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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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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기이한 전철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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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밤 10시 45분의 4호선 전철 안. 전철 안은 누렇고 어둑한 형광등 조명과 하루종일 일과에 찌든
피로, 답답하고 별로 좋지 않은 쿰쿰한 공기에 모두가 노곤하고 묘한 짜증만 느끼고 있다.

그러나 저기 문 옆의 커플만큼은 무슨 다른 세계에라도 있는지 그저 핑크빛, 아니 핑크빛을 넘어 이미
시뻘건 모텔 방 수면등만큼이나 노골적인 분위기라 마치 코에 비릿한 그 냄새가 풍기기라도 할 것 같은
착각이 들 지경이다.

"으응…"
"키킥"

두 년놈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계속 히히덕대며, 그 사람 많은 곳에서 백허그를 한 채 노골적으로 착
올라붙은 미니스커트 계집년 엉덩이 계곡 사이로 말리깽이가 자지를 비벼대고, 목을 빨아대고 급기야
몸을 돌려 키스까지 나눈다. 사람들은 그저 기가 막히고 짜증이 그득하지만 아무도 뭐라 말을 꺼내진
않는다.

다만 몇 명이 카톡으로 그저 [ 지금 전철 안에서 두 바퀴벌레 존나 짜증나 완전 모텔방 차렸어 ] 하면서
흉이나 좀 볼 따름이다.


하지만-


모두가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가운데 딱 한 명 그 둘 이상으로 밝은 표정을 짓고 있는 한 남자가 있다.
다른 사람 1.5배는 될 법한 육중한 몸매, 하지만 남 80% 정도 밖에 안되는 작은 키, 보이지도 않는 그
짧고 굵은 목,  떡진 머리, 돗수가 궁금해지는 굵은 안경, 앉아보니 3겹 4겹으로 겹쳐지는 똥배, 온 몸
에서 풍기는 땀 비린내 등, 농담으로도 좋은 외모라곤 말할 수 없는 저 단 한 명의 남자는 그저…
 
웃고 있다.

헤- 하고, 곧 입에서 침이라도 흐를 듯한 얼굴로 그 둘을 응시하고 있다. 눈엔 촛점이 없는 것이 뭔가
머릿 속으로 묘한 상상이라도 하는 모양이다.

"쿠쿠큭"

만화책 속에서나 봤을 법한 소리로 웃음을 짓는데, 사람들은 이제 저 문 옆의 둘만큼이나, 그 둘을
노골적으로 바라보는 저 뚱뚱한 젊은 남자를 바라본다. 둘 다 가관이다. 아니 솔직히 말해 미적으론  
차라리 공공장소에서 무리한 사랑을 나누는 둘이 더 나을 지경이다.

그럼에도 은근히 사람들은 묘하게 저 추남을 응원하게 된다. 추남은 어느새 입을 살짜기 벌리고, 혀를
빠꼼히 내민 채 마치 뱀처럼 혀를 빠르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어깨가 움찔거리길래 시선을 조금 내려
손동작을 주시하니, 아뿔사, 그의 중지 손가락은 현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기타라도 치듯, 피아노라도 연주하듯? 아니, 저 손가락은 분명… 분명…

소리없고 반응없고 맛없는 삼석녀라 남편한테 소박맞고 돌아온 그 천하의 냉하고 맹한 여자 안산댁의
입에서 동네 민망스러울 정도의 커어다란 교성을 절로 뽑아내고 급기야 화려한 수백줄기 두바이 인공
분수마냥 찬란하고 웅장하게 세찬 물줄기를 터뜨려 뽑아올릴 정도의 저 기가 막힌 침실 핑거 테크닉!

도대체 저런 핑거링은 어디서 익혔을까. 일본에 골드핑거 가토 다카 센세가 있다면 이제 한국에는
저 덕후 핑거가 있다 자부해도 좋다. 프라이드 오브 코리아다.

그런데 과연 도대체 저 묘한 표정과 혀놀림, 손놀림은 무엇을 위해 공허하게 공기를 휘젓고 있는 것
일까. 아 그야 물론 그의 시선을 따라 도착하게 되는 저 문 옆의 커플이 답이렸다.  

그렇다. 저 뚱추남은 이미 여자를 철저히 스캔한 다음, 그녀의 육신을 비록 허공에서나마, 상상 속
에서나마 마음껏 범하며 뇌내성교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진짜 남친 이상으로 추잡하고 노골
적으로 말이다.

추하다. 한심하다. 불쾌하다.

만약 멀쩡하고 조신하게 있는, 아니 비록 스킨십을 나누더라도 그것이 '적당한' 수준이었다면 모두들
저 추남을 욕하고, 어쩌면 물리적인 재제를 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그저 그 지하철 칸 속 수십 명의 사람들은, 어느새 부둥켜안고 진한 키스에 이른 두 남녀와 그들을
바라보며 혼자 혀와 손가락을 이용해서 허공을 휘적는 변태를 번갈아 바라보며 어이없는 실소를
흘리고 있을 따름이었다.

전철 안은 한층 더 갑갑하고 후덥지근해졌다. 내가 내릴 역은 아직도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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