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니 진태와 동거를 시작한지 어느새 8개월째다. 여전히 그는 동거를 시작하기 전과 마찬가지로
백수 상태고, 나 역시 취업을 하지 못한 채로 편의점 알바를 전전하고 있다.
"다녀올께"
"알지? 삼김, 참치 마요네즈는 빼고 다른 걸로 가져와"
"…응"
만화책을 보면서 누워 말을 건내는 진태. 머리 속이 복잡해진다. 집을 나와 편의점까지 천천히 걸어간다.
느린 내 걸음으로 10분 정도 걸리는 길. 걸으면서 생각하기로 했다.
다니던 공장을 관두고 두 달을 쉰 진태는 나에게 동거를 제의했다. 어차피 둘 다 자취를 하던 입장이고,
백수가 된 그의 입장에서 계속 나가는 월세가 부담스러웠으리라. 난 한참을 고민하다 알겠노라고 했다.
하지만 일이 잘 안 풀렸다. 그 즈음해서 내가 이직한 회사가 하루 아침에 망했다. 사장이 야반도주한 탓
에 퇴직 위로금 같은 것도 못 받았고, 실업급여 대상도 아니었다. 졸지에 우리 둘 다 백수가 되었다.
"나도 이제 백수야" 라는 말에 진태는 위로 대신 "그럼 이제 우리 뭐 먹고 살아?" 라는 답을 했다.
열심히 구직활동을 했지만 요즘 같은 취업 빙하기에 나이 29살, 전문대 중퇴에 변변한 자격증도 없는
여자를 뽑아줄 회사는 아무 곳에도 없었다. 3개월 동안의 구직활동에 실패한 나는 조심스럽게 진태
에게 말했다.
"우리…더 열심히 일 자리 알아보자"
내가 스무군데 넘게 이력서를 넣는 동안, 그는 겨우 전에 다니던 회사 근처의 다른 공장 두어 군데에
찾아가 보았을 뿐이다. 내심 불만이기도 했지만, 티를 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렇게 말한 것이
다. 하지만 진태는 고개를 저었다.
"아, 모르겠다. 대충 살지 뭐"
힘이 빠졌다. 당장 3개월간 집세와 생활비를 거의 내가 다 냈다. 진태는 가끔, 밥값에 보태는 정도.
한번은 물었다. 전에 살던 집 보증금은 어떻게 됐냐고. 하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짜증만
냈을 따름이었다. 니가 그 돈에 왜 참견이냐고. 답답해졌지만 나는 싸우기 싫어서 그냥 물러났다.
"누나, 안녕하세요"
"미안, 내가 늦었지?"
"아니에요. 누나, 저 약속이 있어서 먼저 급하게 가볼께요"
"어, 그래. 늦어서 미안. 다음에 내가 밥 쏠께"
"아니에요, 아니. 네!"
지난 달부터 생활비를 한 푼이라도 더 벌 생각에 야간 타임으로 전환했다. 앞 타임 알바 윤택이는 웃으며
에이프런을 벗어 넘긴다. 가벼운 한숨을 쉬며 오늘도 이렇게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한다. 언제까지 이런
삶을 살아야 하나. 난 정말 잘하고 있는 것일까. 친구들은 하나같이 다 진태와 헤어지라고 한다. 그저 나
혼자 붙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연애,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
"수고했어"
편의점 사장님과 교대하고 난 비닐 봉투에 남은 삼각 김밥 세 개를 챙겨서 집으로 향한다. 사장님은 자취
하는, 적당히 나이 먹을만큼 먹은 여자애가 편의점 알바를 한다고 이것저것 챙겨준다. 고맙지만 가끔은
부담스럽다. 그의 눈빛와 손길이, 그저 단순한 동정이나 배려에 의한 것만은 아니라고 느껴지기에.
"들어가보겠습니다"
"응, 그리고…"
"네?"
"흠, 아니야, 들어가 봐"
"…네"
손님이 들어오자 갑자기 말을 얼버무리는 것은 왜였을까.
"진태야, 일어나 봐"
"어? 어…쓰흡"
방 여기저기에 널부러진 만화책과 옷가지. 켜놓은 컴퓨터와 엉망이 되어버린 침대 이불과 이불보. 난
가벼운 한숨을 쉬며 방을 정리했다. 그리고 방 한 켠에 상을 펴고 삼각김밥 세 개를 정갈히 올려놓았
다.
"넌 안 먹어?"
"먹을게. 먹고 있어"
"어디보자. 오, 불닭에 오삼 불고기…좋아. 엑? 이건 참치 마요네즈? 진짜 맛있는건 혼자 먼저 먹고 온
거 아니야?"
장난스레 하는 그의 말이 오늘따라 거슬린다. 하지만 난 대꾸 대신 그저 이불보를 정리한다. 오늘따라
내 반응이 심상찮았는지 진태가 묻는다.
"무슨 일 있어?"
"아니"
"무슨 일 있는 거 같은데?"
"없어"
나의 말에 진태 역시 말이 없어진다. 그리고는 말 없이 삼각김밥 껍질을 까서 쩝쩝 먹기 시작한다. 방
에는 무거운 공기가 감돈다. 나는 창문을 열고, 이불을 갠다. 쩝쩝 거리는 소리가 듣기 싫다. 그리고
급기야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난 화장실로 뛰어갔다.
"…"
화장실 문을 잠그고 울었다. 그러다 깜빡 잠들었다. 문득 휴대폰 시계를 보니 두 시간이 넘었다. 문을
열고 나오자 방에는 진태가 없었다. 담배라도 피우러 갔나 확인해보니 휴대폰과 지갑 모두 없다. 상
위에는 반 쯤 먹다 반 삼각김밥 하나와, 남은 두 개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진태가 먹은 것은, 그와 나 모두가 제일 싫어하는 참치 마요네즈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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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 마요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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