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 반, 뜬금없는 문자에 대담하게 전화를 걸어오는 윤영. 하지만 그 목소리는 차분을 넘어 차가운
수준이다. 짜증났을 때 살짝 섞이는 경상도 사투리 억양까지 비친다.
"자나해서"
우물쭈물대다 한 대답에 그녀는 흠- 하는 한숨을 내쉬고 대답한다.
"안 자"
이윽고 내가 근황을 물으려던 찰나, 윤영이 바로 내 가슴에 비수를 꽂아버린다.
"오빠, 그리고 나 남친 생겼어"
허… 이런 씨팔.
"언제? 뭐하는 남잔데"
굳이 알아봐야 속만 쓰릴 질문을 했다. 그녀는 "그걸 오빠가 알아서 뭐하는데" 라는 건조한 질문으로 대답
한다. 뭐, 그거야 그렇지.
"그래, 요새도 운동은 잘 다녀?"
할 말이 없어지긴 했다만 그래도 그냥 끊는 것도 무안하다 싶어 별 흥미도 없는 질문을 또 던져본다. 허나
이번에도 윤영은 "오빠, 할 말 없으면 끊자" 라는 초 드라이한 대답만 돌려준다. 허허, 웃음이 흘러나온다.
"왜 웃어?"
내 허탈한 웃음에 그녀가 물었다. 뭐, 이유가 있나. 허탈함이지.
"그냥…우리가 계속 사귀었으면 내일이 우리 1주년이잖아"
그 말에 살짝 말이 없어진 윤영. 하지만 곧이어 "이젠 상관없잖아. 뭐 그런 걸 기억하고 그래. 여튼 됐지?
용건 없으면 끊는다?" 라며 대화를 수습한다. 나 역시 "그래, 잘 지내고, 그 남자한테 잘해줘" 라는 의미
없는 호구 대답 하나 던지고는 전화를 끊었다.
금연을 시작했건만 절로 담배가 땡겨오고 옥상 위에서 올려다보는 달빛은 오늘따라 구름에 싸여 보이지
도 않는다.
"벌써 남친을 사귀고 그러냐…. 나쁜 년 같으니"
알 수 없는 먹먹함과 허전함에 괜히 혼자 툴툴 대고 있노라니 스스로가 너무 한심스러웠다. 주머니에 손
찔러넣고는 다시 내려가노라는데 타이밍 좋게 문자가 날아온다.
[ 나 사실 아직 솔로야 ]
내 콧김이 다시 조금 거세지고, 나는 다시 그녀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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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데, 이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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