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일요일
명절을 앞둔 어느 연휴 속의 일요일. 굳이 집 앞에 새로 생긴 카페에 이미 몇 세대 전의 무겁고 낡은 맥북과 새로 산 책 한 권을 들고 나와 시간을 때우는 것은, 처음 머릿 속에 상상하며 기대한 것보다 훨씬 후지고 허세스러운 일이다. 허세라는 표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적어도 이건 후지고 쿨하게 보이지 않다는 점에서, 오늘의 나에게는 그 단어가 갖는...
View Article생명연장의 꿈
2017년 12월, 다국적 제약업체 노바스틱스는 체내의 노화된 세포를 제거하는 기전을 가진 특수화합물 신약에 대한 개발 정보를 전격적으로 발표한다. 물론 동물실험 단계였지만 그 효과는 상당히 극적이라 쥐의 경우 최대 75%의 수명 연장 효과가 있었고, 돼지나 원숭이의 경우 45%의 수명 연장 효과가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조직 및 장기 기능의...
View Article인류 재생산 장치
대전쟁을 피해 외우주 너머로 향한 탈출선은 영원에 가까운 긴 여행 끝에 마침내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행성을 발견해냈다. 인공지능으로 조종되는 탈출선은 탐사 드론이 보내온 정보를 조합하여 최종적으로 기착을 결정했고 착륙을 개시했다. 쿠쿵! 그러나 착륙 지점의 기반이 예상보다 약했기에 균형을 잃은 탈출선의 랜딩 장치 한쪽 다리가 부러졌고, 하드 랜딩 과정에서...
View Article검은 작가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렸는지 아침부터 미친듯이 폭우가 쏟아지던 그 날, 김박스는 비가 조금 잦아든 오후 느즈막하게 일어나 방 안에 널부러진 소주병을 슥 치우고는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았다. "속쓰려" 언제나처럼 인터넷 서핑을 시작하려던 그는 문득 자신에게 날아온 한 통의 이메일을 확인했다. 로마 교황청에서 직접 보내온 한 통의 메일. 친절하게 한글로 번역까지...
View Article한국형 기업 로봇
202X년. 솔직히 아무도 생각 못했을거다. 이렇게나 빨리 우리 일상에 로봇이 침투하게 될 줄은. 게다가 이토록 치명적일 줄은. 한국형 기업 로봇 출근증을 찍고 보니 8시 59분. 간신히 지각은 면했지만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은 그 헐떡임을 멈출 줄을 모른다. 엘리베이터 안에서까지 헐떡이고 있을 수는 없으니 겨우 참고 7층 사무실에 도착한다. "안녕,...
View Article에스앤에스
오랜 시간 공들였던 나의 긴 원고를 날려 버리고 목숨 같던 나의 블로그 한방에 닫아버렸지 (예아~) 미안해 여보야 나는 더이상 개똥글을 더 쓰지 않을거야 내가 쓴 글 웃으며 읽어준 그 기억 가슴 속에 남길께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찬양일색 댓글에 취해 (댓글에 취해) 미련하게 청춘을 소모하고 있었던 것 같아 예~ 하지만 이제야 깨달았다네 이딴 장르문학적...
View Article[신간 안내] 생각보다 짧은 순간
[ 책 소개 ] 이혼한 뒤에도 아들 문제로 종종 만남을 가져온 현우와 소라. 어쩌면 이대로 인연을 가져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고 현우가 생각한 순간 소라에게 새 남자가 다가온다. 능력 있는 사업가 인태의 구애에 소라는 흔들리고, 현우는 결국 극단적인 제안을 하고야 마는데… 인터넷의 문제적 작가 스타일박스의 첫 장편소설 < 생각보다 짧은 순간...
View Article청춘자원 관리법
자, 재미나는 상상 하나 해보자. 퇴근길, 길거리의 수많은 선남 선녀… 그 중에 얼마는 데이트를 하러 기쁜 마음으로 데이트 장소로 향하는 것이겠지만, 기실 대부분은 그저 집으로 향하는 것일게다. 설령 연인이 있더라도 매일 데이트를 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물론 결혼을 했다거나 동거를 하는 중이라면 배우자가, 연인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겠지만 그나마도 아닌...
View Article"연애가 별거냐?"
신욱의 말에 답답하다는 듯 종현은 젓가락을 들고 오뎅탕 그릇을 탁탁 쳤다. "어차피 툭 까놓고 말해서 데이트 하면서 맛있는거 먹고 재밌는거 보고 떡도 치고 정도 들고 눈물도 흘려보고 화도 내보고 그러다 보면 그게 사람 사는거야. 연애하는거고. 그럼 딱 봐서 아 진짜 이건 좀 아니다 싶은 사람 아니면 일단 거기서 그렇게 대충 눈 맞는거야. 어린 애새끼들도...
View Article올드타입
김용호 씨는 '뉴타입'이라는 말 자체가 올드타입이 되어버린 시대를 살아가는 오타쿠이지만 여전히 그에게 뉴타입은 뉴타입이다. "뭐랄까, 향수라는 말로 단정짓기에는 아직은 그 안에 아쉬움이 있어요. 설렘이 있단 말이죠" 그의 컬렉션 역시 조금은 올드한 편이다. "피규어도 모으긴 하지만, 제가 받아들이는 것은 에반게리온까지가 아무래도 한계일까 싶어요....
View Article빨판
"아빠가 또 어디에 돈 빌려줬대!" 전화기 너머로 비명을 지르듯 소리치고 있는 여동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알았어, 혜윤아 일단 진정하고, 주말에 내려가서 이야기 하자. 오빠가 알아서 처리할께. 울지 말고, 엄마 잘 챙기고, 응" 하고 조용히 전화를 끊었다. 옥상에 올라 간만에 담배를 입에 물었다. 금연 5일차, 어쩌면 이번에는 좀 더 길게 끊을 수도 있지...
View Article휴식
요즘 같아서는 해외여행도 귀찮고 피곤하다. 장기 휴가를 내지도 못해서야 잘해봐야 주말 끼고 홍콩-마카오 아니면 일본, 동남아인데 이것도 이제는 좀 질린다. 게다가 나이 좀 먹었다고 예전처럼 빡세게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주말 내내 힘들게 다녀와봐야 그 다음 주만 죽어난다. 면세점 쇼핑 나부랭이와 맛집 몇 군데 돌아다니는게 그나마의 재미인데, 그것도 직구 덕분에...
View Article"아무래도 욕구불만인 것 같아"
혜리의 말에 난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하면 되잖아"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할 사람이 없어" 얼굴 반반하고 옷도 깔쌈하게 입고 다니고 몸매도 삼삼한 니 주변에 참도 남자가 없겠다, 하고 속으로 혀를 끌끌 차고 있노라니 그녀는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진짜 없어. 아니 내가 자자고 하면 달려나올 남자들이야 많겠지. 근데...
View Article"아니 결혼식 날짜까지 잡았는데 이제와서 꼭 프로포즈까지 해야 돼?"
어차피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모두가 안다. 말이 그렇지 니가 제대로 엄청난 폭풍 감동의 프로포즈 이벤트를 연출할 재능도 재력도 재주도 없다는 사실. 잘 안다. 애초에 친구도 몇 명 없어서 어디 영화나 CF에서나 나올 법한 인간 쓰나미의 감동 이벤트 같은 것은 상상도 못한다는 것도 아주 잘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너에게 그 '사후 프로포즈'를 칭얼댄...
View Article매일 그대와
불 꺼진 깊은 밤, 모니터 불빛만 환하게 빛나는 작은 원룸에서 한참을 마우스 딸깍 거리며 인터넷 하고 있노라니 문득 뒤에서 쌕쌕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휴대폰 주물럭거리다가 지루해지니 나를 붙잡고 놀아달리며 애처럼 조르던 정미는 지루함에 지쳐 어느새인가 잠에 빠져 들었다. "아…" 그제서야 문득 조금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고, 내일은 컴퓨터 하는 대신 같이...
View Article[고오급정보] 인터넷 토론의 기술
인터넷에서 날이면 날마다 벌어지는, 인생에 0.1g도 도움되지 않는 병신같은 토론들. 사실 좋게 표현해서 '토론'이지 그냥 '뜨신 밥 쳐먹고 할 짓이 없어 벌이는 쓸데없는 개뻘짓'이라 단어를 치환해도 무방할 그런 싸움들 말이다. 그런 토론과 논쟁을 할 시간에 그냥 딸딸이라도 한번 달큰하게 치면 기분이라도 좋을텐데, 이 인터넷 토론은 보통 얼굴 시뻘개지도록...
View Article"오빠, 지금 잠깐 볼 수 있어?"
지난 일주일을 시달린 제안서 건을 마치고 주말을 앞둔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하던 나. 다들 불금이니 뭐니 약속 잡고 신나해도, 나는 그저 피곤했다. 저녁만 간단히 먹고 일찍 자야겠다고 다짐했건만… 밤 11시에 침대에 눕자마자 걸려온 지윤의 전화. "…그래. 어디서 볼까? 너 지금 어딘데?" 다른 애였다면 피곤하다고, 미안하다며 다음에 보자고 하고...
View Article미친 사랑
알고 있었다. 그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하지만 그건 상관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인걸. "아하하하하하하" 그래. 그의 비음 섞인 웃음소리 하나면 남들이 뭐라하던 그가 얼마나 나를 괴롭히던 그냥 그것으로 좋았다. 그의 손길에 나를 맡기고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 했으니까. 팔이 부러져 병원에 갔던 날, 의사가 물었다. 누군가에게 폭행 당한거냐고. 나는 웃으며...
View Article[장편] 수지 1화
"안녕히 들어가세요!" 금요일 밤, 언제나의 영어 스터디 그룹 심야반이 끝나고 무거운 백팩을 든 채 터덜터덜 강남역 쪽으로 향한다. 어느새 11시 13분. 남들은 살과 살이 불타는 금요일이건만 나의 금요일은 그 어느 날보다 차갑고 허무하다. "컵라면 하나 먹을까" 간만에 발표자로 나서서 긴장하며 대화를 주도해서 그런지, 아까 저녁을 먹었음에도 벌써 뱃...
View Article슈가 대디
아래 위로 훑어보아도 참 이 꼬맹이, 발칙하기 짝이 없다. 저 빨간 입술부터 짧은 커트, 도발적인 스트릿 패션까지 흠잡을 곳 없이 취향을 저격한다. "그러니까요, 몇 번을 말해야 되요! 아.저.씨! 이게 아니라, 이거, 이거, 이거" 염병할, 그런데 문제는 컨트롤이 전혀 안된다는거다. 게다가 '아저씨'라는 호칭은 왜 그리도 강조해서 부른단 말인가.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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