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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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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 잃어버린 놈이 훔쳐간 놈보다 더 나쁜 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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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다. 물론 무슨 뜻인지는 대충 알았다. 자기 물건 간수 똑바로 못한 책임도
분명 작지 않다는 것, 사람이라는게 견물생심이니 결국 애초에 그 사람이 물건을 똑바로 간수했다면
누군가가 도둑놈이 될 일도 없었을 것이라는 것.

하지만…

그건 지나치게 편한 생각 아닌가. 그런 이유라면 아예 훔쳐간 놈이 애초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지갑
도둑 맞은 사람이 도둑 맞을 일도 없었을 것 아닌가. 게다가 지갑만 보면 모두가 도둑질 하나? 훔쳐간
놈이 어쨌든 잘못 아닌가.

자기 물건에 대해 관리를 소홀히 한 잘못도 잘못이라면 잘못이겠지만, 지갑을 잠시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잠깐 화장실 다녀온 것이 잘못이라는건 해도 너무한 거 아닌가.

"표정이 왜 그래?"

선생님의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아무래도 불만스러운 내 표정이 얼굴에 드러났나보다. 교무실의 다른
선생님들도 흘낏 이쪽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치 내가 뭘 잘못해서 혼이라도 나고
있는 상황으로 알았을게다.

"아닙니다"

내 말에 다시 누그러진 선생님은 "지갑 잘 찾아보고, 그래도 안 나오면 이따 종례 시간에 다시 한번 또
이야기하자" 라며 이야기를 일단락 시켰다.

솔직히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학원비 40만원이 든 지갑이 사라졌으니 어떻게 좀 걱정이라도
함께 해주기를 바랬다. 사람 마음이라는게 그런거 아닌가. 하지만 그는 절도 범죄의 해결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 심지어는 나를 다그치기까지 했다.

"들어가 봐"
"네"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교무실을 돌아나왔다. 그의 가르침을 충실히 이행하며 말이다. 나의 왼손에는
그의 책상 구석에 놓여있던 전자담배가 들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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