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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거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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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왔니? 대가리 텅텅 비우려고 그래?"

지식거래소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새미의 말을 무시하면서 존은 중얼거렸다.

"담배 안 끊으면 너는 비울 머리도 없게될거야"

그 말을 들은 새미는 입을 삐쭉거렸지만 존은 그녀를 무시하고 거래소 안으로 들어섰다. 흰 가운을 입은 레븐
지식거래소 뉴텍사스 샌더스-27 지점의 관리직원 한나가 존을 반겼다.

"어서오세요"

평일인데다 목요일이라 그런지, 거래소는 한가했다. 손님이라고는 저기 구석의 의자에서 머리에 추출기를 쓰고
부들부들 떨면서 지식을 반출하고 있는 할머니 한 명 뿐이었다. 지식추출기가 가동될 때의 그 우우우우웅하는
음산한 진동음만 아니라면 이 레븐 지식거래소의 분위기는 미용실이라고 해도 믿을텐데. 생각해보면 22세기를
바라보는 지금에 이르러서도 미용실은 몇 세기가 지나도록 거의 분위기가 바뀐 것이 없구나.

"여기 앉으세요"

존은 한나의 안내를 따라 좌측 벽 중앙의 자리로 안내받았다. 한나는 대뇌 파동측정용 헤드폰이 달린 반투명한
태블릿을 가져와 존에게 내밀었다. 존은 익숙하게 헤드폰을 쓰고 태블릿을 들여다보았다. 약 15초 정도 로딩이
끝나자 곧 존의 뇌 상태와 구석구석의 기억과 정보들이 스캔되었다.

"피로도가 조금 높네요"

벽에 걸린 모니터에도 비쳐지는 존의 대뇌 건강상태는 피로도 수치가 46%로 표시되고 있었다.

"어제 좀 늦게 자서… 하지만 55%까지는 괜찮잖아요"
"네, 다만 피로도가 40%가 넘으면 부하가 커져서 정보 추출할 때 뇌세포 손상 우려가 조금 있긴 해요. 아무리
뇌파동조방식이라고는 해도, 결국 뇌를 스캔하는 과정에서 뇌세포 활동에 자극을 주게 되니까"
"상관없어요"
"네, 그럼 어떤 것을 거래하시겠습니까?"
"심층기억으로요, 5페타 정도만"
"네, 심층기억, 5페타 분량을 추출하겠습니다"

한나는 존의 머리에서 헤드폰을 벗긴 후 태블릿을 옆의 작은 받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저기로 걸어가
지식추출기를 이쪽으로 밀고 왔다.

"자아, 목을 이렇게 뒤로 젖히시고"

목 부분만 뒤로 젖혀지는 의자를 부드럽게 젖히자 자연스럽게 내 목도 젖혀졌다. 그리고는 혹시라도 코피가
흘러나오지 않도록 녹색 망토를 앞으로 두르게 한 후, 한나는 내 코 인중 부근을 알코올로 닦았다. 이윽고 내
팔에 주사를 한 대 놓고, 두 가닥의 가늘고 긴 전선을 내 코 안으로 밀어넣었다. 

목을 뒤로 젖혀 천장을 바라보게 된 가운데, 지식추출기 상단에 REVEN이라고 크게 적힌 로고가 보였다. 그
아래 생산년도로 보이는 2081이라는 글자가 항상 좀 신경이 쓰였지만 한나의 말에 따르면 30년이 수명이라니
11년 밖에 안 쓴 이 기계는 이런 작은 지점 물건치고는 비교적 신형 축에 속한다나. 하지만 아주 가끔, 지식
추출할 때 아찔하게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아찔하게 가끔 머리 깊은 곳이 따끔한 것은, 이 오래된 기계 탓이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있다. 






                                                          지식거래소




                                                                                                         written by stylebox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중력'이라는 개념을 떠올린 것이 과연 뉴턴이 처음이었을까. 아닐
것이다. 그 이전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중력이라는 개념을 생각해봤겠지만 그들은 과학자가 아니다
보니까 그런 발상을 그저 '허튼 생각'으로 치부하고 곧 기억에서 지워버렸을 것이다.

그렇게 소멸되고 사장된 '위대한 아이디어'는 얼마나 많을까. 또 얼마나 많은 참신하고 혁신적인 예술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사그라 들었을까. 또 얼마나 많은 드라마틱한 스토리들이 세상의 빛을 보지 못
하고 누군가의 머릿 속에서만 그저 명멸하다 사라져버렸을까.


2027년, 인간의 사고체계를 처음으로 '실용적인 수준'으로 전자기학적 표현이 가능하게 되었다. 처음엔
그저 인간의 뇌파를 분석해 감정과 메세지를 모니터에 패턴으로 표현해내는 정도에 그쳤지만, 채 10년이
되지 않아 그 패턴의 분석까지도 이뤄져(이 모든 것이 양자컴퓨터의 개발 덕분이다) 드디어 인류는 기초
적이기는 하나 뇌파를 분석해 '누군가의 생각'을 컴퓨터로 읽어내는데 성공하기에 이른다.

비슷한 시기, 러시아에서는 뇌에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그의 과거 기억이나 생각, 발상을 추출하는 기술
개발에 성공한다. 처음에는 군사적, 정치적 목적으로 쓰이던 기술이나 곧 그 기술은 상업화되어 의료현장
에서 쓰이기 시작한다. 그 이후 근 10여년간 노벨 의학상이 관련 학문 연구에서 나왔을 정도이니 그것이
얼마나 혁명적인 신기술이었는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치매 환자의 기억 백업용도로 쓰이던 이 기술은 그러나 곧 미국의 언론재벌 무퍼트 러덕에 의해 또 한번
'누군가의 기억'이 갖는 상업적 가치를 주목받게 된다.

이제 더이상 누군가의 과거를 뒤지기 위해서 낡은 졸업앨범이나 온라인 기록을 뒷조사 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그 사람 주변인의 '기억'을 살 수만 있다면 훨씬 더 적나라하고 많은 양의 정보를 얻을 수가 있었
으니까. 무퍼트 러덕은 '바이 메모리즈' 라는, 아주 적나라한 이름의 '새로운 언론'을 설립했다.

이것이 사회에 가져온 충격은 엄청났다.

거의 모든 공인들의 사생활들이 적나라하게 발가벗겨졌다. 물론 기억이란 완벽한 것이 아니다. 대상에
대한 감정에 의해 가감되기도 하고, 때로는 전혀 엉뚱한 내용이 덧붙여지기도 하고, 알아보기 힘들 정도
로 희미해져 텍스트화 하기조차 어려운 기억도 많았, 아니 그게 사실 거의 대부분이었다.

또, 초창기에는 랜덤하게 기억과 정보를 추출해냈기에 쓸만한 정보를 골라내는 것이 어려웠다.

하지만 얼마 안되는 '쓸만하고도 선명한 기억'들이 갖는 위력은 대단했고, 보통 그런 기억일수록 아주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들이 많았다. 단 한 장의 스틸샷 메모리이지만 그것 때문에 무수히 많은
정치인들이 낙마했고, 또 무수히 많은 여자 연예인들이 자살했다.

'조작되고, 거짓된 기억'에 의해 소송도 끝없이 벌어졌다. 물론, 꼭 그렇게 '나쁜' 용도로만 쓰인 것은
아니었다.

한 인간의 기억 속에 담긴 무수히 많은 양의 정보는 다방면에서 활용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고, 특히 천재
예술가나 석학의 뇌에 담긴 정보들은 그 활용도가 거의 무궁무진했다. 물론 초창기에는 자신의 지식을
헐값에 팔아버린다는 것에 대한 자괴감과, 은밀한 정보까지 흘러나가는 것을 우려하여 일부 반 민주주의
국가를 제외하고서는 '고급인력'의 지식들을 얻어내는 것이 어려웠지만…

기술이 점차 더욱 발전해 안정화되고, 본인의 동의를 얻은 특정 지식만을 추출하는 기술이 자리를 잡은
이후부터는 구태여 꼭 작품화 시키지 않더라도 아이디어 단계에서 돈을 벌 수 있으니 지식인들이 먼저
지식을 팔기 시작했고, 기업과 부자들은 고급인력들의 지식과 기억들을 미친듯이 사들이기 시작했다.

각 기업들은 우후죽순처럼 지식거래소를 설립했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자신의 기억과 지식과 정보를
팔았다. 대기업들은 일반인들의 하찮은 기억까지도 가리지 않고 마구 사들였다. 그 정보들을 적당히 잘
추려서 가공하면 전혀 의외의 조합이나 혁신적인 발상까지도 가능했으니까. 정말로 아는 것이 힘이었
으며 배워서 남을 주는 것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수백, 수천만, 수억명이 생각한, 그 몇 천억배에 달하는 '아이디어들'이 체계적으로 조합되기 시작하자
그 시너지 효과는 엄청났다.

지식거래소가 자리잡은 15년간 이룩한 인류의 발전은 그 이전의 150년보다 위대한 것이었다. 우주
대통합이론이 완성되었고, 수학의 3대 난제가 풀렸다. 이제는 사장된 것, 실전된 것이라고 전해진
무수히 많은 노하우와 지식들이 되살아났고, 근현대사의 역사가 그전의 교과서를 소설책이라고 해도
단언해도 좋으리만치 바뀌었으며 르네상스 이래 인류 역사 최대의 문화부흥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 화려한 성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장기간 지식추출에 노출된 사람들에게서 치매 현상을 비롯하여 다양한 뇌 질환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
이었다. 뇌 판독용으로 흘려보내는 극미량의 전류가 뇌세포에 악영향을 끼친 것이었고, 10년 이상 장기
노출된 일부 사람들에게서 각종 뇌질환 등 부작용이 일어난 것이었다.

사실 문제는 별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얼마든지 보완이 가능한 문제였고 제한적인 문제였다. 그러나 
이미 '지나치게 많이' 지식추출기의 극미세 전류에 노출된 사람이 '지나치게 많았다'. 그게 문제였다.

지식거래소가 개장한지 10여년이 지나자 서서히 거품이 꺼져갔고, 생각보다 사람들이 가진 발상이나
정보라는 것이 그리 다양하지 않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지식계층이 아닌 일반 서민들이 가진 정보나
지식이라는 것은 이제 더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거래소에서는 일반 서민들의 정보 단가를 후려치기
시작했다.  

사실 그 후려친 단가조차도, 다행히 부자들 사이에서 '서민들의 하루하루', '나른한 일상'에 대해 관심
갖는 것이 교양, 유행처럼 번졌기에 최소한의 수요가 유지될 수 있었기 때문이지 아니었다면 이미
일찌감치 서민들에 대한 지식거래는 중단되었을 것이다.

그런 만큼 '지식제공' 에 대한 단가는 날이 갈수록 뚝뚝 떨어졌다. 지식거래소가 처음 개장된 2054년,
지식추출 1회(추출 데이터량 약 9페타)당 주어지던 40만 달러의 대가(당시 기준으로 소형차 한 대를
살 수 있던 돈)는,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후에는 하루 일당의 반에도 채 못 미치는 2백 달러에 그쳤다.

그래도 서민, 빈민 입장에선 아쉬운 돈이었다. 집안의 가장들, 어머니들은 틈틈히 지식거래소에서
그렇게 자신의 기억과 일상을 습관적으로 팔았고, 그것이 결국 오늘날 서민층 사이에서 엄청난 수의
뇌질환 환자들을 유발시킨 것이었다. 

천문학적인 소송이 줄을 이었고, 거의 모든 지식거래 전문업체가 문을 닫았다. 뇌전류방식이 아닌
뇌파동조리딩 방식의 미국의 오하이社, 아시아에서는 레븐社 정도가 살아남았지만-엄밀히 말해서
이론적인 안정성은 이쪽이 훨씬 높다고 할 수 있지만, 시민단체에서는 이 방식 역시 지식추출과정
에서 뇌세포와 시냅스에 어떤 식으로든 자극을 주게 되므로 위험은 마찬가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미 지식거래업은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그로부터 또 20년이 지난 지금, 오늘도 빈민층은 '언젠가 
지식추출이 뇌에 장애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걱정하면서도 얼마간의 푼돈을 위해 두 눈을 감고
마취 주사와 함께 코에 그 이물감 나는 가느다란 두 줄의 코드를 꽂은 채 '어지럽지만 내용을 기억할
수 없는' 어지러운 꿈을 꾸는 불편한 잠을 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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