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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남자] "잘 다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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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내는 바람을 피운다. 아내가 평소와 조금 다르다는 느낌은 요 몇 달 전부터 어느 정도 느꼈지만,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저 믿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에이 설마'하며, 그럴 리 없다고.

하지만 언젠가 그녀의 휴대폰 문자 기록을 보고 나는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가 나에게 거짓말을 한다는
것도, 그녀가 나 몰래 만나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아내는 나에게 친구 '은희'를 만난다고 해놓고서는, 그날 밤 다른 사람을 만났다. 그것도 남자를. 놀랍게도
'그녀의 남자'는 전 직장의 동료였다. 아, 포인트부터 말하다보니 중요한 것을 말을 안 했군. 나와 아내는
사내 커플 출신이다. 

이미 사내 커플 시절에도 '그녀의 남자'는 꽤 내 눈에 거슬리는 놈이었다. 내가 봐도 나보다 잘 생기고
나보다 조금은 키도 더 크고, 무엇보다 아내가 좋아하는 타입의 '약은 남자'였다. 왜 그런 놈들 있잖는가.
유들유들하고 여자들이랑 곧잘 어울리고, 요령 좋은. 뺀질거리게 생긴 그런 놈들 말이다.

사실 비밀 연애 시절에도 몇 번인가 접근하던-아내는 당시 결코 그런거 아니라고 했지만, 남자 눈으로
봤을 때 딱 보이는데 뭘 아니긴 아니란 말인가-놈이 신경쓰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결국에
아내와 결혼을 했고, 내 전 직장이자 놈의 현 직장인 그 회사와는 비교도 안되는 더 큰 회사로 이직을
했기에, 나는 놈을 기억에서 지울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겼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졌다. 놈에게 철저히. 어찌보면 사내로서 가장
비참하게 패배했다. 



아내는 '은희'와 만난다고 해놓고서는 '그 놈'과 만났고, 카드 결재 기록에 따르면-멍청한 년, 바람을
피우는 주제에 밥까지 사먹였단 말인가- 그 날 둘은 저녁으로 불고기를 먹었고, '아마도' 섹스를 했을
것이다.

물론 회사 동료와 따로 밥 한끼 먹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아무래도 남편이 괜히 의식할 것 같아
선의의 거짓말을 할 수도 있지 않은가, 라고 반문했지만 그 날 아내는 밤 12시가 넘어서 들어왔다. 8시
넘어서는 아예 폰을 꺼놓고서 말이다. 

아 그것만으로 내가 둘이 섹스를 했을 것이라 단정짓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아마도 '그' 문자가 없었
다면 나는 애써 나 스스로를 어떤 식으로든 납득 시켰을 것이다.

[ 오늘 좋았어ㅎㅎ 요즘 너가 점점 적극적이 되는 것 같아서 더더욱ㅎㅎ 잘 들어가거 26일에 또 봐♡ ]




그 문자를 확인한 나는 사실 하마터면 곤히 자는 아내를 그 자리에서 목졸라 죽일 뻔 했다. 머릿 속에서 
불똥이 튀는 느낌을 받아본 적 있는가?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그 다음 날 임원들까지 참석하는 중요한 PT 시연을 담당하고 있었고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아내의 목을 조를 뻔한 바로 그 순간에 그 PT에 앞서 반드시 확인했어야 할 일
한가지를 깜박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새벽 3시에, 잠긴 목소리로 홍콩 지사의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서-흥분해서 빙빙 도는 머리로- 횡설수설
하는 영어로 30분이 넘는 기다림과 통화 속에 다행히 별 이상 없음을 확인했고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나니 안도감과 함께 끓어올랐던 머릿 속의 증오가 조금은 식어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차가워진 머리로, 나는 아내를 탓하는 대신 나의 문제를 곰곰히, 거실에서 생각해보았다. 



뭐, 확실히 좋은 남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새로 옮긴 직장은 너무나 하드코어하게 사람들을 굴려먹는
회사였고-오죽하면 아내의 바람을 확인한 그 순간에까지 회사 일이 먼저 떠올랐겠는가. 뭐 연봉은 그
만큼 확실하게 보장을 해줬지만- 신혼 초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말이지 신혼부부답지 않은 1년을
보냈다.

이직 2년 차에 접어들자 조금은 상황이 나아졌지만, 이번에는 아내의 직장에 문제가 생겼다. 대규모
인력 감축이 있었고, 그 때문에 아내의 업무량이 폭주해버린 것이다. 야근이 잦아졌고, 늘어난 업무량
에 스트레스는 폭발했다.

나는 몇 번이나 회사를 관두라고 조언했지만, 솔직히 전세금 대출 문제로 절절매는 내 형편에 맞벌이는
필수였기에 그 조언은 나 스스로도 따를 수 없는 조언이었다. 

그렇게 스트레스 속에서 아내는 1년을 보냈고, 다행히 사정이 조금 나아져 올해부터는 둘 다에게 조금
여유시간이 생겼지만 그 여유시간을 아내는 나 대신 그 놈팽이랑 갖기로 한 것 같다. 어쩌면 그 힘들었
던 지난 1년 동안, 가까운 곳에서 그녀를 보듬어 줄 수 있었던 사람이 바로 유관업무를 하는 옆 팀의 
그 놈이었을지도. 

그렇게 생각해보니 나라는 놈은 도대체 뭐하는 새끼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반성, 후회의 감정이 격렬
하게 몰려왔다. 분노, 증오, 짜증, 서러움, 배신감…

그 날 나는 화장실에서, 그렇게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다음 날의 PT를 단단히
망칠 정도로 말이다. 



'그 문자'를 확인한지 오늘로 정확히 3주가 되는 날. '그 문자'는 그 다음 날 삭제되었다. 놈과의 모든
통화기록까지. 아마 지우는 것을 깜박했던가, 그저 비밀번호-아내는 내가 자기 휴대폰의 비번을 모른
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사실 알고 있었다. 일부러 모르는 척 연기를 해오긴 했지만-에만 보안을 맡겨
두기에는 불안하다고 생각했는지도. 아마 그 날 밤 불현듯 깨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생전에 유래
없이 아내 휴대폰의 문자들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나는 아내의 불륜을 모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 몰랐을 것이다.



오늘이 바로 그 문자에서 언급한 26일이다. 아내는 이미 지지난주부터 열심히 '간만의 동창 모임'이란
그럴싸하면서도 창의성 없는 변명거리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2주간 몇 번이나 은근슬쩍 동창모임이라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꽤나 디테일하게-예를 들면 "다음
주에 보기로 한 내 친구 말이야. 이번에 애를 낳았는데 4.6kg 완전 우량아였대"라는 구라 밑밥을 깔아
놓는 등-나에게 거짓말을 해놓은 부분은 인정해주고 싶다.



아내는 아침부터 꽃단장을 하고 출발했다. 나는 웃으면서 보내주었다. 사실 나는 이미 그 시점에서 뭔가
엉뚱한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마냥 이 년과 헤어져야겠다, 가 아니라… 이 년의 인생을 철저히 망가뜨려야겠다는 생각 말이다. 아니,
그보다도 '도대체 어쩌다가 놈과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었을까'에 대한 증오 어린 호기심, 그리고 어쩌면
'아내의 숨겨진 이면'을 보고 싶은 남편들의 그릇된 욕망…

이런저런, 그런 엉뚱한 생각 말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바람 피우러 나가는 여편네의 다리 뭉둥이를 부러뜨리는 대신, 그녀가 가장 아끼는 백
안쪽에 GPS 기능이 있는 초미니 도청기를 13만원이나 주고 사서 달았겠는가.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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