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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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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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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텔의 침침한 붉은 빛에 담배 연기를 뿜노라니 피어오르는 빛 먼지에 내 폐 속까지 답답해지는 기분이다.

"창문 좀 활짝 열고 피워라 씨발새끼야"

내 한 소리에 현구는 씩 웃으며 "몸 아끼는거야? 하여간 형은 진짜 웃겨" 하고 비아냥 댄다. 그도 그럴 것이
그와 내가 이 모텔 방에 들어온 것은 언제나와 같은 이유니까.

"빨리 옷 벗어"

내 지시에 현구는 웃옷을 훌렁 벗는다. 그의 등에는 깊게 패인, 아마 처음 만들었을 때에는 엄청나게 아팠을
것이 분명한 팔방향 태양 무늬의 스캐러피케이션이 새겨져 있다. 대단한 놈이다. 귀두에 3mm 구슬 12개를 
박은 자지 피어싱을 봤을 때는 어지간한 나조차도 인상이 찌푸려졌을 정도니까.

"내가 봤을 때, 니는 깡다구가 좋은게 아니라 그냥 존나게 둔한거야. 남보다 한 100배는 둔한거. 어떻게 넌
씨발 자지에 그걸 하나둘도 아니고 12개나 박을 생각을 했냐? 등에 그것도 그렇고"
 
내 말에 현구는 "인정. 저번에도 말했잖아. 내 굳은 살이 그래서 생긴거라고" 라면서 쿨하게 인정했다. 그래,
저 놈 손가락 끝마디에는 모두 시커먼 굳은 살이 아주 두껍게 배겨있다. 녀석이 처음, 그러니까 초등학교 4
학년 때부터 시작한 지랄이 바로 뜨거운 냄비 옆 잡기였단다.

그러니까 손잡이가 아니라, 보통 사람은 그냥 닿자마자 "앗 뜨거워!"하고 비명부터 지를 그런 달궈진 쇠냄비
옆구리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는 것이다. 닿자마자 피부 표피가 부풀어 오르고 물집이 생기며 진물이 흐르고
이윽고 진피가 벌겋다 못해 시커멓게 죽어갈 무렵 슥 손을 떼는 것이다.

"근데 애기들은 그러다 손가락 좆되기 쉽지 않냐?"
"내가 그래서 왼손 약지가 이렇게 병신됐잖아"

그의 말에 따르면 타이밍을 살짝 놓쳤단다. 진물에 피가 섞여나오다 단백질 타는 냄새가 피어오르는 순간
떼야하는데, 몽롱한 기분에 취해서 찌릿한 둔통이 쿠욱하고 깊게 뒷골을 찌르는 순간이 와서야 떼버렸고
손가락을 바라보니 끝마디가 마치 녹아버린 초처럼 휘어있더란다.

"하여간 씨발, 니 얘기 듣다보면 진기명기가 따로 없어"

하지만 그는 항상 나를 부러워했다.

"민감한 사람이 부러워"
"씨발새끼 조루 놀리냐?"
"아 형, 지루는 더 좆같은거야"
"그런 새끼가 좆에다 피어싱을 12개를 박냐? 얼마나 귀두 신경을 죽여놓을라고? 혹시 너 조루 없애려고
그런거 아냐?"
"아 형"

어쨌거나 현구 같은 케이스는 둔한 감각을 자극하고 놀다가 이쪽 길에 빠지게 되는 지극히 드문 케이스
고, 나같이 일반적인 '커터'들은 사춘기, 우울증 등 감성적인 이유에서 시작하게 되는 케이스가 대부분
이다.

"하아…"

면도칼로 발목 라인의 주름을 따라 살짝 실선을 긋는다. 두어번 살살 연습을 하고 세번째 드디어 날을
박고 긋자 빠알간 피가 방울방울 맺히더니 이윽고 네 번째의 칼질에 샐쭉하니 배어나온다. 

"형 손 좀 달달 떨지마라. 아 짬밥이 몇 년인데 진짜"
"느끼고 있는데 헛소리 말고 닥쳐"

얇은 피부다. 칼날이 단 1mm만 살갗 속으로 파고 들어도 몸은 그 쇳조각의 차가움을 느끼고, 거기서
또 1mm만 더 들어가도 피부는 가늘게 눈을 떨며 소리없는 외침을 시작한다. 이윽고 3mm가 넘게 파고
들면 통증을 발산하고 이어 피를 뿜어내기 시작한다. 
 
"아 진짜 부럽다. 형, 빨리"

내가 발목에서 피를 흘리며 쓰디쓴 쾌감을 맛보기 시작하자 현구도 군침이 도는지 젖꼭지를 이쪽으로
들이댄다. 그의 유륜에는 이미 둥근 체다 치즈를 몇 조각으로 잘라낸 듯한 상처자국이 있다. 

"깊게. 너무 깊게는 말고"
"알아 임마"

나는 다른 칼날을 집어들고 조심하게 숨을 참아가며 그의 젖꼭지 주변으로 칼날을 가져간다. 감각이
둔한 현구는 어쩔 수 없이 그나마 상대적으로 민감한 피부 조직을 도려내면서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발바닥, 후장, 귓 속, 두피, 겨드랑이 등을 도려내다가 요즘 유륜에 녀석이 눈을 떴다. 

"아아, 형, 좋아"
"야야, 남들이 들으면 오해하겠다"

내가 말해놓고도 웃겨서 픽 웃었다. 최소한 자해중독자 새끼들보다야 동성애자가 나은 거 아닌가. 난
양쪽 유륜에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 껄껄 웃고 있는 미친 놈을 보며 유쾌하게 웃었다. 그리고서 나는 
드디어 손목을 거침없이 슥 그었다. 

"아…쓰흡"

하도 많이 그어서 이제는 별 재미도 없는 손목. 수십을 넘어 수백에 이르는 리스트컷 자국들. 진짜로
죽을 용기도 없건만 손목을 긋고 피가 흐르는 그 순간의 짜릿함, 그리고 피가 흐르는 순간의 그 시간
이 늦게 흐르는 느낌이…마치, 이미 한번 쳐버리고 한 시간만에 같은 야동으로 다시 치는 재미없는
딸딸이 같은 느낌이다. 중요한 포인트는 '재미없다'가 아니라 '재미없음을 알면서도 결국 사정까지는
해버리는' 중독성이다. 

두 시간여가 흐르고, 우리는 몸 곳곳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웃긴 일이다. 행색이 좀
둘 다 '기이한' 수준의 과감한 패션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멀쩡히 건강한 두 남자가 모텔에 들어와선
스스로, 혹은 서로의 몸에 수도 없이 난도질을 하고서는 피를 철철 흘리며 실실 웃고 있다니. 

"흐흐…흐흐흐"
"흐으…"


사실,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아까 말인데…우리 둘 다 좀 선을 넘었다. 욕조에 뜨거운 물 받아놓고
피 그치지 않고 흘려보내며 서로 웃다가, 몽롱한 기분에 서로의 혀를 빨았다. 그러다가 또 밀쳐내고
한참을 흘리다가, 둘 다 얼떨결에 정신차려보니까 그 넓은 욕조의 핏물은 붉은 물감을 탄 정도가 아
니라 정말로 피로 채워넣은 것마냥 검붉은 색이 되어있었다. 현기증도 좀 나고. 

"현구야…"
"…알아요. 형"

녀석도 아는 것이다. 우리가 좀 오바했다는걸. 평소 같았더라면 아마 우린 곧바로 119에 신고하거나
태경이한테 전화를 했겠지만… 오늘은 둘 다 그러지 않았다. 왜냐하면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몽롱해져서 통증이 살짝 약화된 것을 깨닫고는 더 열심히 그어댔다. 근데 생각보다 그다지 
더 즐겁지는 않았다. 아닌데. 예전에 카페에 번역글 올라온 거 봤을 때 이 라스트 스퍼트 하면 기분 
개째진다고 했는데. 구라였나.

눈 앞이 흐려지고, 천장의 붉은 불빛이 아롱아롱 눈 앞을 떠다니기 시작한다. 그리고 기분좋은 포근
함, 알 수 없는 루즈함이 날 자연스럽게 눕혔고, 내 옆에서 현구는 춤추며 흐르는 핏줄기를 방 곳곳에
뿌려대고 있었다. 저 새끼 동맥 그었나.

눈 앞에 핏줄기들이 날아다니고, 방 안에 가득한 피비린내는 나를 흥분시킨다. 벽에 튀긴 핏줄기가
내 눈에는 기묘한 추상화로 구현되고, 아롱대던 핏줄기는 어느새 검은 세상에 피어난 붉은 연기처럼
되어 내 머릿 속을 헤집고 있었다. 그 갑작스러운 어둠의 정체가 내 눈꺼풀이라는 것을 눈치챈 순간
나는 마지막으로 생각했다. 

'남자 둘이 모텔 방에서 팬티만 입고 피칠갑이 된 채 웃으며 죽어있는 모습이라…허허, 씨발'

나는 뒤늦게 허둥지둥 왼손을 뻗어 휴대폰을 찾으려 애썼지만 더이상은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이
없었고, 현구를 애타게 찾았지만 그러고보니 중얼중얼 알 수 없는 곡을 부르던 그의 노랫 소리는
한참 전에 이미 그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또 생각했다.

죽기 전에 지난 살아온 날이 좌르륵 보이는 주마등이라는 건 헛소리라고. 별로 보고 싶지도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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