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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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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결혼식 날짜까지 잡았는데 이제와서 꼭 프로포즈까지 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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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모두가 안다. 말이 그렇지 니가 제대로 엄청난 폭풍 감동의 프로포즈 이벤트를 연출할 재능도 재력도 재주도 없다는 사실. 잘 안다. 애초에 친구도 몇 명 없어서 어디 영화나 CF에서나 나올 법한 인간 쓰나미의 감동 이벤트 같은 것은 상상도 못한다는 것도 아주 잘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너에게 그 '사후 프로포즈'를 칭얼댄 것은… '결혼'이라는 인생의 전환점이 될 법한 중요한 이벤트에 무언가 작은 기념비 하나 더 세우고 싶은 작은 욕심이다.

그것은 마치 돈도 안되고 밥도 안되며 인생에 도움이라고는 요만큼도 안되는 게임 속 퀘스트 업적, 칭호와도 같은 것이다. 해도 분명히 좆도 나에게 별 대단한거 없는거 알면서도 얻고 싶은 그 무언가. 그리고 넌 그것을 매우 잘 알면서도 밤을 세웠지 않은가.

엄마가 "에휴 이 놈아, 니가 밤낮 게임을 하면 쌀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 이 미친 놈아, 그 열정으로 공부를 좀 하지 이 미친 놈아" 하며 등짝 스매시 날릴 때 니 뭐라고 했던가.

"아 쫌! 남들도 나만큼은 게임해! 뭐 나만 그러는 줄 알아?"

그래, 그녀도 그렇다. 남들 다 하고 다 받는거, 나도 좀 받아봤으면 좋겠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거창한 것을 진심으로 바라는 것도 아니다. 첫 줄에서 말했듯이 니가 센스 없고 돈은 더더욱 없는 놈이라는 것 아주 잘 아니까.

당연히 니가 뜻밖에 거창하고 너무나 멋지게 잘 하면 감동받고 눈물까지 흘리겠지만, 그거 못할 줄은 진짜 잘 아니까 그냥 어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최소한 눈 마주치고 결혼해 달라는 '구두 약속'이라도 좀 그럴싸하게 하면 분명히 좋아라 할 것이다. 물론 거기에 약소하게나마 꽃이랑 선물이라도 있다면 더욱 좋겠지. 당연히.

근데 그렇게는 못할 망정 대놓고 "아 무슨 프로포즈는 프로포즈야. 결혼식 날짜까지 다 잡아놓고. 다른 여자 그런거 한다고 너도 그런거 해야 돼?"하고 면박이나 주면 기분이 좋을까 나쁠까. 당연히 사람인데 좋을 리가 있나. 좆같지. 그러니 타박을 하고 바가지를 긁히는 것이다.

물론 니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아니 그렇게 원하면 거 여자가 좀 먼저 할 수도 있는거 아니냐고. 사후 프로포즈라는 것도 우습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 맞는 말이다. 말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남들 다 하는거 안 하는건 쉬운게 아닌 것이다. 자리 잡은 통념이라는 것은 부수기 쉬운 것이 아니다. 니가 고등학교 다닐 때 "대학교 꼭 나와야 되나?" 하고 의문 품어봤음에도 대학교 간 것처럼 말이다. 콜롬부스 달걀 이야기도 수천번 넘게 들어오지 않았던가.

게다가 성별을 전환해서 생각하라니. 참, 프로포즈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뭔가. 그래, 그 이미지대로 생각할 뿐인 것이다. 나라에서 치마 입지 말라는 이야기 한 적 없어도 니가 치마 안 입는 것처럼 말이다. 어쩔 수 없다. 우리 모두는 이미 관념의 동물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냥 누차 말하지만 어디 방송에서나 그렇게 묘사하고, 어디 인터넷에서나 허풍 떠는 것이고, 주변에 유별난 놈년들이나 좀 그 난리굿 피우는 것이지 대부분의 연인들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저 그렇게 별 대단하지 않은 프로포즈 이벤트를 하고, 혹은 아예 그런거 없이도 잘만 결혼을 한다.

어차피 너 정도로 그닥 잘난 것 없는 남자와도 결혼을 결심해 줄 고마운 여자라면, 분명히 프로포즈 없이 결혼한다 해도 조금 더 칭얼대고 투닥대긴 해도 그냥 그 뿐일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렇다면… 그 별 대단할 것도 없는, 그냥 적당히 그럴싸한 분위기의 장소에서 진심 담아 전하는 프로포즈 한 마디 못해줄 것은 또 뭔가. 서로 이미 밑구녕까지 다 들여다 본 사이에 뭐가 또 더 부끄러워서 말이다.

적어도 한동안 주변 기집애들끼리 결혼 문제로 모이기만 하면 매번 얼굴 볼 때마다 시끌시끌할텐데, 어디의 유별난 누구처럼 대단한 뭘했다고 자랑할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냥 그런거 없이 했어 우리는…" 하고 어색하게 웃으며 주변의 동정 및 그 싸가지 없는 뭐시기 년의 조소 어린 시선을 굴욕적으로 받게 할 필요는 없잖은가. 사랑하는 그녀인데.

애초에 정식 프로포즈를 제대로 포멀하게, 젠틀하게 했다면 이런 사후 프로포즈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보통 이런 이슈는 결혼까지의 과정이 분명 '연애 한지 몇 년 됐으니 이제 슬슬 결혼 준비 해볼까'하고 적당히 적당히 넘어갔기에 발생하는 이슈인 것이다. 그러니 처음에 잘하던가, 혹은 뒤늦게라도 좀 구색이라도 맞추자.

아…

물론 그런 애들도 있기는 있다. 진짜 프로포즈가 뭐 대단한 뭐라도 되는 줄 알고 주변에 자랑하고 싶어 안달나고 진짜 막 남자 들볶아가며 난리 굿 떠는 애들. …근데 그런 애랑 결혼 과정까지 진행한 놈이라면 이미 그렇게 나올거 몰랐을 리 없고, 그럴 거라는거 다 알고 있었잖아? 그게 니가 고르고 고른 여자고 또 니가 그렇게 길들인 결과물인 것이다. 어쩌겠나. 책임져야지. 진작에 손절매 안 한 업보 아니겠는가.

마지막으로 이 글에는 아다 / 찐따 / 백수 / 동정 / 장기 솔로 등등은 태클 걸지 말고 조용히 사라지면 된다. 어차피 본문의 내용은 여러분의 삶과는 요만큼도 상관이 없다. 열 받을 이유도, 타이핑 할 이유도 없다.

그리고 진짜 마지막으로 "그나저나 스박님 결혼하시나요? 왜 이런 글을…" 하고 의문을 품는다면 아쉽게도 대한민국에서는 동성간의 결혼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드리며 이 블로그 주인의 이메일 주소를 새삼 떠올려보자. styleboxgay@naver.com 말이다. 그저 언제나처럼 의미없는 똥글이나 또 씨부리고, 씨부릴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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