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저는 언제나처럼 집 앞 3분 거리에 있는 뼈해장국집에 가서 뼈해장국 한 그릇을 시켰지요. 저녁 9시 반이었지만, 그 날의 첫 끼였습니다.
"첫이슬 한 병도 주세요"
왜였을까요. 그 날따라 술이 땡기더군요. 손님이라고는 저 쪽의 아저씨 둘과 나 밖에 없는 이 텅빈 가게에서, 금방 나온 뼈해장국을 국물부터 한 숟가락 떠먹은 저는 바로 소주를 따서 입으로 넘겼습니다. 감미료의 단 맛이 살짝 혀 끝을 스치며 곧이어 진한 쓴 맛에 혀를 쓸며 그렇게 한 잔을 넘깁니다.
"후우"
국물을 한 숟가락 더 떠먹습니다. 빗줄기가 새삼 거세집니다. 슬리퍼를 신고 나오기를 잘했네요. 그리고 고기를 건지려 고개를 든 순간 눈 앞에는 민아가 앉아 있었습니다. 언제나의 그 아이다스 트랙탑을 입고.
"어?"
내가 어리벙벙해하자 그녀는 "이모, 여기 뼈해장국 한 그릇 더 주세요" 하며 주문을 한다. 그리고는 "뭐야, 나도 한잔 줘" 하며 잔을 내밉니다.
"어"
목이 메임을 느끼며 그렇게 잔을 채워줍니다. "크" 하는 소리와 함께 잔을 비운 그녀는 싱긋 웃으며 그렇게 눈 앞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집니다.
맨 밥을 한 숟가락 떠먹고, 두툼한 고기 한 점을 젓가락으로 떼어먹습니다. 갑자기 민아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꾸역꾸역 한 숟가락을 씹어 넘기고, 다시 한 숟가락을 뜨자 이번에는 희정이가 고기 한 점을 내 숟가락 위에 올려줍니다.
"천천히 먹어"
"어어"
그렇게 또 한 숟가락을 넘깁니다. 희정이가 참 얼굴은 이뻤는데 하는 생각에 고개를 들자, 이번에는 세아가 그 큰 눈을 깜박이며 "왜 안 먹어?" 하고 묻습니다. 하지만 대답 대신 그녀의 가슴골에 먼저 시선을 주고 맙니다.
"바보야"
그런 저를 핀찬하며 또 세아가 사라집니다. 소주 한 잔을 더 비우자 연희가 깔깔 웃습니다.
"아저씨두 아니고 뼈해장국이 뭐야 진짜. 곱창 먹자고 곱!창!"
곱창이나 뼈해장국이나 뭐가 다르냐고 웃으며 말을 걸자 아름이가 "와! 여기 맛있다" 하며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내 눈치를 보며 맛있다고 맞장구를 쳐줍니다. 네 감정에 솔직하라고 또 진심 반 농담 반으로, 항상 그녀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던 것을 넌지시 건내자 수아가 소리칩니다.
"아 술 오빠 혼자 다 마시는거야? 나도 술 좋아한다고 술!"
똥머리를 한 그녀가 소주 병을 흔드는 것을 보며 전 "너 또 술 마시고 사고치려고 그러지!" 하고 한 마디 하려다가, 진짜 사고가 났던 그 날의 기억이 번뜩 스쳐 지나가며 정신이 번쩍 듭니다.
"후룹"
뼈해장국 국물을 다시 떠마시며 텅 빈 가게를 둘러 보노라니 드르륵 가게 문을 열고 아라가 들어옵니다.
"많이 기다렸어? 미안, 비 와서 늦었어. 뭐야, 바로 먹는다고 내 것도 시켜놓으라니깐"
아라가 투덜투덜대면서 메뉴판을 펼칩니다. 뼈해장국집에서 뼈해장국 말고 뭘 먹을거냐고 한 마디 하자, 어느새 현지가 "여기 순대국은 별로야?" 하며 묻습니다. "괜찮아. 여기 다 맛있어" 하고 대답하자, 경미가 "오빠 근데 술 좀 줄여야 돼" 하고 조심스럽게 조언을 합니다. 내가 화를 낼 것을 두려워 하면서. 생각해보면 왜 그랬을까요. 틀린 말을 한 건 하나도 없는데 왜 경미가 뭔 말만 하면 내가 그리도 매번 화를 냈는지. 걔 말만 잘 들었어도….
"걔 말만 잘 들었어도…"
그리고 그 순간 정신을 차렸습니다.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저는 오른쪽 다리가 완전히 뒤틀려 뼈가 드러난 채로 쓰러진 스쿠터 옆에서 끙끙대고 있었습니다.
"허어어어어어, 흐으으으…"
폭우로 인해 평소보다 더욱 인적이 드물어진 골목, 빗길에 넘어지며 크게 다친 저는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 방금 그것은 주마등이었겠지요. 비 오는 감성에 취해 뼈해장국에 소주를 곁들여 마시고는, 괜히 스쿠터를 탔다가 이 꼴이 난 것까지의 기억이 이제 돌아왔습니다. 비명조차 잘 나오지 않는 아찔아찔한 틍증 속에서 휴대폰을 어떻게든 찾으려 바닥을 주섬주섬 더듬었지만 양 팔이 다 탈구된 것인지 여의치 않습니다.
"으으으, 으으"
자꾸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간신히 정신줄을 붙잡고 흐르는 눈물 속에서 "사, 살려주세요" 하고 모기만하게 중얼거리는 순간, 저 앞에 환한 빛이 비칩니다. 어느 배달 트럭의 헤드라이트.
"사, 알, 살려…"
겨우겨우 토해내듯 말을 내뱉는 순간, 저는 눈을 떴습니다.
"첫이슬 한 병도 주세요"
왜였을까요. 그 날따라 술이 땡기더군요. 손님이라고는 저 쪽의 아저씨 둘과 나 밖에 없는 이 텅빈 가게에서, 금방 나온 뼈해장국을 국물부터 한 숟가락 떠먹은 저는 바로 소주를 따서 입으로 넘겼습니다. 감미료의 단 맛이 살짝 혀 끝을 스치며 곧이어 진한 쓴 맛에 혀를 쓸며 그렇게 한 잔을 넘깁니다.
"후우"
국물을 한 숟가락 더 떠먹습니다. 빗줄기가 새삼 거세집니다. 슬리퍼를 신고 나오기를 잘했네요. 그리고 고기를 건지려 고개를 든 순간 눈 앞에는 민아가 앉아 있었습니다. 언제나의 그 아이다스 트랙탑을 입고.
"어?"
내가 어리벙벙해하자 그녀는 "이모, 여기 뼈해장국 한 그릇 더 주세요" 하며 주문을 한다. 그리고는 "뭐야, 나도 한잔 줘" 하며 잔을 내밉니다.
"어"
목이 메임을 느끼며 그렇게 잔을 채워줍니다. "크" 하는 소리와 함께 잔을 비운 그녀는 싱긋 웃으며 그렇게 눈 앞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집니다.
맨 밥을 한 숟가락 떠먹고, 두툼한 고기 한 점을 젓가락으로 떼어먹습니다. 갑자기 민아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꾸역꾸역 한 숟가락을 씹어 넘기고, 다시 한 숟가락을 뜨자 이번에는 희정이가 고기 한 점을 내 숟가락 위에 올려줍니다.
"천천히 먹어"
"어어"
그렇게 또 한 숟가락을 넘깁니다. 희정이가 참 얼굴은 이뻤는데 하는 생각에 고개를 들자, 이번에는 세아가 그 큰 눈을 깜박이며 "왜 안 먹어?" 하고 묻습니다. 하지만 대답 대신 그녀의 가슴골에 먼저 시선을 주고 맙니다.
"바보야"
그런 저를 핀찬하며 또 세아가 사라집니다. 소주 한 잔을 더 비우자 연희가 깔깔 웃습니다.
"아저씨두 아니고 뼈해장국이 뭐야 진짜. 곱창 먹자고 곱!창!"
곱창이나 뼈해장국이나 뭐가 다르냐고 웃으며 말을 걸자 아름이가 "와! 여기 맛있다" 하며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내 눈치를 보며 맛있다고 맞장구를 쳐줍니다. 네 감정에 솔직하라고 또 진심 반 농담 반으로, 항상 그녀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던 것을 넌지시 건내자 수아가 소리칩니다.
"아 술 오빠 혼자 다 마시는거야? 나도 술 좋아한다고 술!"
똥머리를 한 그녀가 소주 병을 흔드는 것을 보며 전 "너 또 술 마시고 사고치려고 그러지!" 하고 한 마디 하려다가, 진짜 사고가 났던 그 날의 기억이 번뜩 스쳐 지나가며 정신이 번쩍 듭니다.
"후룹"
뼈해장국 국물을 다시 떠마시며 텅 빈 가게를 둘러 보노라니 드르륵 가게 문을 열고 아라가 들어옵니다.
"많이 기다렸어? 미안, 비 와서 늦었어. 뭐야, 바로 먹는다고 내 것도 시켜놓으라니깐"
아라가 투덜투덜대면서 메뉴판을 펼칩니다. 뼈해장국집에서 뼈해장국 말고 뭘 먹을거냐고 한 마디 하자, 어느새 현지가 "여기 순대국은 별로야?" 하며 묻습니다. "괜찮아. 여기 다 맛있어" 하고 대답하자, 경미가 "오빠 근데 술 좀 줄여야 돼" 하고 조심스럽게 조언을 합니다. 내가 화를 낼 것을 두려워 하면서. 생각해보면 왜 그랬을까요. 틀린 말을 한 건 하나도 없는데 왜 경미가 뭔 말만 하면 내가 그리도 매번 화를 냈는지. 걔 말만 잘 들었어도….
"걔 말만 잘 들었어도…"
그리고 그 순간 정신을 차렸습니다.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저는 오른쪽 다리가 완전히 뒤틀려 뼈가 드러난 채로 쓰러진 스쿠터 옆에서 끙끙대고 있었습니다.
"허어어어어어, 흐으으으…"
폭우로 인해 평소보다 더욱 인적이 드물어진 골목, 빗길에 넘어지며 크게 다친 저는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 방금 그것은 주마등이었겠지요. 비 오는 감성에 취해 뼈해장국에 소주를 곁들여 마시고는, 괜히 스쿠터를 탔다가 이 꼴이 난 것까지의 기억이 이제 돌아왔습니다. 비명조차 잘 나오지 않는 아찔아찔한 틍증 속에서 휴대폰을 어떻게든 찾으려 바닥을 주섬주섬 더듬었지만 양 팔이 다 탈구된 것인지 여의치 않습니다.
"으으으, 으으"
자꾸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간신히 정신줄을 붙잡고 흐르는 눈물 속에서 "사, 살려주세요" 하고 모기만하게 중얼거리는 순간, 저 앞에 환한 빛이 비칩니다. 어느 배달 트럭의 헤드라이트.
"사, 알, 살려…"
겨우겨우 토해내듯 말을 내뱉는 순간, 저는 눈을 떴습니다.
"허"
오토바이도 탈 줄 모르고, 평소 소주는 입에도 대지 않으며, 등장했던 그 많은 여자들은 물론 생전 그 누구와도 사귀어 본 적 없는 모태솔로인 내가 왜 그런 꿈을 꿨는지 그 이유를 저는 정말로 모르겠습니다.
"아우"
긴 안도의 한숨과 함께 저는 다시 안락한 새벽잠을 더 청하기 위해, 아직도 두근대는 심장을 겨우 진정시키며 눈을 감았습니다. 귓 가에서 들리는 "어이, 세상에 아이고, 아이고고, 이거, 이거, 119, 119를…" 하며 당황하는 어느 아저씨의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