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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제네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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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3222년, 인류는 더이상 지구 궤도권의 우주 거주지 '스페이스 콜로니' 사업만으로는 300억 인류의 부양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환경오염 문제와 서서히 말라가는 인도양 등 수자원 고갈 문제가 심각했다. 결정적으로 식량자원 생산의 증진이 서서히 한계를 보이고 있었다.

결국 최대 향후 200년을 바라보는 초장기 인류 이주 프로젝트 '가이아 프로젝트'가 북미연합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21년 만에 첫 선발 개척대로 바로 이 '프론티어' 호가 지구에서 27광년 떨어진 '가이아' 행성을 향해 날아가게 된 것이다.

도달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50여 년. 대소멸 엔진을 단 이 초대형, 초고속 우주선으로도 한 인간의 반 평생이 걸리는 이 프로젝트는 이미 그 자체로 숭고한 희생이자 엄청난 모험이었다. 110세를 바라보는 인간 평균 수명(UNCD 자료. 3240년)을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게다가 개척대의 조건도 까다로웠다.

50년 이상의 여행시간을 감안했을 때 실제 도착 행성의 개척은 그 다음 세대와 다다음 세대에 의해 주도 되고 이루어진다. 따라서 개척대 인원(총 200명) 전원은 후손 생성의 책임과 의무를 가졌다. 불임인 사람은 개척대 멤버로 선발될 수 없었다. 게다가 여성 탑승자는 최소 2명 이상의 아이를 낳아야했다. 개척대 인원은 최종적으로 40대 미만의 여성 100명, 남성 100명으로 구성되었다. 모두 신체, 정신, 정서, 사상, 기술 등 다양한 측면에서 고려되고 검토된 인류의 엘리트들이었다. 





                                                                     뉴 제네레이션






                                                                                                                     - by stylebox



전장 9.5km에 달하는 초대형 우주선 '프론티어' 호는 출발 3개월 만에 태양계를 벗어났다.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모든 것이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상태였다. 고작 200명의 인원으로 운영되는 초대형 함선인만큼 아주 많은 부분에서 자동화가 이루어지고 최대한 동선에 대한 고려가 이루어진 상태였지만-사실 함선의 길이가 9.5km라고 하더라도 창고 구획과 엔진 및 기관실, 행성 개척을 위한 테라포밍(행성개척) 장치 등을 제외하면 실제 거주 지역은 2km 미만으로 생활 구역이 그다지 넓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손은 항상 모자랐다.

"메리, 식사준비 다 되었다고 알려줘"
"오케이"

나는 이 함선의 1급 요리사이자 4급 항법사, 3급 의무원, 2급 외계 생리학자, 6급 전투원이었다. 승무원 한 명이 이렇게 다양한 직책을 갖는 것은, 그만큼 모두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예를 들어 1급 요리사인만큼 평시의 내 임무는 어디까지나 200명의 식사를 책임지는 요리사일 따름이지만, 불의의 사고나 최우선 임무 등으로 바빠 이 배에 타고 있는 1,2,3급의 항법사 자격자들이 그 역할을 다할 수 없을 때 그 대체요원으로 항법사 일을 할 수도 있다. 또 1,2급 의무원 자격자들이 임무불가인 상황에서는 내가 그 의무원 노릇을 하게 될 터였고.

물론 어디까지나 그것은 최악의 사태를 상정한 경우의 이야기고, 보통은 내 서브 요리사인 메리와 함께 200인 분의 식사만 준비하면 그만이다. 

"샘, 다 실었어"
"바로 보내"

엄청난 크기의 우주선인만큼 모든 이가 한 자리에 모이는 일은 결코 없고, 모처럼 준비한 요리도 모두가 한 자리에서 먹는 일은 아주 드물었다. 주방에 가득한 배달봇 머리 위에 방수팩을 씌운 접시를 얹어놓으면 저 수십개의 미니 로봇들이 음식을 싣고 둥둥 떠다니며 이 배의 승무원 하나하나에게 음식을 가져다 준다. 나는 그러면 약 1시간 후, 그들이 다시 가져온 그릇을 씻으면 세척기에 넣고 돌리면 그만이었다. 즉, 이제 나는 한 시간의 여유가 생긴 셈이었다.

"안아줘"

메리는 내 '파트너'였다. 남자 100명, 여자 100명의 탑승자는 원칙적으로 각자의 '파트너'와 함께 두 명의 아이를 생산해야 했다. 그것도 최초의 4년 내에. 첫 아이 출산 이후의 휴식 및 유산이나 사산 등의 가능성을 감안했을 때 벌써 1년 반이 넘게 지난 지금, 나와 메리는 조금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입술이 달아"
"그야…시럽을 내가 맛봤으니까"
"그런 이야기가 아니야"

남녀 각각 100쌍의 커플은 불과 얼마 전에서야 최종적으로 짝이 맺어졌다. 이미 교육 과정에서 눈이 맞은 커플들이 있는가 하면 나와 메리처럼 임계 주간(그 이후에는 랜덤으로, 반 강제적으로 짝 지어진 파트너와 '육아 생산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파트너'가 된 케이스도 있었다. 그녀와 나는 함꼐 1년 가까이 요리를 만든 솔로들이다보니 자연스럽게 눈이 맞았다. 늦은 만큼 오히려 더 애틋함이 있었다. 우리는 거의 매일 식사 준비 후의 여유 시간을 섹스로 채웠다.

"그런데 그 이야기 들었어?"
"뭐?"
"부함장이랑 첸인가 그 왜 아시안계 눈 찢어진 그 여자 있잖아. 의무원 일 하는. 그 둘이 눈이 맞았는데, 그것 때문에 이름이 그, 파월이었던가? 그 사람이랑 부함장이랑 어제 주먹다짐까지 했다더라고. 첸이랑 기관장이랑 파트너거든"
"맙소사"

젊고 매력적인, 유전적으로 우월한 200명의 남녀가 이 우주선이라는 밀폐된 환경 내에서 통제된 생활을 하다보니 당연히 이성 문제는 얼마든지 발생할 우려가 있었다. 아니, 발생하지 않는게 더 이상할 일이었다. 그러나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함께 해야 할 인연이라는 점에서 자칫 그것은 큰 위험의 소지가 있었다.

그래서 원칙적으로는 파트너와 1:1 관계만이 허용되고 파트너 관계는 함내 곳곳에 부착된 알림판과 유니폼 네임판에 24시간 명시되었다. 반대로 6년의 시간이 지난 이후에는 파트너 관계의 자동해지(불륜의 가능성을 아예 '강제 이혼'이라는 시스템으로 원천차단하겠다는 역발상의 논리였다)라는 제도가 있었다. 둘이 원할 경우에는 계약연장도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 그리고 그것을 어길 경우, 함내 편의시설의 제한 등 몇 가지 불이익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러한 '제도'가 제대로 운영되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바깥 세상과 전혀 다른 결혼 제도를 우주선 내의 좁은 사회 안에서만 시행한다는게 어디 말이나 되는가. 이미 부함장과 기관장, 첸의 불륜 건부터 해서 몇 차례의 '사고사례'가 보고 된 바 있었고 말이다.

"그보다 우리는 우리 일에 집중하자"
"으응, 샘, 오늘따라 엄청 뜨거워"



한달간 미친듯이 사랑을 나눈 덕택인지 메리는 곧 임신을 했고 그녀의 배는 점점 불러왔다. 우리가 늦은 만큼, 이미 아이를 낳은 케이스도 꽤 있었다. 아이들은 보육 업무를 맡은 함내 요원들이 관리했다. '부모'로서의 역할이나 영역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부모이기 이전에 각자의 임무가 있는 이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이 부분도 지구와는 많이 다른 환경이었다. 그다지 아이에 대한 애착이 없는 나로서는 꽤 편한 부분이었지만.

"아이랑 막상 떨어져서 하루에 한 두 시간 남짓 겨우 본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
"음"

그러나 메리는 나와 달랐다. 출산을 가까이 할 수록 더욱 그랬다. 나중에는 결국 우울증 진단까지 받았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열 달 동안 배 아파서 낳은 자신의 아이를, 낳자마자 '공동관리'라는 명목 하에 다른 이들의 손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하니 매우 우울한 모양이었다. 나 역시 조금 다른 의미에서 우려스럽기는 했다.

이 우주선이 50여 년 후 무사히 도착지에 도착했을 때, 그 행성을 개척하고 새로운 사회의 초석을 쌓아올릴 이들은 바로 그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자손일텐데, 부모의 정을 깊게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로만 구성된 집단이 과연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원론적 의문이었다. 또, 지구에서와 확연히 다른 시스템으로 자란 아이들이 꾸린 사회가 과연 '지구에서의 공동체'와 같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시간은 꽤 빠르게 흘렀다. 8년이 지난 시점, 메리와 나는 이미 헤어진 상태였다. 두번째 아이까지 뺏긴(?) 이후 그녀의 만성 우울증은 그 깊이를 알 수 없게 깊어졌고, 우리는 매일 트러블에 시달렸다. 결국 자동 이혼의 기회가 왔을 때 나는 그녀를 잡지 않았다. 아니 잡을 수 없었다. 그녀가 자살을 해버렸으니까.

"아니, 필요없습니다. 괜찮아요"

의무원 케네디는 나에게도 정신과 치료를 권했지만 난 사양했다. 그저 하루에 한번, 어느새 꽤 큰 우리의 첫 아이 '카시우스'와 놀아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오늘은 무슨 공부를 했니"
"생존술이랑 사격. 화약무기도 써봤어. 레이저건보다 훨씬 손 맛이 좋아"
"잘 쏴?"
"아니. 열 발 쏴서 과녁에 들어간건 두 발 밖에 안 돼. 그래도 재밌어"
"총질에 재능없는건 나랑 똑같구나"

네 엄마는 총을 잘 쐈는데,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참았다.

"엄마…아니. 메리는 그런데 왜 요즘 나 보러 안 와?"
"몸이 안 좋아. 다음에 같이 병원에 가자"
"응"

카시우스에게는 사실 메리의 죽음을 알리지 않았다. 8세 이하의 소년에게 부모의 죽음은 정서에 매우 좋지 않다는 보육 담당자 제시의 조언 때문이었다. 지구에서 연구된 게 분명한 아동발달학 연구결과를 과연 '하루에 1시간 부모 면회 시간을 제외하면 보육 담당자들이 실제 부모 노릇을 대신하는' 이 프론티어 함내의 아동들에게 적용 가능한가가 꽤 의문이었지만 어쨌든 나는 그녀의 의견을 존중했다. 다만 카시우스의 궁금증과 불안이 더 커지는 것 같으니 어떤 식으로던 알려야 하지 않겠냐는 내 개인 의견만 전달했을 따름이었다.

"…왜 그때 말하지 않았어?"
"네가 상처 받을 것 같았어"

그 이듬 해가 되어서야 나는 메리의 죽음을 카시우스에게 알렸다. 내 예상 및 기대와는 달리 카시우스는 매우 슬퍼했다. 나는 보육담당관 제시에게 그를 부탁하고 통제관에게 사정해서 하루 면회 시간을 두 시간으로 늘렸다. 덕분인지 카시우스는 생각보다 빨리 그 슬픔과 배신감에서 회복했다. 함 내의 보육 담당관과 멘탈 케어를 책임진 의무관들의 실력에 대해 처음으로 신뢰하게 되었다.

"오빠보다 잘 쏜다고?"
"어"

카시우스의 동생 카시오페아는 메리를 많이 닮았다. 안타깝게도 생긴 건 나를 더 많이 닮았지만, 성격이나 하는 짓은 제 어미를 쏙 빼어박았다. 사실은 그래서 조금 싫었다. 메리 생각이 많이 났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카시우스와 카시오페아를 찾지 않았다. 양육권의 포기 역시 함내 승무원들의 '권리'였다.




그로부터 또 20여 년이 지났다. 지구를 떠난지 어느덧 30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아직도 목적지까지는 20년 이상 남았고 우리의 여정은 이제 겨우 반환점을 지난 상태였지만 생각보다 많은 문제들이 발생했다.

출발 당시의 전체 승무원 200명 중 무려 17명이 이미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질병과 사고, 출산 과정에서의 의료 사고로 죽은 이를 모두 합해 13명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대단한 수치였다. 그리고 첫 출발 직후의 '다음 세대' 아이들 200명 중 4명이 역시 질병과 사고로 사망했다.

결국 현재 함내의 승무원은 총 366명. 남성 193명, 여성 183명의 성비 불균형이 있긴 했지만 자살 및 사고로 인한 40대, 50대 이상의 1세대에서의 성비 불균형이 대다수였으므로 큰 문제는 아니었다. 

"일은 잘하냐?"
"놀라울 정도로"

'다음 세대'에 대한 우리들의 평가는 한결같이 높았다. 적어도 업무적인 측면에서는. 제한된 사회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이 거대 우주선의 목적과 그 운영, 미래의 행성 개척에 필요한 모든 것에 대해 철저한 교육이 이루어진 바 그들의 업무 숙련도는 우리가 처음 이 함선을 운영했을 때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엘리트'라는 단어는 마치 그들을 위해 태어난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일만 잘해"

하지만 정말 그 뿐이었다. '다음 세대' 녀석들 중에는 꽤 재미없는 녀석들이 많았다. 무미건조하고 삭막한 느낌. 사실 이미 그 문제는 한 두시간의 만남 속에서도 그것을 꿰뚫어 본 부모들에 의해 일찌기 예견되었고 강력한 문제 제기가 있었던 부분이었다. 부모에게서 거의 단절되어 보육 담당자들이 운영하는 그들만의 그룹 사회 속에서, 아주 어릴 때부터 너무나 분명한 목적의식을 부여받아 자란 아이들은 마치…

"로봇 같다…이거지?"

아주 다행한 일은 전부가 그렇지는 않았다. 약 200명 정도의 그 '다음 세대' 중에서도 얼마 정도는 우리네와 같이 삐딱한 구석도, 적당히 재미진 구석도 있었다. 하지만 그 수는 정말 얼마되지 않았고, 집단화, 획일화 된 몰개성의 집단 속에서 얼마든지 도태되고 사라질 수 있는 정도의 숫자였다. 

우주선 운영 뿐만이 아니라, 먼 미래… 행성 개척과 추가 이민단들이 거주할 수 있는 인프라 건설, 그리고 그들과의 교류에 대해, 이 '다음 세대'가 그것을 적절히 이룰 수 있을까에 대해 나는 조금 의문을 품었다. 아니 그것은 나 뿐만 아니라 1세대 승무원들의 적지 않은 수가 품은 생각이었다. 
  
"우리 부모님도 생전에 나보고 정말 재미없는 녀석이라는 말을 많이 하셨지"
"기우라는 이야기?"
"적어도 내 생각으로는. 다음 세대가 못 미덥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그럴수록 더 슬슬 그 다음 세대에게 가진 많은 것들을 넘겨줘야 한다는 이야기야"

'잭의 말을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생각해보니 지금의 내 나이 때, 과거 아버지는 나를 훨씬 더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더이상 그 점에 대해 의문을 품지는 않기로 했다. 좁은 폐쇄사회에 대한 우려는 "사실 중세 시대 작은 마을들의 집단과 사회 구성은 지금의 우리보다 훨씬 더 폐쇄적이었습니다" 라는 이 프로젝트 추진 초창기에 있었던 청문회 기록의 답변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찜찜함이 아주 싹 해소된 것은 아니었지만.




"야단났군"

인간도 마찬가지지만, 기계도 노후되면 고장이 나고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었다. 30년이 넘게 운영된 이 함선은 그 본래의 목적에 맞게 아주 충실히 오늘도 엄청난 속도로 목적지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지만 그 외에 잔고장은 부쩍 늘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야 애초에 말할 것도 없었지만, 이제는 아주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 중 내가 가장 뼈져리게 느낀 점은 식량생산 쪽의 문제였다. 캡슐식과 합성 무기질 약제의 재고 및 생산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자연 단백질 식사를 위한 곤충식에 큰 문제가 생겼다. 십여 년 전에 있었던 저장탱크 폭발 사고와 올해 초에 있었던 화재로 인해 곤충식 공급을 위한 식량용 곤충 종자들이 대부분 유실된 상태에서, 우리는 불가피하게 테라포밍용 곤충 종자 탱크에 손을 댔다. 덕분에 우리는 천연 단백질 식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죄 불임이 되었단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주 단백질 공급원이 되어주던 '큰 바퀴'와 '흑메뚜기'의 번식률이 비슷한 시기에 큰 폭으로 떨어졌다. 그들의 번식력이 저하되면 결국 그들을 갈아만드는 천연 단백질 생산에 차질이 생기고 주 2회 제공되는 '천연 단백질 요리' 역시 공급이 곧 중단될 것이 분명했다.

"이제부터는 알약과 풀만 먹고 살아야할지도…"

'천연 식량'의 번식률 저하 문제에 대해 방사능 노출, 질병, 근친 교배로 인한 열성 유전자 확산 등의 다양한 이유가 검토되었지만 그 중 가장 유력한 이유는 놀랍게도 이들의 '자연 멸종'으로 가닥이 잡혔다. 근 6개월 동안 아주 좁은 공간에서 그저 '인간에게 잡아먹히기 위해서' 키워지는 이 생물체들은 아주 놀랍게도, 마치 더이상 자신들의 후손에게는 그런 고통을 겪게 하지 않기라도 하겠다는 듯 자연스럽게 번식을 기피하고 그 다음 세대, 다다음 세대에 이르러서는 더더욱 번식률이 낮아졌다. 

사실 나는 지난 30년간 매일 식재료를 준비하면서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

곤충식을 위해 선택되고 합 내의 종자창고에 실린 총 122종의 자연 곤충들은 모두 높은 번식률을 가졌으며 독 등 인간에게 해로운 성분이 없는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년, 몇 십 년간 곤충식을 위해 번식기로 옮겨져 양식되다보면 어느새 그 사이에 '진화'를 이루어 갑자기 없던 독 성분이 생기거나 기형 생물체로의 종 변이, 이유없는 멸종 등의 현상을 나타내 결국 식량생산용 종자에서 탈락하곤 했다. 그때마다 다양한 원인 분석이 이루어졌지만 명쾌한 해석은 한번도 이뤄진 적이 없었다. 대소멸 워프 항행 방식 때문에 50년간 총 166회로 제한된 지구와의 행성통신 중 무려 15회나 이 문제 때문에 교신을 했음에도 번번히 이유를 찾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내 예상처럼 '자연 도태'가 요 얼마 전의 교신에서 드디어 지구가 보내온 '가장 높은 가능성의 답'이었다.

게다가 곤충식량용이 아닌 테라포밍용 곤충인 큰 바퀴와 흑 메뚜기는 더더욱 그 불임으로의 기형적 종 변이에 걸린 시간이 짧았다. 생물학자들은 그렇게 짧은 시간 내에 종 자체의 특성에 변화가 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했지만 결과가 그랬으니 더이상의 반박은 무의미했다. 

"인간들도 아마 자기 후손들이 결코 도망칠 수 없는 어떤 비좁은 학살의 굴레에서 대를 이어 몇 조, 몇 경 단위의 희생을 끝없이 겪는다면 스스로 멸종을 찾아 종의 보전을 포기하려 할지도 모를 일이지요"

결국 우리는 천연 단백질 공급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의외로 좋아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합성 단백질로 요리를 하는 이상, 적어도 으깨진 곤충 다리가 이빨에 끼는 일은 없었으니까. 



"우리가 폭발궤도에 있지 않아서 다행이야"

목적지인 가이아 행성 도착을 14년 앞둔 시기, 우리는 지구와의 통신이 차단되었다. 가이아 행성으로의 루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서 강력한 자성을 가진 마그네타 항성 stb-5974-s가 대폭발을 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6개월 정도의 텀을 두고 반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위치 예측 통신법이 불가능해져서 지구와의 통신이 두절되었다. 아공간 확장 통신법을 통하여 우리 쪽의 정보를 지구를 향해 송신을 할 수 있기는 했지만, 더이상 우리는 지구에서 오는 통신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우리는 적어도 그때까지는 그것이 큰 문제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평균 1년에 2번 남짓 우울한 이야기 주고 받는 거 뿐인걸. 그냥 오랜 펜팔 친구 하나 잃은 걸로 해두자고"

장년을 넘어 노년을 향해 가던 나이의 1세대들이 던진 조크에 다음 세대들은 웃었다. 그때 생각했다. 그들은 유머 감각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저 여유에 굶주린 것이 아닐까 하고. 



가이아 행성 도착 11년을 앞둔 시기, 우리는 어느새 1천명에 육박하는 집단으로 거듭나 있었다. 총 인원 964명. 남자 494명, 여자 470명. 당초의 계획에 따른다면 이 시기의 인구는 약 600여명이었어야 하지만 '다음 세대'와 '일부의 1세대'는 보다 많은 아이들을 갖고 싶어했다. 

출산 이후 양육에 대한 부담이 전혀 없는 시스템, 인구 하나하나가 결국 귀중한 인력 자원으로 이어지는 이 함선 내의 시스템, 또한 착륙 이후 초기 행성 개척 단계에서의 턱없이 부족한 일손을 감안하면 그들의 의견은 충분히 합리적이었다. 

함 내의 전원 합의체 기구를 통해 인구 통제에 대한 의무와 제한이 철폐되었고 '파트너' 제도가 사라진 이후 함 내의 출산율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어찌보면 새로운 행성에서의 미래에 대한 불안이, 생명체 본연의 종족 보전 욕구를 더 강화시킨 것인지도 몰랐다. 

당초의 계획보다 수용해야 되는 인구가 많이 늘었지만 그다지 부족함은 없었다. 50년에 이르는 기나긴 항해.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인류는 매우 다양한 변수를 계산했고 인구 구성의 변화에 대해서도 충분한 여유를 두었기에 그 정도의 변화는 전체 계획에 비하면 그리 큰 변수가 아니었다. 해당 사안은 만장일치에 가까운 결과로 승인이 되었다.



"테라포밍이 거의 필요없겠는걸"

가이아 행성 도착을 1년 앞둔 시점, 근접 관측 위성이 가져온 결과는 놀라운 수준이었다. 최고 온도 200도, 최저 온도 -150도에 이르를 것으로 예측되던 '가이아' 행성의 온도가 최고 온도 65도, 최저 온도 -10도라는 매우 안정적인 수치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구보다도 더 인류가 살기에 적합할 정도였다. 북 아메리카 대륙의 103배 면적에 이르는 거대한 대지, 행성의 65%에 가득한 수분, 산소 포화도 50%의 대기… 예상 테라포밍 작업 시간이 150여 년에서 30여 년으로 줄어들었다.

당초 인류가 찾았던 시기의 가이아 행성이 '충분히 인류의 미래를 걸어볼만한 행성' 정도였다면, 관측 위성이 가져온 결과는 사실상'제 2의 지구' 수준이었다.  

"틀리지 않았어"

'1세대'인 우리는 위성이 가져온 결과에 모두 눈물을 흘렸다. '인류와 지구의 미래를 위해'라는 숭고한 목표 아래 평범한 삶을 포기하고 끝이 없어보이는 머나먼 우주를 향해 떠난 우리들이었다. 아무리 긍정의 확신을 갖는다 하더라도 그 결과물이 지극히도 허무한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우리는 틀리지 않았다. 

메리가 죽은지 수십 년이 지났건만, 나는 문득 그녀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녀가 지금 내 옆에 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녀와 함께 요리를 준비하며 눈빛을 주고받던 순간을, 밤마다 사랑을 속삭이던 순간을, 70대, 80대 되어 노인이 된 우리가 가이아 행성에서 지구를 바라보며 그리워 할 추억을 상상하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녀가 못 견디게 그리웠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존재들을 떠올렸다. 나는 21 거주 구획으로 향했다. 나의 아들 카시우스가 사는 곳이었다. 

"미안하구나"

십수 년만에 나는 다시 아들인 카시우스를 찾았다. 생활 구역이 2km 남짓한 정도로 제한된 이 우주선에서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자식들을 찾지 않았다는 것은 내가 그들을 의도적으로 피했다는 뜻이다. 나도 몰랐건만, 그는 어느새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평균적으로 아이를 셋 정도 갖는 '다음 세대'들에 비하면 적은 수였다. 나는 것이 혹시 부모 없이 자란 나의 잘못이 아닌가 싶어 미안했지만 카시우스는 이미 훌륭한 어른이 되어 있었다. 

"아니요, 아버지. 아버지는 정말 잘해주셨어요. 함께 기뻐할 어머니가 안 계시다는 건 아쉽지만요" 
"어머니도 보고 계실 거다. 네 어머니가 우리를 보살펴 주신 것일거야"

인류가 광속을 뛰어넘어 항성간 우주 여행을 하는 시기에도 우리는 '영혼의 존재'에 대해 믿었다. 물론 '영혼'이라는 존재가 과학적으로 완전히 부정된지 1천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음에도 말이다. 우리는 서서히 가이아 행성 진입을 위한 공간 감속을 시작했다. 꼬박 1년이 걸리는 과정이었다.

"아…"

그리고 마침내 눈 앞에 펼쳐진 가이아 행성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우리는 근 50년 간 그리워했던 지구의 모습과 지극히도 유사한 가이아 행성의 모습 앞에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감동에 젖어있을 시간이 없었다. 

우리의 우주선이자 50년 간의 삶의 터전인 '프론티어' 호는 착륙 준비에 들어갔고, 총 36시간에 걸쳐 행성 주변을 따라 공전하며 행성중력을 이용한 감속, 최종 착륙 궤도에 진입했다. 전장 9.5Km라는 어마어마한 사이즈의 절반이 넘는 테라포밍 장치 역시 가동되어 우주선 주변 공기를 아주 빠른 속도로 인간이 마음껏 숨쉴 수 있도록 정화시켰다. 결국 우주선은 '사하라'라고 이름 지워진 모래 언덕에 착륙했고, 지난 15년간 중단되었던 지구와의 통신을 위해 200m 사이즈의 통신탑 모듈을 가이아 행성에 설치했다.

설치가 완료된 1시간 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구에서 보내온 메세지를 기다린 우리. 하지만 그 결과물은 우리의 기대를 어긋난 것들이었다.

[ 마그네타 항성 stb-5974-s의 감마선 폭발 궤도 예측선상에 지구가 놓여있음. 아마도 이 메세지를 확인할 무렵이면 여러분은 마지막 인류가 되어 있을 것. 행운을 빈다. ]
 
담담한 메세지였지만 그 내용은 엄청난 것이었다. 15년 전, 지구와의 통신 차단을 불러온 마그네타 항성의 폭발은 대규모의 감마선 방출을 동반했고, 하필이면 그 궤도에 지구가 놓여있었던 것이다. 지구에서 불과 27광년 거리에 있던 항성의 대규모 감마선 폭발이었던 만큼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그대로 멸절해버렸을 것이 틀림없었다.

너무나도 엄청난 결과에 모두 아무런 말을 꺼내지 못했고, 사령탑에 모여있던 탑승자 중에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아버린 이들도 많았다. 인류의 미래가 되리라 생각하고 날아온 50년, 그러나 그 결과는 인류의 미래를 건 '탐험선'이 아니라 '탈출선'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령실에서는 충격을 받은 모두를 위해 정신안정제 처방과 하루간의 휴식을 명령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부터 테라포밍이 재개되었다.




테라포밍 14년차, 어느새 나는 96세의 노인이 되어 있었다. 평균 수명 110세를 사는 서기 32세기의 인류 기준으로도 제법 노령. 그에 비해서는 내 건강은 꽤 괜찮은 편이었지만, 아쉽게도 눈은 많이 침침해진 상태였다. 이제 가이아 행성의 17%에는 지구에서의 생명체도 살 수 있게 되었다. 중력도 지구 중력의 1.1배 정도라서 큰 무리는 없었다.

"우리의 후손은 우리보다 살짝 키가 작겠군"
"대신 힘은 더 세겠죠"

함선의 후미에 있는 조망실에서 티를 마시며 아들인 카시우스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카시우스와 하루 30분 정도, 함께 담소를 나누는 이 시간은 나에게 있어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었다. 나는 가이아 행성이 마음에 들었다. 하루가 28시간이라는 점은 더욱 마음에 들었다. 어차피 내 신체 노화속도는 다를 바가 없지만, 그래도 왠지 하루가 더 길다는 생각에 내 남은 여생이 더 길게 느껴지니까.

"언제쯤이면 이 황무지 행성에도 도시가 생겨나고, 또 사람들이 먼 우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나는 저물어가는 노을을 보며 중얼거렸다. 카시우스는 대답했다.

"5년 후면 이 가이아 행성 극지대를 녹이는 대홍수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거기서 또 10년이 지나면 우리가 가져온 종자탱크에서 본격적인 생명체 이식 작업을 시작할거에요. 그 때까지도 우리가 지금의 문명 수준을 유지한다면 약 100년 정도면 소규모 도시가 시작될거고, 만약 우리가 불의의 사고나 문제가 생겨서 원시인이 된다면 약 5천년 정도, 또 만약에 우리가 전부 멸종된다면 아마 약 150만 년 정도면 진화를 통해 우리가 가져온 곤충 종자에서 포유류를 거쳐 인간이 될 수 있을 거에요"

나는 피식 웃었다.

"150만년이라… 너무 긴데?"

그러자 카시우스는 웃었다.

"지구에 처음 온 외계인들도 그렇게 말했겠죠. 우리의 선조들 말이에요"

나도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할 수만 있다면 먼 후손들에게 말해주고 싶구나. 사실 우리도 했던 착각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결코 너네들의 상상처럼 못하는 게 없고 모르는게 없는 존재들이 아니었다고"

그리고 나는 그 말과 함께 남쪽 하늘 저 편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황폐한 행성이 되었을, 약 60년 전의 내 고향을 말이다.



-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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