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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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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남자(2)] 사색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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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피우는 아내의 가방 속에 GPS 달린 도청기를 설치해놓은 남편. 어디 정말 싸구려 3류 치정극에나
나올 법한 인물이 바로 나라니, 기분이 씁쓸하면서도…

조금은 묘했다.

내가 아닌 다른 남자 앞에서 아내는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보니 좀 궁금하기도 했다. 다른 남자 앞에서의
아내, 특히 침실에서의 아내는 어떤 여자일까.

그 모든 것… 그 모든 이동경로와 대화는 도청기에 모조리 녹음되어 나에게 너무나 가혹한 진실을 가르쳐
주겠지. 미친 씨팔년. 허허,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네.



'그렇다면 나는 오늘 하루종일 무엇을 할까'

이를테면, 그래, 아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 오늘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고, 이윽고 섹스까지 했다고 치자.
그리고 그 증거를 나는 오늘 밤이면 손에 넣을 것이다. 그리고 나면 뭘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혼?

막상 진지하게 생각을 해보니 답답했다. 내 나이 서른 다섯. 모아놓은 재산이라고는 그저 이 전세집 하나가
전부다. 이혼해서… 음. 아 위자료를 뜯어낼 수 있으려나. 뭐 그래봐야 얼마나 뜯을 수 있을까. 끽해야 기천
만원일텐데. 이혼하면 결국 평생 홀애비로 지내야겠군. 또 어느 정신 나간 년이 나같은 놈에게 시집을 오겠
는가. 것두 이혼남이라면.

문득 일어나서 화장실 거울을 보았다. 나이 먹었다고 쳐진 볼살에 하나둘씩 주름까지 보이고, 불룩한 배야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다보니 턱살 접히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운동 좀 해야겠다.

흐음. 

섹스 말이다. 그래, 내가 좋은 남편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건 그렇다고 치고, 그렇다고 내가 그렇다면
나쁜 남편, 못난 남편이었을까. 그랬나?

하다못해 잠자리만이라도 끝발나게 잘했더라면 아내가 바람까지 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아니 뭐 무슨
변강쇠도 아니고 뭐 얼마나 더 잘해야 한단 말인가. 내가 뭐 고자도 아니고, 안 해준 것도 아니고… 토끼
새끼도 아니고. 변태 새끼라서 무리한 것을 요구한 것은 더더욱 아니고. 그래, 그것 때문은 아닐 것이다.

나는 애써 잠자리 때문은 아닐 것이라고 나를 달래었다. 사내로서 내 마지막 자존심 아닌가. 바람난 아내
의 이유가 잠자리 때문이라면 정말이지 어느 사내가 제정신으로 있을 수 있을까. 



제목 : 이혼 상담을 하려고 합니다.

나는 컴퓨터를 켜서 인터넷 무료 법률 상담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것도 이혼 전문 변호사에게. 하지만 
제목을 써놓고보니 또 할 말이 없다. 뭘 어떻게 설명을 하면 좋을까. 아내가 바람이 났습니다?

그래서?

증거 잡아서 들이대고, 사과받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도장 찍고, 아니 그 전에 고소해서 간통죄로
확 쳐넣고, 뭐 그래야 되나? 전에 신문에서 보니 요새는 뭐 간통죄도 쉽게 잡아넣기 어렵다던데. 옘병,
도대체가 말이다.

이 나라가 말이 안되는게 아주 그런 것이다. 아니 시팔 결혼하기가 그렇게 빡세다고 온 나라가 아우성
인데, 그럼 결혼을 더 장려하기가 어렵다면 최소한 기왕 한 결혼이 깨지는 것은 나라에서 기를 쓰고
서라도 막아야 하는거 아닌가. 그런데 뭐? 간통죄를 없애? 이런 니미럴.

간통범 같은 가정파괴범은 아예 조져버려야 하는거 아닌가. 아주 기냥 거세를 해서라도 말이다. 자꾸
생각을 하다보니 침착하려고 해도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이 아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휴 됐다. 나는 인터넷 창을 껐다. 괜히 인터넷에 이런 글 올리고 그러는 것도 좀 캥기고, 아무렴 뭐
공짜로 인터넷에서 상담해주는게 뭐 도움이 되봐야 얼마나 되겠나 싶었다. 그냥 내일, 아니 내일은 
일요일이구나. 여튼 아는 변호사한테라도 가서… 아는 변호사는 없지만…

아 잠깐만. 


"여보세요? 아 진욱이냐? 어어, 아 그래. 오래간만이네. 어어, 어어, 그래, 아 임마 자주 연락도 좀 하고
그래야지. 하하, 그래. 어? 아… 별건 아니고. 아 회사는 뭐 여전히 잘 다니지. 에이, 똑같애. 우리고 뭐
맨날 안 짤리는게 다행이지. 어, 야 그, 혹시… 너 뭐 어디 아는 변호사 없냐? 뭐 니네 일하다 보면 거 
뭐 법무사 이런거 끼고 하잖아? 아…그건 또 뭐 다른거야? 아아, 별건 아니고, 그냥 주변에 법적자문을
구할 일이 생겨서. 어어, 알았다. 그래, 조만간 술이나 한잔 하자. 그래"

참, 어떻게 내 친구라는 새끼들이 열에 열이 다 샐러리맨이냐. 그나마 하나 좀 도움이 되려나 해서 
특허 사무실 다닌다는 친구 놈 새끼한테 물어봤더니만 도움이 안 되네. 변리사고 뭐고 간에 법 좀 읇는
놈들이면 뭐 도움 되는거 아닌가? 아 변호사 사무실 가서 뭐 또 물어보고 이러면 상담료로 비싸게 돈
받아쳐먹고 이런거 아닌가. 

그보다 출출했다. 

'밥부터 먹자' 

대가리를 굴리기 위해서도 싸우기 위해서도 배를 채워야 한다. 햐, 참 속도 좋은 새끼다 나는. 마누라
년은 바람 피우러 나갔고, 그걸 알면서도 방구석에서 라면이나 쳐끓여먹을 생각을 하다니. 

'밥이 넘어가냐?'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아 안 넘어갈 것은 또 뭔가. 왜? 뭐 때문에 밥도 못 먹고 전전긍긍해야 한단
말인가. 그 갈보년은 다른 놈팽이랑 비싼거 쳐먹고, 그러다가 부둥켜 안고…


"씨발"

물을 받던 냄비를 나는 던지듯이 내려놓았다. 물이 튀어 싱크대는 물론이요 내 옷에까지 튀었다. 나는
다시 물을 끄고 싱크대에 두 팔을 대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씨발. 내가 뭘 그리도 잘못했나. 생전에 바람을 피우기를 했나, 손찌검을 하기를 했나. 생일이면 생일
이라고 꽃사다 바치고 케이크 먹고, 여름이면 여름이라고 교외로 물놀이도 가고. 뭐 호강은 못 시켜
줬다만 그래도 남들이라고 뭐 얼마나 다르게 사는가. 

"씨발년"

그냥 목쟁이를 돌려놓는게 맞았을까. 아주 들어오면 주먹으로 묵사발을 내버릴까. 그 두 년놈 다 확
칼로 배때지를 쑤셔 죽여버릴까. 아주 난도질을 해버릴까. 그 더러운 아랫구녕을 아주 난도질을 확
다 해버릴까. 

극단적인 생각까지 해댔지만, 그런 생각까지 하고 쳐앉아있는 자신이 너무나 한심했다. 세상에. 

나는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았다. 어머니 아버지는 그저 내가 언제나 떡두꺼비 같은 손주 안겨주나
고매하고 있을텐데. 

아주 며느리라고 놀러오면, 요즘 며느리들 함부로 부리면 큰일난대더라 하면서 어디 집에 데려가도
말 한마디를 조심조심하는 우리 엄만데. 아버지도 은퇴한 양반이 그 참 뭔 자기가 쓰시지 용돈이라고
슬그머니 마누라 손에 돈 쥐어주는게 우리 아버진데. -물론 그 2배는 다시 어머니에게 드리지만-

그저 억울하고 분했다. 

그래, 내가 아니라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불쌍했다. 아니 나도 불쌍하지만. 그 노인네들이 그래도 
며느리라고 그렇게 아끼고 이뻐해줬는데. 시부모들 들락거리면 며느리 불편하다면서 생전에 우리
집에 오는 것도 눈치보는 양반들인데. 

그렇다고 또 내가 어디 장인장모께 소홀히 했나?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진 못해도, 그래도
명절이면 꼬박꼬박 선물해보내고, 용돈도 아주 우리 집보다도 담은 10만원이라도 더 챙겨서 보냈다.

'후우'

억울해하면 뭐하는가. 이미 그 년은 바람이 났는데. 

'좆같다'

나는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그리고 얼굴을 감싸쥐었다. 으휴, 이 불쌍한 놈, 지독하게 바쁜 나날도
지나가고, 마누라 회사도 좀 이제 풀리는 듯 해서 드디어 이제 좀 어디 여행도 다니고 오순도순 마누라랑
행복하게 살려나 생각했더니만 이게 다 뭔가. 

억울해서 눈물이 솟았다. 크흐, 씨발. 내 팔자가 그렇지 뭐. 씨발년, 내가 그렇게 만만한가? 내가 그렇게
호구처럼 느껴졌나? 어디 결혼한 여자가… 

세상에, 씨발 다 필요없다. 그 년놈 다 그냥 머리채를 쥐어뜯고 그냥 다… 

너무 많은 감정의 기복이 있어서였을까. 잠이 온다. 배도 고팠지만 잠이 온다. 씨팔, 그러고보니 미친년,
바람 피우는 거에 정신팔려서 남편 밥도 안 해주고 갔네. 남들은 바람나면 안으로는 티 안 내려고 오히려
더 잘해준다는데. 좆같은 년. 난 그대로 거실 바닥에 드러누워 눈을 감았다. 



"으음"

눈을 떠서 시계를 보니 오후 4시 반이다. 마누라는 지금쯤 뭐하고 있을까. 적당히 점심도 먹었겠다, 뭐
당연히 모텔방에서 물고 빨고 있지 않을까. 전화를 걸까 하다가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워 거실 천장만
바라보았다.

"야"

누군가를 향해 말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소리를 내었다.

"행복하냐?"

행복이라… 나이 서른 다섯에 그럭저럭 못나지 않은 마누라에, 연봉 쏠쏠한 직장에, 뭐 다른거 가진건 
없어도 뭐, 이대로만 쭉 가면 돈이야 차곡차곡 쌓일테고 그리 나쁘지 않은 인생인데… 

기스가 났네. 제대로 기스가 났네. 아니아니 기스도 아니지 이건. 아주 제대로 고장이 난 거지.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나도 그냥 마음껏 즐기고 다니는건데. 당장 지금이라도 어디 가서 신나게 다른
년이랑 더럽게 물고빨고 해?

흐, 생각 한번 유치하구나. 그러면 뭐? 마누라가 돌아오나? 그 년이 질투라도 느낄까? 오히려 이혼핑계
거리 잡았다고 좋아하지 않을까. 

그래, 개년아, 내 독하게 맘 먹고 오히려 더 철두철미하게 내 사생활 관리할거다. 사실 뭐 관리하고 자
시고 할 것도 없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지난 3년간 그 년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온 인생 아닌가. 좀 바빠
소홀히 한 건 있을지 몰라도, 그렇다고 쳐도 지라고 나한테 특별히 잘한 것도 없지 않은가. 

흐음.

나는 휴대폰을 들었다. 아내의 번호를 누를까 말까 망설이다가, 눌렀다. 


두루루루루- 두루루루루- 두루루루루- 두루루루루- 두루루루루- 두루루루루- 

왜 이렇게 안 받아. 씨발년아 벌써 하고 있냐? 

두루루루루- 두루루루루- 두루루루루- 두루루루루- 두루루루루- 두루루루루- 

나는 전화를 끊었다. 뻔하다. 못 봤다고 하겠지. 흐. 그래, 그렇다고 치자. 망할 년. 



그리고 다시 원점부터 생각해보기로 했다. 정말 마누라는 바람을 피우는 것이 맞나. 그저 그냥 요즘 뭐
일에 적극적이라서 '그 놈'이 적극적이라 좋다고 한 건 아닐까. 

"흐흐, 흐허허하"

애써 열심히 대신 변명을 해주는 나 자신을 보며 그저 실소가 터져나왔다. 이 놈아 이 놈아, 그만하자. 
배가 많이 고팠다. 하지만 밥은 먹지 않을 생각이다. 먹고 싶은 생각도 없고, 몸을 일으킬 힘도 없다.

어느새 해가 기울어가는지, 블라인드를 쳐서 반쯤만 들어오는 햇볕이 침대를 지나 안방 문턱을 넘어 
거실까지 비치고 있었다. 

나의 삶에는 암운이 드리웠고, 지난 내 4년간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한 가지가 너무나 잔인하게 내
뒷통수를 후려 갈기고 있는데도, 그 따사로운 햇볕은 그저 내 집을 마치 무슨 축복이라도 하듯이 따스
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 너무나 아이러니함에, 나는 그만 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가 않다.


'그저 빨리, 아내가 돌아왔으면 좋겠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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