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10월 4일, 소련은 스푸트니크의 발사로 기술경쟁에 있어서 미국에 한발 앞서는 모습을 보인다. 이에 미국은 '스푸트니크 쇼크'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고 척수반사적으로 역시 우주 개발에 돌입하려 했지만, 마지막 순간 미국은 모든 것을 뒤엎는 위대한 결정을 내린다.
"소련이 우주공간에 쓰레기를 내버리는 동안, 우리는 인류애에 힘쓰겠다"
한국전쟁이 휴전의 형태로 일단락 되자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치열한 체제 경쟁이 시작되었다. 이미 한국전쟁 이전에도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오랜기간 대규모 전란의 시대를 겪은 세상이었다. 당연히 소련은 관습적으로 군사우주기술로 경쟁의 첫 포문을 열었지만, 미국은 의외로 의료기술을 경쟁의 카드로 꺼내들었다.
"세계 최초로 미국이 인공 폐 개발에 성공하여…"
"미국은 의료선도국을 개설하여…"
당황한 것은 소련이었다. 과학기술경쟁에서 역전에 성공했다고 생각한 순간, 상대가 아예 다른 종목에 집중해버린 격이었으니까. 물론 소련 공산당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우주쓰레기와 암 치료제 중 어느 것이 인민의 삶에 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오?"
"2차 세계대전으로 소련 젊은이 2천만명이 죽었고, 한국전쟁으로 전차 수백대와 아까운 전투기 수백대를 날려먹었소. 전쟁이라면 지긋지긋하오. 로켓기술에 집중이라니, 앞으로 뭘 더 날려먹고 싶은 것이오?"
그러한 내부의 목소리에 의해 결국 소련마저도 경쟁의 포인트를 의료기술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인류는 의료기술로 본격적인 체제경쟁에 돌입한다.
1958년, 미국은 미 의료선도국을 개설하여 '아스클레피오스 계획'을 시작한다. 그리스/로마 신화 속 아폴로의 아들이자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 이름을 딴 그 계획은 '인류의 모든 질병과 장애를 극복하여 체제경쟁에서 우위를 갖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었다.
"소련보다 먼저 암 치료제를 개발해야 한다고!"
1960년대에 접어들자 미국은 무려 GDP 1.5%를 의료선도국의 예산으로 배정하면서 미친듯이 경쟁에 집중했다. 최고의 인재들이 의료계에 투입되었으며 그 결과 화학, 생물학, 해부학, 신경과학, 응급의학, 조직학, 생리학, 순환기학, 혈청학, 호흡기학, 소화기학, 내과학, 의공학, 면역학, 예방의학, 발생학, 신경해부학, 신경생리학, 병리학, 미생물학, 약리학, 기생충학, 임상면역학, 종양학, 혈액학, 내분비학, 유전학, 감염학, 신경계학, 외과학, 산부인과학, 소아과학, 정신과학, 정형외과학, 영상의학, 핵의학, 의학연구학, 환경의학, 종합의학, 통합의학, 임상특학, 마취통증의학, 피부과학, 흉부심장혈관외과학, 신경외과학, 재활의학, 비뇨기과학, 이비인후과학, 안과학, 성형외과학, 가정의학, 재활의학, 방사선종양학, 진단검사의학, 지역사회의학, 임상약리학, 종교의학, 우주의학, 재생의학, 의료장구학, 전자의학, 수의과학, 융합의학, 통합진단의학, 복구의학, 바이오로직학, 의료역학, 의료정치학, 기술지원의학, 의료사학, 대체의학, 약학, 과정의학, 심층진단학, 의료경제학, 의료경영학, 검증의료학, 메타진단의학 등등 모든 분야의 의학에서 엄청난 발전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오늘 소련 인민보건국의 가가 유리린 국장은 보스토크 폐암 백신의 임상 3상 성공을 밝히며, 내후년까지 최종 결과 검토 후 특별한 이상이 없을시 모든 인민들에게 접종을 시작할 것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소련은 의료기술에서마저도 '폐암 백신'으로 선수를 치며 미국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이에 미국도 '인공혈관' 시술 성공 뉴스로 응수했지만, 두달 뒤 시술을 받은 환자가 원인불상의 심근경색으로 사망하여 인공혈관에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불러일으켜 망신을 당했다.
"오늘부터 다들 집에 들어갈 생각도 하지마"
미 의료선도국은 더더욱 자극을 받아 새로운 의학발전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이대로 소련에게 끌려다닐 수는 없었다. 무언가 판을 뒤엎을 수 있는 비전 제시가 필요했다.
"우리는 탈모치료에 성공할 것입니다, 우리는 1960년대 안에 탈모치료에 성공할 갈 것이고, 다른 일들도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쉬운 일이기 때문이 아니라,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짐 G 레네디 대통령은 메릴랜드 볼티모어에서의 연설을 통하여 '탈모치료'에 도전할 것을 선언했다. 이것은 가히 충격적인 선언이었다.
"이야, 저게 정말 가능하단 말이야?"
"탈모치료…"
인간이 달에 간다는 허무맹랑한 소리보다도 더더욱 허무맹랑한 탈모치료 선언. 그것에 미국이 당당히 도전을 선언했다. 소련에 의해 이미 몇 차례나 물을 먹은 미국이 잔뜩 독이 올라 어마어마한 목표를 제시한 것이다. 이번에도 소련은 당황했다.
"우리도 마땅히 탈모에 투자를 해야합니다"
소련 의료의 아버지, 세르게이 코트로프는 곧바로 공산당 서기장 코루시초프에게 탈모치료에 투자해야한다고 제안했다. 현대의학이 정복해야 할 가장 높은 산봉우리, 탈모. 그것에 대한 도전은 모든 의학도의 숙제이자 전 탈모인의 꿈이었다.
"머리털은 부르주아지들의 사치요"
하지만 뜻밖에 서기장은 탈모치료에 대한 투자에 반대했다. 당장 본인도 대머리인 그가 탈모치료에 대한 투자에 소극적인 것은 의외였지만 그의 주장은 명료했다.
"탈모보단 암이 더 시급하고, 암보다는 폐렴이 더 시급하오"
결국 탈모치료는 미국만의 목표가 되었다. 사실 서기장의 주장도 크게 틀린 것은 아니었다. 탈모치료라는 목표 자체가 지나치게 높은 목표였기 때문이다. 미국 주도의 탈모 극복이 성공한다면야 당연히 단번에 모든 것이 뒤엎어지겠지만, 반대로 그것이 실패한다면 기술경쟁에 있어서 이미 보여준 것이 많은 소련쪽으로 세계 패권이 기울 것이 자명했다.
"대통령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거지?"
의료선도국의 모든 이는 TV를 보며 충격을 받았다. 내부적으로는 "차라리 암과 에이즈를 동시에 잡는 백신을 만들라고 하는게 더 쉬울 수도 있어요. 농담이 아닙니다. 탈모 치료는 그만큼 어려운 거에요" 하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세계 패권을 놓고 벌어지는 기술경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대통령의 선언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전미 의료 관계기관 대표자 모임 소집해"
미 의료선도국과 미국 내 주요 의료기관은 물론, 미국 내에 법인을 두고 있는 모든 다국적 제약회사 대표들까지 탈모치료라는 궁극의 목표 앞에 갈려나가게 되었다. 애초에 주어진 시간은 채 10년이 되지 않았다. 탈모극복의 방향성을 잡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석달에 가까운 치열한 논쟁 끝에 그 방향성은 크게 세 가지로 잡혔다.
1. 모발삽입술 개발
2. 탈모예방 백신 및 시술 개발
3. 특수가발 개발
폰 브라우닝 박사팀은 우선 모발삽입술의 개발에 돌입했다. 박사는 일반적인 모발이식 수술이 '이식할 자신의 또 다른 머리카락'이 필요하고, 이식하지 않은 부위의 탈모가 뒤늦게 진행될 경우 머리가 듬성듬성 보이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짐은 물론, 수술이 까다롭고 지나치게 비용이 많이 들어 접근성이 낮았던 점에 주목했다.
"최첨단 레이저 기술로 머리에 약 10만개의 모공을 새롭게 파고, 그 모공에 면역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인공모발을 삽입합니다. 그 이후 3주간 면역억제제를 복용하면서 인공모발이 완전히 자리를 잡으면 그걸로 완성입니다"
한편 탈모예방 백신의 경우, 테스토스테론의 DHT 변환을 막는 효소를 백신의 형태로 사춘기에 주사를 맞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되면 최소 10년간 탈모는 발생하지 않고 이후에는 '머리나'라고 불리는 체내 삽입형 호르몬 기구 시술로 평생동안 탈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이유로 직접적인 시술이 어려운 이들을 위하여 '아무리 격렬한 운동을 하더라도 분리되지 않고, 착용감이 좋고 한 여름이나 겨울에도 착용에 부담이 없는 인체공학적 가발' 개발 역시 함께 진행되었다.
어마어마한 예산이 집행되었다. 그 이전, 이후를 막론하고 그만큼의 의학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가 이뤄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만큼 막중한 부담이기도 했다.
1967년 1월 27일, 아스클레피오스 1호 시술이 임상 2상 단계에서 진행되었다. 말도 안되는 일이었지만 시간이 촉박해도 너무 촉박했다. 그러나 그 시술은 참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정밀하게 10만개의 아주 작은 모공이 레이저로 뚫어져야 했지만, 설계오차에 의해 지나치게 굵은 모공이 뚫렸다.
"오 맙소사"
인공모발이 자리를 잡기는 커녕, 그나마 조금 남아있던 뒷통수의 머리털마저 모조리 레이저로 날려버린 격이 되었다. 완전한 민두가 된 첫 시술자들은 미국을 저주했다. 미 의료선도국은 다시 철저한 시술을 다짐해야 했다. 이후 수 차례의 시술이 더 있었지만 그 모두 만족할만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1968년, '새털5'라 불리우는 신형 인공모발의 개발이 완료되었다. 이는 초안이었던 '면역거부반응 없는 인공모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자체 생존성으로 모공 내에 일단 심어지기만 하면 알아서 뿌리를 내리는 엄청난 인공모발이었다. 이후 두어 차례의 만족스러운 시술에 의해 미국은 확신을 얻었다. 탈모극복의 길이 열렸다고.
서기 1969년 7월, 아스클레피오스 11호 시술이 전 세계에 생중계 되었다.
10!
9!
8!
7!
6!
5!
4!
3!
2!
1!
레이저 점화! 매릴랜드 홉스 존킨스 병원에서 진행된 모발이식 수술. 의료관제실에서 수백명의 관계자들이, 아니 전 세계 모든 탈모인들과 잠재적 탈모 가능성에 떠는 30억 남성들, 그리고 그런 이들을 장차 배우자로 맞이할 가능성이 있는 30억 여성들이 숨을 죽이며 초조하게 수술을 바라보았다.
성공한다면 인류 역사상 첫 탈모 극복의 꿈이 실현되는 날이었다. 우선 레이저 모공 조성은 성공적이었다. 이어 집도의의 아주 뛰어난 술기를 바탕으로, 모공안착이 무사히 이루어졌다.
"이것은 한 명의 대머리에게는 단순한 기쁨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이다"
마지막 털 한 올을 무사히 꽂은 후, 집도의 모 스트롱은 그런 한 마디를 남겼다. 그리고 그 말은 단순한 말의 성찬이 아니었다. 영원한 불치병이라 믿어져왔던 탈모의 극복은 수많은 인류에게 새로운 삶을 안기는 것과 다름 없었다. 아스클레피오스 계획은 이후로도 성공적으로 죽 이어져 탈모예방 백신과 특수가발까지 모두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세계의 패권은 자연스럽게 미국의 것으로 확정지어졌다. 대머리로 살고 싶지 않다면 미국과 손을 잡아야 했다. 마침 공산권 지도자들은 다 대머리였다. 소련의 대머리 코루시초프, 중국의 대머리 마택동도 미국에게 손을 내밀었다. 냉전은 그렇게 끝났다. 이후 미국은 약 50여 년간 세계 패권국으로 자리매김한다.
2021년 7월 8일, 김박스는 출장 가던 길에 지도를 펴고 이 길이 맞나를 한참 고민하다가 부사수에게 짜증난다는 투로 말했다.
"아니 참, 세상이 말이야… 팔다리가 짤려도 도마뱀처럼 재생하는 요즘 같은 과학기술 시대에, 내가 지금 지구 어디에 있는지 딱 좌표를 알려주는 그런 기계 하나 없다는게 말이 돼? 저 하늘에 막 그 위성시스템 같은게 있으면 내가 지금 이 지도 어디쯤에 있는지 딱 알려줄텐데 말이야"
부사수는 낄낄대며 "아 참. 과장님도. 지도 줘보세요. 제가 알려드릴께요" 하며 지도를 받았다. 둘 다 초행길이다보니 지도가 있어도 헷깔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김박스 과장 말대로, 차 안에 출발지부터 목적지까지 실시간 위치정보 기반으로 쭉 가야할 길 알려주는 그런 기계 같은게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 끝 >
"소련이 우주공간에 쓰레기를 내버리는 동안, 우리는 인류애에 힘쓰겠다"
한국전쟁이 휴전의 형태로 일단락 되자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치열한 체제 경쟁이 시작되었다. 이미 한국전쟁 이전에도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오랜기간 대규모 전란의 시대를 겪은 세상이었다. 당연히 소련은 관습적으로 군사우주기술로 경쟁의 첫 포문을 열었지만, 미국은 의외로 의료기술을 경쟁의 카드로 꺼내들었다.
"세계 최초로 미국이 인공 폐 개발에 성공하여…"
"미국은 의료선도국을 개설하여…"
당황한 것은 소련이었다. 과학기술경쟁에서 역전에 성공했다고 생각한 순간, 상대가 아예 다른 종목에 집중해버린 격이었으니까. 물론 소련 공산당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우주쓰레기와 암 치료제 중 어느 것이 인민의 삶에 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오?"
"2차 세계대전으로 소련 젊은이 2천만명이 죽었고, 한국전쟁으로 전차 수백대와 아까운 전투기 수백대를 날려먹었소. 전쟁이라면 지긋지긋하오. 로켓기술에 집중이라니, 앞으로 뭘 더 날려먹고 싶은 것이오?"
그러한 내부의 목소리에 의해 결국 소련마저도 경쟁의 포인트를 의료기술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인류는 의료기술로 본격적인 체제경쟁에 돌입한다.
위대한 기술
1958년, 미국은 미 의료선도국을 개설하여 '아스클레피오스 계획'을 시작한다. 그리스/로마 신화 속 아폴로의 아들이자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 이름을 딴 그 계획은 '인류의 모든 질병과 장애를 극복하여 체제경쟁에서 우위를 갖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었다.
"소련보다 먼저 암 치료제를 개발해야 한다고!"
1960년대에 접어들자 미국은 무려 GDP 1.5%를 의료선도국의 예산으로 배정하면서 미친듯이 경쟁에 집중했다. 최고의 인재들이 의료계에 투입되었으며 그 결과 화학, 생물학, 해부학, 신경과학, 응급의학, 조직학, 생리학, 순환기학, 혈청학, 호흡기학, 소화기학, 내과학, 의공학, 면역학, 예방의학, 발생학, 신경해부학, 신경생리학, 병리학, 미생물학, 약리학, 기생충학, 임상면역학, 종양학, 혈액학, 내분비학, 유전학, 감염학, 신경계학, 외과학, 산부인과학, 소아과학, 정신과학, 정형외과학, 영상의학, 핵의학, 의학연구학, 환경의학, 종합의학, 통합의학, 임상특학, 마취통증의학, 피부과학, 흉부심장혈관외과학, 신경외과학, 재활의학, 비뇨기과학, 이비인후과학, 안과학, 성형외과학, 가정의학, 재활의학, 방사선종양학, 진단검사의학, 지역사회의학, 임상약리학, 종교의학, 우주의학, 재생의학, 의료장구학, 전자의학, 수의과학, 융합의학, 통합진단의학, 복구의학, 바이오로직학, 의료역학, 의료정치학, 기술지원의학, 의료사학, 대체의학, 약학, 과정의학, 심층진단학, 의료경제학, 의료경영학, 검증의료학, 메타진단의학 등등 모든 분야의 의학에서 엄청난 발전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오늘 소련 인민보건국의 가가 유리린 국장은 보스토크 폐암 백신의 임상 3상 성공을 밝히며, 내후년까지 최종 결과 검토 후 특별한 이상이 없을시 모든 인민들에게 접종을 시작할 것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소련은 의료기술에서마저도 '폐암 백신'으로 선수를 치며 미국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이에 미국도 '인공혈관' 시술 성공 뉴스로 응수했지만, 두달 뒤 시술을 받은 환자가 원인불상의 심근경색으로 사망하여 인공혈관에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불러일으켜 망신을 당했다.
"오늘부터 다들 집에 들어갈 생각도 하지마"
미 의료선도국은 더더욱 자극을 받아 새로운 의학발전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이대로 소련에게 끌려다닐 수는 없었다. 무언가 판을 뒤엎을 수 있는 비전 제시가 필요했다.
"우리는 탈모치료에 성공할 것입니다, 우리는 1960년대 안에 탈모치료에 성공할 갈 것이고, 다른 일들도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쉬운 일이기 때문이 아니라,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짐 G 레네디 대통령은 메릴랜드 볼티모어에서의 연설을 통하여 '탈모치료'에 도전할 것을 선언했다. 이것은 가히 충격적인 선언이었다.
"이야, 저게 정말 가능하단 말이야?"
"탈모치료…"
인간이 달에 간다는 허무맹랑한 소리보다도 더더욱 허무맹랑한 탈모치료 선언. 그것에 미국이 당당히 도전을 선언했다. 소련에 의해 이미 몇 차례나 물을 먹은 미국이 잔뜩 독이 올라 어마어마한 목표를 제시한 것이다. 이번에도 소련은 당황했다.
"우리도 마땅히 탈모에 투자를 해야합니다"
소련 의료의 아버지, 세르게이 코트로프는 곧바로 공산당 서기장 코루시초프에게 탈모치료에 투자해야한다고 제안했다. 현대의학이 정복해야 할 가장 높은 산봉우리, 탈모. 그것에 대한 도전은 모든 의학도의 숙제이자 전 탈모인의 꿈이었다.
"머리털은 부르주아지들의 사치요"
하지만 뜻밖에 서기장은 탈모치료에 대한 투자에 반대했다. 당장 본인도 대머리인 그가 탈모치료에 대한 투자에 소극적인 것은 의외였지만 그의 주장은 명료했다.
"탈모보단 암이 더 시급하고, 암보다는 폐렴이 더 시급하오"
결국 탈모치료는 미국만의 목표가 되었다. 사실 서기장의 주장도 크게 틀린 것은 아니었다. 탈모치료라는 목표 자체가 지나치게 높은 목표였기 때문이다. 미국 주도의 탈모 극복이 성공한다면야 당연히 단번에 모든 것이 뒤엎어지겠지만, 반대로 그것이 실패한다면 기술경쟁에 있어서 이미 보여준 것이 많은 소련쪽으로 세계 패권이 기울 것이 자명했다.
"대통령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거지?"
의료선도국의 모든 이는 TV를 보며 충격을 받았다. 내부적으로는 "차라리 암과 에이즈를 동시에 잡는 백신을 만들라고 하는게 더 쉬울 수도 있어요. 농담이 아닙니다. 탈모 치료는 그만큼 어려운 거에요" 하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세계 패권을 놓고 벌어지는 기술경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대통령의 선언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전미 의료 관계기관 대표자 모임 소집해"
미 의료선도국과 미국 내 주요 의료기관은 물론, 미국 내에 법인을 두고 있는 모든 다국적 제약회사 대표들까지 탈모치료라는 궁극의 목표 앞에 갈려나가게 되었다. 애초에 주어진 시간은 채 10년이 되지 않았다. 탈모극복의 방향성을 잡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석달에 가까운 치열한 논쟁 끝에 그 방향성은 크게 세 가지로 잡혔다.
1. 모발삽입술 개발
2. 탈모예방 백신 및 시술 개발
3. 특수가발 개발
폰 브라우닝 박사팀은 우선 모발삽입술의 개발에 돌입했다. 박사는 일반적인 모발이식 수술이 '이식할 자신의 또 다른 머리카락'이 필요하고, 이식하지 않은 부위의 탈모가 뒤늦게 진행될 경우 머리가 듬성듬성 보이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짐은 물론, 수술이 까다롭고 지나치게 비용이 많이 들어 접근성이 낮았던 점에 주목했다.
"최첨단 레이저 기술로 머리에 약 10만개의 모공을 새롭게 파고, 그 모공에 면역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인공모발을 삽입합니다. 그 이후 3주간 면역억제제를 복용하면서 인공모발이 완전히 자리를 잡으면 그걸로 완성입니다"
한편 탈모예방 백신의 경우, 테스토스테론의 DHT 변환을 막는 효소를 백신의 형태로 사춘기에 주사를 맞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되면 최소 10년간 탈모는 발생하지 않고 이후에는 '머리나'라고 불리는 체내 삽입형 호르몬 기구 시술로 평생동안 탈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이유로 직접적인 시술이 어려운 이들을 위하여 '아무리 격렬한 운동을 하더라도 분리되지 않고, 착용감이 좋고 한 여름이나 겨울에도 착용에 부담이 없는 인체공학적 가발' 개발 역시 함께 진행되었다.
어마어마한 예산이 집행되었다. 그 이전, 이후를 막론하고 그만큼의 의학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가 이뤄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만큼 막중한 부담이기도 했다.
1967년 1월 27일, 아스클레피오스 1호 시술이 임상 2상 단계에서 진행되었다. 말도 안되는 일이었지만 시간이 촉박해도 너무 촉박했다. 그러나 그 시술은 참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정밀하게 10만개의 아주 작은 모공이 레이저로 뚫어져야 했지만, 설계오차에 의해 지나치게 굵은 모공이 뚫렸다.
"오 맙소사"
인공모발이 자리를 잡기는 커녕, 그나마 조금 남아있던 뒷통수의 머리털마저 모조리 레이저로 날려버린 격이 되었다. 완전한 민두가 된 첫 시술자들은 미국을 저주했다. 미 의료선도국은 다시 철저한 시술을 다짐해야 했다. 이후 수 차례의 시술이 더 있었지만 그 모두 만족할만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1968년, '새털5'라 불리우는 신형 인공모발의 개발이 완료되었다. 이는 초안이었던 '면역거부반응 없는 인공모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자체 생존성으로 모공 내에 일단 심어지기만 하면 알아서 뿌리를 내리는 엄청난 인공모발이었다. 이후 두어 차례의 만족스러운 시술에 의해 미국은 확신을 얻었다. 탈모극복의 길이 열렸다고.
서기 1969년 7월, 아스클레피오스 11호 시술이 전 세계에 생중계 되었다.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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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저 점화! 매릴랜드 홉스 존킨스 병원에서 진행된 모발이식 수술. 의료관제실에서 수백명의 관계자들이, 아니 전 세계 모든 탈모인들과 잠재적 탈모 가능성에 떠는 30억 남성들, 그리고 그런 이들을 장차 배우자로 맞이할 가능성이 있는 30억 여성들이 숨을 죽이며 초조하게 수술을 바라보았다.
성공한다면 인류 역사상 첫 탈모 극복의 꿈이 실현되는 날이었다. 우선 레이저 모공 조성은 성공적이었다. 이어 집도의의 아주 뛰어난 술기를 바탕으로, 모공안착이 무사히 이루어졌다.
"이것은 한 명의 대머리에게는 단순한 기쁨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이다"
마지막 털 한 올을 무사히 꽂은 후, 집도의 모 스트롱은 그런 한 마디를 남겼다. 그리고 그 말은 단순한 말의 성찬이 아니었다. 영원한 불치병이라 믿어져왔던 탈모의 극복은 수많은 인류에게 새로운 삶을 안기는 것과 다름 없었다. 아스클레피오스 계획은 이후로도 성공적으로 죽 이어져 탈모예방 백신과 특수가발까지 모두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세계의 패권은 자연스럽게 미국의 것으로 확정지어졌다. 대머리로 살고 싶지 않다면 미국과 손을 잡아야 했다. 마침 공산권 지도자들은 다 대머리였다. 소련의 대머리 코루시초프, 중국의 대머리 마택동도 미국에게 손을 내밀었다. 냉전은 그렇게 끝났다. 이후 미국은 약 50여 년간 세계 패권국으로 자리매김한다.
2021년 7월 8일, 김박스는 출장 가던 길에 지도를 펴고 이 길이 맞나를 한참 고민하다가 부사수에게 짜증난다는 투로 말했다.
"아니 참, 세상이 말이야… 팔다리가 짤려도 도마뱀처럼 재생하는 요즘 같은 과학기술 시대에, 내가 지금 지구 어디에 있는지 딱 좌표를 알려주는 그런 기계 하나 없다는게 말이 돼? 저 하늘에 막 그 위성시스템 같은게 있으면 내가 지금 이 지도 어디쯤에 있는지 딱 알려줄텐데 말이야"
부사수는 낄낄대며 "아 참. 과장님도. 지도 줘보세요. 제가 알려드릴께요" 하며 지도를 받았다. 둘 다 초행길이다보니 지도가 있어도 헷깔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김박스 과장 말대로, 차 안에 출발지부터 목적지까지 실시간 위치정보 기반으로 쭉 가야할 길 알려주는 그런 기계 같은게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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