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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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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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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알고 있었다. 지윤이가 의진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사실 남녀가 서로 좋아하면 아무리 숨기려 들려해도 어지간해선 옆에서 눈빛만 보아도 알게되기 마련이다.
둘은 잘 어울렸다. 둘다 선남선녀에 패셔니스타였으며 유머코드도 비슷했고, 아니 그냥 둘이 함께 있으면
옆에서 보기에도 참 훈훈했다.

같은 팀 다른 여자애들도 "언니 혹시 의진 오빠가 언니 좋아하는거 아니에요?" 하고 물었고, 2팀의 남자애
들이 담배를 피우다가 "야, 진짜 둘이 아무 사이도 아냐?" 하고 쑥덕대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들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둘이 사귀면 참 잘 어울리는 한쌍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만큼 괴로웠다.
왜냐하면 지윤이는 내 여자친구니까.



"먼저 가, 다음 버스 타고 갈께"
"알았어"

그녀는 철저했다. 정말로 철저했다. 사내커플이라는 사실을 정말 지독하게도 숨겼다. 서로가 자취하는
원룸이 코 앞이었지만 같은 버스를 타고 퇴근한 적도 없었다. 둘이 같이 퇴근하는 날은 같은 팀 직원들
전체가 함께 퇴근하는 날 뿐이었다. 그중에서도 퇴근 방향이 비슷한 진아와 인애가 주로 함께 갔다.  

"그나저나 형욱 오빠는 연애 안 해요?"

친구처럼 친한 우리 팀. 진아의 질문에 난 대강 "여자만 있으면 얼른 하지?" 하고 얼버무렸다. 진아는
지윤에게도 물었다.

"언니는 연애 왜 안 해요? 아 우리 팀은 다 연애 안 해. 이러다 우리 다 솔로로 늙겠다. 근데 지윤 언닌
한 명 있잖아요"

그녀의 말에 옆에 있던 인애도 거들었다.

"맞어. 언니 솔직히 의진 오빠 어때요? 솔직히 딱 봐도 의진 오빠가 언니 좀 좋아하는거 같은데. 언니도
싫진 않은 거 같고. 어때? 형욱 오빠, 둘이 되게 잘 어울리지 않아요?"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랑 잘 어울리지 않느냔 질문에 "어, 뭐 좀 잘 어울리는 거 같기도" 라고 대답해야
하는 비밀 사내연애의 슬픔이여.


솔직히 뭐 내가 봐도 나름 잘 어울리는 한쌍이었으니까. 그리고 가끔 2팀이랑 같이 사내 까페테리아
에서 놀기라도 할 때 보면 둘은 정말 잘 어울렸다. 심지어 다른 팀 사람들까지도 은근하게 "쟤네 둘
사귀어?" 하고 물어볼 정도였으니까.

티를 낼 수는 없었지만 부아가 났다. 어떤 면에서는 그만큼 좌절감도 느꼈다. 아무리 우리가 연기를
잘해서 사람들을 속여넘겼다 한들, 어쩌면 진짜 커플인 우리 사이는 단 한번을 의심하는 사람조차
없었을까. 그래 나도 안다. 가끔 곁에 서면 우리 둘은 정말 안 어울렸다.

가끔은 속으로 그런 생각도 했다. 어쩌면 천상커플인 두 사람 사이에 내가 끼어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도.

게다가 둘이 점점 더 친해지는게 정말정말 싫었다. 두 사람 간에 주고 받는 카톡도, 물론 자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 그리 뜸하지 않은 빈도로 카톡 메세지를 주고 받고 했는데, 그게 참 은근하게
부아가 났다.

무엇보다…지윤이야 그렇다 쳐도, 남자가 봤을 때 의진이 그 놈이 지윤이를 좋아하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다만 그와 내가 다른 것은 처지와, 용기의 문제였다.


"이여, 형욱~ 잘 됐네"
"잘되긴. 이제 고생문 열린거지 뭐"
"그래도. 축하한다"
"그래, 너도 곧 되겠지"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일이지만 입사 3개월 만에 인턴십 및 계약직 제의를 받았고, 입사 7개월 되던 차,
나는 정직원으로 변경되었다. 높은 업무능력과 스무스하게 팀에 파고든 조직에 대한 인화능력이 인정
받았다고 했다. 팀장님이 특히 나를 높게 평가해주었다고 했다. 연봉도 수직상승했다. 그랬다. 분명
그때의 나는 빛나고 있었다. 

그리 잘난 외모는 아니었지만 나름 성실히 일했고, 사수의 말은 잘 따랐으며 좋아하는 일이었기에 정말
열심히 했다. 그래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같은 팀의 지윤에게 인정받고 싶기도 했다. 그녀가 바로 내
사수였기에 더 열심히 했다. 그래서 좋은 결과를 얻은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점에 용기를 내어 지윤에게 고백을 했다. 입사한 처음부터 좋아하고 있었다고. 그동안 마음
숨겨왔지만, 더이상 못 참고 고백하고 싶다고. 내 어설픈 고백이었지만, 지윤은 그것을 받아주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지윤이도 내 일하는 모습이 좋았다고 했다. 성실하고, 잘 웃고, 열심히 하는
모습이, 든든해보였다고. 그래서 솔직히 이래저래 꼭 마음 설레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또 반대로
싫지도 않아서 고백을 받아들였다고 했다. 기분 나쁘다면 나쁠 말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사내 연애니까, 절대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을 것이고 만약 중간에라도 알려지만 바로 관둘 것이라고
그녀는 조건을 걸었고, 나는 알겠노라고 했었다.

당시에 나는 문득,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의진이를 따돌렸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그래, 지윤이랑
사귀기 전엔 나도 한때 둘이 사귀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친한 모습에 많이 혼자 속앓이를 하기도
했다. 그랬던 와중에 나는 정직원이 됐고, 그는 여전히 계약직이었다. 게다가 그는 유독 우리 팀장에게
찍히기도 했다. 너무 설렁설렁한다는 것이다.

별로 그렇지도 않았는데. 아무래도 심한 꼰대였던 팀장의 입장에서는 나름 회사에 멋도 잘 부리고 
이런저런 잡기도 많은 그가 보기 싫었던 모양이다. 다들 뒤에서 그랬다. 팀장이 있는 한 의진이가 정
직원 전환되는 일은 아마 없어보인다고. 그 정도로 그는 찍혀있었다. 별 대단한 이유도 없이.

게다가 의진이는 어머니가 아프셨다. 아버지는 계부였고, 성이 다른 여동생도 하나 있었다. 집안환경
이 조금 복잡해서 그런지 언젠가 한 이야기에서 그는 당분간은 연애를 하고 싶어도 못할 거 같다고 그
속내를 드러낸 적이 있었다.

"우리 팀에 지윤 대리랑 너 친하잖아?"
"에이, 그리고 내가 연애할 처지냐. 됐어"

당시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안쓰러움 대신 안도감을 느꼈다. 어쩌면 지윤에 대한 내 고백에 가장 큰
추진체가 바로 그 속내를 들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 잠깐만. 어휴 형욱씨 이럴 때는 좀 비켜줘요~아 눈치없게스리! 쓰읍!"
"에? 아… 네"

본부 회식이었다. 회식의 간사를 맡은 조 과장님은 부서별 배치에 따라 지윤의 옆 자리에 앉은 나를 
저 먼 좌석으로 쫒아내며 그 자리에 의진을 앉혔다. 다른 직원들은 "오오오올! 둘이 사귀어? 사겨라!
사겨라! 사겨라!" 하고 웃으면서 응원하기도 했다. 진아와 인애를 비롯해 우리 팀의 다른 직원들도 
모두 박장대소 하며 "진짜 대박! 아 언니! 확 오늘부터 1일 해버려~" 하고 소리쳤다. 

모두가 웃는 그 분위기 속에서 나 혼자만 웃을 수 없었다. 씁쓸했다. 비밀로 하는 사내연애가 죽도록
짜증났다. 뭔가 굴욕적이었다. 게다가 지윤이도 당혹스러운 표정은 커녕 활짝 웃고 있었다.

"자자자자자, 잔들 들어~ 위하여!"
"위하여!"

그래, 지윤의 입장도 있겠지. 정색할 수도 없는 상황. 하지만 그냥 서운하고, 아니 서운하다기보다는
그냥 혼자 우울했다. 의진에 비해 못난 내가 죄인이지 뭐. 난 졸지에 저 멀리 전산팀들이 앉는 아저씨
술판 분위기의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술 맛이 썼다. 재미도 없었고. 



우리 팀은 1차만 마시고 다들 일어섰다. 나도 가방을 메고 일어섰다. 

"형욱이, 벌써 가게?"

서버관리자 진 과장님은 간만에 자기랑 술 대작이 가능한 고래 동생이 나타났는데 벌써 일어나냐며 
아쉬워했지만 나는 "하하, 다음에 제대로 마셔드리겠습니다" 하고 웃으며 일어섰다. 그리고 나 따윈
기다리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히히호호 하며 뭉쳐 일어난 저기 1팀 멤버들과 의진을 따라나섰다. 

그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고 있노라니 뭔가 비참했다. 

나는 안중에도 없나. 다른 년놈들이야 그렇다고 쳐도, 지윤이 너는 나를 챙겨야 되는거 아니야? 그리
고 니가 왜 의진이 쟈켓까지 들어주는데. 저 새끼는 뭐 얼마나 쳐먹었다고 벌써 비틀대. 

얼씨구. 어디에 손을 올려. 어어? 어깨동무? 지랄났네. 신났냐. 

술에 취한 의진은 지윤과 인애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어깨동무를 했다. 평소답지 않은 오바한 모습. 
술이 취하긴 취한 모양이다. 그 진상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고 있노라니 조금 마음이 풀렸다. 병신새끼.

깔쌈하게 생겨서 술매너도 좋나 했더니 꽤 병신스럽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이었던지
다들 뭐하나 문제제기 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기사 내가 하면 성추행이요 쟤가 하면 릴레이션십이겠지.

큰 길이 나오자, 1팀 애들은 바로 의진이를 택시에 태워보냈다. 그리고 그제서야 뒤에서 따라가던 내가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야이, 너네 나 버려두고 그냥 가냐!"
"어머, 형욱 오빠. 그러네 오빠 버려두고 왔네"
"오빠 사실 우리, 오빠 챙길라고 그랬어요. 근데 지윤 언니가 완전 시크하게 버려, 라고 해서"

1팀 모두는 그 말에 까르르 웃었다. 지윤도 웃었다. 난 분위기에 맞춰 "야이!" 하고 웃으면서 화내는 척
했지만 솔직히 마음 속으로 조금 상처를 받았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암만 장난이래도 말이다. 




[ 얼마만큼 갔어? ] 

지윤에게 카톡이 왔다. 나는 혼자 택시를 타고가는 중이었다. 둘 다 자취방이 바로 근처였지만 아무도
그것을 모른다. 택시도 당연히 따로 탔다. 지윤의 카톡… 그냥 기분이 좆같았다. 

무슨 우리가 연예인인가. 공개 사내커플? 그래 좆같지. 알아. 여기저기서 수근대고, 지랄맞은 놈들도
생길테고. 괜히 일에 관련지어 꼬투리 잡는 병신 꼰대들도 있을테고. 

그렇지만 오늘같은 꼴도 좆같았다. 내가 뭐지. 어? 내가 어디 병신인가? 남한테 보여주면 뭐 쪽팔리는 
그런 찐따쯤 되나? 나같은 놈이랑 사귀는게 부끄러운가?

비밀연애, 사내연애… 평소부터 은근히 좆같았지만 오늘은 특별히 더했다. 아니 그걸 떠나서라도…
암만 농담이고, 남들 눈을 속이기 위해 일부러 더하는게 있다 치더라도, 그냥 오늘은 왠지 괜히 기분이
안 좋았다. 농담이라고 치더라도…

'에효'

꼭 이렇게까지 해가면서 사귀어야 되나. 병신같다. 결국 택시로 도착할 때까지 카톡 답장을 하지않았다.
약 5분 후 지윤이 탄 택시가 섰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내려서 나에게 웃으며 물었다.

"빨리 왔네! 나 오래 기다렸어?"

하지만 그 웃는 얼굴에 나는 짜증을 내었다.

"야"
"어?"

내 심상찮은 표정과 목소리에 지윤은 순간 쫄았다. 난 씁쓸하게 혀를 차다가 말했다.

"좀 너무하지 않아?"
"뭐가"

하지만 무언가 딱 잘라말하려니 되게 구차스럽고, 대단한 껀수가 없었다. 말하면 나만 쪼잔한 놈, 의처증
환자 꼴이 되어버리는 거 같았다. 난 결국 대충 얼버무렸다.

"됐어…"

지윤은 잠시 내 눈치를 살피다가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했다.

"너 내가 버려, 라고 했다고 삐친거야?"
"아냐"
"맞는데 뭘. 맞지?"

이때까지만 해도 애교를 부리는 그녀의 모습에 그냥 확 풀어줄까 했지만 미래를 위해서, 미쳐버리기 전에
하나 묻기로 했다. 차라리 묻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그 질문을. 병신같이.

"너 의진이 좋아하냐?"

그래, 뱉기 전부터 이미 뱉으면 좆된다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말이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확인하고 싶었다.
의진이를 바라보며 니 눈 가에 어리는 그 오묘한 눈빛… 그것이 사랑의 눈빛인지 어떤지를. 나에게는
결코 보여준 적이 없는 그 눈빛의 진실을 알고 싶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지윤이는 그저 코웃음과 "참 나" 하는 허탈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러더니 "그랬구만.
그래서 아까부터 골이 난 표정이었어. 너 진짜 유치하다" 하고 기가 차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라고 하겠지. 어쩌면 정말 너 혼자 모를지도 모르겠지만, 제 3자들 모두는 알고 있다. 의진을 향한
너의 마음을. 그리고 의진도 분명 간접적으로나마 너에게 마음을 보인 적이 있다.

그래서 불안했다. 지윤이는 한참을 서있더니 나에게 말했다.

"너 되게 구차하다. 안 그런 척 하더니"

그러더니 지가 더 화난 표정으로 성큼성큼 자기 자취방으로 향해버렸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병신 같았다. 내가. 그리고 이 모두가.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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