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둘러 나온다고 나왔는데도 이미 고속도로는 꽉 막힌지 오래다. 차 안 분위기도 꽉 막힌 고속도로만큼이나
숨이 막힐 지경이다.
"너무해"
마누라는 아까부터 이미 골이 날대로 나있다.
"해도 너무해"
나는 무어라 대꾸하는 대신 그저 묵묵히 도로교통 상황 방송만 듣고 있다. 뒷좌석의 승찬, 혜진이도 그저
말없이 휴대폰만 쪼물닥 거리고 있다.
"당신은 승질도 안 나? 아니 그동안 시아주버님이 말아먹은 재산이 도대체 얼마야? 그 되도 않는 사업은
맨날 해서 다 까먹고, 이제 정말이지 그 재산 다 까먹고 딱 아버님 집이랑 그 앞에 땅 조금 뿐인데…
하, 참나. 아니 그렇다고 시아주버님이 아버님을 모시는 것도 아니고, 아니 어떻게 아버님은 그거마저도
큰집에 다 주겠다고 내 진짜 속이 터져서. 맨날 명절이고 하면 기름 냄새 혼자 다 맡아가며 나 혼자 아주
집안 맏며느리 역할까지 다 한 나는 뭐냐고. 증말이지 단 한번을 내 생각을 했으면 이렇게까지 모질지는
않을거야. 증말 아버님도 해도 해도 너무해. 에이고, 부모야 그렇다고 쳐도, 지 마누라 고생하는건 모르고
그걸 또 그렇다고 가만히 맨재기처럼 듣고만 있는 등신이 하기야 더 등신이지. 남들은 아무리 형제간이래
도 지 챙길 몫은 어떻게든 못 챙겨가서 안달인데 이거는 세상천지에…으이구 내 팔자야"
이번 설, 아버지는 폭탄 발표를 하셨다. 만약 자신이 죽고 나면, 집과 아버지 명의로 되어있는 집 근처
논밭 700평을 형에게 주겠다는 것이다.
'뭐…'
그동안 사업이다 뭐다, 아니 그래 그렇게 사업을 벌려봤으면 그 중에 한번은 성공을 하고도 남았겠건만
어쩌면 그리도 못났는지 그저 죄 말아먹기만 일쑤에, 결국에는 이혼까지 하고 지금은 아들 형찬이랑 둘이
산다. 아무리 형이라도 참 깝깝시려운 양반이다. 차라리 남이면 시원하게 욕이라도 퍼붓고 모르는 척
하련만.
이번에 또 형은 그저 홀로 내려왔다. 하고 온 행색을 보아하니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나 모르겠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게 참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형과, 나, 그리고 우리 마누라까지를 모아놓고 하시는 말씀이…
"흥민이 니는 그래도 죠은 회사도 대니고, 이제 자리를 잡을만큼 잡은거 아이가? 니도 마 욕심이야 나겠
지만서도, 이래 빙시같은 꼬라지로 사는 니 형 생각을 쫌 니가 해줬음 좋겄다"
솔직히 생각도 해본 적 없다. 아버지 재산이라고 해봐야 뭐 그냥 말년에 노후대책으로나 생각을 했을 뿐
이지 '유산'이라는 개념에서는 정말로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아버지도 이제는 칠순을 넘겼으니
슬슬 그 생각을 안 할 수는 없고, 그래도 맏이가 저리도 빌빌대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니 그 마음이야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까짓거 그래, 뭐 돈도 안 되는 전답 다 팔아야 거 몇 푼이나 되겠는가. 하지만 아내의
입장 역시도 이해는 간다. 마누라는 여전히 궁시렁 댄다.
"아 그래, 나도 자식 가진 입장에서, 아픈 손가락 있으면 그 아픈 손가락에 붕대라도 감아주고 싶은 그 마음
이해한다고. 근데 다른 자식은 자식도 아니야? 아니 생전에 그 많은 재산, 단 한번을 손에 대보지도 못하고
그저 바보같은 빙충이 하나가 다 까먹는 동안에…"
"그만해"
나는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내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형. 어릴 때는 세상에 그보다 더 똑똑한 사람은 없는 줄만 알았다. 중학교 다닐 때까지 단 한번을 1등을
놓쳐 본 적이 없고, 면에 있는 고등학교에 가서도 등수가 떨어져 본 역사가 없는 사람이었다. 다들 동네
에서도 수재가 나왔다고 했다. 항상 아버지는 형을 끔찍히도 위했고, 가끔은 나에 대해 소홀한 부모님에
대해 서운했지만 나 역시도 서운한 마음보다는 자랑스러운 마음이 더 컸다.
고려대 법대에 차석으로 입학했을 때에는 아부지가 동네 입구에 현수막을 걸어놓고 돼지도 아니고 소를
잡아다가 잔치를 벌이고 좋아했더랬다. 화전으로 밭을 일구고 돌밭을 그냥 손톱이 다 빠질 지경으로 일을
해서 기름진 땅으로 만든 그 억센 아버지 어머니다. 그 고된 농사일 마치고 와서는 또 남들 세 배는 더
많이 키우는 소에다가… 남들이 다 서울로 서울로 하면서 떠나면 그 땅을 또 다 끌어다 인수해서 또 땅을
일구고 세상에 우리 읍면에서도 그렇게 죽어라 일만 하는 사람은 도 역사에도 없다고 했다.
처음 아버지는, 집안에 배운 놈은 하나만 있어도 된다며 나는 그저 일이나 하라고 했다. 나 역시 그러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잘난 형'은 대학에 가면서 변했다.
민주주의니 뭐니 시위와 데모나 하고 다닐 때부터 불안불안하더니만 급기야는 학교까지 자퇴했단다.
아니 그래, 다 좋은건데, 남들은 다 지 앞가림 하면서 하는 거를 왜 지는 지 인생길까지 포기해가며 그래
매달린단 말인가. 기가 찰 일이다.
아버지는 형의 자퇴 소식에 어찌나 충격을 받으셨는지 생전에 일을 단 하루를 쉬어본 적 없는 양반이
일주일도 넘게 그냥 방에서 시름시름 앓기만 했더랬다. 어머니는 울며불며 형에게 밤낮으로 전화를 걸어
설득해보았지만 형의 뜻은 굳건했다. 나는 형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 큰 뜻은 지 혼자 품고 있단 말인가. 남들은 뭐 좋은 세상 안 만들고 싶어서 안 만든단 말인가. 다
뜻이 있어도 지 앞 가림은 해가면서 해야할 것 아닌가. 아니 그래 똑똑하고 잘났으면 지 앞가림은 해가
면서 하든지, 이도저도 아니고 그냥 잘 다니던 좋은 학교 때려치우고 무작정 빨간줄 그을 각오로다 아예
데모꾼이 되겠다니 세상 천지에 그걸 누가 이해해준단 말인가.
아니 그래, 하다못해 그래 데모꾼 하겠다며 끝까지 뭐 데모꾼을 했더라면 지금쯤은 정치라도 하고 있던
지, 이건 뭐 빙신 또라이도 아니고 1년 남짓 그러고 다니더니만 도대체 뭔 사고를 친건지 아니면 어디서
뭐 못볼 꼴이라도 봤는지 어쨌는지 겁 먹은 갱생이마냥 대뜸 시골로 피신해 내려와 그렇게 2년을 허송
세월을 했다.
아버지 역시도 도저히 안되겠다 싶었는지 "니 형은 아무래도 글러먹은 갑다" 하면서, 그때까지는 내가
고등학교 졸업까지만 시켜달라는 것도 반대하더니 외려 나까지 서울 유학을 보내주셨다. 그리고 형이
인생 조지는 꼴을 똑똑히 지켜봤던 바, 나는 그 '허튼 짓거리'를 해본 적 없이 독하게 공부, 무사히 대학
을 졸업하고 이제 와서는 어디 가서도 꿀릴 일 없는 '번듯한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근데 아빠, 할아버지 재산이 얼마쯤 되는데 그래?"
"…으른들 이야기 하는데 끼지말고 잠이나 자"
힐끔 룸미러로 보니 큰 딸 혜진은 그저 말없이 창문만 바라보고 있고, 승찬은 내 핀찬에 입만 삐쭉
하더니 다시 휴대폰만 쭈물딱 거린다.
"아니, 당신이 잘 말해봐. 이거는, 법적으로도 이게 유산을 나누면…"
"아 그만 좀 하라고"
정권이 바뀌기까지 몇 년을 그렇게 더 허송세월하던 형은 그때부터 온갖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아마 말은 안 해도, 그 천재니 수재니 하는 소리 듣던 본인이 온 동네에서 정신나간 놈 취급받기 시작하고
무사히 학교졸업을 마친 지 동기들이 하나둘씩 자리잡기 시작했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초조했겠는가.
하다못해 평생을 그저 무시하던 지 동생까지도 지보다는 낫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었으니.
'니미 씨팔'
하지만 사업이라는게, 책상물림만 죽어라 하다 데모 몇 번 해본게 전부인 양반이 하루 아침에 잘 해낼 리
없는 것이고 하는 족족 손만 댔다하면 죄 망하는 것이다. 하다못해 아버지가 그런 식으로 사업할 거면
썩 때려치우고 농사나 지어라, 했지만 그때부턴 아예 사기까지 당하고 다니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내참 급기야는 그 시골에서 비료 사업까지 실패하고서는 지도 안 되겠다 싶었는지 잠깐 잠잠하더니만
어디서 여자라고 데려오기는 했는데 천하에 호구 새끼가 어디 만날 여자가 없어서 다방 레지한테 홀랑
빠져가지고선 애부터 만들어왔다.
그게 형수다. 온갖 사치는 다 부리고, 나중에는 읍내에 작게 금방을 내달라고 조르지를 않나 그러더니만
결국에는 그것까지 말아먹고 그 금방 싹 정리해서 혼자 어디로 튀어버린게 그 끝이다. 뭐 그동안 평생
토록 쌓인 고생의 대가인지도 모르지만 내 보기에 어머니가 시름시름 앓다 돌아가신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이후로는 지도 더이상은 사업한다 지랄 안하고 애 데리고 서울로 훌쩍 떠나더니만 가끔씩 우리 집에
애만 맡겨두고 전국을 떠돌며 막일이나 하다 요 근 몇 년 전에서야 간신히 사람 일다운 일을 시작한게
우리 집구석 역사다.
"명절이면 나는 얼마나 힘든 줄 알아? 남들은 며느리에 딸에 대여섯 명이 덤벼붙어도 힘들다고 그 고생
타령을 하는 차례상, 제삿상을 나 혼자 다 차리지, 집구석에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여자라고는 나 하나니
명절마다 내려가서는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고 오고. 에휴, 증말이지 사람은 이게 잘해주면 몰라, 귀한
줄을 몰라. 아버님이 진짜 요만큼이라도 내 생각을 했으면 이럴 수가 없는거야 이럴수가"
마누라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래, 세상 천지에 그 고생을 한 마누라를 내가 왜 모르겠는가.
생산기지 관리사무직으로 있을 때 만난 생산직 여종업원이던 마누라는, 배운 것은 넉넉치 않아도 참
현명한 여자였다. 그렇게 스물 넷 꽃다운 나이에 나한테 시집와 애 둘 낳고, 그 독살맞은 형수 밑에서
시집살이 아닌 시집살이 하고, 그 년이 집 나간 이후에는 형찬이까지 몇 년씩 대신 키우고…
아 마누라라고 그 몇 푼이 한다고 아버지 유산이 탐나겠는가. 생전에 그걸 말을 올린 적이 없는 여자다.
하지만 그녀가 서운한 것은, 자기 그 힘든 것에 대해 아무런 대가도 없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서운했던
것이겠지.
"으이구 으이구. 내가 가슴에 아주 홧병이 난다 홧병이 나"
마누라는 내가 대꾸를 하지 않자 그냥 아예 눈을 감고 억지로 잠을 청한다. 씁쓸하지만 어쨌거나 일단
그렇게라도 조용해졌다. 그저 미안하고 답답하다.
그나저나 형은 집에 잘 가고 있으려나. 해가 다르게 늙어가는 형의 모습을 보노라면 화가 났다가도
마음이 안 좋다. 나야 이렇게 투닥댈 마누라라도 있지만 형은…
"흥민아, 니는 형이 뭐 됐음 좋겠노?"
"판검사 해라. 그기 믓찌지 않나?"
"판검사? 와?"
"나쁜 놈들 벌주고 증의를 세우는 일이 을매나 므찌노?"
"흥민아, 근데 증의라는게, 생각보다 쉽지 않타. 그라고 내는 사실 증의가 먼지도 잘 모르겄다"
"내도 아는걸 형은 와 모르노?"
"증의가 먼데?"
"나쁜 놈 벌주고 우리 편이 이기는게 증의 아이가. 증의가 승리하는거, 그게 증의다"
"그게 무신 증의란 말이고? 편들어주는기재. 우리 편이라고 꼭 착한 놈이란 법이 으딨노? 내는 니가 착한 일 하면
편들어주고, 아이면 안 들어줄끼다"
"됐다~ 그럼 집어치뿌라. 내 편이 아닌데 무슨 증의란 말이가?"
"니는 니야말로 증의가 먼지 모르네"
"됐다 밥이나 무러가자"
"하~ 니 삐칬나?"
"됐~따"
"흥민아, 이 형은…"
"형 문제가 먼지 아나? 형은, 똑똑하기는 똑똑한데, 남 생각을 할줄 모린다. 형 생각만 하는게 문제인기라"
"그게 먼 소리고?"
"됐다"
"흥민아, 미안타. 이제 밥이나 무러가자"
"손 놔라"
"흥민아~"
"그럼 내 뒤 따라 오라, 내 먼저 갈끼다"
"아 뛰지마라"
"내 잡으면 용서해줄끼다"
"아르따 내가 눈 감고 뛰도 니보다는 빠를끼다"
"아 우끼는 소리하네"
…
숨이 막힐 지경이다.
"너무해"
마누라는 아까부터 이미 골이 날대로 나있다.
"해도 너무해"
나는 무어라 대꾸하는 대신 그저 묵묵히 도로교통 상황 방송만 듣고 있다. 뒷좌석의 승찬, 혜진이도 그저
말없이 휴대폰만 쪼물닥 거리고 있다.
"당신은 승질도 안 나? 아니 그동안 시아주버님이 말아먹은 재산이 도대체 얼마야? 그 되도 않는 사업은
맨날 해서 다 까먹고, 이제 정말이지 그 재산 다 까먹고 딱 아버님 집이랑 그 앞에 땅 조금 뿐인데…
하, 참나. 아니 그렇다고 시아주버님이 아버님을 모시는 것도 아니고, 아니 어떻게 아버님은 그거마저도
큰집에 다 주겠다고 내 진짜 속이 터져서. 맨날 명절이고 하면 기름 냄새 혼자 다 맡아가며 나 혼자 아주
집안 맏며느리 역할까지 다 한 나는 뭐냐고. 증말이지 단 한번을 내 생각을 했으면 이렇게까지 모질지는
않을거야. 증말 아버님도 해도 해도 너무해. 에이고, 부모야 그렇다고 쳐도, 지 마누라 고생하는건 모르고
그걸 또 그렇다고 가만히 맨재기처럼 듣고만 있는 등신이 하기야 더 등신이지. 남들은 아무리 형제간이래
도 지 챙길 몫은 어떻게든 못 챙겨가서 안달인데 이거는 세상천지에…으이구 내 팔자야"
이번 설, 아버지는 폭탄 발표를 하셨다. 만약 자신이 죽고 나면, 집과 아버지 명의로 되어있는 집 근처
논밭 700평을 형에게 주겠다는 것이다.
'뭐…'
그동안 사업이다 뭐다, 아니 그래 그렇게 사업을 벌려봤으면 그 중에 한번은 성공을 하고도 남았겠건만
어쩌면 그리도 못났는지 그저 죄 말아먹기만 일쑤에, 결국에는 이혼까지 하고 지금은 아들 형찬이랑 둘이
산다. 아무리 형이라도 참 깝깝시려운 양반이다. 차라리 남이면 시원하게 욕이라도 퍼붓고 모르는 척
하련만.
이번에 또 형은 그저 홀로 내려왔다. 하고 온 행색을 보아하니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나 모르겠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게 참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형과, 나, 그리고 우리 마누라까지를 모아놓고 하시는 말씀이…
"흥민이 니는 그래도 죠은 회사도 대니고, 이제 자리를 잡을만큼 잡은거 아이가? 니도 마 욕심이야 나겠
지만서도, 이래 빙시같은 꼬라지로 사는 니 형 생각을 쫌 니가 해줬음 좋겄다"
솔직히 생각도 해본 적 없다. 아버지 재산이라고 해봐야 뭐 그냥 말년에 노후대책으로나 생각을 했을 뿐
이지 '유산'이라는 개념에서는 정말로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아버지도 이제는 칠순을 넘겼으니
슬슬 그 생각을 안 할 수는 없고, 그래도 맏이가 저리도 빌빌대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니 그 마음이야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까짓거 그래, 뭐 돈도 안 되는 전답 다 팔아야 거 몇 푼이나 되겠는가. 하지만 아내의
입장 역시도 이해는 간다. 마누라는 여전히 궁시렁 댄다.
"아 그래, 나도 자식 가진 입장에서, 아픈 손가락 있으면 그 아픈 손가락에 붕대라도 감아주고 싶은 그 마음
이해한다고. 근데 다른 자식은 자식도 아니야? 아니 생전에 그 많은 재산, 단 한번을 손에 대보지도 못하고
그저 바보같은 빙충이 하나가 다 까먹는 동안에…"
"그만해"
나는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내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형. 어릴 때는 세상에 그보다 더 똑똑한 사람은 없는 줄만 알았다. 중학교 다닐 때까지 단 한번을 1등을
놓쳐 본 적이 없고, 면에 있는 고등학교에 가서도 등수가 떨어져 본 역사가 없는 사람이었다. 다들 동네
에서도 수재가 나왔다고 했다. 항상 아버지는 형을 끔찍히도 위했고, 가끔은 나에 대해 소홀한 부모님에
대해 서운했지만 나 역시도 서운한 마음보다는 자랑스러운 마음이 더 컸다.
고려대 법대에 차석으로 입학했을 때에는 아부지가 동네 입구에 현수막을 걸어놓고 돼지도 아니고 소를
잡아다가 잔치를 벌이고 좋아했더랬다. 화전으로 밭을 일구고 돌밭을 그냥 손톱이 다 빠질 지경으로 일을
해서 기름진 땅으로 만든 그 억센 아버지 어머니다. 그 고된 농사일 마치고 와서는 또 남들 세 배는 더
많이 키우는 소에다가… 남들이 다 서울로 서울로 하면서 떠나면 그 땅을 또 다 끌어다 인수해서 또 땅을
일구고 세상에 우리 읍면에서도 그렇게 죽어라 일만 하는 사람은 도 역사에도 없다고 했다.
처음 아버지는, 집안에 배운 놈은 하나만 있어도 된다며 나는 그저 일이나 하라고 했다. 나 역시 그러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잘난 형'은 대학에 가면서 변했다.
민주주의니 뭐니 시위와 데모나 하고 다닐 때부터 불안불안하더니만 급기야는 학교까지 자퇴했단다.
아니 그래, 다 좋은건데, 남들은 다 지 앞가림 하면서 하는 거를 왜 지는 지 인생길까지 포기해가며 그래
매달린단 말인가. 기가 찰 일이다.
아버지는 형의 자퇴 소식에 어찌나 충격을 받으셨는지 생전에 일을 단 하루를 쉬어본 적 없는 양반이
일주일도 넘게 그냥 방에서 시름시름 앓기만 했더랬다. 어머니는 울며불며 형에게 밤낮으로 전화를 걸어
설득해보았지만 형의 뜻은 굳건했다. 나는 형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 큰 뜻은 지 혼자 품고 있단 말인가. 남들은 뭐 좋은 세상 안 만들고 싶어서 안 만든단 말인가. 다
뜻이 있어도 지 앞 가림은 해가면서 해야할 것 아닌가. 아니 그래 똑똑하고 잘났으면 지 앞가림은 해가
면서 하든지, 이도저도 아니고 그냥 잘 다니던 좋은 학교 때려치우고 무작정 빨간줄 그을 각오로다 아예
데모꾼이 되겠다니 세상 천지에 그걸 누가 이해해준단 말인가.
아니 그래, 하다못해 그래 데모꾼 하겠다며 끝까지 뭐 데모꾼을 했더라면 지금쯤은 정치라도 하고 있던
지, 이건 뭐 빙신 또라이도 아니고 1년 남짓 그러고 다니더니만 도대체 뭔 사고를 친건지 아니면 어디서
뭐 못볼 꼴이라도 봤는지 어쨌는지 겁 먹은 갱생이마냥 대뜸 시골로 피신해 내려와 그렇게 2년을 허송
세월을 했다.
아버지 역시도 도저히 안되겠다 싶었는지 "니 형은 아무래도 글러먹은 갑다" 하면서, 그때까지는 내가
고등학교 졸업까지만 시켜달라는 것도 반대하더니 외려 나까지 서울 유학을 보내주셨다. 그리고 형이
인생 조지는 꼴을 똑똑히 지켜봤던 바, 나는 그 '허튼 짓거리'를 해본 적 없이 독하게 공부, 무사히 대학
을 졸업하고 이제 와서는 어디 가서도 꿀릴 일 없는 '번듯한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근데 아빠, 할아버지 재산이 얼마쯤 되는데 그래?"
"…으른들 이야기 하는데 끼지말고 잠이나 자"
힐끔 룸미러로 보니 큰 딸 혜진은 그저 말없이 창문만 바라보고 있고, 승찬은 내 핀찬에 입만 삐쭉
하더니 다시 휴대폰만 쭈물딱 거린다.
"아니, 당신이 잘 말해봐. 이거는, 법적으로도 이게 유산을 나누면…"
"아 그만 좀 하라고"
정권이 바뀌기까지 몇 년을 그렇게 더 허송세월하던 형은 그때부터 온갖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아마 말은 안 해도, 그 천재니 수재니 하는 소리 듣던 본인이 온 동네에서 정신나간 놈 취급받기 시작하고
무사히 학교졸업을 마친 지 동기들이 하나둘씩 자리잡기 시작했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초조했겠는가.
하다못해 평생을 그저 무시하던 지 동생까지도 지보다는 낫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었으니.
'니미 씨팔'
하지만 사업이라는게, 책상물림만 죽어라 하다 데모 몇 번 해본게 전부인 양반이 하루 아침에 잘 해낼 리
없는 것이고 하는 족족 손만 댔다하면 죄 망하는 것이다. 하다못해 아버지가 그런 식으로 사업할 거면
썩 때려치우고 농사나 지어라, 했지만 그때부턴 아예 사기까지 당하고 다니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내참 급기야는 그 시골에서 비료 사업까지 실패하고서는 지도 안 되겠다 싶었는지 잠깐 잠잠하더니만
어디서 여자라고 데려오기는 했는데 천하에 호구 새끼가 어디 만날 여자가 없어서 다방 레지한테 홀랑
빠져가지고선 애부터 만들어왔다.
그게 형수다. 온갖 사치는 다 부리고, 나중에는 읍내에 작게 금방을 내달라고 조르지를 않나 그러더니만
결국에는 그것까지 말아먹고 그 금방 싹 정리해서 혼자 어디로 튀어버린게 그 끝이다. 뭐 그동안 평생
토록 쌓인 고생의 대가인지도 모르지만 내 보기에 어머니가 시름시름 앓다 돌아가신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이후로는 지도 더이상은 사업한다 지랄 안하고 애 데리고 서울로 훌쩍 떠나더니만 가끔씩 우리 집에
애만 맡겨두고 전국을 떠돌며 막일이나 하다 요 근 몇 년 전에서야 간신히 사람 일다운 일을 시작한게
우리 집구석 역사다.
"명절이면 나는 얼마나 힘든 줄 알아? 남들은 며느리에 딸에 대여섯 명이 덤벼붙어도 힘들다고 그 고생
타령을 하는 차례상, 제삿상을 나 혼자 다 차리지, 집구석에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여자라고는 나 하나니
명절마다 내려가서는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고 오고. 에휴, 증말이지 사람은 이게 잘해주면 몰라, 귀한
줄을 몰라. 아버님이 진짜 요만큼이라도 내 생각을 했으면 이럴 수가 없는거야 이럴수가"
마누라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래, 세상 천지에 그 고생을 한 마누라를 내가 왜 모르겠는가.
생산기지 관리사무직으로 있을 때 만난 생산직 여종업원이던 마누라는, 배운 것은 넉넉치 않아도 참
현명한 여자였다. 그렇게 스물 넷 꽃다운 나이에 나한테 시집와 애 둘 낳고, 그 독살맞은 형수 밑에서
시집살이 아닌 시집살이 하고, 그 년이 집 나간 이후에는 형찬이까지 몇 년씩 대신 키우고…
아 마누라라고 그 몇 푼이 한다고 아버지 유산이 탐나겠는가. 생전에 그걸 말을 올린 적이 없는 여자다.
하지만 그녀가 서운한 것은, 자기 그 힘든 것에 대해 아무런 대가도 없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서운했던
것이겠지.
"으이구 으이구. 내가 가슴에 아주 홧병이 난다 홧병이 나"
마누라는 내가 대꾸를 하지 않자 그냥 아예 눈을 감고 억지로 잠을 청한다. 씁쓸하지만 어쨌거나 일단
그렇게라도 조용해졌다. 그저 미안하고 답답하다.
그나저나 형은 집에 잘 가고 있으려나. 해가 다르게 늙어가는 형의 모습을 보노라면 화가 났다가도
마음이 안 좋다. 나야 이렇게 투닥댈 마누라라도 있지만 형은…
"흥민아, 니는 형이 뭐 됐음 좋겠노?"
"판검사 해라. 그기 믓찌지 않나?"
"판검사? 와?"
"나쁜 놈들 벌주고 증의를 세우는 일이 을매나 므찌노?"
"흥민아, 근데 증의라는게, 생각보다 쉽지 않타. 그라고 내는 사실 증의가 먼지도 잘 모르겄다"
"내도 아는걸 형은 와 모르노?"
"증의가 먼데?"
"나쁜 놈 벌주고 우리 편이 이기는게 증의 아이가. 증의가 승리하는거, 그게 증의다"
"그게 무신 증의란 말이고? 편들어주는기재. 우리 편이라고 꼭 착한 놈이란 법이 으딨노? 내는 니가 착한 일 하면
편들어주고, 아이면 안 들어줄끼다"
"됐다~ 그럼 집어치뿌라. 내 편이 아닌데 무슨 증의란 말이가?"
"니는 니야말로 증의가 먼지 모르네"
"됐다 밥이나 무러가자"
"하~ 니 삐칬나?"
"됐~따"
"흥민아, 이 형은…"
"형 문제가 먼지 아나? 형은, 똑똑하기는 똑똑한데, 남 생각을 할줄 모린다. 형 생각만 하는게 문제인기라"
"그게 먼 소리고?"
"됐다"
"흥민아, 미안타. 이제 밥이나 무러가자"
"손 놔라"
"흥민아~"
"그럼 내 뒤 따라 오라, 내 먼저 갈끼다"
"아 뛰지마라"
"내 잡으면 용서해줄끼다"
"아르따 내가 눈 감고 뛰도 니보다는 빠를끼다"
"아 우끼는 소리하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