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
나는 어딘지도 모르는, 차도 거의 다니지 않는 도로변을 걷고 있었다. 그것도 새벽 1시에. 거의 두 시간넘게 정신없이 걷고 있었던 것 같다. 평소 같았으면 이 인적 드문 도로를 혼자 걷는다는 것은 상상조차못할 일이었겠지만, 지금의 나는 차라리 무슨 일이라도 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불과 3시간 전에 헤어진 남자친구의 완력에 의해 원래 하늘하늘했던 치마...
View Article질투
난 알고 있었다. 지윤이가 의진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사실 남녀가 서로 좋아하면 아무리 숨기려 들려해도 어지간해선 옆에서 눈빛만 보아도 알게되기 마련이다. 둘은 잘 어울렸다. 둘다 선남선녀에 패셔니스타였으며 유머코드도 비슷했고, 아니 그냥 둘이 함께 있으면 옆에서 보기에도 참 훈훈했다. 같은 팀 다른 여자애들도 "언니 혹시 의진 오빠가 언니 좋아하는거...
View Article질투 - 完 -
[ 질투 ] 에 이어서- 사내커플은 그게 문제다. 싸우더라도 바로 그 다음 날이면 같이 또 얼굴을 보게 된다. 물론 그런 만큼 다시 화를 풀 기회도 많다는 점은 다행이지만 그 과정이 솔직히 쉽지만은 않다. "글로벌 큐브 쪽에 계약서 진행 어떻게 됐냐고 알아보고, 유피아 쪽에서 제안 들어온거 검토해보고 부장님 한테 기안서 올려…" "알았어" 아침부터...
View Article각 남성잡지 의인화
1. 에스콰이어 나이 서른 여섯. 금융업계 종사. 슬슬 자기 스스로도 칼 같은 라인의 섹시함보다는 어른스럽고 무게감 있는스타일의 패션을 추구하기 시작. 전성기 때는 어마어마한 여성 편력을 자랑했지만 지금은 적당히 정리하고자기와 동급, 혹은 그보다 상위 계층의 S급 여성을 함락시키는데에 더 관심이 있는 상태. 솔직히 20대 여자애들을 함락시키는 것은 너무나...
View Article잊혀진 한국의 맛을 찾아서 - 남산 코렁탕
"할머니, 저 왔습니다. 어휴 춥다" 춥다 못해 살이 에이는 칼바람을 뚫고 텅빈 가게 안으로 한 남자가 들어선다. 삐쩍 마르고 자기 얼굴 1/3을 가리는 큰 뿔테 안경을 쓴, 별로 몸이 건강해보이지 않는 전형적인 룸펜 스타일의 남자. 뜨끈~하고 고소한 코렁탕의 향이 온 가게 안을 채우는 가운데, 금방 안경에는 희뿌연 김이 서린다."허이구미, 또 왔냐 이...
View Article"예뻐보일 생각 하지마, 알았어?"
"예뻐보일 생각 하지마, 알았어? 내숭 떨고 그래봤자 안 예뻐보여, 이거 할 때는 제일 열심히 하는게이뻐보이는거야, 알았지?"안무가 김 선생님의 말에 그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김 선생님 특유의 파워 넘치는 "자, 그럼 다시!" 하는 큐 싸인과 함께 연습이 재개되었다. 연습 3시간째. 슬슬 몸이 기억을 시작해 간다. 빠르고 강한 비트의 음악에 맞춘...
View Article대리 분투기
대리 분투기 직장인의 꽃이라 불리는 '임원직', 그리고 최소한의 신뢰와 영업상의 이유로 인한 일부 영업직의 '가라 대리'를제외하면, 직장 생활을 통틀어 가장 빛나는 승진의 때는 바로 '대리 승진' 때가 아닐까. 드디어 말단 사원에서 벗어나는...
View Article은우
"어이구, 감독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인사드려""안녕하세요"성북동 인근의 한 고급 음식점 별실로 신생 연애기획사 샘빛 엔터테인먼트의 정은동 이사와 신인 여배우한은우가 들어섰다."어어, 얼른 들어와"그들을 맞이한 건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2012 카랑탕 황금물개상 수상 감독 이동수였다. 그는 전성기시절 '흥행을 거머쥔 예술감독'이란 평가를 받을 정도로...
View Article자괴감
------------------------------------------------------------------------------------------------------- 내 나이 서른 셋, 내 통장에 들어있는 현찰 토탈 이십팔만원, 리볼빙으로 버텨가는 카드빚은 392만원, 4월 만기 대출금 1,100만원, 연봉 2500 계약직, 회사...
View Article"뭔데, 이 시간에"
새벽 1시 반, 뜬금없는 문자에 대담하게 전화를 걸어오는 윤영. 하지만 그 목소리는 차분을 넘어 차가운 수준이다. 짜증났을 때 살짝 섞이는 경상도 사투리 억양까지 비친다. "자나해서" 우물쭈물대다 한 대답에 그녀는 흠- 하는 한숨을 내쉬고 대답한다. "안 자" 이윽고 내가 근황을 물으려던 찰나, 윤영이 바로 내 가슴에 비수를 꽂아버린다. "오빠, 그리고 나...
View Article마인드 킬러
"이겁니까""네"스타일 제약의 신약 개발 책임 연구원 김박스는 약을 집어 기자에게 보여주었다. 원형의 작은 핑크빛 알약을 받아든 기자는 물었다."효과는 어느 정도입니까?""한 알당 3일 정도, 감정이 무뎌집니다. 8mg짜리 스트롱 버전은 한 알 당 5일 내지 일주일 정도가 무뎌지구요"기자는 그것을 받아적더니 물었다."개발 배경에 대해서 알 수...
View Article참치 마요네즈
생각해보니 진태와 동거를 시작한지 어느새 8개월째다. 여전히 그는 동거를 시작하기 전과 마찬가지로 백수 상태고, 나 역시 취업을 하지 못한 채로 편의점 알바를 전전하고 있다. "다녀올께""알지? 삼김, 참치 마요네즈는 빼고 다른 걸로 가져와""…응"만화책을 보면서 누워 말을 건내는 진태. 머리 속이 복잡해진다. 집을 나와 편의점까지 천천히 걸어간다. 느린...
View Article고백
해가 뉘엇뉘엇 저물어가던 어느 여름날의 오후, 나와 그녀는 세 시간이 넘게 앉아있던 까페에서 나와함께 걸었다. 후덥지근함을 조금 달래주는 산들바람. 노란 햇살에 세상이 아늑해지는 시간. "들어갈까?""그래"발길이 닿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돌계단을 올라 살짝 숨이 찰 무렵 도서관 건물 앞 벤치에 앉아 내려다보는 운동장에는 학생들이 땀을 흘리며 뛰고 있었다....
View Article내 슬픈 첫 캘빈 클라인의 기억
그녀와의 첫 관계는 얼떨결에 이루어졌다. 어? 어? 어?! 하다가 우리는 모텔로 향했고, 처음 가는 모텔이었음에도 그 '키꽂이'의 용도를 눈치로 대강 파악한 나는 카운터에서 받은 키를 그 키꽂이에 꽂았다. "아, 저 키를 꽂아야 되는거야?""어"그 질문으로 말미암아 그녀 역시도 모텔 입성이 처음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옷을 벗을 즈음에서야 난 깨달았다....
View Article사투
"온다!"직장이 울먹이며 소리쳤다. 상대의 28번째 공세…. "도대체 변기 도킹은 언제쯤이지? 언제쯤이냐고! 위에서는 계속 버티라는 말 뿐! 도대체 여기 상황을 몰라서 저러는거야? 이러다 정말 끝장난다고!"직장은 울고 있었다. 그는 이미 파멸을 예감하고 있었다. 떨리는 허벅지와 이미 굽힐대로 굽혀진 발가락들 역시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지난 2008년의...
View Article중독
이 날씨에 긴 셔츠를 입고 한강대교를 걷는다. 그래도 벌써 밤 9시, 후덥지근해 등에 땀이 흐르긴 해도 도저히 못 버틸 정도는 아니다. 절반쯤 걸어오니 절로 코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온다.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난헤어진지 2주일, 아직 가슴의 통증은 전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서서히 내리기 시작하는 빗줄기에 번지는 자동차...
View Article고독
후덥지근한 밤, 텅 빈 사무실에 나홀로 앉아 선풍기를 벗 삼아 야근을 한다. 후덥지근해 죽을 지경이지만 중앙냉방식이라 7시만 넘어가면 에어컨이 꺼지는 통에 어쩔 수 없다. "후우…"나도 모르게 길게 한숨이 쉬어진다. 이미 짙은 어둠이 깔린 창 밖 너머로 도시의 빌딩 불빛들이 서로잘난듯이 빛나고 있다. 깊은 고독이 가슴 한 켠을 파고 든다. 외롭다. 쌓인...
View Article김박스 대통령
"나 일어났어요"6시 반, 알람에 맞춰 눈을 뜬다. 저혈압인 아내는 여전히 눈도 뜨지 못한 채 누워있다. 그녀에게는 좀 더 자두라고 말하고 나는 인터폰을 통해 부속실에 내 기상을 알렸다. 청와대의 바쁜 하루가 시작된다. 일어나 씻고 트레이닝 복으로 갈아입었다. 원래는 외국계 브랜드였는데 국산 브랜드로 교체했다. 그 일이 기사화 되었고, 그 얼마 후 해당...
View Article가출
나는 어딘지도 모르는, 차도 거의 다니지 않는 도로변을 걷고 있었다. 그것도 새벽 1시에. 거의 두 시간넘게 정신없이 걷고 있었던 것 같다. 평소 같았으면 이 인적 드문 도로를 혼자 걷는다는 것은 상상조차못할 일이었겠지만, 지금의 나는 차라리 무슨 일이라도 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불과 3시간 전에 헤어진 남자친구의 완력에 의해 원래 하늘하늘했던 치마...
View Article똥글 거탑 : 앞으로의 똥글에 대하여
우선 갑작스럽게 이 편지를 받게 될 자네에게 사과의 말부터 해둠세. 나는 집안사정에 따른 홧병 증세와 건강 이상에 의한 급격한 체중 증가, 2천만원을 돌파한 채무, 마지막으로…회사 퇴직을 앞두고 온 가벼운 우울증 증세를 갖고 있다네. 보통의 나였다면 적당히 현실도피를 하거나, 여행을 통한 힐링, 또는 똥글 양산을 통해 나 스스로어떻게든 이 상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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