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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지 거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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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지응급학 국내 최고의 권위자 김박스 교수가 수술장에 들어오자 수술장에는 순간 긴장이 감돌았다.

"… …"

김박스 교수의 차가운 눈매에 수술장의 모두는 마치 지금 냉동창고에라도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김박스는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천천히 에비앙으로 소독을 한 후 손을 들어올렸고, 김은영 간지사와 한주희
간지사는 서둘러 그 손에 구찌 캐시미어 라이닝 가죽 장갑을 씌웠다. 샤워를 마치고 수술실 침대에 누워있던
환자에게 고디바 코코아 70ml을 주입하자 환자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처럼 잠들었고 '본격적인 수술'
의 준비가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시작합시다"

김박스는 수술 직전, 수술방 2층의 참관실에서 오늘의 수술을 참관하기로 한 반스 호킨스 대학의 레드윙
부학장을 잠시 쳐다보고는 목례를 했다. 이윽고 찬찬히 오늘의 수술팀과 눈을 맞추며 호흡을 맞추기 시작
했다.

"뱅글"

김박스 교수의 말에 한주희 간지사는 서둘러 그에게 에르메스 클릭아슈 뱅글을 건내었다. 그리고 김박스는
익숙한 손길로 환자의 손목에 뱅글을 가져갔다. 하지만 그는 멈칫하고 말았다. 수술실의 모두가 그의 작은
동요에 움찔했다. 그리고 그가 왜 그랬는지를 깨닫고는 다들 당혹감에 아랫 입술을 깨물기 시작했다.

환자의 너무 두꺼운 팔목에, 뱅글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 수술의 환자는 실연성 비만증후군 환자였다. 한때는 모델을 지망하기도 했던 가는 체구의 그녀였지만
모델 업계의 선배에게 충격적으로 버림받은 충격으로 폭식을 자행했고 그렇게 한번 불어나기 시작한 살은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로 불어났다.

특히 모델 지망생으로서 과도한 다이어트는 전신의 근육량을 형편없는 수준까지 떨어뜨려놓은 상태였고 
그런 낮은 근육량 상태가 폭식증을 만나자 불과 2년 만에 폭발적인 비만을 유발했다. 

스타일박스 병원에 입원했을 무렵 그녀의 체중은 무려 118.6kg. 172cm의 키를 감안하더라도 여자로서의
의 매력은 이미 끊긴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였고 결국 입원 한 달만에 수술이 결정되었다. 집도의는 스타
일박스 병원의 스타이자 세계적인 간지학 권위자 김박스 교수.


"이번 수술은 기존의 간지의학적 수술과는 다소 궤를 달리합니다. 간지 치료를 위해 비만을 극복해야 할
최우선 과제로 삼았던 것이 기존의 치료법이라면, 이번 수술은 비만 그대로를 유지한 상태로 간지 회복을
노릴 생각입니다. 물론 디테일한 부분의 간지 치료를 위해 전면적인 지방흡입을 제외한 가능한 거의 모든
간접 비만치료 시술이 동시에 이루어질 예정이며 본격적인 비만 치료는 그 이후에, 장기적인 다이어트를
병행하여 진행합니다. 하지만 이번 수술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현존하는 거의 모든 간지적 치료를 집중적으로 쏟아부어 단 일회의 수술만으로 환자에게 새로운 삶을 제공
하는 것이며, 장기적인 시간이 소요되는 비만 치료에 앞서 간지부터 회복하여 새로운 삶의 개척을 보다
앞당기는 데에 있습니다"

김박스 교수는 이번 수술에서 대단히 공격적인 치료법을 도입할 생각이었다. 그동안 '멋진 외모'를 꿈꾸
었지만 "살부터 빼야합니다" 라는 진단에 지레 포기하고 얼마나 많은 비만인들이 피눈믈을 흘리며 평생을
그렇게 후줄근하게 살다갔는가.

만약 이번 수술이 성공한다면, 지난 수십년간 멸치남 절벽녀들만을 위해 간지가 존재했던 세상에 새로운
간지의 영역을 개척시킬 수 있는 가히 보그의학상 급의 혁명적 성공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쉬운 수술은 아니다… 누군들 몰라서 시도를 안 했겠는가. 비만인을 간지인으로 만든다는 것은 그저
절름발이를 걷게하고 맹인의 눈을 밝히는 사이비 의학처럼 허무맹랑하게만 들릴 이야기. 그 바로 마법같은
수술에 닥터 김박스는 도전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까르띠에 링 하트 브레이슬릿"

에르메스 뱅글이 팔목에 맞지 않자 서둘러 김박스는 다른 팔찌를 주문했다. 하지만 고도 비만으로 인한
신장 기능 이상과 그로 인한 몸의 붓기 때문에 그녀의 손목은 그것조차 감당키 어려웠다. 모두의 얼굴에
낭패한 기색이 감돌았고 시작부터 난감한 상황에 처했지만 김박스는 그에 굴하지 않았다.

"티파니 엘사 퍼레티 오픈 펜던트 넥클리스"
"그건…"
"달라면 주기나 해"

명품을 이용한 간지치료의 경우 그 수술비 증가는 폭발적이었다. 때문에 보통 그 여분은 그리 다종을 준비
하지 않는 것이 통례였다. 때문에 미리 준비되었던 것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자 난감한 상황에 처했지만
과연 간지'응급'학의 제왕 김박스답게 조치를 시작했다.
 
그는 목걸이를 즉석에서 잠깐 손을 보고 손목을 따라 두어번 휘감아 마치 팔찌처럼 세팅했다. 보통의 여자
였다면 아무래도 어색한 스타일이 나왔겠지만 초고도 비만이었던 환자의 손목에 적절한 길이로 감기자
오히려 그것이 딱 적절한 사이즈의 체인 팔찌처럼 느껴졌다.

그 솜씨를 보자 모두의 입가에 다시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이윽고 닥터 김박스가 전체적인 스타일을 지휘
해나가면서, 수술의 보조를 맡은 다른 전임의들의 손길에도 조금씩 자신이 붙기 시작했다. 

수술은 그야말로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속눈썹 연장술부터 패티큐어까지, 전신 경락맛사지부터 PPC, 비만
침에 맥북부터 지미추까지 전신에 모든 종합적인 간지적 접근이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헤어 하나만 보아도
두피스켈링, 두피맛사지, 스티머, 레이저 클리닝 등 두피종합케어부터 시작하여 모발 케어, 스타일 세팅, 코
팅 및  펌, 염색, 콜라겐-케라틴 케어를 비롯한 전방위적인 케어를 실시했다.

때문에 이는 체력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머리카락하나부터 손톱 발톱 끝까지 전신에 미용·패션·스타일·쥬얼
리·트렌드에 관한 아주 디테일한 미적 추구를 해나가다보니 점점 수술방은 집중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상황
이 되어가고 있었다.

"다들 집중해"

수지침용 바늘이 몇 개나 꽃힌 환자의 손에 매니큐어를 바르던 닥터 김박스는, 모두의 손이 많이 느려진
것을 느끼고는 한 마디 했다. 현재 수술 개시로부터 6시간째… 디지털 파마와 각종 적외선 치료, 레이저
피부 케어 등 때문에 수술방 안은 무시 못할 열기로 가득차 있었다. 

"다음은 스킨 케어. 프락셀, IPL 준비해"

지시를 내려놓고 김박스는 흘낏 2층 참관실의 레드윙 학장을 바라보았다. 여섯 시간이나 지속된 수술.
보는 것도 지칠 법 한데 그는 전혀 변화 없는 자세로 여유있게 수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수술 13시간째… 이제는 천하의 김박스 교수조차 온 몸이 다 무겁고 쑤시는데다 지독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힘들군' 

하지만 수술팀 전부가 각자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데 그것을 티를 낼 수는… 

"닥터 최! 지금 뭐하는…"

김박스는 발목 타투를 그리고 있던 2년차 레지던트 최진식이 타투를 하던 도중에 그만 꾸벅 조는 모습을 
발견하고 급히 제지하려 했지만 이미 닥터 최의 손에 들린 타투 머신은 삐끗, 하고 환자의 몸에 길게 생
채기를 남기고 말았다.


띠이이이이이이이이이- 

실시간으로 환자의 간지 상태를 표시하는 모니터에 빨간불이 들어오며 듣기 싫은 전자음을 뿜어냈다. 
최진식은 기겁을 하며 정신을 차렸지만 이미 기기에 표시되는 환자의 간지 수치는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팔로워수 160, 팔로워수 140, 팔로워수 110!"

엄청난 속도로 간지수치가 떨어지고 있었다. 자신의 실수에 너무 놀라 부들부들 떨고 있는 최진식의
어깨를 툭툭 치며 일단 진정시킨 김박스는 타투 머신을 대신 잡아들고 삐끗 엇나간 라인에서 새롭게
대담한 필치의 타이포 그라피 타투로 그 실수를 커버했다. 그리고는 김은영 간지사에게 서둘러 "예가
체프 G1 130ml 세팅" 하고 지시했다.

로스팅을 마친 채 대기 중이던 예가체프G1 커피가 서둘러 앤슬리 코티지 잔에 담겨 환자에게 투입되었다.
팔로워수 떨어지는 속도가 줄기는 했지만 그저 속도를 줄이는 정도에 불과했다. 김박스는 "하와이 코나
엑스트라 펜시 150ml"의 투입을 재차 지시했고 그러자 드디어 팔로워수의 하락이 멈추었다.

"현재 팔로워수 40에서 안정됐습니다"

하지만 팔로워수가 1/4 토막이 난 상황. 쇼크가 와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김박스는
이윽고 재차 커피의 투입을 지시했다.

"코피 루왁과 파나마 게이샤를 각각 150ml씩 투입한다" 

그러자 언제나 사사건건 김박스의 발목을 잡아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은 감성외과의 닥터 리가 그 지시에
태클을 걸었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무슨 카페인 중독 만들 일 있습니까"

김박스는 그의 말을 무시한 채 "뭐해! 빨리 커피 안 내리고!" 하고 김은영 간지사를 다그쳤고, 그녀는 급히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김박스는 천천히 닥터 리에게 말했다.

"그럼, 어떤 방법으로 지금 간지 수치를 끌어올릴 생각인데"

닥터 리는 안경을 고쳐쓰며 언제나처럼 "그야 물론 안정적으로 신형 맥북 구입 인증샷으로…" 머쓱하게
말했지만 김박스는 고개를 저었다. 

"당장 엊그제 신형 맥북이 공개됐는데 지금 맥북 사서 공개하면, 누구 호구 인증할 일 있어? 그리고 맥북
내성 문제는 어쩔건데"

과도한 항생제 남용으로 인한 내성이 문제되 듯, 사람들의 무분별한 맥북 사용으로 인해 맥북의 간지적
효능은 불과 몇 년 사이 크게 낮아져 있었다. 특히 일부에서 유행한 맥북과 윈도우 OS를 조합한 합성
맥북의 이용은 가히 그 간지적 폐혜가 심각한 수준이었다. 맥북은 이제 그저 간지의 현상유지를 위해서
라면 몰라도 간지의 상승을 위해서는 더이상 그 힘을 크게 쓰지 못했다.

"후우"

수술의 메인 집도의가 김박스였던데다 사실 최근 애플이즘 학파가 내부적으로도 이미 많은 말이 있던 터라
닥터 리는 더이상 길게 태클을 걸지 않고 물러났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커피의 대량 투입이 이뤄졌지만
과연 평소 그란데 사이즈를 즐기던 환자였기에 특별한 카페인 부작용은 없었다.



"수술 완료"

언제나처럼 마지막으로 2012 S/S 신상 지미추 구두를 신기고 장장 15시간에 걸친 수술은 마무리 되었다.
모두의 입에서 탄식과도 같은 긴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수술은 잘 되었다. 전체적인 체형보정 패션과 디테일하고도 완벽한 미용기술의 적용, 퍼펙트한 색감과
너무 튀지도 너무 수수하지도 않은 적절한 스타일, 둥근 얼굴형을 보완하는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
그리고 요소요소에 알맞게 적용된 악세사리가 전체적으로 그녀가 '멋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
하고 있었다. 

물론 아직 비만 치료가 시작되지 않아 그 육중한  체구는 어쩔 수 없었지만, 전신에 적절하게 뿜어져
나오는 미적 자신감, 간지적 우월함, 흘낏흘낏 보이는 브랜드 파워는 실로 대단한 수준이었다.

안면 맛사지와 화사한 메이크업을 통해 "와 살만 빼면 엄청 이쁘겠다" 라는 인식을 이끌어내는데 성공
했고…

원래부터 제법 키가 있는 그녀였기에 알렉산더 맥퀸의 맥시 드레스와 매치된 그녀의 스타일은 단순한
부(富)의 증명을 넘어서는 뭔가 압도적인 것이 있어서 '저런 애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PT붙여서
살 뺄 수 있겠지. 여차하면 지방 흡입 해버리면 그만이고' 하는 생각을 절로 들게하여 현재의 그 육중한
체구마저 별거 아니게 느껴질 정도로, 큰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최종적으로 수술 마무리 직전, 그녀의 프로필 사진을 새로 교체하자 팔로워수는 곧바로 700을 돌파했고
계속 증가 추세를 보였다. 




"아주 인상적인 수술이었습니다, 닥터 김박스"

수술을 마치고 피곤한 그의 등을 두드려 준 레드윙 학장은, 자기가 본 간지 치료 중 정말 오늘이 최고
였던 것 같다면서 세계 간지학회에 새삼 한국의 간지학에 대해 알려야 할 것 같다고 아주 들뜬 목소리로
칭찬했다. 그렇게 간단한 담소를 나누고 김박스는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고 휴게실로 들어와 누웠다. 

'으…피곤하군' 

피곤하고, 출출했다. 김박스는 컵라면이라도 먹을까 생각했지만 곧 관두었다. 최근 몸에 군살도 많이
붙는 등 자신의 간지가 많이 안 좋아졌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던 차였기에.

간지치료를 위해 많은 간지결핍증후군 환자, 패션염, 멸치병, 공대통, 똥자루암, 오덕(괴)질, 암내증 등
다양한 환자들과 항상 피곤한 상태로 접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병원 감염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잖아' 

타인의 간지를 위해서 자신의 간지쯤을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는 남자, 닥터 김박스는 그렇게 오늘도
작은 간이침대에서 눈을 붙이며 그 너무나 노곤한, 쩔어버린 피로를 조금이나마 달래기 시작했다.


관련 글 : 간지결핍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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