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의 연휴에 텅 빈 연구실이지만, 나는 오늘도 혼자 출근해서 지난 4년 간의 비밀연구에 대한 결실을 거두는 중이다. 이름하야 'tears'. 너무 유치한 이름이지만 연구실 귀신들의 언어적 센스는 너무 큰 기대는 안 하는게 좋다.
좌우지간 이 약의 효능을 말하자면 '우울증 유발제'. 말 그대로 우울해지는 약이다. 그렇다고 조증(bipolar disorder)을 치료하는 약은 아니고, 정말로 순수히, 기분이 좋다가도 이 약 한 알이면 한없이 가라앉으며 지독히도 우울한 기분이 되는 약이다. 도대체 이런 약을 누가 사서 우울해지고 싶겠느냐마는, 우리 연구실의 실장님 말씀대로 그건 마케팅의 문제지, 세상 모든 약은 다 수요가 있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내 형이 그렇다. 유명 극작가인 형은 꼭 여자친구와 이별을 하고 나면 그럭저럭 쓸만한 작품을 만들어내곤 했다. 평소에는 하루종일 고작 한 페이지를 채 작성하지 못하던 형도, 꼭 여자친구와 크게 싸우거나 헤어지기만 하면 2~3일만에 한 작품을 뚝딱 해치우기까지 하니까. 꽤 흥행했던 '세 남자들'도 형이 사귀던 배우와 헤어지고 3일 만에 나온 거고, 지난 번에 브로드웨이를 가네마네 했을 정도로 흥행했던 '괴벽'도 이혼하고 반 년만에 나온 첫 작품 아니던가.
우리 연구실의 윤미씨만 해도 맨날 다이어트니 뭐니 하면서도 계속 살 찌다가 남친하고 헤어지고 한 달 만에 무려 9kg을 감량하지 않았나. 마이너스 감정도 다 쓸모가 있는 셈이다.
후우. 만약 지난 12년 간,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회사에 헌신한 내 노고에 이 회사가 조금만 더 부응해주었다면 나는 아마도 이 약을 당연히 회사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았을 거고(물론 온갖 안전성 실험을 제외하고서라도 실제로 제품화 되려면 앞으로도 한 5년 이상은 더 기다려야 하겠지만), 나 역시 명예로운 신약 개발자로서 언젠가는 이 연구실 저 벽에 걸린 대선배들마냥 사진이 걸렸겠지만…
나는 다음 달이면 이 회사를 나가야 할 몸이다. 심지어 다음 주, 당장 내일부터는 연구실 출입 자체가 금지된다. 그래, 분명 비밀리에 개인 연구를 진행한 것은 사실이다. 회사의 기자재를 멋대로 사용한 것도 잘못이고. 하지만 그 이전 8년간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개인 연구 제안마다 다 캔슬시킨건 회사가 먼저 아니던가. 몰래 연구를 진행해서라도 성과를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비밀리에 개인연구를 했다는 사실을 안 것만으로 회사는 나를 무슨 산업스파이 취급했다. 심지어 비밀 연구를 처음 시작한 지난 4년 간의 연구 지원금 전액 반납과 퇴직금 70%를 삭감한다는 내용의 해고 통보는 나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하도 억울해서 소송을 진행해볼까 싶어 노무사에게까지 알아봤지만 자칫하다가는 횡령 혐의까지 뒤집어 쓸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말에 포기했다.
"후우"
이 약을 먹지도 않았는데 기분이 우울해진다. 지금이라도 이 약을 회사에 제출하고 용서를 구해볼까 했지만, 별로 그러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분명 그랬다간 이 약의 개발자는 내가 아닌 이 연구실의 다른 누가 될테니까. 나는 제약기에서 알약 형태로 굳혀진 이 신약 2,000알을 비닐백에 담았다. 그리고는 또 다시 비닐백 몇 겹에 싸서 노란 서류봉투에 넣고는 언제나처럼 들고다니던 내 가죽 보스턴 백 깊숙히 챙겨넣었다. 나는 연구실을 나섰다.
tears
"주말인데 연구실에 나오셨네요"
연구실을 나서자마자 복도에서 하필이면 보안책임자를 만날건 또 뭐냐. 나는 낭패를 느꼈지만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체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예, 10년 넘게 일한 회사를 떠나려니… 주말에 집에 있다가도 가슴이 답답해서 연구실로 절로 발이 가더라구요"
내가 생각해도 꽤 훌륭한 답을 했다. 하지만 사실 난 그리 거짓말에 능한 타입이 아니다.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군요. 저도 이혼한 이후로는 그냥 주말에 출근을 합니다. 평일에는 그리 안 가던 시간이, 주말에는 왜 그리 잘 가는지. 일부러 출근을 합니다"
자연스러운 대꾸지만, 어딘가 건조한 대답. 그는 곧바로 나의 가방을 보며 물었다.
"짐을 싸서 가시는 건가요?"
나는 가슴이 철렁했지만 필사적으로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냥… 점심 도시락이랑, 개인 서류 몇 개를 챙겼습니다"
제발 무사히 넘어가길 바랬지만, 사실 난 그리 운이 좋은 타입도 아니었다. 그는 '보안책임자 조성구'라는 글자가 선명히 쓰인 자신의 사원증을 꺼내보이며 말했다.
"한번 봐도 될까요"
나는 거절할까 했지만, 그건 오히려 더욱 의심을 살 것 같았다. 게다가 그의 권한이기도 했다. 그냥 얼핏 슥 보여주고 안 걸리길 바랄 수도 있겠지만, 요행수를 따르다가 만약 제대로 된통 걸리기라도 하면 그때는 도저히 답이 없어진다. 나는 그 순간 '어떤 수'를 떠올렸다. 어차피 거절할 수 없는 요구라면 나는 따르는게 최선이다. 대신…
"네 제 가방이야 뭐. 그보다, 마침 이렇게 뵌 김에 잠깐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따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만약 내 가방 속의 그 약들을 이 사람이 문제삼기라도 한다면 난 퇴사가 문제가 아니라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랬다가는 끝장이다. 인증을 받은 바도 없으니 법적으로 불법 향정신성 약물이다. 이게 문제시 됐다가는 나 뿐만 아니라 형에게도 타격이 간다. 가뜩이나 이혼의 고통 속에서 겨우 되살아 난 형에게 '동생이 불법 약물 제조를 하다가 감방에 갔다' 라는 스캔들까지 안길 수는 없다. 그는 내 말에 그 단단한 턱을 우물거리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네, 따라오시죠"
조성구씨를 따라 12층의 보안실로 향하는 길은 발걸음이 무거웠다. 곧고 빠른 발걸음의 그를 뒤따르며 나는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가방의 지퍼를 열고, 몰래 가방 속에 손을 집어넣았다. 침착하게 나는 가방 맨 밑바닥의 봉투를 집었다. 그리고는 조심조심 손가락으로 그 봉투 주둥이에 넣었고, 몇 겹으로 둘둘 싸인 알약 봉투의 비닐 지퍼백을 확인했다. 하지만 눈으로 보고 여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 감만으로 약을 꺼내야했고, 몰래 해야 했기에 힘들었다.
'젠장'
나는 가방에서 손을 빼고 "잠깐 화장실에 가도 될까요" 하고 제안했다. 그는 뒤돌아서더니 고개를 저었다.
"보안실에도 화장실 있습니다. 가서 가시죠"
여기서 "급한데요" 하고 한번 더 뻗대볼까 했지만, 이미 저런 말을 한다는 자체가 나를 대단히 의심하고 있다는 소리. 이 자리에서 가방을 열어보자고 할 수도 있었다. 나는 더 큰 의심을 사는 대신 순순히 그러겠노라고 했다. 아마 보안실에 도착하면 그는 곧바로 가방부터 열어보려고 할 것이다.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어느새 복도 끝 엘리베이터 앞에 다달았다. 보안실의 위치를 감안컨데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나는 다시 가방 속에 몰래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가방 속에 있던 내 자취방 열쇠를 집은 후 봉투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열쇠의 뾰족한 끝으로 비닐 지퍼백을 강제로 찢었다. 미끄럽고, 몇 겹이라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판사판이었다. 몇 개의 알약이 좀 뭉개진다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손톱과 열쇠 끝으로 나는 3겹의 비닐백을 찢는데 성공했고, 십수 알의 알약을 손에 움켜쥔 채 가방에서 손을 뺐다.
"타시죠"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기가 막힌 타이밍에 그가 뒤돌아보았다. 딱 1초만 가방에서 손을 늦게 뺏더라도 그는 내가 가방 속에 손을 넣은 채 미친듯이 무언가에 열중하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난 이미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알약 한 웅큼을 바지 주머니 속에 털어넣은 후였다.
"나가시면 무슨 일을 하실 생각이신가요"
"글쎄요. 솔직히 10년 넘게 제약회사 연구원으로 있었는데, 나가서 다른 일을 할 수 있을까 싶고…"
나의 솔직한 말에 그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직장인이 한번쯤은 고민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니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엘리베이터는 12층에 도착했고, 엘리베이터 옆 사무실로 우리는 들어섰다.
"12층은 전망이 좋네요. 연구실은 1층이라¨"
꽤 넓은 보안실. 보안실이라고 해도, 일반 사무실과 다를 건 없었다. 실제 회사의 경비 업무를 담당하는 경비부서가 아니라, 사내의 보안 정책 등을 정하는 곳이니까. 몇 개의 데스크와, 성구씨가 앉는 조금 더 좋은 데스크, 그리고 손님 접대용의 테이블과 소파가 있을 뿐이었다. 그는 나에게 손을 내밀며 물었다.
"이제 가방을 열어봐도 될까요"
"네, 뭐 봐야 별 것도 없겠지만. 그보다 화장실이 어디죠?"
내가 가방을 건내며 너무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하자 그는 그제서야 스스로 뭔가 실례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표정을 지었지만 곧 손가락으로 보안실 왼쪽 구석을 가리켰다. 나는 그 곳으로 가서 얼른 화장실로 들어가서 소변을 보았다. 아까는 전혀 마렵지 않았지만 너무 긴장했는지 실제로 오줌이 마려웠다. 끊이지 않는 오줌줄기 때문에 한참을 소변을 보고 나왔다. 그리고 손을 씻으며 화장실 거울의 나를 보았다. 의외로 태연한 얼굴이었다.
"…이 약은 뭐죠"
내가 화장실을 나서자마자 그는 꽤 무서운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게 바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입니다"
내 말에 그는 긴 한숨을 내쉬며 테이블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나를 맞은 편 자리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나는 털썩 앉았다. 그리고 말했다.
"신약입니다. 제가 바로 이 연구 때문에 회사에서 쫒겨나게 된 거였죠"
성구씨는 그는 입술로 혀를 축이며 물었다.
"일전의 사내 청문회에서는 분명히 개인연구 중이던 약은 감기치료용 비타민 제제라고 말씀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나는 대답을 하는 대신, 그의 책상 위에 놓인 맥주 캔 몇 개와 스넥을 보며 말했다.
"주말에 혼자 사무실에서, 영화라도 보시는건가요? 맥주를 곁들여서? 혹시 남은게 있다면 마시면서 이야기해도 될까요?"
그는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리다가 마음대로 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혼남의 쓸쓸한 취미에 속으로 혀를 차면서도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알콜이라…
나는 자연스럽게 주머니에서 몇 알의 tears를 꺼냈다. 그리고 캔을 따서 그 중 한 맥주에 쓸어넣었다. 등을 돌린 채였으니 내가 맥주에 약을 넣는 것을 그는 보지 못했다. 약이 잘 녹으라고 살살 흔들었다. 그리고 알약을 넣지 않은 내 캔도 따서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 그에게 다가가 맥주캔을 권하며 말했다.
"그건 10년도 전에 이미 학부 시절에 연구하던 건이고, 이 약을 지키기 위해서 거짓으로 흘린 내용이죠. 솔직하게 다 털어놨다가는 내 연구 결과를 다 뺏겨버릴 수도 있는 거니까"
누군가가 어떤 행동을 자연스럽게 하면, 자신도 그것을 자기도 모르게 따라하는 것은 인간이 유인원 시절부터 갖고 있던 버릇이다. 내가 맥주를 한 모금 맛있게 마시자 그 역시 한 모금 맥주를 마셨다. 나의 tears는 아무 맛도 나지 않는다. 그가 알아챌 리 없다. 굳이 걱정된다면 알약이 둥둥 떠서 혀로 느껴지는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tears는 알코올에 미친듯이 잘 녹는 제제였다.
"그렇다면 이 약은 무슨 약입니까? 그것도 한두알도 아니고 수백정 이상의 약을 추가로 조제하셨는데, 이 약이 왜 집에 가는 가방 속에…후우, 있는건지…"
하지만 성구씨는 문장을 채 끝맺지 못한 채로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마치 아이처럼 우우 하며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tear는 대뇌의 호르몬 분비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약물이다. 그것을 한 알도 아니고 네 알을, 알코올까지 섞어 복용했으니 그 약효는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나조차도 놀랐을 정도로.
"으어…"
그는 괴로운 듯 머리를 감싸쥐더니 곧이어 무언가 짐승같이 울부짖으며 그대로 창틀로 뛰어가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깨달았다. 나는 서둘러 뛰어가 그를 붙잡았다. 이건 아니다.
"성구씨! 진정해요!"
그저 나는 이 사람에게 강한 약효를 직접 체감하게 하고 약을 반 정도 제공하면서 적당히 딜을 하거나, 하다못해 이 약을 먹인 상태로 슬픈 감정에 휩쌓이게 해서 눈물에라도 호소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약효가 지나쳤다. 극도의 우울증 증상이 발현한데다가, 마침 이혼한 슬픔을 잊기 위해 매주 주말에 출근해서 하릴없이 시간을 때우던 이 장소가 그의 자살충동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잠깐만'
그때 나는 무서운 생각을 했다. 이 약은 결코 독극물이 아니다. 체내의 특정 호르몬 분비를 촉진시켜서 감정을 자극하는 약일 뿐이다. 어차피 이 사람이 죽는다해도 그저 이혼에 따른 우울증이 자살로 번진 것 정도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물론 경찰조사를 거치면서 조금은 귀찮아 질지도 모르지만, 이혼에 따른 자가 주말출근, 술, 역시 안 좋은 처지에 놓인 회사 동료와의 우울한 이야기에 충동적인 자살… 그리 무리가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으아아"
나는 그를 붙잡던 팔에서 힘을 뺐다. 그의 비명과 함께 몇 초 후 둔탁한, 그리고 끔찍한 '퍽'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119에 전화를 했다. 그리고 얼른 약들을 다시 가방에 챙겼다. 그가 마시던 캔의 남은 맥주는 사무실 화분에 버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행한 일은, 보안실은 말 그대로 '보안실'답게 cctv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당장 사건 당일은 물론이고 다음 날부터 회사는 발칵 뒤집혔다. 주말에 난데없는 추락 사망사고가 발생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심지어 그 직전, 회사에 물의를 일으키고 사직 절차에 있던 동료까지 얽혀있다는 사실에 온갖 소문이 돌았지만 나는 경찰 조사에서도 꽤 그럴 듯하게 설명을 했고 이미 동료 직원들도 보안책임자 조성구 씨가 이혼 이후 많이 힘들어했다는 증언을 해주어 별 문제없이 사건은 자살로 종결되었다. 회사에서도 어차피 일이 커져봤자 좋을게 없어 금방 사건은 수습되었다.
나에게는 최종적으로 2,216알의 tears가 있었다. 이 약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에 꺼림칙함이 들긴 했지만 어차피 지금껏 내 손에 죽은 죄 없는 짐승만 수천마리가 넘을 것이고, 또 내가 승인해서, 시판 완료된 약물에 의한 부작용으로 죽은 사람도 모르긴 몰라도 꽤 될 것이다. 세상에 부작용 없는 약은 없으니까. 그 역시 그 중 하나로 치부하자고 그렇게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뭐 해먹고 살 생각이냐"
"뭐 여기저기 이력서도 써봐야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어쨌든 연구 비리를 하다가 잘린 케이스나 다름없었고, 워낙에 좁은 업계이기에 동종 업종 취업이 힘들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스캔들을 떠안고서라도 채용할 정도의 유명한 학자도 아니고. 나이 마흔을 앞둔 나이에 해고당하고 백수라니, 그야말로 처량했다. 불과 4년 만에 독자적인 연구로 신약을 개발하는데 성공한 자칭 천재이건만, 세상은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어쨌거나 내 연구의 결과물은 나에게 있었고, 사람까지 죽여가며 지킨 내 학자로서의 결과물이다.
"내일 모레 마흔인 새끼가 장가도 못 간 채로 백수라니. 네 인생이 불쌍하다"
"그래도 이혼남보다야 미혼자가 낫지"
하지만 그러다가 문득 나는 형을 다시 불렀다. 보일러실의 전구를 갈던 형은 다시 나와 물었다.
"왜?"
나는 내 방에서 약을 가져왔다.
"혹시 눈물 연기 못하는 배우있어?"
형은 내 질문보다 약을 보며 물었다.
"니 손에 그거 뭔 약이야?"
나는 설명과 함께, 혹시 몰라서 약을 반 조각 내어 형에게 주었다. 형은 세상에 그게 말이 되냐 하면서도 그리 큰 의심없이 내 약을 받아먹었다. 정말 단순한 인간이다. 그리고 약효가 발휘되는 약 30분 후 아무 말 없이 제 방에 들어가더니 거의 두 시간이 지나서야 눈이 벌개진 채로 방에서 나왔다.
"이 약 엄청난데? 아, 실컷 울었다. 개운하네. 너네 회사 새 제품이냐? 이야 세상 좋아진다 진짜. 이런 약 있으면 진짜 예술가들 작품 활동하기 좋겠네. 뽕 왜 맞아. 감정이 그냥 물씬 우러나는데. 나 몇 알 좀 줘 봐"
나는 한 웅큼 그에게 쥐어주며 말했다.
"아무한테나 막 뿌리지 말고, 돈 좀 있는 배우들한테 뿌려. 그리고 절대로 과다복용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해"
"알았어"
형은 내 말이 끝나자마자 곧 여기저기 전화를 돌렸고, 나는 그 대상들의 목록을 보고 웃었다. 모두 다 약물이나 마약 관련 문제로 신문에 한두번씩 실렸던 배우들이었다. 형은 내 웃음에 자기도 멋적은 듯 피식 웃었다.
"얘들을 통하면 확실히 보증이 되는 거잖아"
형에게 준 100알은 딱 3일 만에 모두 배포가 완료되었다. 효과는 단박에 나타났다. 주말연속극 '누나의 그늘'에 출연하는 여배우 조연희는 평소의 '발연기' 논란을 단번에 잠재우기라도 하듯, 토요일 방영분의 눈물 연기는 캡쳐되어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에 돌아다닐 정도였고, 아침 버라이어티 쇼 '굿모닝 서울'에 간만에 등장한 왕년의 마초 스타 강지운의 눈물도 새삼 이슈가 되었다. 형은 흥분해서 말했다.
"연희 그 년 연기 봤냐? 캬, 시발 나도 울었어 나도"
"근데 조연희가 어떻게 그 약을 받아먹었어? 누가 전해준거야?"
"조연희가 주성현 이거잖냐. 떨도 왕년에 같이 하던 사인데 그냥 주성현이 혼자 다 뒤집어 쓰고 들어간거였지"
"그래? 아니 조연희가 뭐가 아쉬워서 주성현 같은 퇴물이랑 사귀어?"
"이거지 이거. 주성현 이게 이만하다는 썰이 있거든. 완전 인간 사이즈가 아니라더라"
"그럼 강지운은?"
"주성현네 같은 소속사잖아. 아니 이 새끼는 그래도 형이 이 나라 연예 방송 극작계의 거성인데 연예계 돌아가는걸 쥐뿔 몰라"
"그럼 뭐해. 실속은 쥐뿔도 없는게"
어쨌거나 배우들 사이에서 tears의 인기는 엄청난 속도로 입소문을 탔다. 특히 단순히 순간적으로 우울해지는 것 이외에도, 눈물 콧물 잔뜩 흘리며 엉엉 울고 난 이후에 상대적으로 후련해지는 그 기분이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그만이라는 말에 인기는 날개돋힌 듯 팔려나갔다. 피로, 스트레스만 회복할 수 있다면 프로포폴도 몇 백번씩 쳐 맞는 업계다. 시원하게 눈물 빼고 개운하게 해주는 약이라는 말에 1인당 5알 이상은 절대 팔지 않도록 제한을 뒀음에도 채 한달이 안 되어 1,000알이 다 팔려나갔다. 한 알에 15만원을 불렀고, 이 놈 저 놈 수수료를 꽤 크게 떼줬음에도 내 손에는 거의 6천만원이 들어왔다.
얼추 반 정도 남은 시점에서 나는 슬슬 공급량을 줄였다. 그쪽 사람들을 통하면 확실히 빠르게 확산되고 입소문도 타기 쉽지만, 어쨌든 뽕, 떨 전과자 배우들을 통하다보면 어느 순간 기자들에게 꼬리를 밟힐 수도 있고 경찰에게 털리기도 쉬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형이 공급 루트로 지목되는 것도 형에게 위험한 일이었다. 어쨌거나 자살 사건이 터지지는 않았으니 오남용하지 않는 이상은 큰 문제가 없다는게 임상적으로 확인된 셈이었다.
나는 그 즈음해서 형에게서는 꼬리를 잘랐고, 대신 제약회사에 있던 시절, 회사의 고질적인 리베이트 비리 문제를 몇 년 전에 혼자 뒤집어 쓰고 잘린 바 있던 오랜 친구 형욱을 불렀다. 그는 제약회사 영업직 출신의 강점을 살려 수입차 영업직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의사 인맥도 많고 해서 나름 잘나가는 모양이었다. 과연 그런 그가 나에게 도움이 될까 했지만 연구원 생활 12년, 나에게는 친구가 그 뿐이었다.
"흐음, 꽤 재미나는 약이네. 임상은 끝난거고?"
그의 질문에 나는 웃으며 말했다.
"자체 임상 테스트는 끝난 셈이지"
그는 어쨌거나 나의 제안과 설명에 꽤 만족스러워했다. 그러면서 눈빛을 빛내고 말했다.
"나한테 이 약 팔아라"
나는 파는 것이 아니라 유통을 하는 거라고 말했다. 수수료를 50%를 주겠다고. 하지만 형욱은 고개를 저었다.
"중개인 노릇을 하는건 싫어. 내가 너한테 그 약을 사겠다고. 리셀러 노릇 하겠다는거지. 한 알에 100만원 어때"
나는 고민하다가 응락했다. 그는 매우 기뻐했고, 며칠 후 형욱과 나는 tears 200알과 현찰 2억을 교환했다. 그리고 그 날 돌아오면서 문득, 형욱이 왜 혼자 그 리베이트 비리 문제를 뒤집어 쓰고 잘렸는지 기억이 났다. 그는 엄밀히 말해서 리베이트 문제보다, 의사 몇몇과 짜고 마약성 약물들을 불법 유통했던 것이 문제가 되어 잘렸던 것이었다. 자칫하면 제약 유통상의 대형 스캔들이 될 수 있어 회사에서는 서둘러 덮었고 덕분에 그가 감방에 가는 일은 없었지만, 어쨌거나 확실한건 형욱은 약물 유통에 관한한 대단히 위험한 놈이라는 사실이었다. 불안했지만 이미 늦은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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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서기원, 손목을 그엇다는 루머에 강력대응…"
형욱에게 약을 넘긴지 한달 남짓, 정재계 및 연예계에서 자살 및 자살 미수 사건이 속출했다. 유명 연예인이 자살하면 곧이어 몇 명의 유명인사들이 연이어 자살을 선택하는 사건이야 예전에도 몇 차례 있었기에 사람들은 딱히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너 혹시 따로 약 팔고 다니는거 아니지?"
형의 질문에 나는 뜨끔하면서도 아닌 척 되물었다.
"왜?"
형은 꽤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세상 다른 놈은 몰라도 기원이 그 놈은 절대 손목이나 긋고 그럴 놈이 아니야. 단역 시절부터 지켜본 놈이야. 그 놈 심지가 얼마나 굳은 놈인데. 게다가 이제 겨우 빛 보기 시작한 놈이? 만약에 너 여지껏 약 팔고 다니는거면 그만해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약도 없는걸"
아직도 천 알 가까이 남아있었지만 난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바로 형욱에게 전화를 했지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 영업사원이 폰 번호를 연결도 안 시켜놓고 바꾼다라… 나는 그 날부터 불안함을 느꼈다. 언제 불법 약물 제조혐의, 아니 재수없으면 살인 교사 비슷한 혐의로 체포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이었다. 괜한 짓을 했다 싶었지만 그때마다 형욱에게 받은 2억을 보며 위안했다.
"안 팔아"
"한 알에 200만원 줄께, 아니 300만원"
"안 판다고 했잖아"
그로부터 또 정확히 한달만에 나타난 그는 나에게 또 약을 팔기를 원했다. 거절했다. 손목의 고가 브랜드 외제 시계를 보며 나는 그가 무슨 짓을 하고 다녔는지 확신했기 때문이다.
"뭐, 양심의 가책 같은 거라도 느끼는거야?"
아니, 애초에 난 그런건 별로 느끼지 않았다. 보안책임자 조성구씨 건만 해도.
"그게 아니라, 너가 약을 너무 위험하게 쓰잖아. 너 그 약으로 사람 죽이고 다니는거지?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형욱은 까페 야외 테라스에 앉아 담배연기를 길게 뿜으며 말했다.
"너 말이야… 너가 만든 약의 가치를 정말 모르는거야?"
내 약의 가치?
"현대인은 누구나 조금씩 우울증을 앓아. 당장 내 옆의 누군가가 갑자기 죽는다고 해도, 차마 표현을 못했을 따름이지 의례 그러려니 하기 마련이거든. 부모가 죽은 자식 감싸안고 아무리 우리 아이는 그럴 아이가 아니라고 해도, 그건 아무 것도 모르는 부모의 이야기일 따름이려니 하고 치부하잖아? 즉,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이라는건 어찌보면 최고의… 사인(死因)이란 말이지. 범죄적인 차원의 이야기로는"
나는 그 말에 전율을 느꼈다. 형욱은 말을 이어나갔다.
"게다가 자살을 해도 보험금이 나오는 상품들이 있지. 가족을 위해 죽어야겠다 생각하는 사람은 많아도 그걸 행동으로 옮기는건 어려워. 그럴 때 이 약이 있다면? 또, 만약 누군가를 반드시 죽여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내 손을 더럽힐 수는 없다. 그럴 때 이 약을 어떻게든 상대에게 먹일 수만 있다면? 무엇보다…"
나는 심장이 뛰었다. 그저 단순히, 우울한 기분에 빠져 예술가들의 영감을 고조시키거나, 식욕저하를 위한 감정보조제 정도로 생각했던 내 약을, 이 놈은 자살보조제, 아니 자살교사제로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충격적인 말은 그 다음의 말이었다.
"나도 나름대로 뒷조사를 좀 해봤지. 아직도 회사에 연줄이 있으니까. 너네 회사 보안책임자… 그거 너가 한 짓이지?"
나는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주저앉을 뻔 했다.
"내가 입 한번만 뻥긋하면 넌 어떻게 될까. 아, 미안. 협박하는건 아니야. 그렇다고 내가 강제로 네 약을 뺏겠다는 것도 아니잖아. 그래서야 앞으로 네가 비협조적으로 나올게 분명하니까. 그저 나는 너에게서 지속적으로 약을 공급받고 싶을 뿐인거야. 대가는 확실히 치뤄줄께. 한 알에 3백만원…어때"
하지만 이미 나는 그의 말이 귓가에 들리지 않았다. 완전범죄라고 생각했던 일이 생각치도 않았던 곳에서 꼬리를 잡히고 있었다. 나는 정신이 없어 가벼운 충돌사고까지 내면서 겨우 집에 돌아왔다.
형욱을 다시 만난건 그로부터 일주일 후였다. 나는 이번에도 100알, 총 3억원 어치의 약을 제공했다. 물론 녀석도 5만원권 지폐로 가득찬 현금가방을 들고 왔다.
"고마워 친구"
"내 약을 나쁜 곳에 쓰지마"
내 말을 유머라고 생각했던지 녀석은 크게 웃었다. 돌아서는 녀석의 뒷모습을 보며, 차라리 녀석이 죽기를 바랬다. 내 범죄의 비밀을 알고 있는 이가 존재하는 것은 곤란하니까. 하지만 뜻밖에 내 바램은 그리 오래잖아 이루어졌다. 며칠 후 형욱의 아내를 통해 그가 자살했다는 사실을 통보 받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소름이 돋았다.
"어쩌다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끝까지 별 말을 해주지 않았다. 단지, 그녀의 슬퍼하는 모습이 다소 어색했음을 느꼈을 따름이었다. 다른 옛 동료를 통해 그녀가 형욱의 유산으로 거의 30억을 받는다는 말을 들었다. 어쨌거나 내 비밀은 지켜진 셈이니 나로선 아쉬울게 없었다.
콰르르-
나는 남은 천 개 남짓한 tears를 화장실 변기에 넣고 내려버렸다. 물론 약 제조법에 관한 분자식은 내 머릿 속에 남아있었지만, 적어도 내 손으로 그 약을 다시 제조할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위험하니까. 그 약이 아니라, 내 신변이 위험하니까. 어차피 형욱에게 받은 돈과 형을 통해 판 약값, 그리고 얼마간의 퇴직금으로 내 통장에는 6억이 넘는 돈이 들어있었으니까, 딱히 당장은 급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다.
"야, 너 형 이번에 새 작품 들어가는데 투자 안 할래?"
"차라리 불쌍한 사람 돕는데 기부를 하고 말지"
"그러면 나 약 몇 알만 주면 안되냐? 나 완전 슬럼프다"
"됐거든? 이젠 만들고 싶어도 못 만들어. 제조하는데 필요한 약재를 일반인은 절대 못 구해"
거짓말이었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이제 더이상 tears가 세상에 나오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이제는 잊고 싶은 기억이고. 그때였다.
"[속보] 윤정원 국무총리 자살기도…현재 병원 후송 중, 위독"
나는 그 뉴스를 보며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형욱에게 마지막으로 제공한 100알의 tear를 떠올렸다. 형은 굳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단지 "아니, 아니야" 하고 어색하게 고개를 저었을 따름이다.
- 끝 -
"흐음, 꽤 재미나는 약이네. 임상은 끝난거고?"
그의 질문에 나는 웃으며 말했다.
"자체 임상 테스트는 끝난 셈이지"
그는 어쨌거나 나의 제안과 설명에 꽤 만족스러워했다. 그러면서 눈빛을 빛내고 말했다.
"나한테 이 약 팔아라"
나는 파는 것이 아니라 유통을 하는 거라고 말했다. 수수료를 50%를 주겠다고. 하지만 형욱은 고개를 저었다.
"중개인 노릇을 하는건 싫어. 내가 너한테 그 약을 사겠다고. 리셀러 노릇 하겠다는거지. 한 알에 100만원 어때"
나는 고민하다가 응락했다. 그는 매우 기뻐했고, 며칠 후 형욱과 나는 tears 200알과 현찰 2억을 교환했다. 그리고 그 날 돌아오면서 문득, 형욱이 왜 혼자 그 리베이트 비리 문제를 뒤집어 쓰고 잘렸는지 기억이 났다. 그는 엄밀히 말해서 리베이트 문제보다, 의사 몇몇과 짜고 마약성 약물들을 불법 유통했던 것이 문제가 되어 잘렸던 것이었다. 자칫하면 제약 유통상의 대형 스캔들이 될 수 있어 회사에서는 서둘러 덮었고 덕분에 그가 감방에 가는 일은 없었지만, 어쨌거나 확실한건 형욱은 약물 유통에 관한한 대단히 위험한 놈이라는 사실이었다. 불안했지만 이미 늦은 노릇이었다.
"대진 건설 한희원 사장의 갑작스러운 자살에 투자자들과 임직원들은 망연자실한…"
"인기 걸그룹 제이앤비의 정민아 양의 자살에 팬들은…"
"민족평화당 박경운 의원의 자살에 정계는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있으며, 무리한 수사에 의한 것이 아니냐는…"
"잔인한 4월…정재계, 연예계 인사 이어지는 자살. 전문가들 '베르테르 효과' 우려"
"영화배우 서기원, 손목을 그엇다는 루머에 강력대응…"
형욱에게 약을 넘긴지 한달 남짓, 정재계 및 연예계에서 자살 및 자살 미수 사건이 속출했다. 유명 연예인이 자살하면 곧이어 몇 명의 유명인사들이 연이어 자살을 선택하는 사건이야 예전에도 몇 차례 있었기에 사람들은 딱히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너 혹시 따로 약 팔고 다니는거 아니지?"
형의 질문에 나는 뜨끔하면서도 아닌 척 되물었다.
"왜?"
형은 꽤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세상 다른 놈은 몰라도 기원이 그 놈은 절대 손목이나 긋고 그럴 놈이 아니야. 단역 시절부터 지켜본 놈이야. 그 놈 심지가 얼마나 굳은 놈인데. 게다가 이제 겨우 빛 보기 시작한 놈이? 만약에 너 여지껏 약 팔고 다니는거면 그만해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약도 없는걸"
아직도 천 알 가까이 남아있었지만 난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바로 형욱에게 전화를 했지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 영업사원이 폰 번호를 연결도 안 시켜놓고 바꾼다라… 나는 그 날부터 불안함을 느꼈다. 언제 불법 약물 제조혐의, 아니 재수없으면 살인 교사 비슷한 혐의로 체포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이었다. 괜한 짓을 했다 싶었지만 그때마다 형욱에게 받은 2억을 보며 위안했다.
"안 팔아"
"한 알에 200만원 줄께, 아니 300만원"
"안 판다고 했잖아"
그로부터 또 정확히 한달만에 나타난 그는 나에게 또 약을 팔기를 원했다. 거절했다. 손목의 고가 브랜드 외제 시계를 보며 나는 그가 무슨 짓을 하고 다녔는지 확신했기 때문이다.
"뭐, 양심의 가책 같은 거라도 느끼는거야?"
아니, 애초에 난 그런건 별로 느끼지 않았다. 보안책임자 조성구씨 건만 해도.
"그게 아니라, 너가 약을 너무 위험하게 쓰잖아. 너 그 약으로 사람 죽이고 다니는거지?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형욱은 까페 야외 테라스에 앉아 담배연기를 길게 뿜으며 말했다.
"너 말이야… 너가 만든 약의 가치를 정말 모르는거야?"
내 약의 가치?
"현대인은 누구나 조금씩 우울증을 앓아. 당장 내 옆의 누군가가 갑자기 죽는다고 해도, 차마 표현을 못했을 따름이지 의례 그러려니 하기 마련이거든. 부모가 죽은 자식 감싸안고 아무리 우리 아이는 그럴 아이가 아니라고 해도, 그건 아무 것도 모르는 부모의 이야기일 따름이려니 하고 치부하잖아? 즉,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이라는건 어찌보면 최고의… 사인(死因)이란 말이지. 범죄적인 차원의 이야기로는"
나는 그 말에 전율을 느꼈다. 형욱은 말을 이어나갔다.
"게다가 자살을 해도 보험금이 나오는 상품들이 있지. 가족을 위해 죽어야겠다 생각하는 사람은 많아도 그걸 행동으로 옮기는건 어려워. 그럴 때 이 약이 있다면? 또, 만약 누군가를 반드시 죽여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내 손을 더럽힐 수는 없다. 그럴 때 이 약을 어떻게든 상대에게 먹일 수만 있다면? 무엇보다…"
나는 심장이 뛰었다. 그저 단순히, 우울한 기분에 빠져 예술가들의 영감을 고조시키거나, 식욕저하를 위한 감정보조제 정도로 생각했던 내 약을, 이 놈은 자살보조제, 아니 자살교사제로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충격적인 말은 그 다음의 말이었다.
"나도 나름대로 뒷조사를 좀 해봤지. 아직도 회사에 연줄이 있으니까. 너네 회사 보안책임자… 그거 너가 한 짓이지?"
나는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주저앉을 뻔 했다.
"내가 입 한번만 뻥긋하면 넌 어떻게 될까. 아, 미안. 협박하는건 아니야. 그렇다고 내가 강제로 네 약을 뺏겠다는 것도 아니잖아. 그래서야 앞으로 네가 비협조적으로 나올게 분명하니까. 그저 나는 너에게서 지속적으로 약을 공급받고 싶을 뿐인거야. 대가는 확실히 치뤄줄께. 한 알에 3백만원…어때"
하지만 이미 나는 그의 말이 귓가에 들리지 않았다. 완전범죄라고 생각했던 일이 생각치도 않았던 곳에서 꼬리를 잡히고 있었다. 나는 정신이 없어 가벼운 충돌사고까지 내면서 겨우 집에 돌아왔다.
형욱을 다시 만난건 그로부터 일주일 후였다. 나는 이번에도 100알, 총 3억원 어치의 약을 제공했다. 물론 녀석도 5만원권 지폐로 가득찬 현금가방을 들고 왔다.
"고마워 친구"
"내 약을 나쁜 곳에 쓰지마"
내 말을 유머라고 생각했던지 녀석은 크게 웃었다. 돌아서는 녀석의 뒷모습을 보며, 차라리 녀석이 죽기를 바랬다. 내 범죄의 비밀을 알고 있는 이가 존재하는 것은 곤란하니까. 하지만 뜻밖에 내 바램은 그리 오래잖아 이루어졌다. 며칠 후 형욱의 아내를 통해 그가 자살했다는 사실을 통보 받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소름이 돋았다.
"어쩌다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끝까지 별 말을 해주지 않았다. 단지, 그녀의 슬퍼하는 모습이 다소 어색했음을 느꼈을 따름이었다. 다른 옛 동료를 통해 그녀가 형욱의 유산으로 거의 30억을 받는다는 말을 들었다. 어쨌거나 내 비밀은 지켜진 셈이니 나로선 아쉬울게 없었다.
콰르르-
나는 남은 천 개 남짓한 tears를 화장실 변기에 넣고 내려버렸다. 물론 약 제조법에 관한 분자식은 내 머릿 속에 남아있었지만, 적어도 내 손으로 그 약을 다시 제조할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위험하니까. 그 약이 아니라, 내 신변이 위험하니까. 어차피 형욱에게 받은 돈과 형을 통해 판 약값, 그리고 얼마간의 퇴직금으로 내 통장에는 6억이 넘는 돈이 들어있었으니까, 딱히 당장은 급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다.
"야, 너 형 이번에 새 작품 들어가는데 투자 안 할래?"
"차라리 불쌍한 사람 돕는데 기부를 하고 말지"
"그러면 나 약 몇 알만 주면 안되냐? 나 완전 슬럼프다"
"됐거든? 이젠 만들고 싶어도 못 만들어. 제조하는데 필요한 약재를 일반인은 절대 못 구해"
거짓말이었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이제 더이상 tears가 세상에 나오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이제는 잊고 싶은 기억이고. 그때였다.
"[속보] 윤정원 국무총리 자살기도…현재 병원 후송 중, 위독"
나는 그 뉴스를 보며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형욱에게 마지막으로 제공한 100알의 tear를 떠올렸다. 형은 굳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단지 "아니, 아니야" 하고 어색하게 고개를 저었을 따름이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