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
직장이 울먹이며 소리쳤다. 상대의 28번째 공세….
"도대체 변기 도킹은 언제쯤이지? 언제쯤이냐고! 위에서는 계속 버티라는 말 뿐! 도대체 여기 상황을
몰라서 저러는거야? 이러다 정말 끝장난다고!"
직장은 울고 있었다. 그는 이미 파멸을 예감하고 있었다. 떨리는 허벅지와 이미 굽힐대로 굽혀진 발가
락들 역시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지난 2008년의 명동 쇼크 이래 최대의 위기가 도래한 것이다.
"버틸 뿐이다"
저어기 항문을 지키고 있는 스위퍼 괄약근. 굳건한 의지를 표명하는 말과는 달리 그의 표정도 그다지
좋지 않아 보였다. 30년이 훌쩍 넘게 무수한 전투에서 승리를 이끌어 낸 베테랑조차, 이번에는 파멸을
각오하고 있었다.
사투
"안됩니다!"
위장이 제일 먼저 소리쳤다.
"오후 3시 26분, 정상욱 국에서 보내온 도너츠 이후로 현재 소화기 전체에 옐로우 싸인이 들어온 상태
입니다. 이런 판국에 술이라니요!"
십이지장과 대장, 소장, 직장은 즉각 반대를 표시했다. 하지만 대뇌는 묵묵무답이었다. 위장의 뒤를 이
어 대장이 손을 들었다.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대뇌가 고개를 끄덕이자 대장이 입을 열었다.
"현재…체내에 대장균 농도가 162% 상승한 상태입니다. 예상되는 바에 따르면 6시 퇴근 기준, 앞으로
총 2.5회의 화장실 출입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40분 간의 퇴근 시간을 감안하더라도 안전하게 자취방
화장실까지의 안전한 루트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 이후에야 위장 내의 모든 소화물이 폭탄화 된다
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과연 그 '대장'이라는 이름답게 다부지면서도 중후하며 믿음직스러운 그 대장의 차분한 말에 다들 고
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술, 그것도 본부장님 특유의 폭탄주 회식이 가미될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현재 회식장
후보로 꼽히는 대성 꼼장어, 현이네 차돌박이, 한가네 치킨 모두 화장실 설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저 후보군 중에서 두 개 이상의 안주와 1.5병 이상의 소주가 투입될 경우, 아군의
전력으로는 정상적인 소화 처리를 장담할 수 없으며 모든 소화기 내의 음식물은 액체폭탄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때는 도대체 어쩌겠습니까"
대장의 말에 모두들 이번 회식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으로 몰려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대뇌의 결정은
뜻밖이었다.
"어쩔 수 없다. 이번 회식은 부사장님까지 참가하는 총 회식. 빠지는 일은 불가능하다. 모두들 사력을
다해주길 바란다"
대뇌가 일방적인 결정으로 회의를 마치자 소화기 부의 전원은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장은 분노에
부르르 떨기까지 했다.
"항상 이런 식이지…"
식도는 초장부터 우려의 신호를 보내왔다.
"아니 구강팀은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거야! 이렇게 제대로 씹지도 않고 넘기면 도대체 아랫쪽
소화기들은 뭐 다 뒈지라는 말인가? 어?"
하지만 구강팀 역시 항변의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위에서 뭐라고 하는 줄 알아? 차돌박이라고, 제대로 안 익혀도 되니까 무조건 목구멍으로 넘기
기만 하래! 우리도 지금 겨우겨우 씹어서 넘기는 중이라고!"
이미 처리공간의 80% 이상이 차버린 위장은 구강팀을 통해 대뇌의 명령을 전해 듣고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미쳤군"
간은 온 몸에 술을 뒤집어 쓴 채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괜찮아, 아직 맥주일 뿐이야"
이미 지난 3일간의 4시간 수면으로 인해 지칠대로 지쳐버린 그였지만, 그 어느 누구보다 믿음직하고
말 수 없는 그는 묵묵히 제 할일을 다할 뿐이었다. 그리고 저 위에서 파도처럼 몰려오는 액체를 보며
픽 웃었다.
"한단계 경보 상승"
오십세주였다.
도너츠의 난데없는 기습공격에 제대로 한방 얻어맞은 소화기 팀의 전원은 시작 전 부터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1차 회식장 현이네 차돌박이로 출발 직전 회사 화장실에서 일부 고체 폭탄을 배출하기는
했지만 이미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니었다. 그런데 곧바로 기름진 고기와 술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한 두 시간 정도…? 그 이후는 타이밍 싸움이지. 무엇보다 액화가 시작되면 그때부터 힘들어지는거지"
무사히 고체 폭탄 배출을 마친 직장과 괄약근이 대화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저 위에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뇌 새끼들은 제정신이 아니야. 그러지 않고서야 우릴 이렇게
막 굴릴 수는 없는거야…"
옆에 있던 비뇨기팀의 불알 노동자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어이, 형씨. 우리 앞에서 그런 말 하면 너무 우는 소리 하는거 아닌가?"
지난 한달간 55회 소티가 넘는 가혹한 출격명령을 받은, 상시 이머전시 상태의 비뇨기 팀 앞에 소화기
측은 그저 씁쓸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자리배치가 큰일입니다"
좌뇌 정치 사령부는 부사장의 대각선 맞은 편, 술고래 차장의 바로 옆 자리에 배치된 현 상황에 대해서
이미 심각한 위기로 규정지었다. 이 곳은 그야말로 쉼없이 달려야 하는 지옥의 좌석. 늦게 온 마케팅팀
여직원들의 합류로 인하여 자리 배치가 꼬였고 어쩌다보니 그런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었다.
"아래에선 이미 계속 옐로우 싸인을 보내고 있고, 조금 전 대장에서 1차 액화가 관측됐…"
"저 놈들은 하여간 맨날 우는 소리. 아직 버틸 수 있어. 화장실 다녀온지 얼마나 됐다고!"
우뇌 육체 사령부는 쉼없이 올라오는 소화기 팀의 보고를 무시했다. 다만 화면에 표시된 포만 지수가
70을 넘기자 섭취 속도를 줄이라는 명령은 내려보냈다. 하지만 그들 역시 현 상황을 모르는 것은 아니
었다. 그저 부정하고 싶을 따름이었다.
"부사장이 소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대뇌 전체에서 비명과도 같은 한숨이 터져나왔다. 그때였다. 비뇨기팀에서 직통 전화가 왔다.
"변기 도킹은 하지 않을 생각인가? 지금 물탱크가 현재 110% 넘게 차 있는 상태인데?"
대뇌 사령부에 직통 전화를 건 것은 페니스 장군. 권력구조상으로는 대뇌 사령부가 가장 막강한 힘을
갖고 있고, 실제로도 무소불휘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지만 그들도 어쩌지 못하는 최강의 막후 실력자가
바로 페니스 장군이었다. 특히, 뜬금없이 자고 일어나 강발기 비상출동 명령을 걸어대는 통에 대뇌 쪽
에서도 곤란함을 호소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아니 3분 뒤에 회의인데 지금 비상출동 걸어버리면 어떡합니까"
"규정 모르나? 수면 끝나면 발기 모드 들어가는 것에 태클거는건가?"
"시스템 한계 상태라서 5분간 선잠 재운 건데 그거까지 발기 걸어버리면 어쩌자는 겁니까"
"헛소리! 명심해. 항상 준비된 자만이 쌀 수 있는 법이야"
…어찌되었던 이번의 페니스 장군의 요구는 지극히 정당한 것이었다. 방광 탱크가 현재 110% 상태였고
2차 회식장소로 결정된 한가네 치킨 화장실은 남녀공용. 차라리 지금이라도 싸두고 가는 것이 옳았다.
"알겠습니다"
대뇌 사령관 역시 페니스 장군의 요구를 받아들여 방광 탱크의 수문 개방을 허가했다. 0.6 리터의 옐로
워터가 배출되었고 방광은 다시 그린 상태로 돌아왔다. 하지만 곧 2차가 시작되면 힘들어질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보고! 대장 쪽에서 액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대장에서 대형 진통이 관측되었다.
"액화가 확실해? 시간적으로 맞지 않아. 아직 그럴 리 없다"
간뇌가 반대 의견을 보였고, 이후 똥화관제 상태로 탐색이 시작된 대장에서 2차 진통은 관측되지 않았다.
1차 보고는 묵살되었다. 하지만 모두 알고 있었다. 기름덩어리에 자극적인 양념까지 버무린 치킨과 맥주
가 과잉 투입된 이상, 위장 내 모든 음식물이 액화폭탄으로 변한다 한들 이상할 것이 없다는 것을.
"출발"
차돌박이에 이은 치킨 연타로 소화기 팀을 그로기 상태로 만든 상황에서 즉흥적으로 결정된 포차에서의
3차 섭취가 끝나고 드디어 대뇌 사령부는 집으로의 귀환 명령을 내렸다.
"택시 탑승!"
이제 집까지 약 30분만 무사히 버티면 된다… 대뇌에서는 그렇게 용기를 북돋는 메세지를 내려보냈지만
이미 너무 늦은 메세지였다. 소화기 팀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온다!"
직장이 울먹이며 소리쳤다. 상대의 28번째 공세….
"도대체 변기 도킹은 언제쯤이지? 언제쯤이냐고! 위에서는 계속 버티라는 말 뿐! 도대체 여기 상황을
몰라서 저러는거야? 이러다 정말 끝장난다고!"
직장은 울고 있었다. 그는 이미 파멸을 예감하고 있었다. 떨리는 허벅지와 이미 굽힐대로 굽혀진 발가
락들 역시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지난 2008년의 명동 쇼크 이래 최대의 위기가 도래한 것이다.
"버틸 뿐이다"
저어기 항문을 지키고 있는 스위퍼 괄약근. 굳건한 의지를 표명하는 말과는 달리 그의 표정도 그다지
좋지 않아 보였다. 30년이 훌쩍 넘게 무수한 전투에서 승리를 이끌어 낸 베테랑조차, 이번에는 파멸을
각오하고 있었다.
전신에서 진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뇌에서는 택시 기사가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으니 조금
참는 것이 힘들더라도 이상한 표정 짓지 말라는 어처구니 없는 명령을 내려보낼 따름이었다.
"아 미친 새끼들…"
마치 장마 폭우에 무너진 둑 너머로 물살이 쏟아져 내려가듯 뱃 속에 가득한 음식물들은 현재 전부
액화되어 무서운 기세로 항문을 향해 달려나가고 있었다. 위장 대장 소장 모두 거의 속수무책이었다.
그저 직장과 괄약근 환상 콤비만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3분? 잘하면 5분? 이미 레드 싸인 올라온지 오래됐고 임계 카운트 준비 중이니까"
"중간에 내려서 어디 까페 화장실이라도 가는건 어때"
"지금 시간대 택시 잡기 힘들다는 사회부 애들 말 못 들었어? 집 근처까지 가야 돼"
"이러다 택시 안에서 터지면?"
"그럴 리 없어. 우리 괄약근은 최고니까"
…대뇌 사령부에서 이렇게 말할 정도로, 확실히 괄약근에 대한 신뢰는 대단했다. '강철의 항문',
'이반 챔피언', '고추 절단기', '아다만티움 국화꽃' 등의 별명처럼, 지난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항문을 앞뒤에서 강력하게 지켜온 철의 수문장이었으니까.
"하지만 2008년 명동사건을 잊지마"
"그건 사고였을 뿐이야"
장내 압력을 줄이기 위해 가스 밸브를 연다는 것이 그만 액체폭탄을 배출하고 만 끔찍한 사고…수면
중 방귀 금지 정책을 불러온 2002 강의실 수면방귀 사건, 음주 섹스에 대한 엄중한 경고를 남긴 2007
페니스 사령부 실각 사건에 비견되는, 대재앙을 불러온 2008 명동 사건…
"어쨌든 거의 도착했군. "
"계산부터 하지"
"임계 카운트 시작!"
집 근처에 도착했다. 택시에서 내리자 이제 남은 것은 집까지의 전력질주 뿐이었다. 이미 서있는 자
세부터 엉거주춤, 자세가 무너진 상태. 하지만 뛰어야 했다. 전신 비상사태가 선포되었고 임계 카운트
60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끄으으으으윽!"
이미 직장도 나가떨어졌다. 엄청난 압력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어마어마한 액체 분뇨의 강을, 괄약근
혼자 막아내고 있었다. 거의 초인적인 인내력이었다. 아마 다른 이들의 괄약근이었다면 나가 떨어졌
을 것이다.
하지만 바벨을 들어올리는 역도선수의 마음으로, 온 몸을 바쳐 둑이 무너지는 것을 막아낸 네덜란드
소년의 마음으로, 무거운 번뇌와 업을 이겨내는 고행승의 마음으로, 페널티킥을 막아내는 순간의 국
가대표 골키퍼 같은 마음으로…
괄약근은 싸우고 있었다. 외로웠다. 전신이 자신을 주목하고 응원하고 있지만 들리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가 벌어지는 것을 다시 기어코 막아내고 있었다.
"끄어억"
입에서 절로 신음성이 터져나왔다. 집요하다. 너무 집요하다. 한타임쯤 쉬어갈 수도 있을텐데. 이미
그런 시기는 지난 것일까. 분뇨의 강은 나라는 세상 밖을 향해 너무나도 집요하게 머리를 내밀려고
하고 있었다.
'참아야 돼'
인내, 인내, 그리고 또 인내… 집 화장실을 향해 쿵쾅거리는 진통 탓에 두 배 세 배로 힘들었다. 아마
머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30초? 아니 10초만 더 시간이, 그만큼이라도 더 싸울 힘이 있었다면 아마
이번에도 괄약근은 이겨냈을 것이다. 그렇게 승리를 쟁취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의 액체폭탄은 달랐다.
똥꼬 사이로 아주 미세하게, 하지만 너무나 강렬하게 강철의 바늘과도 같은 그 한줄기를 조심스럽게
흘려보냈다.
주르륵…
간질간질한 그 느낌, 눈 앞이 아득해지고 사고회로의 모든 것이 정지되는 것과 같은 그 절망의 순간,
그러나 대뇌는 발걸음을 멈추는 대신 데미지 컨트롤에 들어갔다.
"전력 가속! 집 문 돌파! 화장실 진입! 초고속 벨트 해체, 해, 해체! 해체! 어억!"
어쩌면 한줄기, 그 한줄기 실수… 팬티에 묻어난 한 방울의 갈색 방점으로 모든 것이 수습될 수 있었
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 벨트는 풀리지 않았고 그 소식을 전달받은 괄약근은 그만 정신을 잃
어버렸다.
"현재 저는 사고 현장에 나와있습니다. 에… 변기 주변은 이미 초토화 된 상태이며, 강력한 악취가
사고현장을 뒤덮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에 튄 똥자국은 사고 당시의 끔찍함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끔찍한 참상입니다. 다시 한번 반복합니다. 끔찍한 참상입니다. 역대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참혹한
배변 실패 사고입니다.
아, 속보가 들어왔습니다. 대뇌 정부는 곧 물과 락스를 이용한 제독 작업이 시작될 것이라고 선언했
으며, 이번 사고의 실무 책임자 괄약근에 대한 징계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에… 이번
사태는 어디까지나 사고일 따름으로, 국민 여러분은 동요하는 대신 언제나와 같은 차분한 마음으로
일상에 임해주시길 바란다, 라는 성명을 냈습니다.
마지막으로, 팬티에 대해서도… 비싼 팬티인 만큼, 버리는 대신… 물로 손빨래하고, 삶아 빨고…음,
두 세 번 빨아서, 정말 깨끗히 빨아서, 앞으로도 적극, 꾸준히 활용한다는 방침을…
네, 이상 안구 기자였습니다."
직장이 울먹이며 소리쳤다. 상대의 28번째 공세….
"도대체 변기 도킹은 언제쯤이지? 언제쯤이냐고! 위에서는 계속 버티라는 말 뿐! 도대체 여기 상황을
몰라서 저러는거야? 이러다 정말 끝장난다고!"
직장은 울고 있었다. 그는 이미 파멸을 예감하고 있었다. 떨리는 허벅지와 이미 굽힐대로 굽혀진 발가
락들 역시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지난 2008년의 명동 쇼크 이래 최대의 위기가 도래한 것이다.
"버틸 뿐이다"
저어기 항문을 지키고 있는 스위퍼 괄약근. 굳건한 의지를 표명하는 말과는 달리 그의 표정도 그다지
좋지 않아 보였다. 30년이 훌쩍 넘게 무수한 전투에서 승리를 이끌어 낸 베테랑조차, 이번에는 파멸을
각오하고 있었다.
사투
"안됩니다!"
위장이 제일 먼저 소리쳤다.
"오후 3시 26분, 정상욱 국에서 보내온 도너츠 이후로 현재 소화기 전체에 옐로우 싸인이 들어온 상태
입니다. 이런 판국에 술이라니요!"
십이지장과 대장, 소장, 직장은 즉각 반대를 표시했다. 하지만 대뇌는 묵묵무답이었다. 위장의 뒤를 이
어 대장이 손을 들었다.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대뇌가 고개를 끄덕이자 대장이 입을 열었다.
"현재…체내에 대장균 농도가 162% 상승한 상태입니다. 예상되는 바에 따르면 6시 퇴근 기준, 앞으로
총 2.5회의 화장실 출입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40분 간의 퇴근 시간을 감안하더라도 안전하게 자취방
화장실까지의 안전한 루트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 이후에야 위장 내의 모든 소화물이 폭탄화 된다
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과연 그 '대장'이라는 이름답게 다부지면서도 중후하며 믿음직스러운 그 대장의 차분한 말에 다들 고
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술, 그것도 본부장님 특유의 폭탄주 회식이 가미될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현재 회식장
후보로 꼽히는 대성 꼼장어, 현이네 차돌박이, 한가네 치킨 모두 화장실 설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저 후보군 중에서 두 개 이상의 안주와 1.5병 이상의 소주가 투입될 경우, 아군의
전력으로는 정상적인 소화 처리를 장담할 수 없으며 모든 소화기 내의 음식물은 액체폭탄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때는 도대체 어쩌겠습니까"
대장의 말에 모두들 이번 회식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으로 몰려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대뇌의 결정은
뜻밖이었다.
"어쩔 수 없다. 이번 회식은 부사장님까지 참가하는 총 회식. 빠지는 일은 불가능하다. 모두들 사력을
다해주길 바란다"
대뇌가 일방적인 결정으로 회의를 마치자 소화기 부의 전원은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장은 분노에
부르르 떨기까지 했다.
"항상 이런 식이지…"
식도는 초장부터 우려의 신호를 보내왔다.
"아니 구강팀은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거야! 이렇게 제대로 씹지도 않고 넘기면 도대체 아랫쪽
소화기들은 뭐 다 뒈지라는 말인가? 어?"
하지만 구강팀 역시 항변의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위에서 뭐라고 하는 줄 알아? 차돌박이라고, 제대로 안 익혀도 되니까 무조건 목구멍으로 넘기
기만 하래! 우리도 지금 겨우겨우 씹어서 넘기는 중이라고!"
이미 처리공간의 80% 이상이 차버린 위장은 구강팀을 통해 대뇌의 명령을 전해 듣고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미쳤군"
간은 온 몸에 술을 뒤집어 쓴 채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괜찮아, 아직 맥주일 뿐이야"
이미 지난 3일간의 4시간 수면으로 인해 지칠대로 지쳐버린 그였지만, 그 어느 누구보다 믿음직하고
말 수 없는 그는 묵묵히 제 할일을 다할 뿐이었다. 그리고 저 위에서 파도처럼 몰려오는 액체를 보며
픽 웃었다.
"한단계 경보 상승"
오십세주였다.
도너츠의 난데없는 기습공격에 제대로 한방 얻어맞은 소화기 팀의 전원은 시작 전 부터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1차 회식장 현이네 차돌박이로 출발 직전 회사 화장실에서 일부 고체 폭탄을 배출하기는
했지만 이미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니었다. 그런데 곧바로 기름진 고기와 술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한 두 시간 정도…? 그 이후는 타이밍 싸움이지. 무엇보다 액화가 시작되면 그때부터 힘들어지는거지"
무사히 고체 폭탄 배출을 마친 직장과 괄약근이 대화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저 위에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뇌 새끼들은 제정신이 아니야. 그러지 않고서야 우릴 이렇게
막 굴릴 수는 없는거야…"
옆에 있던 비뇨기팀의 불알 노동자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어이, 형씨. 우리 앞에서 그런 말 하면 너무 우는 소리 하는거 아닌가?"
지난 한달간 55회 소티가 넘는 가혹한 출격명령을 받은, 상시 이머전시 상태의 비뇨기 팀 앞에 소화기
측은 그저 씁쓸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자리배치가 큰일입니다"
좌뇌 정치 사령부는 부사장의 대각선 맞은 편, 술고래 차장의 바로 옆 자리에 배치된 현 상황에 대해서
이미 심각한 위기로 규정지었다. 이 곳은 그야말로 쉼없이 달려야 하는 지옥의 좌석. 늦게 온 마케팅팀
여직원들의 합류로 인하여 자리 배치가 꼬였고 어쩌다보니 그런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었다.
"아래에선 이미 계속 옐로우 싸인을 보내고 있고, 조금 전 대장에서 1차 액화가 관측됐…"
"저 놈들은 하여간 맨날 우는 소리. 아직 버틸 수 있어. 화장실 다녀온지 얼마나 됐다고!"
우뇌 육체 사령부는 쉼없이 올라오는 소화기 팀의 보고를 무시했다. 다만 화면에 표시된 포만 지수가
70을 넘기자 섭취 속도를 줄이라는 명령은 내려보냈다. 하지만 그들 역시 현 상황을 모르는 것은 아니
었다. 그저 부정하고 싶을 따름이었다.
"부사장이 소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대뇌 전체에서 비명과도 같은 한숨이 터져나왔다. 그때였다. 비뇨기팀에서 직통 전화가 왔다.
"변기 도킹은 하지 않을 생각인가? 지금 물탱크가 현재 110% 넘게 차 있는 상태인데?"
대뇌 사령부에 직통 전화를 건 것은 페니스 장군. 권력구조상으로는 대뇌 사령부가 가장 막강한 힘을
갖고 있고, 실제로도 무소불휘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지만 그들도 어쩌지 못하는 최강의 막후 실력자가
바로 페니스 장군이었다. 특히, 뜬금없이 자고 일어나 강발기 비상출동 명령을 걸어대는 통에 대뇌 쪽
에서도 곤란함을 호소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아니 3분 뒤에 회의인데 지금 비상출동 걸어버리면 어떡합니까"
"규정 모르나? 수면 끝나면 발기 모드 들어가는 것에 태클거는건가?"
"시스템 한계 상태라서 5분간 선잠 재운 건데 그거까지 발기 걸어버리면 어쩌자는 겁니까"
"헛소리! 명심해. 항상 준비된 자만이 쌀 수 있는 법이야"
…어찌되었던 이번의 페니스 장군의 요구는 지극히 정당한 것이었다. 방광 탱크가 현재 110% 상태였고
2차 회식장소로 결정된 한가네 치킨 화장실은 남녀공용. 차라리 지금이라도 싸두고 가는 것이 옳았다.
"알겠습니다"
대뇌 사령관 역시 페니스 장군의 요구를 받아들여 방광 탱크의 수문 개방을 허가했다. 0.6 리터의 옐로
워터가 배출되었고 방광은 다시 그린 상태로 돌아왔다. 하지만 곧 2차가 시작되면 힘들어질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보고! 대장 쪽에서 액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대장에서 대형 진통이 관측되었다.
"액화가 확실해? 시간적으로 맞지 않아. 아직 그럴 리 없다"
간뇌가 반대 의견을 보였고, 이후 똥화관제 상태로 탐색이 시작된 대장에서 2차 진통은 관측되지 않았다.
1차 보고는 묵살되었다. 하지만 모두 알고 있었다. 기름덩어리에 자극적인 양념까지 버무린 치킨과 맥주
가 과잉 투입된 이상, 위장 내 모든 음식물이 액화폭탄으로 변한다 한들 이상할 것이 없다는 것을.
"출발"
차돌박이에 이은 치킨 연타로 소화기 팀을 그로기 상태로 만든 상황에서 즉흥적으로 결정된 포차에서의
3차 섭취가 끝나고 드디어 대뇌 사령부는 집으로의 귀환 명령을 내렸다.
"택시 탑승!"
이제 집까지 약 30분만 무사히 버티면 된다… 대뇌에서는 그렇게 용기를 북돋는 메세지를 내려보냈지만
이미 너무 늦은 메세지였다. 소화기 팀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온다!"
직장이 울먹이며 소리쳤다. 상대의 28번째 공세….
"도대체 변기 도킹은 언제쯤이지? 언제쯤이냐고! 위에서는 계속 버티라는 말 뿐! 도대체 여기 상황을
몰라서 저러는거야? 이러다 정말 끝장난다고!"
직장은 울고 있었다. 그는 이미 파멸을 예감하고 있었다. 떨리는 허벅지와 이미 굽힐대로 굽혀진 발가
락들 역시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지난 2008년의 명동 쇼크 이래 최대의 위기가 도래한 것이다.
"버틸 뿐이다"
저어기 항문을 지키고 있는 스위퍼 괄약근. 굳건한 의지를 표명하는 말과는 달리 그의 표정도 그다지
좋지 않아 보였다. 30년이 훌쩍 넘게 무수한 전투에서 승리를 이끌어 낸 베테랑조차, 이번에는 파멸을
각오하고 있었다.
전신에서 진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뇌에서는 택시 기사가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으니 조금
참는 것이 힘들더라도 이상한 표정 짓지 말라는 어처구니 없는 명령을 내려보낼 따름이었다.
"아 미친 새끼들…"
마치 장마 폭우에 무너진 둑 너머로 물살이 쏟아져 내려가듯 뱃 속에 가득한 음식물들은 현재 전부
액화되어 무서운 기세로 항문을 향해 달려나가고 있었다. 위장 대장 소장 모두 거의 속수무책이었다.
그저 직장과 괄약근 환상 콤비만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3분? 잘하면 5분? 이미 레드 싸인 올라온지 오래됐고 임계 카운트 준비 중이니까"
"중간에 내려서 어디 까페 화장실이라도 가는건 어때"
"지금 시간대 택시 잡기 힘들다는 사회부 애들 말 못 들었어? 집 근처까지 가야 돼"
"이러다 택시 안에서 터지면?"
"그럴 리 없어. 우리 괄약근은 최고니까"
…대뇌 사령부에서 이렇게 말할 정도로, 확실히 괄약근에 대한 신뢰는 대단했다. '강철의 항문',
'이반 챔피언', '고추 절단기', '아다만티움 국화꽃' 등의 별명처럼, 지난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항문을 앞뒤에서 강력하게 지켜온 철의 수문장이었으니까.
"하지만 2008년 명동사건을 잊지마"
"그건 사고였을 뿐이야"
장내 압력을 줄이기 위해 가스 밸브를 연다는 것이 그만 액체폭탄을 배출하고 만 끔찍한 사고…수면
중 방귀 금지 정책을 불러온 2002 강의실 수면방귀 사건, 음주 섹스에 대한 엄중한 경고를 남긴 2007
페니스 사령부 실각 사건에 비견되는, 대재앙을 불러온 2008 명동 사건…
"어쨌든 거의 도착했군. "
"계산부터 하지"
"임계 카운트 시작!"
집 근처에 도착했다. 택시에서 내리자 이제 남은 것은 집까지의 전력질주 뿐이었다. 이미 서있는 자
세부터 엉거주춤, 자세가 무너진 상태. 하지만 뛰어야 했다. 전신 비상사태가 선포되었고 임계 카운트
60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끄으으으으윽!"
이미 직장도 나가떨어졌다. 엄청난 압력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어마어마한 액체 분뇨의 강을, 괄약근
혼자 막아내고 있었다. 거의 초인적인 인내력이었다. 아마 다른 이들의 괄약근이었다면 나가 떨어졌
을 것이다.
하지만 바벨을 들어올리는 역도선수의 마음으로, 온 몸을 바쳐 둑이 무너지는 것을 막아낸 네덜란드
소년의 마음으로, 무거운 번뇌와 업을 이겨내는 고행승의 마음으로, 페널티킥을 막아내는 순간의 국
가대표 골키퍼 같은 마음으로…
괄약근은 싸우고 있었다. 외로웠다. 전신이 자신을 주목하고 응원하고 있지만 들리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가 벌어지는 것을 다시 기어코 막아내고 있었다.
"끄어억"
입에서 절로 신음성이 터져나왔다. 집요하다. 너무 집요하다. 한타임쯤 쉬어갈 수도 있을텐데. 이미
그런 시기는 지난 것일까. 분뇨의 강은 나라는 세상 밖을 향해 너무나도 집요하게 머리를 내밀려고
하고 있었다.
'참아야 돼'
인내, 인내, 그리고 또 인내… 집 화장실을 향해 쿵쾅거리는 진통 탓에 두 배 세 배로 힘들었다. 아마
머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30초? 아니 10초만 더 시간이, 그만큼이라도 더 싸울 힘이 있었다면 아마
이번에도 괄약근은 이겨냈을 것이다. 그렇게 승리를 쟁취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의 액체폭탄은 달랐다.
똥꼬 사이로 아주 미세하게, 하지만 너무나 강렬하게 강철의 바늘과도 같은 그 한줄기를 조심스럽게
흘려보냈다.
주르륵…
간질간질한 그 느낌, 눈 앞이 아득해지고 사고회로의 모든 것이 정지되는 것과 같은 그 절망의 순간,
그러나 대뇌는 발걸음을 멈추는 대신 데미지 컨트롤에 들어갔다.
"전력 가속! 집 문 돌파! 화장실 진입! 초고속 벨트 해체, 해, 해체! 해체! 어억!"
어쩌면 한줄기, 그 한줄기 실수… 팬티에 묻어난 한 방울의 갈색 방점으로 모든 것이 수습될 수 있었
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 벨트는 풀리지 않았고 그 소식을 전달받은 괄약근은 그만 정신을 잃
어버렸다.
"현재 저는 사고 현장에 나와있습니다. 에… 변기 주변은 이미 초토화 된 상태이며, 강력한 악취가
사고현장을 뒤덮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에 튄 똥자국은 사고 당시의 끔찍함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끔찍한 참상입니다. 다시 한번 반복합니다. 끔찍한 참상입니다. 역대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참혹한
배변 실패 사고입니다.
아, 속보가 들어왔습니다. 대뇌 정부는 곧 물과 락스를 이용한 제독 작업이 시작될 것이라고 선언했
으며, 이번 사고의 실무 책임자 괄약근에 대한 징계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에… 이번
사태는 어디까지나 사고일 따름으로, 국민 여러분은 동요하는 대신 언제나와 같은 차분한 마음으로
일상에 임해주시길 바란다, 라는 성명을 냈습니다.
마지막으로, 팬티에 대해서도… 비싼 팬티인 만큼, 버리는 대신… 물로 손빨래하고, 삶아 빨고…음,
두 세 번 빨아서, 정말 깨끗히 빨아서, 앞으로도 적극, 꾸준히 활용한다는 방침을…
네, 이상 안구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