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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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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빛

모텔의 침침한 붉은 빛에 담배 연기를 뿜노라니 피어오르는 빛 먼지에 내 폐 속까지 답답해지는 기분이다. "창문 좀 활짝 열고 피워라 씨발새끼야"내 한 소리에 현구는 씩 웃으며 "몸 아끼는거야? 하여간 형은 진짜 웃겨" 하고 비아냥 댄다. 그도 그럴 것이그와 내가 이 모텔 방에 들어온 것은 언제나와 같은 이유니까. "빨리 옷 벗어"내 지시에 현구는 웃옷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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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시체

그러니까 내가 기억하는 처음은 이렇다. 한국대병원에서 입원환자들이 난동을 피워서 지금 아수라장이다, 라는 내용의 사진과 영상이 체이스북을중심으로 인터넷에서 유포되기 시작한 것. 처음 기사로 보도한 것도 유력 일간지나 통신사들이 아닌 그냥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돌면서 기사받아 쓰는 영세 온라인 뉴스사였다. 어쨌든. 화질도 별로 좋지 않고 많이 흔들리는 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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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에서

"기존의 스토리지 시스템에 비해 최소 200배 이상 빠르고 효율적인 네트워크 플랫폼으로서의 혁신…"나는 아까부터 하품을 참느라 고생하고 있었다. STK 기영원 대표의 환영사에 이어 다음 연사로 나온 배 뭐시기 부장이라는 이의 시스템 소개 PT인데, 말투가 느릿느릿하고 뻔한 내용을 과다하게 포장하는 것이 엄청나게 지루했다."지루하신가봐요"그리고 바로 그때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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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제네레이션

서기 3222년, 인류는 더이상 지구 궤도권의 우주 거주지 '스페이스 콜로니' 사업만으로는 300억 인류의 부양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환경오염 문제와 서서히 말라가는 인도양 등 수자원 고갈 문제가 심각했다. 결정적으로 식량자원 생산의 증진이 서서히 한계를 보이고 있었다.결국 최대 향후 200년을 바라보는 초장기 인류 이주 프로젝트 '가이아 프로젝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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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잘 들어"

그녀는 언제나처럼 따박따박한 목소리로 내 폐부를 찔러왔다."사실 난 오빠가 모태솔로라고 해서 솔직히 좀 좋았어. 왜냐하면 처음은 누구한테나 소중한거고, 그만큼 내가 오랫동안 기억될게 분명하잖아?"그 말에 '오랫동안 기억된다는건 역설적으로 말해서 언젠가 헤어졌을 때를 상정해서 하는 말이야?' 하고 되묻고 싶었지만 저번처럼 또 제발 꼬치꼬치 캐묻지 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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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문득 든 생각인데…내가 만약 억울한 누명을 쓰고 전기의자에서 고통스럽게 타죽게 되었다면, 그리고 나중에 사람들이 나를 떠올릴 어떤 상징으로 전기의자를 떠올린다면 별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을 것 같다. 심지어 전기의자를 보면서 열심히 뭔가 기도하는 모습을 본다면 은근 화까지 날 거 같은데. 마찬가지로, 예수 역시 사람들이 자신을 떠올리는 어떤 상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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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 키드

'국민학교' 6학년 때, 나는 친구인 현성의 집에 처음 놀러가서 처음으로 컴퓨터라는 신세계의 문물을 접했다. 녀석의 방에 있던 386 PC 속에는 '천사들의 미드나이트'라는 제목의 성인 게임이 설치되어 있었다. 조악한 16컬러로 제작된 게임이었건만 그것은 나를 흥분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고, 난 컴퓨터라는 도구에 아주 깊이 매료되었다. 그래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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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우스개 소리로 그러잖아. 전 세계 애들이 몇 명인데 산타가 도대체 선물을 어떻게 다 돌리냐고? 근데 그거 참 머저리 같은 질문이야. 이미 다들 알잖아? 울면 선물 못 받는다는거. 1년에 단 한번도 안 우는 애기들이 몇 명이나 될거라고 생각해? 잘 봐. '울지 않은 아이'가 여기 이렇게 실시간으로 집계가 된다고. 25일 오전 9시를 기준으로 리셋이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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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그 이후

몇 달 전의 일이다. 스타일박스 메일 계정으로 한 통의 메일이 날아왔다.  저 메일에 첨부된 사진은, 그 소개팅 녀가 보낸 이별의 편지였다. 한줄로 요약하자면 '당신은 좋은 사람이지만미안하게도 나는 당신에게 깊은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 라는 내용이었다.  흔한 경우였을 것이다. 보통의 좋은 남자, 정말 착하고 잘해주지만 무언가 임펙트도, 별 다른 큰 매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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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탄다. 밖에서 보기에 의외로 많이 안 탄 것 같아서 기대를 갖고 슥 둘러보지만 역시나 아쉽게도 빈 자리는 없다. 노곤한 몸을 이끌고 서서 창 밖을 바라보노라니 노을이 지고 어둠이 깔린 저녁, 번화가의 간판과 차들의 불빛이 어지럽다. 아무 생각없이 얼마를 그렇게 서서 왔을까. 내 서있는 앞자리의 아줌마가 일어나고 나는 옳거니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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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중

똑- 똑, 똑똑 딱딱, 따따닥- 똑- 똑- 내 나름의 흥에 맞춰 스텝을 밟으며 목탁을 두드린다. 하지만 역시나 "교회 믿어요" 하는 말과 함께 가게 문을 닫아버리는 인상 사나워보이는 정육점의 여시주. 할 수 없이 옆의 미용실로 발걸음을 옮기지만 또 "불교 안 믿어요, 가세요" 하는 말이 문도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 들려온다. 오늘 공양받은 것이라고는 그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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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은 왕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확실히 손님은 왕이다.  하지만 역사상의 왕 중에는 폭정을 펼치다 권력을 잃고 끌려내려간 왕도 있고, 심지어는 참수를 당하거나 그 이상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왕도 수없이 많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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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영화-커피-술-섹스

아주 많은 수의 커플들은 연애 초창기부터 그 연애가 끝나는 날까지 이 사이클을 적당히 변주해가며 반복한다. 밥-영화-커피-술-섹스  아주 베이직한 코스이다. 물론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이 세상 거의 모든 분야, 모든 일에 견주어보아도 '베이직'한 코스는 기본은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기본도 기본 나름이다. 그 기본이 정말 단단한 기본인가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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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여자들 너무 되바라진 거 같지 않아요?"

어디서 뭘 보고 왔는지 형준이 난데없이 씩씩대며 한 마디 한다. 보나마나 어디 인터넷 같은 데서 여성혐오 유발글 같은 거 봤겠지. "왜? 너 또 주베 보고 왔냐?"옆에 있던 영석이 낄낄댄다. 그러자 형준이 정색을 하면서 의견을 피력한다."그렇잖아요. 남자들한테 결혼비용도 다 떠넘기고 집도 공동명의 하자고 하고, 결혼하면 일도 안 하겠다고 하고,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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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요정

나는 언제나처럼 하릴없이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었다.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부터인가 딱히 할 게임도 없어진 나에게 주어진 여가활동이라고는 오로지 인터넷이 전부였다.  "밖에 나가놀던지, 친구들이라도 좀 만나던지 너는 방구석에서 맨 컴퓨터만 하고 앉아있냐, 으휴 속터져" 라는 엄마의 잔소리도 이제는 인이 박힐 지경이었지만 사실 나에게는 친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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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세요"

날씨가 벌써 여름이나 진배 없다. 끈끈해져 겨드랑이가 젖어든 셔츠가 민망하지만 5월에 "에어컨 틀어드릴께요" 라는 아주머니의 배려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아주머니가 거실벽에 내장된 콘솔창을 몇 번 누르자 시스템 에어컨 바람이 천장과 사방에서 시원하게 흘러나온다.  "엄청 더우시죠. 이제 금방 시원해질거에요""감사합니다" 방을 스윽 둘러본다. 연포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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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콜

샛노란 염색 단발에 엉덩이 라인이 그대로 보이는 타이트 레드 원피스. 킬힐을 신은 채 바쁘게 걷는 그녀의 뒤로 남자들의 시선이 여럿 쏠린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휴대폰을 손에 든 채 활짝 웃는 그녀의 미소를 뒤로 하고 핫팬츠에 패치가 어지러이 붙은 반팔 청셔츠 등 스트릿 패션의 왁자지껄 웃는 10대 소녀 군단이 이어진다. 그 옆으로 스키니 블랙진을 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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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유발제 'tears'

간만의 연휴에 텅 빈 연구실이지만, 나는 오늘도 혼자 출근해서 지난 4년 간의 비밀연구에 대한 결실을 거두는 중이다. 이름하야 'tears'. 너무 유치한 이름이지만 연구실 귀신들의 언어적 센스는 너무 큰 기대는 안 하는게 좋다.  좌우지간 이 약의 효능을 말하자면 '우울증 유발제'. 말 그대로 우울해지는 약이다. 그렇다고 조증(bipol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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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의 밤

곤히 잠든 너의 얼굴을 본다. 짙고 숱많은 눈썹이 남자다우면서도, 꼭 감은 눈의 여자처럼 긴 속눈썹이 귀여워. 오똑한 콧날은 부럽기도 하고. 쪽 사랑스러운 너의 입술을 보며 나도 모르게 입을 또 맞춘다. 너무 사랑스러워. 어쩜 남자 입술이 이렇게 탐스러울까. 전 여자친구가 그렇게 네 입술을 좋아했었다고? 그래서 더 질투가 나. 그런 말은 도대체 왜 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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