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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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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자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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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을 털어 빵 몇 개와 우유 하나, 담배 한 갑을 사들고 그녀의 집으로 향한다. 날씨가 춥다. 조금 더 껴입을
것을. 라이더 쟈켓 안에는 런닝 대신 입는 아주 얇은 흰 반팔과 티셔츠 한장 뿐이다.

'후우'

담배 한 대를 빠는데 너무 추워서 입이 다 뻑뻑하다. 얼른 피워버리고 꽁초는 던져버린 채 입김을 불며 서둘러
그녀의 집으로 향한다. 발바닥마저 꽁꽁 언 느낌. 신호등을 건너 골목길로 접어든 후 또 살짝 숨이 찰 정도의
언덕으로 걸어올라서자 그녀가 사는 원룸텔이 나타난다.

똑똑

추워서 소매 속으로 넣은 손을 빼고 그녀 집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그녀는 반응이 없다. 다시 똑똑 두드리자
"잠깐만" 하면서 잠에서 갓 깬 듯한 그녀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부스럭그리며 이불에서 일어난 그녀
의 소리가 들리고 삐빅- 하며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잠에서 깨 참 부스스한 얼굴의 그녀가 나타났다.

"아침부터 왠일이야"
"왠일은, 그냥"

머리를 긁적이며 방에 들어가 신발을 벗고 방에 들어섰는데 방바닥이 얼음장처럼 차갑다.

"보일러 좀 켜고 살아"
"방 춥지? 보일려 켤께"

얼른 전기담요 깔아놓은 침대 위로 올라갔다. 그녀는 보일러를 켜더니 "가스비 엄청 나와서 어쩔 수가 없어"
하고 머리를 벅벅 긁는다. 그러고는 "담배 한 대만" 하고 손을 내민다. 나는 담배갑 째로 내밀었다. 그녀는
담배 한 대를 뽑더니 책상 위에 올려놓은 내 라이터와 함께 화장실로 들어갔다. 방 안을 둘러보았다.

'쩝'

여기저기 널부러진 옷가지와 빨랫줄에 걸린 수건과 속옷. 제대로 빨아입긴 하는건가. 그녀가 즐겨입는
라이더 쟈켓을 비롯해 겉 옷 몇개만 그나마 제대로 작은 1단짜리 행거에 걸려있다. 나는 내 쟈켓을 벗어
그 행거에 던져놓았다.

'어후'

침대에서 내려와 뭐 먹을 것은 없나 냉장고를 열었지만 먹다 남은 맥주 한 병과 열기도 싫은 반찬통
몇 개가 전부다. 냉장고를 다시 닫지만 시큼한 냄새가 코에 감돈다. 일단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그리고는 TV 위의 먼지를 슥 만졌다. 내가 사준 중고 TV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잘 보지않는다 한다.


잠깐 방 안을 둘러보다보니 다이어리가 침대 옆 바닥에 떨어져있다. 살짝 호기심이 들어 집기는 했지만
봐도 되나 하는 생각에 잠깐 망설였지만 화장실에서 곧 뿍! 하는 그녀의 방귀 소리가 들려온다. 일단 슥
열어보았다.

'허허'

2011년 다이어리. 잘 쓰긴 썻을까. 내 생일에 동그라미가 쳐져있다. 내가 다이어리를 사준 날, 그녀가
새삼 내 생일을 묻고 표시해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생일에도 표시가 쳐져있다. 저기 아래 또 하나
그녀의 아버지 생일에 표시가 되어있다. 그녀의 이혼한 어머니 생일은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페이지를 몇 장 더 넘기자 살 물건 몇 개가 쓰여져 있었다. 생리대, 브라, 양말, 식용유 등. 그리고 그
이후는 거의 백지였다. 간간히 무어라 짧막하게 쓰여있긴 했지만 대부분 인디 밴드 음악이거나 노래
제목 정도. 그 이후로는 거의 백지이다가 맨 마지막 장에 무어라 계산한 표시 같은게 있었다. 생활비
계산이었다. 월세 40에 전기세 1만 2천원…뭐 별 재미는 없는 내용들이었다. 난 다이어리를 덮고 다시
그대로 바닥에 내려놓았다.

TV를 켰다. 아침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화장실에서는 곧 물 내리는 소리와 함께 양치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이 많이 추워졌다 싶어서 창문을 다시 닫았다. 날씨가 정말 얼음장 같은 날씨다. 나는 또
방 안에 여기저기 흩어진 옷가지를 대충 쓱 한군데로 모아 침대 위로 올려놓았다. 그리고 빨아야 할
옷과 그냥 입어도 될만한 옷을 대충 구분해서, 빨아야 할 옷은 다시 바닥 한 군데에, 입어도 될만한 옷
은 차곡차곡 개어 침대 머리 맡에 놓았다. 그러고보니 얘 침대 배게보는 빨긴 빨았나. 

'으이구 살림 빵점'

집안 이야기를 싫어하는 그녀지만, 언젠가 취해서 들은 그녀의 말에 따르면 초등학교 6학년 때 보증을
잘못 선 아버지 때문에 그녀의 집이 망하고 결국 이혼, 아니 집에서 그냥 나가버린 어머니를 대신해
아버지가 그녀를 대신해서 키웠다고. 그것도 단칸방에서. 

'흠'

사춘기에 접어들 여자애가 얼마나 힘들었을진 불보듯 뻔한 이야기고, 결국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를
자퇴하고 방황을 하다가 지금은 편의점 주말 오전알바와 집 근처 호프 서빙일을 하고 있다.


 
옷을 개면서 그녀와 첫 만났던 날을 생각했다. 홍대 근처 한 빌딩 앞 입구에서 술에 쩔어버린 채 웅크
리고 앉아 자고있는 그녀를 깨웠다. 솔직히 처음에는 그냥 '미친 년' 하고 지나치려다가, 두툼한 패딩
을 입은 나와는 달리 라이더 쟈켓 하나 입고 있는 그녀가 너무 추워보였다.

"일어나봐요. 일어나요"

툭툭 흔들어 깨웠지만 그냥 마냥 잠에 쩔어버린 그녀. 지나가던 사람들이 나를 술 취한 여자 건드리는
그런 놈으로 보는 듯 해서 좀 민망했지만 여튼 몇 번을 건드리자 그제서야 그녀가 그 여자의 입에서
난다고는 믿겨지지 않는 냄새를 풍기며 깨어났다.

"…으음"

그녀는 만취 상태였다. 깨어났다기보다는 오히려 추운데서 너무 오래 웅크리고 앉아있던 모양인지
깨어나자마자 미친듯이 오들오들 떨기 시작했고 나는 또 어디서 본 것은 있어가지고 그게 뭐 저체온
증 뭐 이런 건 아닌가 싶었다. 뭐 병원으로 갔으면 말이 되겠지만, 내 자취방으로 데려왔으니 어쨌든
흑심으로 보이기 딱 좋았지만.



"뭔 생각해?"

화장실에서 나온 그녀가 멍하니 얼빠진 내 얼굴 앞에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다. 나는 순간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옛날에 너 만난 날 생각나서"
"나 그때 너 진짜로 죽여버리려고 그랬는데"

그녀는 그 날 아침,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비명을 질러대었다. 침대 옆 바닥에서 자고 있던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났고 그녀는 "개새끼야!" 하는 소리와 함께 방에서 뛰어나가려고 했다. 나
역시 너무 몰라 그녀를 붙잡았고 "아 씨발 뭘 그렇게 놀래요. 어제 길바닥에서 자고 있길래 얼어
죽을까봐 데려온건데. 안 잤어요 안 잤어!" 하고 소리쳤다.

안 잤다는 말에 그제서야 그녀의 손에 힘이 빠졌고 나는 바로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

"오지랍 떨지마"

하며 그녀는 곧바로 자신의 쟈켓을 확인 후 걸쳐입고 집을 나서려고 했다. 아 대단한 포스였다.
기도 차고 웃기기도 했지만 "배고프면 밥이라도 먹고 가요" 하고 한 마디 했고 그녀는 내 말을
무시한 채 가방을 들고 내 방에서 나갔다.

그런 그녀와 내가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약 15분 후 잔뜩 흥분한 채 다시 내 집으로 돌아온
그녀 덕분이었다.

"휴대폰 내놔요"



"근데 지금 생각해도 황당하네. 야 너 그럼 그 전까지 단 한번도 뭐 그렇게 골뱅이 되서 길바닥에
쓰러졌던 적 없냐? 솔직히 남자들한테 그렇고 그런 적 없어?"

내 질문에 그녀는 "좆까지마" 라는, 여자들이 쓰기에 참 뭐한 말과 함께 주먹을 들어보였다. 얼추
옷가지를 대충 정리한 나는 그것을 한데 밀어놓고 말했다.

"여자가 집이 이게 뭐야. 정리 좀 하고 살아. 방에서 진짜로 벌레 나오겠네"

그녀는 한숨을 내쉬더니 머리를 긁었다.

"아 대충 살어"

침대 위로 올라와 뜨신 전기장판에 몸을 다시 녹이는 그녀. 팬티에 티 한장 입고 방에서 흐트러진
머리로 이렇게 양치질만 간신히 한 그녀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왜 웃어"
"그냥 니 보면 진짜 세상에 이런 년들도 있구나 싶어서"
"니가 아는 여자들이 다 내숭떠는거야"
"니는 좀 심해"

그녀는 사실 나보다 2살 아래. 하지만 그녀는 나에게 단 한번도 오빠라고 불러본 적이 없다. 그녀 주변의
다른 남자들에게도 마찬가지. 호칭이야 그렇다쳐도 존댓말도 마찬가지로 하지 않는다.

"빵 사왔어. 먹어"
"됐어 식욕도 없어"
"그러다 또 위 빵꾸나면 그때는 답 없는거라며"
"그럼 죽지 뭐"

아 진짜 참. 헛웃음이 난다. 나는 기어코 빵 하나를 집어들어 그녀에게 까주었다.

"먹어"
"아 됐어. 속 울렁거려. 나 아침에 뭐 안 먹는거 알잖아"
"으이구"

나는 깐 빵을 다시 대충 집어놓고 침대에 벌렁 누웠다.

"뭐해. 자러왔어?"
"그냥 방구석에 있기 싫어서 왔어"
"비켜 봐. 나도 좀 눕게"
"일어난거 아냐?"
"할 것도 없잖아"

나는 몸을 일으켜 개어놓은 옷가지를 다시 침대 밑에 내려놓았고 옆으로 조금 비켜주었다. 그리자 그녀는
내 옆에 누웠다.

"요즘에도 다른 여자애들이랑 자고 다녀?"
"아니. 그리고 뭐가 요즘에도야"

뜬금없는 질문과 그에 대한 내 반문에 그녀는 답이 없었다. 잠깐 그렇게 누워있던 그녀는 갑자기 내 위로
올라왔다.

"그럼…"

이럴 생각으로 온 것은 아닌데… 그녀는 내 티와 그 안의 다른 얇은 티까지 함께 걷어올리고는 내 젖꼭지를
핥기 시작했다. 나는 가벼운 콧바람과 함께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감싸안았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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