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하기 전
이문열 평역 삼국지를 보다보면, 유비의 삼고초려에 감복하여 결국 그의 모사가 되어주기로 한 제갈량이 의관을 챙겨입으며 혼자 이런 생각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유비, 그대는 끝끝내 나를 수고로움은 많고 얻는 것은 적은 그대의 꿈 속으로 끌어들이는구려…' 하고 씁쓸한 미소를 짓는 그런 장면.그런데 사실 난 꼭 누구랑 연애 시작할 때면 저 비슷한 생각을 했다....
View Article그녀의 눈물
잠자리에 누운 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멤버들도 침대에 누웠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그 끝을 알 수 없는 적막함만이 숙소의 침실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하아'마케팅팀 지현 언니는 오히려 매출이 일시적으로 뛰었다며 걱정하지 말라는 뉘앙스로 위로해 주셨지만앞으로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 매니저 오빠랑 관리실장 님이...
View Article사랑
긴 여름 밤, 후덥지근한 날씨 속 그녀와 나는 빗물 들이치는 반지하방 창문 열고 그렇게 끈적한 선풍기 바람 하나로 견디며 그렇게 끌어안고 잔다. 몸 부서져라 일하는 고단한 하루 지긋지긋하게 가난에 치여 사는 하루가 저물고 창 밖으로 차 타이어 모래 밟히는 소리와 함께 해가 저물면 언제나처럼 찌개 하나에 밥 한 그릇 뚝딱 비우고, 청소 마친 이 좁은 방...
View ArticlePC방에서
전자담배 입에 물고 PC방에서 오늘도 시간을 죽치고 있노라니, 뭐 한 것도 없는데 벌써 저녁 6시다. 스윽 PC방 요금도 확인해보니 7800원이다. 아까 라면 쳐먹고 음료수까지 쳐먹었으니 이렇게 얼레벌레 돈 만원 쳐날렸네. 쓰읍 금연한답시고 사놓았지만 사놓고 몇 달을 쳐박아 놓았다가 며칠 전 문득 생각나 꺼내문 전자담배. 그러나 암만 생각해도 이걸로 금연에...
View Article컨스피러시
AM 10:32 국정원 국내부 별과 3실 브리핑 룸."진보언론을 중심으로 언론연맹 소속 77개 언론사 전부에서 주베를 향해 직접적인 포문을 개방한 상태이고,민주통일당에서 주베를 비판하는 공식 대변인 성명을 내놓았습니다. 무엇보다 현재 사이트 내 모든 광고가내려간 상태입니다. 이 부분이 큽니다. 돈줄이 끊겨서야 오래 갈 수가 없습니다"설명을 듣고 있던 이현식...
View Article예비 백수
1며칠 전, 갑작스레 급전이 필요해서 고민고민 끝에 카드로 현금 서비스를 받았다. 씁쓸했다. 은행에서현금 서비스를 받고 돌아 나오는데 왠 정장을 입은 노인 한 분이 정장을 빼입고 내 팔을 붙들었다."저기…내가 대전에서 올라왔는데, 지갑을 잃어버려서… 집에 갈 돈이 없네. 지금 내가 돈이 5천원 뿐이없어…미안한데 차비 좀 빌려줄 수 있겠나?" 평소 의심 많은...
View Article하얀 통증
주사 바늘이 살갖을 뚫고 혈관 속으로 파고 든다. 주사기 피스톤이 끝까지 들어가고, 혈관을 따라 핏 속으로 약 기운이 퍼져가는 것이 느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좋은 시간 보내자구"주사 바늘을 빼낸 윤정이 미소 지으며 내 목을 옆으로 돌려놓았다. 가벼운 호흡 두어번을 할 시간이 흐르자 박동이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한다. 눈에 들어온 벽 시계의 시계...
View Article삿샤
"고대 가린샤 왕조 시대에 이루어진 우주 개척 프로젝트로 인해 태양계의 세 번째 행성, 지구에는 현재지성을 가진 생명체들이 대거 존재하는데 그 중 가장 높은 지능을 가진 생물은 인간이다. 지능은 놀랍게도 80에서 100 혹은 그 이상에 육박하는데 이는 지구 행성 생명체를 기반으로 우리 헨렌인의 유전 정보를 합성한 결과물이다. 아쉽게도, 수명은 100세에...
View Article"지갑 잃어버린 놈이 훔쳐간 놈보다 더 나쁜 놈이야"
선생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다. 물론 무슨 뜻인지는 대충 알았다. 자기 물건 간수 똑바로 못한 책임도 분명 작지 않다는 것, 사람이라는게 견물생심이니 결국 애초에 그 사람이 물건을 똑바로 간수했다면누군가가 도둑놈이 될 일도 없었을 것이라는 것.하지만… 그건 지나치게 편한 생각 아닌가. 그런 이유라면 아예 훔쳐간 놈이 애초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지갑도둑 맞은...
View Article"도대체 왜 그래? 완전 웃겨"
오늘도 대충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다 구겨진 싸구려 티셔츠에 카고바지를 입는 그를 보며 물었다. "그냥… 편하잖아"난 그저 피식 웃으며 "잘 다녀와"라는 말로 그를 출근길로 떠나보낸다. 다시 침대에 누워, 닫힌 문 너머출근하고 있을 내 남친의 이해할 수 없는 서민 코스프레에 또 한번 웃는다.'재밌어'그를 만난 것은 평소 즐겨가던 라운지 바 '클럽A'에서였다....
View Article밀수업자
"중력점프, 공간 좌표 a3I2-E933-d211-987:1-e411로 좌표 고정되었습니다. 이동하시…""으윽"성격이 급한 나는 네비게이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승인 버튼을 눌렀고 렌즈자리 X2 거대 행성의 중력을 이용한 중력 점프는 우리를 또 한번 우주공간으로 내동댕이 쳤다.'앞으로 92번…'중력 점프만 273번에 웜홀 이동만 4번을 해야하는 지독히도 먼...
View Article이별, 이주일 뒤
늦잠을 자고 일어났다. 부스스한 머리칼, 뻐근한 뒷목, 두통이 끊이질 않는 머릿 속, 부을대로 부은 눈, 아픈 목…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니 폐인도 이런 상폐인이 없다. 긴 한숨과 함께 세수를 하고 샤워를 한다. 그리고는 다시 침대로 와 털썩 앉는다. 모처럼의 연휴라고 해봤자 할 일이 없다. 이제는 그녀가 없으니까. 평소 같았으면 일어나 침대에서 뒹굴대며...
View Article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레드
여느 날처럼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 개운하게 몸을 씻고 컴퓨터 앞에 앉노라니 메일함에는 오늘도 수십통의 스팸 메일이 쌓여있다."흠"그러나 그 와중에는 눈에 띄는 제목의 메일이 한 통 와 있었다. [ 스박님께 긴히 드릴 문의가 있습니다 ] 무슨 내용인가 궁금해서 열어보니 그 내용은 뜻밖의 것이었다. [ 안녕하십니까, 저는 평소 스박 님의...
View Article스타일박스의 화이트 노이즈 : 3월의 남성잡지
지난 달에 이어 다시 돌아온 남성잡지 탐구 포스팅이다. 이 포스트는 패션 커뮤니티 gluwa의 후원으로 작성된다. (물론 받은 원고료는 잡지 값으로 죄 빠져 나간다) 지난 달과 살짝 잡지 선정을 바꿨다.(무게만 해도 만만치 않다)9권의 남성잡지를 이렇게 쌓아놓고 서점 계산대에 서있노라면 부록에 미친 잡지 덕후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두렵지만-하지만 놀랍게도,...
View Article내 슬픈 첫 캘빈 클라인의 기억
그녀와의 첫 관계는 얼떨결에 이루어졌다. 어? 어? 어?! 하다가 우리는 모텔로 향했고, 처음 가는 모텔이었음에도 그 '키꽂이'의 용도를 눈치로 대강 파악한 나는 카운터에서 받은 키를 그 키꽂이에 꽂았다. "아, 저 키를 꽂아야 되는거야?""어"그 질문으로 말미암아 그녀 역시도 모텔 입성이 처음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옷을 벗을 즈음에서야 난 깨달았다....
View Article잿빛 상아탑
"얼른 일어나, 지각하겠어"엄마의 잔소리에 오늘도 어기적 어기적 일어난다. 새벽 3시 반이 넘도록 게임을 했으니 피곤한 것도 당연하다. 간신히 상체만 일으켜 한숨을 푹 내쉰다. 접힌 뱃살이 부족한 운동량을 설명해준다. 한참을 그렇게멍하니 있다가 "아 얼른 씻고 밥 먹어!" 하고 재차 독촉하는 엄마의 소리에 그제사 "…알았어" 하고 짜증 섞인 대답과 함께...
View Article스타일박스의 화이트 노이즈 : 4월의 남성잡지
아쉽지만 이번 달부터 패션 커뮤니티 글루와 측의 후원이 끊겼다. 결국 이 기획은 두 달만에 쫑이 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기왕 멍석 잘 깔아놓았는데 하던 지랄은 마저 해야지, 하는 생각에 일단 이번 달부터는 내 돈으로 꾸역꾸역 잡지를 사가며 연재를 이어가기로 한다.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View Article첩
바깥 양반이 거 어데 개산인지 괴산인지 큰 장에를 다녀온다하더만은 가기는 이틀 걸려 댕겨올께 해놓고서는 사흘 나흘 열흘이 되도록 안 오기에 무슨 사단이 나도 났지 싶어 발을 동동 굴러가매 저 산 아래까정 발이 닳도록 하루에도 서너번을 왔다리 갔다리 했더니 기어코 열두일 만에 오기는 왔으되 분명히 갈 땐 혼자 였으나 오기는 둘이 아닌가. 누굴 데려왔나 했더만...
View Article"아…왜 그랬어요"
"아부지…2천만원…하아. 퇴직금 받을 때 뭐라고 했어요. '이거 이제 내 생명줄이다, 절대로 허투루 안한다' 다짐했잖아. 근데 퇴직금 반 가까운 돈을 그렇게 막 쓸어넣는게 어딨어. 그거, 사람은 그냥 잠깐 미안하면 그만인거야. 그 사람이 그 돈 먹고 날르면 어쩔라고 그래. 이 놈 저 놈 막 찔러서 몇 억 해쳐먹고 튀면 그거 뭐 잡을 수나 있고, 잡으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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