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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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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박스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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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일어났어요"

6시 반, 알람에 맞춰 눈을 뜬다. 저혈압인 아내는 여전히 눈도 뜨지 못한 채 누워있다. 그녀에게는 좀
더 자두라고 말하고 나는 인터폰을 통해 부속실에 내 기상을 알렸다. 청와대의 바쁜 하루가 시작된다.

일어나 씻고 트레이닝 복으로 갈아입었다. 원래는 외국계 브랜드였는데 국산 브랜드로 교체했다. 그
일이 기사화 되었고, 그 얼마 후 해당 브랜드의 점유율이 조금 상승했다고 들었다. 기쁜 일이다.



"가시죠"

YS시절에 만들어진 조깅 루트를 조금 손 본 500미터 남짓한 거리의 간이 조깅 루트다. 내가 아끼는
김서훈 정무 보좌관과 윤영무 민정수석, 기호태 안보 보좌관, 진명호 부속 비서관, 그리고 경호팀이
조깅에 동참한다. 아침마다의 조깅 때문에 원래부터 아침형 인간들인 이 사람들의 기상시간이 다들
한 시간씩 앞당겨졌단다. 날이 풀리며 점점 더 조깅하기 좋은 환경이 되어간다.

"후우, 후우"

나이를 먹어서인지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차오른다.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지난 대선 시즌에 워낙
무리를 해서인지 요즘 급격히 피로를 자주 느낀다. 그나마 두어 달전부터 시작한 조깅 덕분에 조금은
나아진 듯 하다.

"후우, 그거 아나? 후우, YS가, 그랬다지. 조깅의 조가 아침 조자라서, 아침에 뛰는게 몸에 좋다고"

내 시덥잖은 농담에 다들 웃음을 터뜨린다. 최고 권력자가 된 이후 가장 좋은 것이라면 내 시원찮은
농담에도 다들 잘 웃어준다는 사실이다. 안 좋은 점이라면 그래서 내 개그 감각이 점점 쇠퇴하고 있
다는 점이고.



조깅을 마치고 관저로 돌아와 또 씻고 실내복으로 갈아입은 후, 출근을 준비했다.

원래 아침만큼은 꼭 자신이 직접 만든 요리를 챙기던 아내였지만, 영부인 일을 하면서 이래저래 고
생이 많은지 피곤해 하길래 지난 달부터는 집무실로 출근 이후 본관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생전에 어디 남 앞에 서는 것을 어려워 하는 그녀였던만큼 영부인 일은 더욱 힘들겠지. 그래도 너무
피곤해 하는 것이 눈에 보여서 혹시, 하는 마음에 종합 검진도 해봤는데 다행히도 피로 증상 이외엔
건강에 별 문제가 없단다. 그래도 비서실 측에 그녀의 일정을 당분간 좀 줄이라고 지시해두었다.



"가지"

잠시, 옷장을 열고 장미라사와 까날리 중에서 고민하다가 까날리 정장을 챙겨입고 드디어 청와대
본관을 향해 차에 올랐다. 대통령 관저에서 본관까지는 차로 3~4분 정도 걸린다. 그 시간동안 난
휴대폰으로 인터넷 뉴스를 확인한다. 여론조사 결과, 대통령 지지율이 70%에 육박한다는 기사를
보고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뭐, 앞으로 서서히 까먹어 가겠지만.

앞 뒤로 경호 2팀의 차량이 동행하고, 우리 차 안에도 경호원 하나와 진명호 부속 비서관이 함께
한다.

"아침식사는 했나?"
"아직 안 했습니다"
"원래 안 하는 편이야, 아니면 아직 안 먹은거야?"
"아침은 꼭꼭 챙겨먹는 편입니다. 본관에 가서, 조 비서관이랑 임무교대하고 먹을 생각입니다"
"그래, 몸 잘 챙겨야지"

비서관과 잠깐 실없는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본관에 도착했다. 동선에 따라 경호는 3팀이
이어받았고 나는 2층의 집무실 옆 백악실로 향한다. 백악실에는 아침의 조깅 멤버들은 물론 허태
환 비서실장과 사회안정, 홍보, 경제산업, 고용복지, 교육문화, 기술 등 각 분야 수석 비서관들이
기다리고 앉아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앉으세요"

내가 백악실에 들어서자 다들 자리에서 일어났고, 인사와 함께 그들을 앉혔다. 그리고 곧바로
본격적인 아침 식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간단히, 무슨 요리인지 정확히 그 이름은 모르겠다만
게를 이용한 말이 요리, 들깨가 들어간 버섯 스프, 감자를 곁들인 부드러운 생선구이 등의 식사
가 입맛을 돋구었다.

"흠"

간단히 10명 내외의 인원이 함께 조찬을 할 수 있는 백악실은, 이렇게 비서관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 아늑하고 좋았다. 쓸데없이 넓어서 허전한 집무실보다 훨씬 분위기가 좋다. 그래서 얼마 전
부터 수석 비서관 회의를 이 백악실에서 진행했다. 이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또 그러면서
잠시 후에 있을 일일 보고에 앞서 분위기도 좀 띄워놓는 것이다.

"근데 다들, 이제 대통령이 가족이랑 아침 먹을 시간까지 빼앗았다고 마누라들이 서운해하지는
않아?"

그래, 한가지 걱정되는 것이라면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바쁜 비서관들이라 그나마 가족들이랑
얼굴이라도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아침 식사 시간일텐데 그걸 빼앗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좀
마음에 걸리기는 했다.

"아닙니다, 오히려 덕분에 아침 준비 안해도 된다고 꼭 감사하다는 말씀 전해 달라고 하더라구요"

윤기찬 고용복지 수석 비서관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이어 최경만 홍보 비서관이 말했다.

"지난 번에 중앙신문에서 '대통령의 아침식사' 라고 해서 기사가 나간 이후에 요즘 기업들에서도
CEO들이 임원들과 함께 아침식사 같이하는게 유행이랍니다"
"허허"

하여간에 대통령이 뭐 하나만 했다하면 곧바로 그게 이슈가 되고 기업이나 민간에서 따라들하니
뭐 하나를 해도 여간 신경쓰이는 것이 아니다. 새삼 부담과 책임을 느낀다.




"새온누리 오태민 대표 측에서, 이번 예산안 심의 문제 관련해서 민주연합 진형주 대표와 함께
오찬을 제안했습니다. 서민금융 지원법 카드로 딜을 시도할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 하자고 합시다. 어차피 이쪽에서 먼저 제스쳐를 취해야 저쪽에서도 명분이 설테니까"
"그리고 그, 이번에 조석만 의원 건은…"
"아냐, 그 건은 넘기기로 합시다. 일단 검찰 수사 추이를 좀 보고 결정합시다. 당에서도 생각이
있을테니 그쪽하고도 계속 연락하고"
"알겠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그릇을 내가고 잠시 약 20분간 쉬는 시간을 가진 후 비서관들의 보고가 이어졌다.
김서훈 정무 수석 비서관에 이어 반동일 안보 수석의 보고가 이어졌다. 

"제 5차 FX사업건에 관해, 국방부 측에서는 F-22 직도입 쪽으로 가닥을 잡는 모양새입니다. 아무
래도 미국 측에서도 직도입 이외의 제안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입찰한 다른 쪽들 반응은 어때?"
"예상 외로 우리 측 반응이 꽤 적극적인 것에 고무되었는지 러시아 측에서는 수호이 T-50의 공급가
10% 추가인하와 스텔스 기술 이전을 제안했고, 중국 측에서 J-20 5대 추가제공을 제안해왔습니다"

…보고가 이어지는 가운데 어느새 10시를 넘긴 시간을 확인했다. 청와대의 하루는 길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약 1시간에 조금 못 미친 수석 비서관 회의가 끝났다. 간단한 보고들을 받고, 민생 경제 관련해서 
서민호 수석을 조금 다그쳤다. 경제가 상승 기조에 있다고는 해도, 정작 서민 경제는 여전히 어려
운 상황이었고 그에 대한 정부의 조치는 내가 봐도 부족했다. 지지율이 높은 것은 어쩌면 그래서 
더 부담스러웠다. 나라에서 제발 뭐라도 해주기를 바라는 애타는 열망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1층으로 내려가는 가운데 김서훈 정무 수석이 따로 정보를 제공했다.

"KN건설건 말입니다, 뇌물 수수건 관련해서 여당 측 의원들은 물론이고, 지금 대통령 측근까지 
연루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습니다. 미리 어느정도 손을 좀 써야할 것 같습니다"
"확실한거야? 측근 누구?"
"주계원 의원쪽이…"
"이런, 이런 한심한 자식 같으니! 하여간에 그 놈 자식은…"
"일단, 변 원장님과 이따 이야기를 더 자세히 나눠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알았어. 들어가봐. 수고했어. 아, 그리고 아까 그 이야기 나온 대표회담 말인데, 미리 좀 그림을
그려와 봐. 어느 정도 모양새가 좀 나와야 서로 속 있는 이야기를 하겠지"
"이미 최 비서관이랑 통해서 언론 쪽에 미리 소스 좀 뿌려놓으라고 했습니다"
"잘했어" 
 
집무실에서 이어진 변지훈 국정원장 대독 시간에 KN건설 비리 건에 대해 추가적인 이야기들을 
들었다. 하지만 어차피 지금 당장 어떻게 손을 쓰는 것보다는,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건을 보고 
대처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그건 잠시 덮어두기로 했다. 참, 그렇게 조심했건만 벌써부터 
측근 비리가 터지기 시작하다니 암담했다. 

이어 대북 정세와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국내 주요 용공 혐의자들 수사에 관한 보고를 받았다. 

"이제는 또 종교계가 문제구만"
"제일 파고들기 쉬운 쪽이기도 하죠. 한번 심어놓으면 안전하기도 하고"
"골치 아픈 문제야"


점심에는 국방위 소속 의원들과 오찬을 나누었다. 국방력 강화를 주요 공약으로 삼은 난 지난 정권
에서 추진되다 무산된 핵잠수함 재도입 건에 대해 의원들과 의견을 나누었다. 사실 이미 다 된 밥이
었다. 그저 예산 문제로 마지막에 밀렸을 뿐. 이웃 국가들에 비해 부족함이 없잖아 있는 해군이었기
에 아쉽게 무산된 핵잠 재도입건에 대해서는 정권 차원에서 강력하게 재추진 하는 것으로 야당 의원
들과도 의견을 어느 정도 모으는데 성공했다.

오찬을 마치고 뜨겁게 달아오른 머리를 식혔다. 먹은 밥이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힘들다. 노곤
하다. 그저 한숨 푹 잤으면 좋겠다 생각하던 차, 한기원 사회안정 수석이 집무실에서 대독을 원했다.



"왕년에 진관희라고 있었잖아. 그 사건 못지 않구만"
"어찌보면 그 선생만큼이나, 학부모들도 문제겠죠"
"큰일이야 큰일. 나라가 어찌되려고"

3주 전 어이없는 사건이 터졌다. 한 학부모 남편이 강남 모 중학교의 남자 교사를 간통 혐의로 고소
했는데 그 과정에서 그 남자 교사가 다른 학부모 78명과도 불륜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또 수사 과정에서 그가 찍은 성관계 영상이 유출되었고 강남의 명문 학교였던 만큼 유력가들의 부인
도 많아 교육계는 발칵 뒤집혔고 인터넷에서도  큰 이슈가 되었다.

한기원 사회안정 수석은 그 건에 대해 보고하며 어이없어하며 웃었다. 나 역시도.

날로 흉폭해지는 범죄와 억울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끝도 없었다. 이런 답답한 세상에 국민들은 분노
하고 있었다. 국민들의 분노는 그저 악플로 푸는게 전부인 상황 속에서 나는 그에 대한 대처로 사회
안전 위원회를 대통령 직속 기구로 만들었다.

세상을 발칵 뒤집은 대형 이슈부터 주말 밤 시사고발 프로에서 고발한 충격적인 사건, 인터넷 일각에
올라오는 소소한 '답답하고 억울한 이야기'들까지 그 모두를 최대한 빠르고 강력하게 대응하는 치안
안정 협력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대통령 공약으로 만들어진 이 위원회는 검경은 물론 정치 및 사
법 당국에 이르는 광범위한 협조를 통해 시원시원하고 빠른 해결을 이끄는데 큰 역할을 했다.

당장 "나쁜 짓을 한 놈은 법의 불벼락을 맞는다" 라는 원칙이 눈 앞에서 펼쳐지니 국민들 속이 조금
이나마 후련해지지 않을 리가 없는 것이다.

물론 초창기에는 행정부에서 사법부에 압력을 행사한다는 모양새 탓에 삼권분립 원칙에 대한 심각한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고 위원회의 초법적 권력화나 억울한 이를 구하려다 또 다른 억울한
이를 만들어 내는 역효과에 대한 불안도 있었지만 그 모두를 적절하게 해결해 낸 것이 바로 한기원
수석이었다. 그러니 나, 김박스 대통령이 그를 예뻐하지 않을 수 없다.



집무실의 시계는 어느덧 오후 3시를 넘겼고, 쉴새 없이 올라오는 보고와 중요한 검토건을 처리하느라
정신없이 또 시간이 흘렀다. 국민들은 아마 대통령이 이렇게 바쁜 하루하루를 보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당장 나 역시도 막상 집권하고 나니 놀랄 정도의 업무량이었으니.

60대 후반 심지어 70대를 훌쩍 넘겨서도 대통령직을 완수해 낸 역대 대통령들이 놀라울 지경이었다. 

 


"그래요, 퇴근합시다"

7시가 다 된 시간. 한 시간 '초과 근무'를 하기는 했지만 '일하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란
내 원칙에 따라 낙동강 하류 물대기 보 보완공사 건의 결재를 마지막으로 나 역시 펜을 내려놓았다. 

퇴근 시간 이후의 청와대는 놀라울 정도로 을씨년스럽다. 비서실, 부속실 식구들과 일부 운영 인력 정
도를 제외하면 경호 인력조차 내부 경호 인력은 얼마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 외곽 경호 인력이야 
어마어마 하지만. 한번은 그래서 내부 경호 인력을 크게 확대하려다가 허태환 비서실장이 반 농담으로 
했던

"로마 황제 중 적지 않은 수가 경호병력들에게 죽었습니다" 

라는 말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하기사 꼭 총이 아니더라도 나 정도는 그냥 목 꺾기 한방으로 죽일 수도
있는 사람들이 수두룩 하게 이 안을 돌아다닌다면 그것도 꺼림칙한 일. 그저 철통같이 보안 경계를 설
청와대 외부 경계 병력들을 믿기로 했다. 



"나 왔어"

관저로 돌아오자 아내는 "어서와요" 라면서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원래는 청와대에서 저녁까지 먹고
오지만, 오늘은 우리 부부의 25주년 결혼기념일. 

오늘만큼은 이 나라의 대통령이 아니라 그저 한 여인의 남편이고 싶었다. 아내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맛있네"

25년 전, 찌개 하나를 제대로 못 끓여서 설탕국, 소금국 끓이기 일쑤였던 그녀가 어느새  그 대단한 청
와대 요리사보다도 더 맛있게 내 입맛을 당기는 요리를 만들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니 문득 감회가 새롭
다. 

"고맙소"

밑도 끝도 없는 내 말에 그저 물끄러미 내 얼굴만 쳐다보던 아내가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고개를 끄덕
이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치찌개와 계란 말이, 김과 감자 볶음의 조촐한 저녁 식사였지만 세상 그 무엇
보다 맛있는 식사다.

골치 아픈 일이 산적한, 내일의 국무회의 따위는 생각조차 나지 않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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