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였는지는 모르겠다. 너에게 내 모든 처지와 마음을 밝히면서 함께 하자고 하던 순간, 사실 나는 네가 거절하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그러면 그렇게 깨끗하게 끝날 것이고, 너의 인생과 나의 인생이 거기에서 더이상 얽히지 않고 각자의 길을 걸어갈테니까. 나는 나의 길로, 너는 너의 길로.
"…"
긴 침묵 끝에 조심스럽게 내 손을 잡는 너의 손길에, 그 길고도 먼 길에, 내 등에 지워진 고단한 짐을 너와 나누어야 함을 미안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다짐했다. 최선을 다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늘이 감동해서라도 운을 틔여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차라리 그때라도 "아니, 아니다" 하면서 돌아설 것을. 그랬으면 좋았을 것을.
"잘할게"
그 말에 희미하게 웃는 네 표정. 그것은 내 투박한 다짐의 말에 대한 미소였을까, 눈 앞에 훤한 아득한 고생길에 대한 자조였을까.
"조금만…"
일은 일대로 벌려놓고 죽어버린 아버지의 빚. 진작에 알았더라면 어떻게든 털고 시작을 할 수도 있었을텐데 몰랐다는 죄로 그대로 떠안고 그토록이나 너를 고생시켜버린 그 막대한 빚. 미련하게도 요즘 같은 세상에 한 달에 두 번 쉬는 14시간짜리 알바를 하면서 억척스레 돈을 버는 너를 안은 채 그렇게 달큰한 잠으로 허무하게 지워버린 6년.
"그거 다 없던 일로 할 수 있대"
잘 알아보지도 않고 덜컥 신청해버린 개인회생에 날아들어온 사기죄 고소장. 그걸 또 어떻게든 나 몰래 수습해보겠다며 나섰다가 험한 일을 당해버린 너.
"그 개새끼 죽여버리겠어"
피눈물을 흩뿌리며 덤벼들어 끝내 또 사고를 쳐버린 나. 실형 6개월을 살고 나온 나에게 남은 것은 전과자에 신용불량자 딱지, 오갈 곳 없어져버린 비참한 처지. 월 60만원짜리 모텔 달방에서 차라리 같이 죽자며 부둥켜 안고 운 것이 몇 번인가.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 니 죽으면 나도 죽고, 나 죽으면 너도 죽어"
너랑 같이 죽는 것은 전혀 두렵지 않다며, 언제든지 각오만 서면 말하라던 너의 당찬 모습에 힘을 냈던 것이 몇 번인가. 2년 반 만에 신용회복에 성공하는데 성공하고, 이제부터 열심히 모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언젠가부터 아프다 아프다 타령을 입에 달고 살던 너.
"아파서 서있지도 못하는 애가 진통제가 무슨 의미야. 무슨 간 아작내고 싶어서 환장한거야? 씨팔, 재산이라고는 니나 나나 몸뚱이 밖에 없는 것들이 관리도 못하면 뭘 어쩌라고!"
호통 치며 억지로 데려간 병원에서 듣게 된,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그 무서운 병에 눈 앞이 캄캄해졌던 나.
"고객님은 대출금액이 안 나오세요"
"기존에 워크아웃 기록이 있으셔서, 대출이 조금 어려우세요"
"선금 2할을 떼고 시작하는데, 선이자랑 원금에 대한 이자는 별개인거 아시지요? 그럼 여기 지장 찍으시고"
어떻게 어떻게 간신히 돈은 구했지만 억지로 퇴원을 원하는 너를, 나는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알면서도 말리지 못했다.
"아프지"
"괜찮아"
낮에는 춥다, 밤에는 덥다. 찬물은 아프다, 더운 물은 시렵다, 여름에는 춥다, 겨울에는 덥다. 몸이 수시로 간지럽고 온 몸의 관절이 다 욱씬거린다. 생리가 끊기고 머리가 계속 아프다, 걷는 것이 힘들고 내가 건드리기만 해도 불에 데인 듯이 아프다. 하루종일 아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잠이 들면 경련을 하고, 그런 아픈 너를 보며 짜증을 내던 나.
"아우 아우. 됐어요 됐어. 뭐야 재수없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너를 파양한 양부모를 수소문 하여 찾아갔지만, 그저 네가 어떻게 자랐을지만 짐작이 가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얼마나 울었던가. 갈수록 안 좋아지는 너를 보며 하루하루가 두려웠다.
"차라리 같이 죽자"
"…너는 살아. 나만 죽으면 돼"
그 예뻤던 여자애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하는 생각에 모텔 비상구 계단에 앉아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나만 아니었으면. 나만 욕심을 안 부렸으면. 그냥 차라리 다른 남자를 만났으면, 나 같은 병신 새끼만 아니었더라면. 차라리 내가 대신 아팠으면!
"제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말 어떻게 안될까 하는 마음에 병원에 찾아가 의사 앞에서 무읖도 꿇어봤고, 모텔 사장님한테도 손을 벌려봤고, 동장 아줌마한테도 물어봤지만 세상 뭐 하나 마음처럼 되는 것이 없었다.
"별 일 없지?"
"응"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갔을 때 네가 죽어있으면 어떻게 하나, 이러다가 정말 내가 일을 못 나가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하나, 차라리 몰래 너 먹는 약에 약을 타고, 나도 같이 마셔버리면 속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루종일 하는 나.
"당장 입원하시는 것을 권합니다"
통장 잔액 6만 4천원. 두 달 밀린 방값, 당장 내일 나가야 할 월수 빚만 38만원. 내일 모레 나갈 카드 리볼빙 금액 107만원.
"생각해볼게요"
집으로 돌아가던 길, 한 마디도 없던 너와 나.
"저거 먹자, 호떡. 너 좋아하잖아. 나 돈 있어"
"그래, 먹자"
그게 너의 마지막 식사가 될 줄은 몰랐다. 정말 몰랐다. 차갑게 식어버린 너를 등에 업고, 이미 모든 것이 끝나버렸음을 알면서도 울면서 병원으로 달려간 나. 제대로 된 장례는 커녕, 경찰조사부터 받고 나와서는, 네 시체가 어떻게 처리될 줄도 모르고 그렇게 공원 근처 벤치에서 울다 잠이 든 나.
"…이제 속이 후련하냐, 정말 이렇게까지 했어야 됐냐"
잔인하디 잔인한 신을 향해 그렇게 저주하며, 휴대폰 사진 속 너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부디 고통 없는 세상에서 네가 행복하길 바란다. 모텔 방만 치우고, 너를 따라가마. 조금만 기다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이렇게 못난 나를 부디 용서하지 말아라. 다음 세상에서 태어나거든, 그때는 나같은 놈이 아니라, 더 좋은 사람 만나. 나같은 놈이 고백해도 코웃음치며 거절해버려. 미안해. 금방 따라갈게. 다른 건 하나도 못해줬지만, 절대로 외롭게는 안 만들게. 미안해. 사랑해. 정말 미안해. 내가 너를 망쳤어… 미안해….
< 끝 >
"…"
긴 침묵 끝에 조심스럽게 내 손을 잡는 너의 손길에, 그 길고도 먼 길에, 내 등에 지워진 고단한 짐을 너와 나누어야 함을 미안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다짐했다. 최선을 다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늘이 감동해서라도 운을 틔여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차라리 그때라도 "아니, 아니다" 하면서 돌아설 것을. 그랬으면 좋았을 것을.
"잘할게"
그 말에 희미하게 웃는 네 표정. 그것은 내 투박한 다짐의 말에 대한 미소였을까, 눈 앞에 훤한 아득한 고생길에 대한 자조였을까.
"조금만…"
일은 일대로 벌려놓고 죽어버린 아버지의 빚. 진작에 알았더라면 어떻게든 털고 시작을 할 수도 있었을텐데 몰랐다는 죄로 그대로 떠안고 그토록이나 너를 고생시켜버린 그 막대한 빚. 미련하게도 요즘 같은 세상에 한 달에 두 번 쉬는 14시간짜리 알바를 하면서 억척스레 돈을 버는 너를 안은 채 그렇게 달큰한 잠으로 허무하게 지워버린 6년.
"그거 다 없던 일로 할 수 있대"
잘 알아보지도 않고 덜컥 신청해버린 개인회생에 날아들어온 사기죄 고소장. 그걸 또 어떻게든 나 몰래 수습해보겠다며 나섰다가 험한 일을 당해버린 너.
"그 개새끼 죽여버리겠어"
피눈물을 흩뿌리며 덤벼들어 끝내 또 사고를 쳐버린 나. 실형 6개월을 살고 나온 나에게 남은 것은 전과자에 신용불량자 딱지, 오갈 곳 없어져버린 비참한 처지. 월 60만원짜리 모텔 달방에서 차라리 같이 죽자며 부둥켜 안고 운 것이 몇 번인가.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 니 죽으면 나도 죽고, 나 죽으면 너도 죽어"
너랑 같이 죽는 것은 전혀 두렵지 않다며, 언제든지 각오만 서면 말하라던 너의 당찬 모습에 힘을 냈던 것이 몇 번인가. 2년 반 만에 신용회복에 성공하는데 성공하고, 이제부터 열심히 모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언젠가부터 아프다 아프다 타령을 입에 달고 살던 너.
"아파서 서있지도 못하는 애가 진통제가 무슨 의미야. 무슨 간 아작내고 싶어서 환장한거야? 씨팔, 재산이라고는 니나 나나 몸뚱이 밖에 없는 것들이 관리도 못하면 뭘 어쩌라고!"
호통 치며 억지로 데려간 병원에서 듣게 된,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그 무서운 병에 눈 앞이 캄캄해졌던 나.
"고객님은 대출금액이 안 나오세요"
"기존에 워크아웃 기록이 있으셔서, 대출이 조금 어려우세요"
"선금 2할을 떼고 시작하는데, 선이자랑 원금에 대한 이자는 별개인거 아시지요? 그럼 여기 지장 찍으시고"
어떻게 어떻게 간신히 돈은 구했지만 억지로 퇴원을 원하는 너를, 나는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알면서도 말리지 못했다.
"아프지"
"괜찮아"
낮에는 춥다, 밤에는 덥다. 찬물은 아프다, 더운 물은 시렵다, 여름에는 춥다, 겨울에는 덥다. 몸이 수시로 간지럽고 온 몸의 관절이 다 욱씬거린다. 생리가 끊기고 머리가 계속 아프다, 걷는 것이 힘들고 내가 건드리기만 해도 불에 데인 듯이 아프다. 하루종일 아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잠이 들면 경련을 하고, 그런 아픈 너를 보며 짜증을 내던 나.
"아우 아우. 됐어요 됐어. 뭐야 재수없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너를 파양한 양부모를 수소문 하여 찾아갔지만, 그저 네가 어떻게 자랐을지만 짐작이 가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얼마나 울었던가. 갈수록 안 좋아지는 너를 보며 하루하루가 두려웠다.
"차라리 같이 죽자"
"…너는 살아. 나만 죽으면 돼"
그 예뻤던 여자애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하는 생각에 모텔 비상구 계단에 앉아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나만 아니었으면. 나만 욕심을 안 부렸으면. 그냥 차라리 다른 남자를 만났으면, 나 같은 병신 새끼만 아니었더라면. 차라리 내가 대신 아팠으면!
"제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말 어떻게 안될까 하는 마음에 병원에 찾아가 의사 앞에서 무읖도 꿇어봤고, 모텔 사장님한테도 손을 벌려봤고, 동장 아줌마한테도 물어봤지만 세상 뭐 하나 마음처럼 되는 것이 없었다.
"별 일 없지?"
"응"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갔을 때 네가 죽어있으면 어떻게 하나, 이러다가 정말 내가 일을 못 나가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하나, 차라리 몰래 너 먹는 약에 약을 타고, 나도 같이 마셔버리면 속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루종일 하는 나.
"당장 입원하시는 것을 권합니다"
통장 잔액 6만 4천원. 두 달 밀린 방값, 당장 내일 나가야 할 월수 빚만 38만원. 내일 모레 나갈 카드 리볼빙 금액 107만원.
"생각해볼게요"
집으로 돌아가던 길, 한 마디도 없던 너와 나.
"저거 먹자, 호떡. 너 좋아하잖아. 나 돈 있어"
"그래, 먹자"
그게 너의 마지막 식사가 될 줄은 몰랐다. 정말 몰랐다. 차갑게 식어버린 너를 등에 업고, 이미 모든 것이 끝나버렸음을 알면서도 울면서 병원으로 달려간 나. 제대로 된 장례는 커녕, 경찰조사부터 받고 나와서는, 네 시체가 어떻게 처리될 줄도 모르고 그렇게 공원 근처 벤치에서 울다 잠이 든 나.
"…이제 속이 후련하냐, 정말 이렇게까지 했어야 됐냐"
잔인하디 잔인한 신을 향해 그렇게 저주하며, 휴대폰 사진 속 너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부디 고통 없는 세상에서 네가 행복하길 바란다. 모텔 방만 치우고, 너를 따라가마. 조금만 기다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이렇게 못난 나를 부디 용서하지 말아라. 다음 세상에서 태어나거든, 그때는 나같은 놈이 아니라, 더 좋은 사람 만나. 나같은 놈이 고백해도 코웃음치며 거절해버려. 미안해. 금방 따라갈게. 다른 건 하나도 못해줬지만, 절대로 외롭게는 안 만들게. 미안해. 사랑해. 정말 미안해. 내가 너를 망쳤어… 미안해….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