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겁니까"
"네"
스타일 제약의 신약 개발 책임 연구원 김박스는 약을 집어 기자에게 보여주었다. 원형의 작은 핑크빛 알약을
받아든 기자는 물었다.
"효과는 어느 정도입니까?"
"한 알당 3일 정도, 감정이 무뎌집니다. 8mg짜리 스트롱 버전은 한 알 당 5일 내지 일주일 정도가 무뎌지구요"
기자는 그것을 받아적더니 물었다.
"개발 배경에 대해서 알 수 있을까요?"
김박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우연의 산물입니다. 개발명 '뉴 페인리스'라고, 새로운 진통제 신약의 개발 도중이었습니다. 대부분
장기 통증질환 환자들은, 지속적인 육체의 통증에 의해 정신적으로 2차 질환을 앓기 쉽습니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같은 거 말이지요. 그에 대해 정신적으로도 효과를 갖는 복합 진통제를 만들었는데…
그런데 이 약이, 동물 실험단계에서 묘한 반응을 보이는 겁니다. '잼잼이'라고, 무척 순하고 사람을 잘 따르
던 실험용 토끼가 있었는데 약을 먹자마자 전혀 사람을 따르지 않는 겁니다. 그냥 쌩~ 한 다른 놈들처럼.
잼잼 뿐만 아니라 다른 몇몇 실험용 동물에게서도 유사한 반응이 나왔습니다. 주사바늘만 보면 도망치기
바빴던 '쥐돌이'는 주사바늘 앞에서 아주 태연하게 행동하지 않나…. 처음에는 일시적으로 지능이나 감각
장애를 일으키는 부작용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1차적으로는 이번 제제를 실패로 잠정결론 내고 있었는데, 정말 우연하게도 김은비 연구원이 잠깐
실험실에 애완견을 데리고 왔다가 하필이면 그 약을 애완견이 먹어버린 것입니다. 김 연구원은 크게 놀랐
지만 애초에 추적실험에서 그 이외의 부작용은 없고, 별 독성이 없는 제제였던데다 약효의 짧은 유효기간
도 알았기에 그렇게 집으로 데려갔다고 하더군요.
근데 놀라운 일이 거기서 생긴 겁니다. 가족 중 그 누구를 봐도 헐떡헐떡 대고, 꼬리를 미친듯이 흔들며
좋아 어쩔 줄 모르던 놈이 그냥 시큰둥하게 반응을 하더랍니다. 그렇다고 몰라보는건 아닌데도 무슨 감정
없는 놈처럼 행동을 하더라나?
그래서 그 실패로 결론내렸던 47번째 버전을 그녀가 따로 혼자 실험을 해봤고, 원숭이 등 고등동물에게서
더 드라마틱한 결과값이 얻어졌습니다. 이 진통제의 사이드 이펙트는 '일시적인 감정 거세' 였습니다"
김박스 박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기자는 "재미나는 이야기군요" 라고 한 마디 한 뒤, "그러면 페인리스
를 마인드 킬러라고 이름 붙인 건 마케팅의 승리군요" 하고 웃었다. 김박스 박사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 그건 아닙니다"
기자는 다시 "아, 직접 약의 이름을 붙이신건가요?" 하고 묻자, 김박스 박사는 어깨를 으쓱했다.
"약물 임상실험 단계에서 제일 처음 약을 먹은게…7년 사귄 남친이랑 헤어진 김은비 연구원이었거든요"
감정억제제 '마인드 킬러'가 성공적으로 임상을 마치고 시장에 출시되자, 그 약의 파급력은 상상 이상
이었다.
약의 힘을 빌어 반 강제적으로 감정을 억제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 약효가 도는 시간 동안 자기
자신을 온전히 이성의 영역 하에 놓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은 활용의 여지가 엄청난 것이었다.
시험을 앞둔 학생이나 직장인, 중요한 시합 날의 운동선수, 뜨거운 가슴보다 냉정한 머리가 필요한
전문직 종자사들, 바둑 기사들, 과잉 행동장애를 가진 아이들, 작전 실행을 앞둔 군인들…
각계각층의 수요는 그야말로 '폭발'했고, 해외 수출계약 역시 빗발쳤다. 마인드 킬러를 개발한 제약사
'스타일 제약'의 주가는 몇 달이 넘도록 상한가를 계속했고 세계 제약업계에서는 '비아그라 이래 최고
의 걸작'이라는 찬사와 질투의 메세지를 보내왔다.
무엇보다 저 약을 애타게 찾은 것은 이별의 고통에 시달리던 수천만 실연 솔로들이었다. 하루하루 눈에
눈물이 마를 날 없으며 가슴이 찢겨나가는 통증에 몇 번이고 하루에도 생과 사를 오가던 이들은 결국
'마인드 킬러'의 도움으로 그 젖은 눈가를 겨우 말릴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 처음에는 이별한 이가 '마인드 킬러'를 복용하는 것에 대해 감성적인 반대의 목소리도 제법
있었다.
"정말로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져서 느끼는 실연의 아픔을 고작 알약 하나로 잊을 수 있다는거…너무
잔인하고 비인간적인거 아닌가요"
"만약에 제 남친이 저랑 헤어지고도 저 약 먹고 바로 다음 날 멀쩡히 깔깔대며 웃고 다닐 생각하면
죽고 싶을 거 같아요"
"솔직히 좀, 전 부정적이에요.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는 사회…무섭기까지 해요"
이렇게 마인드 킬러의 대유행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있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또 열광적인 호응을
얻기도 했다.
"절 차버리고 가버린 그 사람 때문에 제가 왜 힘들어야 되는거죠?"
"실연의 아픔?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그냥 그거 다 인생에서 버리는 시간 아닌가요. 뭐 첫 사랑 때야
그럴 수도 있다지만 그런거 반복하는건…낭비죠"
"전 사실 일 때문에 평소에도 꾸준히 복용하는 편이라…헤어지던 날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렸어요. 뭐
지금 생각해보면 씁쓸하지만, 안 그러고 그 여자 계속 만났더라면 제 인생도 아마 끝장났을거에요"
그러나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자, 서서히 '이별의 고통'에 눈물 짓는 이들이 찾기 어려워졌다. 이
별의 통증이란 누구에게나 가혹한 것이었고, 그 고통을 달래줄 수 있는 약물의 유혹이란 엄청난 것
이었으니까.
대중가요 속에서 점점 이별의 통증을 노래하는 곡들이 사라졌고, 머리가 아프면 두통약을 먹듯이
마음이 아플 때면 누구나 마인드 킬러를 복용했다. '너에게 이별을 선물하기 위해 먹는 그 약' /
'이별이라는 말 대신 이 약을 선물하세요' 라는 마인드 킬러의 노이즈 광고 캠페인도 대성공, 이제
더이상 이별의 장면에서 눈물 흘리는 이들은 찾기 어려워졌다.
'이별에 대한 두려움과 통증이 사라진 사회'는 사실 정치인들과 사회학자들에게는 거의 재앙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혼율의 폭발적 증가와 가족의 해체, 성혼률 저하 등 사회 구조 붕괴에 대한 우려
의 목소리가 높았다.
실제로 마인드 킬러가 출시된 첫 5년 사이 이혼율이 두 배로 상승했다. 한 보수 정치인은 '나라 말아
먹을 약'이라는 독설을 하기도 했다.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못하며 침착한 두뇌로 범행 현장에
서 여유롭게 태연하게 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들의 등장도 문제였다. 때문에 몇몇 시민단체에서는
판매금지가처분 신청을 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일시적인 충격 이후 반전이 찾아왔다. 이별의 통증이 없다는 것은 곧 새로운 인연을 찾기
까지의 시간이 비약적으로 짧아짐을 뜻하는 것이었다. 곧 성혼률이 점진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
다. 또, 아무리 크게 싸우더라도 화를 내기에 앞서 얼른 약국에 달려가 이 약을 함께 먹고 곰곰히
냉정해진 머리로 상황을 되짚어보는 '현명한 커플'들도 많아졌다.
또한 사랑놀음이 아닌, 사회 각계에 마인드 킬러가 끼친 업적은 그야말로 위대한 것이었다.
섬상 경제연구소의 '마인드 킬러를 활용한 제조/산업현장에서의 생산성 증가및 불량률 저하' 20
21년 보고서에 따르면 마인드 킬러 덕분에 상승한 국가 성장률만 0.2%에 달했다. 부차적인 상승
효과는 배제하고서라도 말이다.
세밀하고 기계적 처리, 논리적 사고가 필요한 업종에서의 현격한 상승효과가 입증되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남용이 시작되었다.
생산현장에서는 불량률 저하를 위해 노동자에게 마인드 킬러의 복용을 강요했고, 사무실에서는
지루함이나 따분함에 의한 집중력 저하를 막기 위해 마인드 킬러를 권장했다. 운동선수들의 남용
은 이미 10년 전부터 문제가 된 바 있었고,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공부에 집중하라며 마인
드 킬러를 영양제와 함께 건냈다.
그리고 의학계에서 첫 우려를 드러냈다. 마인드 킬러가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의학적,
화학적 안정성을 가진 약물임은 인정하지만, 한국 사회에서의 남용은 도가 지나친 수준이란 것이었
다. 실제로 마인드 킬러는 그 이외의 모든 약물을 합한 것보다 더 소모가 많았다.
또한 한창 예민한 감수성을 갖고 성장해야 하는 아이들이 일찍부터 감정적 거세에 노출되면서 사회
성 부족 문제에 시달리는 부작용이 보고되었다. 이후 마인드 킬러의 미성년자 복용이 법적으로 금지
되었지만, 이미 수십만의 학생들이 몇 년 동안 복용을 마친 후였다.
예술계에서도 분노를 터뜨렸다. '가슴이 죽은' 학생들로 무슨 예술을 하겠느냐는 것이었다. 물론
'기술적' 측면을 중시하는 국제 학생 콩쿨에서의 한국 학생들 성적은 거의 최상위권을 독식하는
수준이었지만 문제는 그런 인재들치고 성인이 되어서도 뛰어난 감각을 자랑하는 이들이 없었다.
문학계에서도 30대 중반 이상의 '중고 신인'들은 있을 지언정, 젊은 작가들의 등장은 한동안 그
종적을 감추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이 사회는 '아날로그 감성'보다 '디지털 지성'을 원했고, 마인드 킬러는 쭉 그
성공가도를 달렸으며…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그 다음 날도 사람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마인드 킬러를 입 안으로 밀어넣을
뿐이었다.
"네"
스타일 제약의 신약 개발 책임 연구원 김박스는 약을 집어 기자에게 보여주었다. 원형의 작은 핑크빛 알약을
받아든 기자는 물었다.
"효과는 어느 정도입니까?"
"한 알당 3일 정도, 감정이 무뎌집니다. 8mg짜리 스트롱 버전은 한 알 당 5일 내지 일주일 정도가 무뎌지구요"
기자는 그것을 받아적더니 물었다.
"개발 배경에 대해서 알 수 있을까요?"
김박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우연의 산물입니다. 개발명 '뉴 페인리스'라고, 새로운 진통제 신약의 개발 도중이었습니다. 대부분
장기 통증질환 환자들은, 지속적인 육체의 통증에 의해 정신적으로 2차 질환을 앓기 쉽습니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같은 거 말이지요. 그에 대해 정신적으로도 효과를 갖는 복합 진통제를 만들었는데…
그런데 이 약이, 동물 실험단계에서 묘한 반응을 보이는 겁니다. '잼잼이'라고, 무척 순하고 사람을 잘 따르
던 실험용 토끼가 있었는데 약을 먹자마자 전혀 사람을 따르지 않는 겁니다. 그냥 쌩~ 한 다른 놈들처럼.
잼잼 뿐만 아니라 다른 몇몇 실험용 동물에게서도 유사한 반응이 나왔습니다. 주사바늘만 보면 도망치기
바빴던 '쥐돌이'는 주사바늘 앞에서 아주 태연하게 행동하지 않나…. 처음에는 일시적으로 지능이나 감각
장애를 일으키는 부작용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1차적으로는 이번 제제를 실패로 잠정결론 내고 있었는데, 정말 우연하게도 김은비 연구원이 잠깐
실험실에 애완견을 데리고 왔다가 하필이면 그 약을 애완견이 먹어버린 것입니다. 김 연구원은 크게 놀랐
지만 애초에 추적실험에서 그 이외의 부작용은 없고, 별 독성이 없는 제제였던데다 약효의 짧은 유효기간
도 알았기에 그렇게 집으로 데려갔다고 하더군요.
근데 놀라운 일이 거기서 생긴 겁니다. 가족 중 그 누구를 봐도 헐떡헐떡 대고, 꼬리를 미친듯이 흔들며
좋아 어쩔 줄 모르던 놈이 그냥 시큰둥하게 반응을 하더랍니다. 그렇다고 몰라보는건 아닌데도 무슨 감정
없는 놈처럼 행동을 하더라나?
그래서 그 실패로 결론내렸던 47번째 버전을 그녀가 따로 혼자 실험을 해봤고, 원숭이 등 고등동물에게서
더 드라마틱한 결과값이 얻어졌습니다. 이 진통제의 사이드 이펙트는 '일시적인 감정 거세' 였습니다"
김박스 박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기자는 "재미나는 이야기군요" 라고 한 마디 한 뒤, "그러면 페인리스
를 마인드 킬러라고 이름 붙인 건 마케팅의 승리군요" 하고 웃었다. 김박스 박사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 그건 아닙니다"
기자는 다시 "아, 직접 약의 이름을 붙이신건가요?" 하고 묻자, 김박스 박사는 어깨를 으쓱했다.
"약물 임상실험 단계에서 제일 처음 약을 먹은게…7년 사귄 남친이랑 헤어진 김은비 연구원이었거든요"
감정억제제 '마인드 킬러'가 성공적으로 임상을 마치고 시장에 출시되자, 그 약의 파급력은 상상 이상
이었다.
약의 힘을 빌어 반 강제적으로 감정을 억제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 약효가 도는 시간 동안 자기
자신을 온전히 이성의 영역 하에 놓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은 활용의 여지가 엄청난 것이었다.
시험을 앞둔 학생이나 직장인, 중요한 시합 날의 운동선수, 뜨거운 가슴보다 냉정한 머리가 필요한
전문직 종자사들, 바둑 기사들, 과잉 행동장애를 가진 아이들, 작전 실행을 앞둔 군인들…
각계각층의 수요는 그야말로 '폭발'했고, 해외 수출계약 역시 빗발쳤다. 마인드 킬러를 개발한 제약사
'스타일 제약'의 주가는 몇 달이 넘도록 상한가를 계속했고 세계 제약업계에서는 '비아그라 이래 최고
의 걸작'이라는 찬사와 질투의 메세지를 보내왔다.
무엇보다 저 약을 애타게 찾은 것은 이별의 고통에 시달리던 수천만 실연 솔로들이었다. 하루하루 눈에
눈물이 마를 날 없으며 가슴이 찢겨나가는 통증에 몇 번이고 하루에도 생과 사를 오가던 이들은 결국
'마인드 킬러'의 도움으로 그 젖은 눈가를 겨우 말릴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 처음에는 이별한 이가 '마인드 킬러'를 복용하는 것에 대해 감성적인 반대의 목소리도 제법
있었다.
"정말로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져서 느끼는 실연의 아픔을 고작 알약 하나로 잊을 수 있다는거…너무
잔인하고 비인간적인거 아닌가요"
"만약에 제 남친이 저랑 헤어지고도 저 약 먹고 바로 다음 날 멀쩡히 깔깔대며 웃고 다닐 생각하면
죽고 싶을 거 같아요"
"솔직히 좀, 전 부정적이에요.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는 사회…무섭기까지 해요"
이렇게 마인드 킬러의 대유행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있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또 열광적인 호응을
얻기도 했다.
"절 차버리고 가버린 그 사람 때문에 제가 왜 힘들어야 되는거죠?"
"실연의 아픔?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그냥 그거 다 인생에서 버리는 시간 아닌가요. 뭐 첫 사랑 때야
그럴 수도 있다지만 그런거 반복하는건…낭비죠"
"전 사실 일 때문에 평소에도 꾸준히 복용하는 편이라…헤어지던 날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렸어요. 뭐
지금 생각해보면 씁쓸하지만, 안 그러고 그 여자 계속 만났더라면 제 인생도 아마 끝장났을거에요"
그러나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자, 서서히 '이별의 고통'에 눈물 짓는 이들이 찾기 어려워졌다. 이
별의 통증이란 누구에게나 가혹한 것이었고, 그 고통을 달래줄 수 있는 약물의 유혹이란 엄청난 것
이었으니까.
대중가요 속에서 점점 이별의 통증을 노래하는 곡들이 사라졌고, 머리가 아프면 두통약을 먹듯이
마음이 아플 때면 누구나 마인드 킬러를 복용했다. '너에게 이별을 선물하기 위해 먹는 그 약' /
'이별이라는 말 대신 이 약을 선물하세요' 라는 마인드 킬러의 노이즈 광고 캠페인도 대성공, 이제
더이상 이별의 장면에서 눈물 흘리는 이들은 찾기 어려워졌다.
'이별에 대한 두려움과 통증이 사라진 사회'는 사실 정치인들과 사회학자들에게는 거의 재앙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혼율의 폭발적 증가와 가족의 해체, 성혼률 저하 등 사회 구조 붕괴에 대한 우려
의 목소리가 높았다.
실제로 마인드 킬러가 출시된 첫 5년 사이 이혼율이 두 배로 상승했다. 한 보수 정치인은 '나라 말아
먹을 약'이라는 독설을 하기도 했다.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못하며 침착한 두뇌로 범행 현장에
서 여유롭게 태연하게 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들의 등장도 문제였다. 때문에 몇몇 시민단체에서는
판매금지가처분 신청을 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일시적인 충격 이후 반전이 찾아왔다. 이별의 통증이 없다는 것은 곧 새로운 인연을 찾기
까지의 시간이 비약적으로 짧아짐을 뜻하는 것이었다. 곧 성혼률이 점진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
다. 또, 아무리 크게 싸우더라도 화를 내기에 앞서 얼른 약국에 달려가 이 약을 함께 먹고 곰곰히
냉정해진 머리로 상황을 되짚어보는 '현명한 커플'들도 많아졌다.
또한 사랑놀음이 아닌, 사회 각계에 마인드 킬러가 끼친 업적은 그야말로 위대한 것이었다.
섬상 경제연구소의 '마인드 킬러를 활용한 제조/산업현장에서의 생산성 증가및 불량률 저하' 20
21년 보고서에 따르면 마인드 킬러 덕분에 상승한 국가 성장률만 0.2%에 달했다. 부차적인 상승
효과는 배제하고서라도 말이다.
세밀하고 기계적 처리, 논리적 사고가 필요한 업종에서의 현격한 상승효과가 입증되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남용이 시작되었다.
생산현장에서는 불량률 저하를 위해 노동자에게 마인드 킬러의 복용을 강요했고, 사무실에서는
지루함이나 따분함에 의한 집중력 저하를 막기 위해 마인드 킬러를 권장했다. 운동선수들의 남용
은 이미 10년 전부터 문제가 된 바 있었고,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공부에 집중하라며 마인
드 킬러를 영양제와 함께 건냈다.
그리고 의학계에서 첫 우려를 드러냈다. 마인드 킬러가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의학적,
화학적 안정성을 가진 약물임은 인정하지만, 한국 사회에서의 남용은 도가 지나친 수준이란 것이었
다. 실제로 마인드 킬러는 그 이외의 모든 약물을 합한 것보다 더 소모가 많았다.
또한 한창 예민한 감수성을 갖고 성장해야 하는 아이들이 일찍부터 감정적 거세에 노출되면서 사회
성 부족 문제에 시달리는 부작용이 보고되었다. 이후 마인드 킬러의 미성년자 복용이 법적으로 금지
되었지만, 이미 수십만의 학생들이 몇 년 동안 복용을 마친 후였다.
예술계에서도 분노를 터뜨렸다. '가슴이 죽은' 학생들로 무슨 예술을 하겠느냐는 것이었다. 물론
'기술적' 측면을 중시하는 국제 학생 콩쿨에서의 한국 학생들 성적은 거의 최상위권을 독식하는
수준이었지만 문제는 그런 인재들치고 성인이 되어서도 뛰어난 감각을 자랑하는 이들이 없었다.
문학계에서도 30대 중반 이상의 '중고 신인'들은 있을 지언정, 젊은 작가들의 등장은 한동안 그
종적을 감추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이 사회는 '아날로그 감성'보다 '디지털 지성'을 원했고, 마인드 킬러는 쭉 그
성공가도를 달렸으며…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그 다음 날도 사람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마인드 킬러를 입 안으로 밀어넣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