뭔 작업하는데?""별거 아니고. 그냥 뭐 똑같죠. 인터넷 좀 하고, 가끔 WOW나 좀 하고, 영화나 좀 보고""야 임마, 그 정도면 그거면 됐지 뭘 또 컴퓨터를 새로 사""아...
View Article어느 기이한 전철 안
목요일 밤 10시 45분의 4호선 전철 안. 전철 안은 누렇고 어둑한 형광등 조명과 하루종일 일과에 찌든 피로, 답답하고 별로 좋지 않은 쿰쿰한 공기에 모두가 노곤하고 묘한 짜증만 느끼고 있다. 그러나 저기 문 옆의 커플만큼은 무슨 다른 세계에라도 있는지 그저 핑크빛, 아니 핑크빛을 넘어 이미시뻘건 모텔 방 수면등만큼이나 노골적인 분위기라 마치 코에 비릿한...
View Article인당수, 전날 밤
"청아, 자느냐"학규는 나지막하게 청을 찾았다. 청은 겨우 잠에 들뻔한 노곤한 몸을 부스스 일으켜 세우고는 아버지를 향해 대답했다."아니어요 아버지"청의 대답에 학규는 잠시 말이 없다가 "아니다, 그냥 자나 해서. 지금 밖은 몇 시나 되었느냐" 하고 물었다.풀벌레조차 잠든 야심한 시각, 시간은 물어서 무엇하랴 싶지만 청은 얼추 생각을 해보고는 "축시쯤...
View Article촉
"들어와"생각보다 여친은 반갑게 나를 맞이하였다. 불과 며칠 전의 그 냉랭한 목소리도, 아니 아예 전화조차 받지않던 그녀는 온데간데 없고 밝고 생기있는 듯 하였다. 다행이다. 화가 풀린 모양이었다. '다행이다'행여나 오늘까지도 냉전 태세면 어쩌나 했는데. 내일 월요일부터는 3일간 지방출장이라 만약 오늘까지도화해가 안되면 너무 힘들어질 것 같아서 걱정했는데....
View Article"오빠"
언제나처럼 압구정의 피프티에서 경희를 기다리며 대낮의 시원한 하이네켄 한 병을 마시고 있던 나. 손을흔들며 나타난 그녀를 나는 반갑게 맞이한다. "어 왔어?"항상 저런 옷은 어디서 사는 걸까 싶은 특이한 패턴의 그래픽티에 흰 재킷, 그리고 칠부 바지와 쪼리를 신은 평범한 스타일이지만 형광 주황의 포인트 가방이 키 크고 늘씬한 그녀에게 잘 어울렸다. "오빠...
View Article[아내의 남자] "잘 다녀와"
요즘 아내는 바람을 피운다. 아내가 평소와 조금 다르다는 느낌은 요 몇 달 전부터 어느 정도 느꼈지만,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저 믿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에이 설마'하며, 그럴 리 없다고. 하지만 언젠가 그녀의 휴대폰 문자 기록을 보고 나는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가 나에게 거짓말을 한다는 것도, 그녀가 나 몰래 만나고...
View Article[아내의 남자(2)] 사색의 시간
바람 피우는 아내의 가방 속에 GPS 달린 도청기를 설치해놓은 남편. 어디 정말 싸구려 3류 치정극에나 나올 법한 인물이 바로 나라니, 기분이 씁쓸하면서도…조금은 묘했다. 내가 아닌 다른 남자 앞에서 아내는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보니 좀 궁금하기도 했다. 다른 남자 앞에서의 아내, 특히 침실에서의 아내는 어떤 여자일까. 그 모든 것… 그 모든 이동경로와...
View Article[아내의 남자(3)] 자기합리화
오후 6시 반. 저녁을 먹을 때가 되었고… 그때가 되도록 하루종일 하다못해 물 한 모금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순간 미치도록 화가 났고, 배가 고팠다. '침 뱉은 우물에 가서 물 긷는 기분이구만' 아까 홧김에 던져놓은 냄비에 물을 받아 라면을 끓여 먹고는, 밥이 없어 찬장을 뒤져 햇반을 뜯었다. 김치 쪼가리 하나 없이 그대로 라면에 꾸역꾸역...
View Article대학 동기들
여자친구들 셋과 저녁으로 갈비를 뜯고 있노라니 대학동창인 보성이한테 전화가 왔다. "지금 어디야?"어디긴 어디야, 집 근처지. 약속은 내일인데."우리 내일 보기로 한 거 아니었어?""문자 보냈잖아. 오늘 8시에 보기로. 너도 답장 응 하고 보내놓구선""그래? 아 씨, 나는 걍 시간만 바뀐 건 줄 알았지. 알았어, 그럼 일단 조금 이따가 다시...
View Article[아내의 남자(4)] 상담
집안에 일이 좀 생겼다는 핑계를 대고 회사에 오후 반차를 냈다. 그리고는 집으로 가는 길에 몇 번 간판을 본 적 있는 변호사 사무실에 방문했다. 이혼 전문 변호사 사무소는 아니었지만 알아서 잘 상담해주겠지. 사법고시가 어디 껌인가. "예약을 하고 오셨나요?""아닙니다""네, 그럼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주세요"오래되어 보이는 건물 외견과는 달리, 사무실 안은...
View Article그녀와 나의, 여름 밤
늦은 시각, 집으로 향하다 문득 이유없이 버스에서 내린다. 버스 정류장에 내리면서도 계속 아 뭔 뻘짓이지싶다가도,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면서 그 끈적이는 발걸음을 옮긴다. 진정되지 않는 마음을 겨우 진정시키려 담배에 불을 붙이다, 흘낏 뒤를 돌아보고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성큼성큼 발을 내딛는다. 그 후끈했던 낮과는 달리 어느새 날씨는 싸늘하다....
View Article노처녀
"나 먼저 퇴근할께. 다들 마무리 짓고 수고해""네에, 과장님 잘 들어가세요"찬희는 PC를 끄고 가방을 어깨에 매곤 사무실을 나섰다. 피곤하다. 몸이 찌뿌둥하다. 내일은 토요일이건만내일도 출근이다. 그 생각을 하니 피로가 2배로 온다. 지하주차장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비친 얼굴이 참오늘따라 2배로 늙어보인다.'정말…아…'눈가에 주름이… 아니 눈가 주름은...
View Article간지 거탑
------------------------------------------------------------------------------------------------간지응급학 국내 최고의 권위자 김박스 교수가 수술장에 들어오자 수술장에는 순간 긴장이 감돌았다. "… …"김박스 교수의 차가운 눈매에 수술장의 모두는 마치 지금 냉동창고에라도 들어와 있는...
View Article[정보] 책 많이 보는 똘똘한 대학생들에게
여학생은 보통 이런 케이스 '거의' 없고 일단 남학생 중에- 일단 중고등학교 때부터 수재 소리 듣고 반에서 항상 상위권 성적을 놓쳐본 적 없는 우수한 엘리트…이긴 엘리트인데 외모는 엘리트가 아닌 수재 범생이들 말인데…너네 책 볼 때 조심해라. 이런 애들이 막 보통 대가리 굵어지고 슬슬 대입을 전후해서 주머니에 용돈 좀 생기고 또 이제 드디어 막사춘기를...
View Article"오빠, 내가 오늘 오빠 옷 코디해줄께"
"하하, 그래""오빠 진짜 가끔 보면 옷 되게 못 입는거 알지? 내가 오늘 오빠 옷 다 골라줄께""(뒷머리 긁적이며)…그래""음, 이거 어때?""음…""별로야?""아, 아냐. 입어볼께"(입고 나옴)"나 어때?""…………;;; 오빠 그거 빨리 벗구, 이거 입어봐"";;;;어;;;"(4번 반복)"오빠… 음… 오빠 일단, 여자 매장가서 내 옷부터 보자, 하하"...
View Article자정부터 새벽까지
어느 시점에서부턴가 둘 다 말이 없어졌다. 전철이 끊길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또 소주 두 병을 아주 천천히 더 비우면서 몇 시간의 시간을 더 흘려보낸 현재…"큼"드디어 겨우겨우 비워내던 소주병에 술이 떨어졌다. 둘 다 이미 마실만큼 마셨고, 무슨 진짜 뻗을 생각 아닌다음에야 이 이상 술을 마실 이유도 없다. "흐음…현민은...
View Article김박스 "좀청, 술 한잔 받어?"
요즘에 보기드문 대로변의 포장마차. 슬슬 교체가 필요로 해보이는 40촉 짜리 어두운 전구 아래 두 남자가 술잔을 기을이고 있다."크으, 아 형. 사는게 참 힘드네요" 맛도 없는 골뱅이 소면 한 접시 시켜놓고 두 사내가 찌질하게 힘든 하루하루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하는데… 덩치 큰 사내는 좀청이요, 찌질한 사내는 김박스다."형은 이 좆같은 세상에 대해 어떻게...
View Article"뭐? 진짜? 이야 임마 축하한다! 그래 임마!"
작년에 결혼한 친구가, 와이프가 임신을 했다며 그 자랑을 해왔다. 벌써 4개월째란다. 나는 호들갑을 떨며 축하 해주었다. 다들 도대체 언제 가냐, 우리 이러다가 10년 뒤에 전세기 타고 베트남 가는거 아니냐 했지만 어느 틈 엔가 슬슬 하나둘씩 결혼 테이프를 끊더니 드디어는 아버지가 되는 놈도 곧 나오는 것이다. "그래, 여튼 잘 지내고, 몸 잘 챙겨라....
View Article"형은 왜 알만한 사람이 교회를 믿어요? 상식적으로…"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종교를 비판하는 준상. 옆에 앉아있던 주영은 태수의 눈치를 보면서 녀석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의외로 준상을 진정시킨 것은 주영의 제지가 아니라 태수의 질문 한 마디였다. "너는 내가 왜 종교를 가진 거 같냐?" 그리고 뜻밖에 태수가 담배까지 입에 물자 준상은 물론이요 주영까지 당황했다. "형 담배 피웠어요?" 태수는 껄껄 웃었다. "왜?...
View Article이별
딱 3주간 만났다. 알고 지낸지는 1년 남짓 되었다. 서로 썸남 썸녀와의 만남이 어설프게 잘 안되던 차에 외로움을 달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타이밍이었다. 물론 그리 불타오른 만남은 결코 아니었다. 그저 새삼스러운 안부전화와 주말의 맛집 기행 정도가 달라진 일상의 전부인 그런 만남. 그리 화끈하지도, 그리 루즈하지도 않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좋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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