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양반이 거 어데 개산인지 괴산인지 큰 장에를 다녀온다하더만은 가기는 이틀 걸려 댕겨올께 해놓
고서는 사흘 나흘 열흘이 되도록 안 오기에 무슨 사단이 나도 났지 싶어 발을 동동 굴러가매 저 산 아래
까정 발이 닳도록 하루에도 서너번을 왔다리 갔다리 했더니 기어코 열두일 만에 오기는 왔으되 분명히
갈 땐 혼자 였으나 오기는 둘이 아닌가.
누굴 데려왔나 했더만 얼굴은 어디 비루 먹은 호리병 주머니 깎아만든 여시 뱃주머니 같은 것이 피부색
데데하게 뜨는 것이 희멀건걸 찍어발라친다쳐도 당초 연분이 붙지를 않을 그런 건삭한 낯짝에, 몸매는
허리가 낭창낭창하니 마르기는 말랐으되 엉덩이는 멀 쳐먹었는지 투실투실한 것이 어데서 기생년 하날
끼고 왔나해서 물었다.
"거 옆에는 누구요"
하지만 바깥 양반은 내 말은 들은 척 만척 그 기집을 옆에 끼구설랑 "드가자" 하고는 그 기집을 우선은
사랑채로 이끄는데 누군 몰라도 난 본 그 기집의 콧방구가 아직꺼정 눈 가에 어른거린다.
그리구설랑 대낮부터 둘이 문 걸어잠그구 오입질을 하는데 하도 기가 막혀서 숨이 콱 막히고 눈 앞이
아득한 것이 고만 방구석으로 돌아가 안방에서 가슴만 쳤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 자리에서 도리깨로
두 년놈을 패죽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인 즉 그렇게 유야무야 첩 년을 들이고야 말았다.
"성이 밥을 하셔요. 지는 청소를 할께요"
그래도 저 년이 아주 싹수가 노란 년은 아닌지 담날부터 밥값은 하겠다며 집안일은 곧잘 돕는데 내심
옅은 생각으로는 일손이 하나 늘어 좋구나야 하고 생각을 한다만 다시 밤이면 그 년만 끼고 사는 바깥
사람 생각하니 열분이 뻗쳐 눈까울에꺼정 핏발 꽃이 필 지경이다.
정없이 디먼디먼 산 것이 근 십수년이다만 그래도 예전에는 이카진 않았는데. 아 못낳는다고 핍박 한
번 없어 내 그것이 고마워 생전에 돈 한 푼을 안 벌어와도 그 무뚝뚝한 양반을 그렇게 떠받들고 살았
거늘 오늘날 그 본전이 홀랑 다 날아갔구나.
온 동리에 소문 나기가 오월 산가지에 지름 발라 불 붙인 듯이 화르륵 번지는데 그 들리는 소문도
"꼭 최씨만 나쁘다곤 할 수 없지, 안 그랴? 아 문제도 있구"
"그도 글치만 생전에 말 한번 없는 그 냥반이 어데서 그런 여시를 동반했는지 참"
식이니 꼭 바깥 양반 잘못만은 없다는 것이라 내 속이 터진다. 밤마다 벽 너머 들려오는 그 생사람
조지는 오입 소리에 고만 콱 귓구녕에 대침 꽂고 죽어뻐리고 싶지마는 지금 나 죽는다고 슬퍼할 사람
누구겠나, 왜려 좋아하지 않겠나 생각해보이 가 일층 마음만 독해진다. 그럴 바에야, 내 기필코 살아
어떻게든 뭐든 해내야하지 않겠나 다짐하며 그 긴긴 밤을 어렵사리 버팅긴다.
"내 팔자야…"
빨랫거리를 받아들고 빨래를 하러왔더니 참 제일 먼저 손에 잡힌 것이 하필이면 또 고년의 속곳이다.
기도 차고 세상에 첩년 속곳 빨아주는 등신 년은 조선 천지는 물론이요 만 천하에 나 혼자 뿐이렸다,
싶어 서러워 핑 하고 울어버렸건만 그 새벽길에 내 한번 가르쳐준 적도 없거늘 어찌알고는 고년이 뒷
길로 달음박질로 와서들랑 왜요 성님 하고 왜 혼자하셔요 하고 빨랫짐을 나눠드는데 내 사 맘 서러운
이유가 바로 그 년임에도 생전에 누가 내 뭐 한개를 도와준 것이 없단 것이 생각나 눈물이 다 핑 돈다.
고마워서리.
허나 빨랫질이 하는 태가 딱 보이 영 서툴다. 생전에 빨래 한번을 해본 경험이 없어 뵌다. 그에 어서
가마돌이 댓걸이 받아주는 퇴물 기생처럼 생긴 것이 혹시 진짜 기생 출신이라 손에 물 한번 묻힐 일
없어 그런거 아닌가 싶어 물어보니 정말 그렇단다. 시상에 기생 년이 첩년이라니, 이제 내사 앞으로
다신 남편 손 잡고 잘 날은 영영 없겠구나 싶어 "어이쿠야" 한숨 한번 내쉬매 캐물어보이 기생질하다
노름 서방이라고 왕씨 성을 가진 투전꾼 하나가 있어 가채 올리고 기생집나왔더이만 결국엔 투전꾼
막바지가 그렇듯 좋게 끝날 일 없어 몹쓸 꼴 겪을 위기에 혼자만 맨 몸뚱아리로 도망질을 했건마는
지집 하나가 혼자 먹고 살 길이 없어 여기저기 험하게 굴러다니다 급기야는 얼마 전에 시장통에서
머리채 잡혀 이제 왈패들한테 욕 보일 일 밖에 없는 와중에 그때 우리 바깥 양반이 그 꼴을 보고 딱
구해주는 바람에 함께 하게 됐단다.
'무신 오지랍을…'
사람 참 웃긴 것이, 이리됐든 저리됐든 결과는 매한가지이거늘 그래도 우리 서방이 어디 가서 허튼
짓해서 살림까지 차려온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은 마음이 누그러진다. 그러다 문득 우리
바깥 양반이 결코 왈패들 이겨낼 장사는 아닌데 어떻게 뭘 구해줬단 말인가 하는 생각에 그제서야
잊었던 것이 생각났다. 남편이 왜 시장에 갔었는지를.
소 사러간 거 아니었나. 순간 또 한번 긴 한숨이 절로 시신 숨구녕에서 혼백 빠지듯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는데 제발 그것만은 아니기를 바랬건만 역시나 제 앞으로 빌린 돈, 우리 남편이 그 자리
에서 갚아주었단다. 그 돈이 무슨 돈이겠나. 소 사러 간 돈이지.
하기사 남편 입장에서 그 돈이 아까운 돈은 아니리라. 짜리몽땅해가 일은 억척스러워도 살가운거
하나 없이 지집인지 사내인지 구분도 안 가게 부르튼 손발이며 가심도 요맨해서리 등인지 앞인지
앞판 뒷판 구분도 안 가는게, 아들은 고사하고 딸내미도 못 낳는 빙신을 마누라라고 데리고 살고
있는데 얼굴이야 조금 누렇게 떳지마는 허리는 부러질 듯 가늘고 댄댄하니 여지껏 올라붙어있는
궁뎅이는 대짜리 장독만한데다 말본새며 손동작 하며 누가 기생 년 아니랠까봐 곱디 고운 것을,
아 자식만 낳아준다면야 어디 저런 지집에 소 한마리가 아까우랴.
허나 거까지 생각을 하니 나 자신이 너무나도 초라해지는 것 같아 개울에 슬쩍 비친 못난이 얼굴에
서러움이 갑작시레 북받친다. 가슴이 답답하고 손발이 바르르 떨리는데 눈에선 참 못나게도 눈물만
철철 흐른다. 그 우는 얼굴도 실로 못났다.
천애고아로 그저 남편 하나 믿고 여태껏 억척스레 산 인생이 헛되고, 그 고달픔도 그저 남편 하나
믿고 참고 살았거늘 이젠 남은 정 하나도 그래 떨어져나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서러움을 견딜 수가
없다.
"물"
암만 그래도 첩은 첩이다. 겸상을 할 수는 없어 황씨는 소반에 따로 밥과 국을 내어 옆에서 조용시레
먹고 나와 서방은 같이 한 상에서 먹지마는 영 불편하기로는 모두가 함께다. 원래 말 수가 없는 이가
더 말이 없고, 그가 조용한데 나라고 소리 낼 이유가 없다. 그저 물 더 달라면 내주고 밥 더 달라면
밥 없다고 말하는게 전부다.
대충 다 비웠다 싶어 이제 고만하고 밥상 내가려는데 왠일로 그 양반이 나에게 말했다.
"닌 좀 있다, 나랑 같이 잠깐 나가자"
전에 없던 일이라 좋기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밥 따로 먹는 둘째 부인 안쓰러워 나를 소박 맞추는
것은 아닌가 싶고 설마 그럴까 싶지마는 어디 이 집에 다른 여자가 들어오는 것은 또 언제 생각이나
해봤던가.
"아침에 표정 보이 참도 기가 차더이만, 니 허튼 걱정일랑 싹 다 버리라"
워낙에 몸이 찬지라 서늘한 바람이 팔뚝 새로 스며드는 것도 부담스러운 것을, 봄날 따스한 햇살을
매꽃향기 은은한 집 뒤 언덕배기서 남편하고 둘이가 이래 쪼이고 있노라니 밭일 걱정도 잠시 잊고
아득하니 살쿤한 기분에 노상 무거운 어깨죽지가 다 가볍다.
"니 맘 힘들고 몸 고된거 다 안다"
아는 사람이 그래요, 하고 묻고 싶은 것을 겨우 꼭 참고 쭈빗쭈빗 치마단 붙잡고 서있노라니 어느새
다가와선 어깨를 안아준다. 그러고보니 십수년 전 기억이 새록하니 솟는 것이 그때도 여기서 둘이서
앞으로 잘 살아보자 했더랬지.
"딴 뜻 없다. 사람 하나 살렸고, 애도 둘만 낳으면, 그거면 된다. 그러면 소 한마리 안 아깝지"
등 뒤에서 살포시 안는 남편의 말에, 그 말은 귓구녕에 들어오지도 않지마는 안겨있는 이 품이 정녕
무섭게도 그립다. 따스하니 내 머리 위에 턱 괴고 하는 서방의 그 달쿤한 뒷말에 난 그렇게 다시 한번
사월 봄볕만치롱 시원한 아늑함에 빠져든다.
"십년 정 어디 안 간다, 절대 안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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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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