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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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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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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3주간 만났다. 알고 지낸지는 1년 남짓 되었다. 서로 썸남 썸녀와의 만남이 어설프게 잘 안되던 차에
외로움을 달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타이밍이었다.

물론 그리 불타오른 만남은 결코 아니었다. 그저 새삼스러운 안부전화와 주말의 맛집 기행 정도가 달라진
일상의 전부인 그런 만남. 그리 화끈하지도, 그리 루즈하지도 않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좋다는 생각까지
얼핏한 그런 만남.

하지만 우리의 만남은 시작부터 리스크를 안고 있었다. 과거에 그녀 주변 동생에게 내가 산 꽤 억울한
오해 덕분에 벌어진 '스캔들 아닌 스캔들' 덕분에, 무슨 연예인도 아니건만 우리의 만남은 그녀 주변
동생들에게는 철저히 비밀에 붙여야 할 일이었다.

이제는 그 '오해'도 거의 풀린 상태였고, 친하기도 꽤 친한 상태라 별 걱정을 안 했지만, 그렇게 방심을
해서였을까. 아주 초보적인 실수를 하고야 말았다. 그녀와 둘이 백허그를 하고 찍은 커플 사진의 존재를
깜박하고

"오빠 사진 좀 봐도 되요?"

하는 그녀의 동생들에게 휴대폰을 넘겨줬던 것. 보통이라면 결코 그럴 일이 없을텐데, 뭐가 씌의기라도
한 모양인지 까맣게 잊고 순순히 휴대폰을 넘겨주었다. 뭐 그 년이 조금만 더 센스가 있었더라면 사실
그 사진을 보더라도 그냥 못 본 척 하고 넘어갔을텐데 그것까지 바라는 것은 무리였을까.

놀란 얼굴로 다들 앞에서 "오빠 이 사진 뭐에요?" 하고 그 사진을 꺼내놓았고, 그렇게 우리의 연애는 모두
앞에 까발려짐과 동시에 또 망가지고야 말았다. 모임이 끝난 후, 나는 잔뜩 골이 난 여자친구에게 곧바로
이별을 통보받았다.

황당하고 억울했지만 변명의 여지가 없는 실수였고, 또 나 때문에 꽤나 입장이 난처해졌을 그녀를 생각해
보노라니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붙잡기는 했지만, 사실 그게 더 힘들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아는 입장
에서 계속 뻗댈 수는 없었다.



이틀을 멍하니, 또 씁쓸하게 보냈고 생각보다는 빠르게 회복했다. 시작부터 오래 갈 수 있는 만남이라는
느낌은 받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근 1년 여만의 연애는 그렇게 짧게 끝났다. 다시, 솔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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