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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 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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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만난 것은 전시관 2층에 마련된 인디서점에서였다. 몇 권인가의 책을 집었다가 다시 매대에 내려놓으면서 잘 맞추어 정렬하는 것을 보고, 아마 내가 점원이라고 착각을 했던 모양이다. 마침 그날따라 내가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올 블랙 까마귀 스타일로 입기도 했고.

"혹시 '끈'이라는 책 있을까요? 테헤란 출판이라는 곳에서 나온건데"
"아, 그 책이요?"

나에게 '끈'이라는 책을 물어온 그녀에게, 나 역시 마치 점원처럼 그쪽으로 안내하며 자연스럽게 한두마디 건냈다.

"저도 얼마 전에 책 소개하는 글 보고 관심있어서 살짝 봤는데, 엄청 재밌더라구요"
"오 정말요?"

소위 긴박 플레이라고 하는, 섹스할 때의 끈이나 천으로 묶는 플레이에 대한 방법과 활용에 대한 책이었다. 다만 사람 사진이나 그림이 아니라 동물 인형으로 쓸데없이 진지하게 고퀄리티로 표현한 덕분에 컬트적인 화제가 된 책.

"여기 있습니다"

책이 있는 곳을 안내하고, 다시 돌아서서 아까 내가 내려놓은 책들을 정렬하러 가보니, 다른 점원이 마침 그 책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아! 이거 제가 구매하려다 내려놓은 건데.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미안한 마음에 가볍게 사과하자, 인상 좋아보이는 직원이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더 살펴보세요 고객님" 하면서 웃는 얼굴로 응대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그녀가 내 등을 톡톡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뭐야, 직원 아니었어요?"

나는 웃으면서 "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도 어이없다는 듯 웃었고, 나는 커피 한잔을 제안했다. 한 층만 걸어올라가면 된다고.

"그래요 그럼"



하린



하린은 무려 8살 연하로, 단발머리에 스트릿 패션이 잘 어울리는 타입이었다. 그래도 20대 후반이 하기에는 살짝 과한 스타일이지 싶은데 용기가 대단하다 싶었다. 하긴 말하는 것도 시원시원했다. 약간 남동생 과라고 해야하나.

"아니 나는 진짜 직원인 줄 알았네. 지금 저기 카페 카운터에 서있어도 직원인 줄 알겠어요"
"아 오늘따라 까맣게 입어서 그래요. 원래 이 정도는 아니야"

민망해하는 내 모습에 하린은 더 크게 웃었다. 사실 그렇게까지 웃긴 일도 아닌데 그렇게나 웃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근데 그런 쪽 취향이에요? 막 묶고 그런거?"

당돌하게 물어오는 그녀의 말에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쪽에 특화되어 있다기보다, 야한건 다 좋아하죠. 때리거나, 묶거나, 깊게, 앞뒤로 뭐…"

만난지 15분도 안된 여자랑 대낮게 커피 마시면서 이런 대화라니, 놀라운 일이었지만 진짜 놀라운건 하린의 성격이었다.

"여자친구 있어요?"
"없어요"
"단순한 파트너도?"
"있었는데, 시집 갔어요. 두 달 전에"
"올"

하린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왔다.

"나랑 해볼래요?"

보통이라면 이런 케이스는 사기 또는 범죄행위라고 보는게 맞겠지만, 묘하게 설득력 있는 눈빛과 이미 두 달 넘게 굶은 나는 생경한 유혹 앞에 무기력했다.

"어디서?"



(중략 : 본 소설은 스타일박스 유료 메일링 서비스 구독자 전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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