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직전, 망자의 모든 사고와 기억을 온라인에 업로드함으로서 죽음이 더이상 영원한 이별을 의미하지 않게 된 2040년대의 사회.
"여보, 거긴 어때"
"정말 최고야. 자기도 그냥 고생하지 말고 얼른 여기로 와"
"하하, 또 그런다 또. 30년만 더 있다가 갈게"
비록 재산권이나 선거권 등 생전에 그가 가졌던 인간으로서의 수많은 권리를 더이상 주장할 수 없게 되지만, 그 대신 온라인 세계 속에서 영원한 기쁨과 편한한 사후를 누릴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그것은 분명 누군가들에게는 진짜 말 그대로 '천국'이었다. 덕분에 서비스 초창기 자살율 폭증으로 인해 또 한번 서비스 자체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삶에 대한 추구는 생명 본연의 본능 그 자체였으며, 이제는 모두가 안다. 저 온라인 너머 저 세상이 얼핏 보기엔 좋아 보일지 몰라도 결국에는 '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는 말은 여전한 진리라는 것을.
"새로운 몸을 갖게 된 느낌이 어떠십니까"
"선생님. 그건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완벽합니다"
"평소 관리를 아주 잘해오시긴 했지만, 그래도 122세의 육체로 사시던 뇌의 기억이 20대의 몸에 완벽히 적응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실 겁니다. 천천히 활동하시면서 적응해보세요"
"예 감사합니다"
그리고 10년. 이미 죽음을 한번 뛰어 넘은 인류는 또 한번 죽음을 뛰어넘는데 성공했다. 복제유전체에 대한 뇌 이식 서비스, 이른바 '뉴바디'를 통해 새로운 몸을 갖게 된 것이다. 이제 이론적으로 인류는 영생이 가능해진 것이나 다름 없어진 것이다. 서비스가 안착되는 데에는 2050년에서 또 꽤 긴 세월이 필요했지만, 인류의 역사 그 자체를 바꾸게 된 대사건 앞에 그 정도 시간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성공한 사업가인 존은 새로운 몸을 갖게 되자마자 운영하던 사업체를 이사회에 넘기고 명예회장직으로 물러났다. 이미 그의 자산은 2,800억 달러가 넘었고 그의 기업은 세계에서 제일 유능한 이들에 의해 운영 중이었며 그는 차기 대통령 후보에도 수차례 물망에 올랐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존재였지만, 90여 년 만의 본격적인 휴식을 맞이한 지금의 그에게 그것은 부차적인 일에 불과했다.
"아아, 그래. 이거야"
90% 이상의 사람들이 유전자 편집을 동반한 인공수정, 복제유전체를 통한 간접출산 방식으로 안전하게 아이를 낳는 시대임에도 그는 지금 고전적인 방식으로 아이를 만들고 있었다.
"으음, 좋아"
방금 그가 뱉은 신음은 완벽한 미모를 가진 여배우의 여체에서 느낀 성적 쾌감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온 몸에 흘러넘치는 자신의 열정과 체력에 대한 순수한 감탄이었다. 어차피 섹스의 쾌감은, 육체적 관계 따위 이어럽을 끼우고 하는 뇌파 자극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저 존은 '돈이 썩어 넘쳐나는 부자들 특유의 악취미'로, '영화의 흥행 성공으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 중인 신인 여배우에게 자신의 유전자를 심어 그녀의 몸을 변하게 하며, 인생에서 가장 큰 고통을 10개월 후 선사할 것이라는 잔인한 짜릿함'과 '그것을 구현할 자신의 100년 전 완벽한 몸'에 대한 찬탄으로 이번 출산계약을 진행한 것이었다.
"후우"
거사를 치른 후, 존은 여전히 침대에 뻗어있는 스칼렛을 향해 "임신이 확인되면 자동으로 돈은 입금될거야. 그 전까지는 일주일에 한번씩 여기로 와. 아 그리고 임신 이후에는 내가 붙인 여의사가 매일 수행하게 될테니 복제유전체에 수정란 이동 같은 허튼 생각은 꿈도 꾸지 말고" 라는 매정한 말과 함께 벌거벗은 몸으로 샤워실로 향했다.
"멋지군"
거울을 보며 단단한 근육을 만져보던 존은 만약 스칼렛이 자신의 아이를 낳게 된다면, 그 아이에게는 무엇을 물려줄까를 벌써부터 고민하고 있었다. 유전자 조작으로 완벽하게 만들어 낸, 눈매 정도를 제외하면 자신과 별로 닮지도 않은 여덞 명의 아들 딸과는 다른, 정말 순수한 자신의 자식에 대한 본능적인 애착이었다.
"그냥 아예 그 놈에게 뉴바디 코퍼레이션을 물려줄까"
아마 그랬다가는 형제 간에 전쟁이 나겠지. 피식 웃었다. 자신이 너무 앞서 간다는 생각을 한 그는 문득, 그 '순수체' 아들이 스무살쯤 되었을 때 또 한번 자신의 몸을 새로운 바디로 바꾸어 친구처럼 논다면 그것도 재밌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회장님, 아니 존?"
역시 벌거벗은 몸으로 샤워실에 들어온 스칼렛은 그 특유의 화사한 미소를 뽐내며 존의 몸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그리고 "다음 주에, 여행 어떠세요? 아주 멀리" 하며 속삭였다. 철저히 비지니스적이며 가학적인 관계로, 그녀를 아이를 낳는 도구로 사용하고자 했던 존은 그때서야 깨달았다. 오히려 이번 계약으로 코가 꿰인 것은 자신이었다. 여배우 스칼렛은 자신의 첫 스캔들 제물로 세계 최고의 기업가를 고른 것이었다. 그리고 존은 스칼렛의 그런 발칙함에 큰 흥미를 느꼈다. 무려 자신보다 100살이나 어린 여우에게.
"좋지"
"오우, 우진아"
"아아, 좋아. 아으, 찬이형"
우진과 의찬은 각각 자신의 방에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다. 그들이 각각 양쪽 귀에 낀 이어럽4 모델은, 다중의 고주파를 동시에 발산하여 그것들이 중첩되는 과정에서 저주파가 되고, 뇌의 흥분을 유도하는 TI(Temporally Interfering) 기술을 활용한 섹스토이였다.
"허어억"
뇌의 쾌감을 느끼는 부위를 저주파로 자극하는 그 쾌감은 실제 육체적인 관계보다도 더 강한 수준의 것이었으며 가격 역시 커피 몇 잔 수준의 저렴한 것이었기에 전 세계적인 대박을 쳤고 '성적 접촉이 없어도 절대적인 쾌락을 맛볼 수 있다'는 유혹은 세계적인 마약 복용율의 저하, 에이즈 감염율 저하라는 훌륭한 효과를 가져올 정도로 극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후속작, 유사품으로 이어지면서 원격 연동, 뇌파 해킹 등 자잘한 기능들이 추가되어 지금과 같은 원거리 공명 섹스도 가능해진 것이다.
"후우우"
"아 좋았어"
"우우우우우"
도를 넘는 자극에, 몸을 부르르 떨며 그대로 기절해버린 우진. 그리고 공명 센서로 그것을 느낀 의찬. 척수장애를 가져 몸이 불편한 둘에게, 이어럽은 둘을 육체적으로 이어주는 감사한 매개체였다. 하지만 우진에게는 그것이 곧 필요없어질지도 모른다. 추첨을 통해 1년에 약 500체 정도의 뉴바디 수술이 중증장애인이나 독거노인 대상으로 국가복지예산으로 시행된다. 특히 우진, 의찬 커플처럼 장애를 가진 경우이거나 생활지원금을 받고 있는 경우에는 특별 가산점까지 주어진다. 그럼에도 매년 경쟁율은 아득할 정도로 치열하다. 그리고 바로 그 극악한 확률을 뚫고 우진이 얼마 전 당첨이 된 것이다. 수술은 다음 주 화요일.
"후으"
의찬은 타바코 스틱에 연초맛 칩을 넣고, 스틱의 한쪽 끝을 혀에 대었다. 잠시 후 혀에 침이 고이고, 점막을 통해 전해지는 일종의 착미 현상을 진하게 느끼며 길게 숨을 내쉰다. 마치 반세기 전의 흡연자들이 담배연기를 내뿜듯이. 이어랩4를 귀에서 제거한 의찬은 문득 중얼거렸다.
"나는 무섭다"
건강하고 새로운 몸을 갖게 된 우진이, 과연 가진 것도 없고 그저 평생동안 뒷수발만 해야할 자신을 끝까지 곁에서 지켜줄 것인가가. 그리고 평소 우진과의 관계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잡음, 미안했던 기억들, 무엇보다 앞으로 우진이 자신을 보며 수없이 겪게될 수많은 내적갈등을 생각하면, 의찬은 헤어져 주는게 맞으리란 생각마저 들었다.
"차라리…"
지독한 외로움과 두려움, 부러움과 그런 자신을 향한 혐오에 의찬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두 명의 VIP, 매니저와 수행비서 등 둘을 수행하는 21명의 수행원, 세 명의 전문 의료원과 여덟 명의 의료 엔지니어, 승무원 30명, 그리고 수많은 기자재를 싣고 온 엔진 4발짜리 육중한 초대형 여객기 보이드 848-600ER은 새벽 야음을 틈타 인천국제공항에 착륙했다. 아기가 청년이 되고 중년이 되었다가 노인이 된 후 빛과 만나 다시 청년이 되는 일련의 직관적인 그림이 도색된 그 큰 비행기에서 내린 것은 역시나 존과 스칼렛이었다.
"그럼 오늘 밤 그랜드 나이트 호텔에서 보자구"
"그래요 존"
입국장 앞에서 헤어진 둘. 세계적인 명사들의 난데없는 방한이었지만, 워낙 갑작스러운 일정이었고 새벽 시간대의 입국이었기에 우연히 스칼렛을 알아본 몇 명의 외국인을 제외하면 큰 반향은 없었다. 오히려 존이야말로 다음 날의 일정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시차적응이 필요없는 몸이라는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아나? 자네들도 얼른 몸을 바꾸라고"
"저는 몸을 바꿔도 시차적응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회장님이 특별한 경우죠. 저희는 약으로 때우려고 합니다"
"하하. 아참, 기자재 세팅은?"
"한국의료원 측에 준비를 마무리 해두었습니다"
"좋아"
존이 스칼렛과의 여행지로 한국을 고른 것은 일단 스칼렛의 지난 영화가 북미대륙을 제외하면 가장 흥행한 나라가 한국이었기에 그 보답을 위한 것도 한 가지가 있었고, 존 역시 한국 정부와 진행 중인 '사자 부활법'에 대한 지원 논의 때문도 있었다.
"SS바이오텍과 CTON은 저희 뉴바디의 가장 믿음직한 기술제휴 파트너사이기도 합니다. 한국 정부에서 추진 중인 그 건이 실제 궤도에 오른다면 저희 뉴바디 역시 한국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 할 생각이 있습니다."
지난 주 금요일, 비서를 통해 한국 정부의 미팅 제안건을 들은 존은 곧바로 "미친 놈들!" 하고 감탄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를 내었다. 지난 반 세기 전, 극적인 통일로 최악의 인구 문제를 차악의 방법으로 해결한 대한민국은 그러나 다시 발생 중인 출산율 저하 문제를 '사자 부활'이라는 엄청난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하고 있었다.
"물론 가능합니다. 현재 당사의 차기 모델은 NSR-trt 기술을 도입하여 주축국 스타일과도 혼용이 됩니다."
일본과 독일 기업들의 뉴바디 기술에 대해 '주축국 스타일'이라는 조크를 던졌지만, 회의실에 있는 그 누구도 웃지 않았다. 존은 무안함을 애써 참으며 설명을 이어했다.
"기술적으로 완벽히 새로운 접근입니다"
미국과 한국 기업들이 사용하는 SR-trt 방식보다는, 독일과 일본 기업들의 Btbn 방식이 이미 데이터 형태로 온라인에 업로드 된 망자들을 뉴바디에 역이식하는 데에는 더 유리했다. 그러나 존의 회사 뉴바디 코퍼레이션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여 이미 그러한 수요에 대비를 마친 상태였다.
"다만, 미국 의회에서의 로비도 필요하고 그 전에 SS바이오텍, CTON과의 추가적인 기술협약도 원합니다. 무엇보다 사자 부활이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시행된다면 저희 뉴바디 코퍼레이션이 향후 30년간 독점적인 사업우선권을 보장받았으면 합니다"
2069년 현재, 출산율이 0.1%대까지 떨어진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인구감소로 인한 수혜와 후유증을 가장 극단적으로 겪고 있는 나라 중 하나였다. 그들은 결국, '온라인 추모관'에 업로드 되어 있는 '죽은 국민'들을 뉴바디에 역이식하여 부활시키는 어마어마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자 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그에 대해 어떤 지원이든 아끼지 않을 각오를 하고 있소. 다만 우리 정부로서는 자국의 기업들을 우선적으로 키워야 한다는 명분과 책임이 있소"
한국 정부는 자국의 바이오 테크놀러지 기업 SS바이오텍과 CTON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해당 사업의 완벽한 독점권 보장은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의료원이라는 공기업을 국가사업의 중심에 두고 세 기업이 지원하는 합자회사 형태, 혹은 SS바이오텍을 중심으로 사업을 추진하며 CTON의 지원, 뉴바디 측의 뉴바디 본체에 대한 공급권 독점이라는 형태로 사업을 추진하고 싶어했다.
"음, 해당 사안은 제가 이 자리에서 답변을 드리긴 어려울 것 같군요"
한국 정부가 목표치로 제시한 것은 10년 간 안정적인 100만 구의 뉴바디 공급이었다. 물론 이미 '사자 부활'은 대다수의 국가에서 군사, 첩보, 정치적 목적으로 비밀 리에 진행하고 있었으며, 중국 같은 경우에는 이미 3만 명이 넘는 부활자가 있다는 폭로가 있기도 했지만, 한국 정부는 아예 정책적으로 사망한 국민들을 부활시키고 싶어했다.
(중략 : 본 소설은 스타일박스 유료 메일링 서비스 구독자 전용입니다)
"여보, 거긴 어때"
"정말 최고야. 자기도 그냥 고생하지 말고 얼른 여기로 와"
"하하, 또 그런다 또. 30년만 더 있다가 갈게"
비록 재산권이나 선거권 등 생전에 그가 가졌던 인간으로서의 수많은 권리를 더이상 주장할 수 없게 되지만, 그 대신 온라인 세계 속에서 영원한 기쁨과 편한한 사후를 누릴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그것은 분명 누군가들에게는 진짜 말 그대로 '천국'이었다. 덕분에 서비스 초창기 자살율 폭증으로 인해 또 한번 서비스 자체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삶에 대한 추구는 생명 본연의 본능 그 자체였으며, 이제는 모두가 안다. 저 온라인 너머 저 세상이 얼핏 보기엔 좋아 보일지 몰라도 결국에는 '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는 말은 여전한 진리라는 것을.
"새로운 몸을 갖게 된 느낌이 어떠십니까"
"선생님. 그건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완벽합니다"
"평소 관리를 아주 잘해오시긴 했지만, 그래도 122세의 육체로 사시던 뇌의 기억이 20대의 몸에 완벽히 적응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실 겁니다. 천천히 활동하시면서 적응해보세요"
"예 감사합니다"
그리고 10년. 이미 죽음을 한번 뛰어 넘은 인류는 또 한번 죽음을 뛰어넘는데 성공했다. 복제유전체에 대한 뇌 이식 서비스, 이른바 '뉴바디'를 통해 새로운 몸을 갖게 된 것이다. 이제 이론적으로 인류는 영생이 가능해진 것이나 다름 없어진 것이다. 서비스가 안착되는 데에는 2050년에서 또 꽤 긴 세월이 필요했지만, 인류의 역사 그 자체를 바꾸게 된 대사건 앞에 그 정도 시간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뉴바디 Ep.2
성공한 사업가인 존은 새로운 몸을 갖게 되자마자 운영하던 사업체를 이사회에 넘기고 명예회장직으로 물러났다. 이미 그의 자산은 2,800억 달러가 넘었고 그의 기업은 세계에서 제일 유능한 이들에 의해 운영 중이었며 그는 차기 대통령 후보에도 수차례 물망에 올랐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존재였지만, 90여 년 만의 본격적인 휴식을 맞이한 지금의 그에게 그것은 부차적인 일에 불과했다.
"아아, 그래. 이거야"
90% 이상의 사람들이 유전자 편집을 동반한 인공수정, 복제유전체를 통한 간접출산 방식으로 안전하게 아이를 낳는 시대임에도 그는 지금 고전적인 방식으로 아이를 만들고 있었다.
"으음, 좋아"
방금 그가 뱉은 신음은 완벽한 미모를 가진 여배우의 여체에서 느낀 성적 쾌감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온 몸에 흘러넘치는 자신의 열정과 체력에 대한 순수한 감탄이었다. 어차피 섹스의 쾌감은, 육체적 관계 따위 이어럽을 끼우고 하는 뇌파 자극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저 존은 '돈이 썩어 넘쳐나는 부자들 특유의 악취미'로, '영화의 흥행 성공으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 중인 신인 여배우에게 자신의 유전자를 심어 그녀의 몸을 변하게 하며, 인생에서 가장 큰 고통을 10개월 후 선사할 것이라는 잔인한 짜릿함'과 '그것을 구현할 자신의 100년 전 완벽한 몸'에 대한 찬탄으로 이번 출산계약을 진행한 것이었다.
"후우"
거사를 치른 후, 존은 여전히 침대에 뻗어있는 스칼렛을 향해 "임신이 확인되면 자동으로 돈은 입금될거야. 그 전까지는 일주일에 한번씩 여기로 와. 아 그리고 임신 이후에는 내가 붙인 여의사가 매일 수행하게 될테니 복제유전체에 수정란 이동 같은 허튼 생각은 꿈도 꾸지 말고" 라는 매정한 말과 함께 벌거벗은 몸으로 샤워실로 향했다.
"멋지군"
거울을 보며 단단한 근육을 만져보던 존은 만약 스칼렛이 자신의 아이를 낳게 된다면, 그 아이에게는 무엇을 물려줄까를 벌써부터 고민하고 있었다. 유전자 조작으로 완벽하게 만들어 낸, 눈매 정도를 제외하면 자신과 별로 닮지도 않은 여덞 명의 아들 딸과는 다른, 정말 순수한 자신의 자식에 대한 본능적인 애착이었다.
"그냥 아예 그 놈에게 뉴바디 코퍼레이션을 물려줄까"
아마 그랬다가는 형제 간에 전쟁이 나겠지. 피식 웃었다. 자신이 너무 앞서 간다는 생각을 한 그는 문득, 그 '순수체' 아들이 스무살쯤 되었을 때 또 한번 자신의 몸을 새로운 바디로 바꾸어 친구처럼 논다면 그것도 재밌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회장님, 아니 존?"
역시 벌거벗은 몸으로 샤워실에 들어온 스칼렛은 그 특유의 화사한 미소를 뽐내며 존의 몸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그리고 "다음 주에, 여행 어떠세요? 아주 멀리" 하며 속삭였다. 철저히 비지니스적이며 가학적인 관계로, 그녀를 아이를 낳는 도구로 사용하고자 했던 존은 그때서야 깨달았다. 오히려 이번 계약으로 코가 꿰인 것은 자신이었다. 여배우 스칼렛은 자신의 첫 스캔들 제물로 세계 최고의 기업가를 고른 것이었다. 그리고 존은 스칼렛의 그런 발칙함에 큰 흥미를 느꼈다. 무려 자신보다 100살이나 어린 여우에게.
"좋지"
"오우, 우진아"
"아아, 좋아. 아으, 찬이형"
우진과 의찬은 각각 자신의 방에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다. 그들이 각각 양쪽 귀에 낀 이어럽4 모델은, 다중의 고주파를 동시에 발산하여 그것들이 중첩되는 과정에서 저주파가 되고, 뇌의 흥분을 유도하는 TI(Temporally Interfering) 기술을 활용한 섹스토이였다.
"허어억"
뇌의 쾌감을 느끼는 부위를 저주파로 자극하는 그 쾌감은 실제 육체적인 관계보다도 더 강한 수준의 것이었으며 가격 역시 커피 몇 잔 수준의 저렴한 것이었기에 전 세계적인 대박을 쳤고 '성적 접촉이 없어도 절대적인 쾌락을 맛볼 수 있다'는 유혹은 세계적인 마약 복용율의 저하, 에이즈 감염율 저하라는 훌륭한 효과를 가져올 정도로 극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후속작, 유사품으로 이어지면서 원격 연동, 뇌파 해킹 등 자잘한 기능들이 추가되어 지금과 같은 원거리 공명 섹스도 가능해진 것이다.
"후우우"
"아 좋았어"
"우우우우우"
도를 넘는 자극에, 몸을 부르르 떨며 그대로 기절해버린 우진. 그리고 공명 센서로 그것을 느낀 의찬. 척수장애를 가져 몸이 불편한 둘에게, 이어럽은 둘을 육체적으로 이어주는 감사한 매개체였다. 하지만 우진에게는 그것이 곧 필요없어질지도 모른다. 추첨을 통해 1년에 약 500체 정도의 뉴바디 수술이 중증장애인이나 독거노인 대상으로 국가복지예산으로 시행된다. 특히 우진, 의찬 커플처럼 장애를 가진 경우이거나 생활지원금을 받고 있는 경우에는 특별 가산점까지 주어진다. 그럼에도 매년 경쟁율은 아득할 정도로 치열하다. 그리고 바로 그 극악한 확률을 뚫고 우진이 얼마 전 당첨이 된 것이다. 수술은 다음 주 화요일.
"후으"
의찬은 타바코 스틱에 연초맛 칩을 넣고, 스틱의 한쪽 끝을 혀에 대었다. 잠시 후 혀에 침이 고이고, 점막을 통해 전해지는 일종의 착미 현상을 진하게 느끼며 길게 숨을 내쉰다. 마치 반세기 전의 흡연자들이 담배연기를 내뿜듯이. 이어랩4를 귀에서 제거한 의찬은 문득 중얼거렸다.
"나는 무섭다"
건강하고 새로운 몸을 갖게 된 우진이, 과연 가진 것도 없고 그저 평생동안 뒷수발만 해야할 자신을 끝까지 곁에서 지켜줄 것인가가. 그리고 평소 우진과의 관계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잡음, 미안했던 기억들, 무엇보다 앞으로 우진이 자신을 보며 수없이 겪게될 수많은 내적갈등을 생각하면, 의찬은 헤어져 주는게 맞으리란 생각마저 들었다.
"차라리…"
지독한 외로움과 두려움, 부러움과 그런 자신을 향한 혐오에 의찬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두 명의 VIP, 매니저와 수행비서 등 둘을 수행하는 21명의 수행원, 세 명의 전문 의료원과 여덟 명의 의료 엔지니어, 승무원 30명, 그리고 수많은 기자재를 싣고 온 엔진 4발짜리 육중한 초대형 여객기 보이드 848-600ER은 새벽 야음을 틈타 인천국제공항에 착륙했다. 아기가 청년이 되고 중년이 되었다가 노인이 된 후 빛과 만나 다시 청년이 되는 일련의 직관적인 그림이 도색된 그 큰 비행기에서 내린 것은 역시나 존과 스칼렛이었다.
"그럼 오늘 밤 그랜드 나이트 호텔에서 보자구"
"그래요 존"
입국장 앞에서 헤어진 둘. 세계적인 명사들의 난데없는 방한이었지만, 워낙 갑작스러운 일정이었고 새벽 시간대의 입국이었기에 우연히 스칼렛을 알아본 몇 명의 외국인을 제외하면 큰 반향은 없었다. 오히려 존이야말로 다음 날의 일정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시차적응이 필요없는 몸이라는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아나? 자네들도 얼른 몸을 바꾸라고"
"저는 몸을 바꿔도 시차적응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회장님이 특별한 경우죠. 저희는 약으로 때우려고 합니다"
"하하. 아참, 기자재 세팅은?"
"한국의료원 측에 준비를 마무리 해두었습니다"
"좋아"
존이 스칼렛과의 여행지로 한국을 고른 것은 일단 스칼렛의 지난 영화가 북미대륙을 제외하면 가장 흥행한 나라가 한국이었기에 그 보답을 위한 것도 한 가지가 있었고, 존 역시 한국 정부와 진행 중인 '사자 부활법'에 대한 지원 논의 때문도 있었다.
"SS바이오텍과 CTON은 저희 뉴바디의 가장 믿음직한 기술제휴 파트너사이기도 합니다. 한국 정부에서 추진 중인 그 건이 실제 궤도에 오른다면 저희 뉴바디 역시 한국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 할 생각이 있습니다."
지난 주 금요일, 비서를 통해 한국 정부의 미팅 제안건을 들은 존은 곧바로 "미친 놈들!" 하고 감탄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를 내었다. 지난 반 세기 전, 극적인 통일로 최악의 인구 문제를 차악의 방법으로 해결한 대한민국은 그러나 다시 발생 중인 출산율 저하 문제를 '사자 부활'이라는 엄청난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하고 있었다.
"물론 가능합니다. 현재 당사의 차기 모델은 NSR-trt 기술을 도입하여 주축국 스타일과도 혼용이 됩니다."
일본과 독일 기업들의 뉴바디 기술에 대해 '주축국 스타일'이라는 조크를 던졌지만, 회의실에 있는 그 누구도 웃지 않았다. 존은 무안함을 애써 참으며 설명을 이어했다.
"기술적으로 완벽히 새로운 접근입니다"
미국과 한국 기업들이 사용하는 SR-trt 방식보다는, 독일과 일본 기업들의 Btbn 방식이 이미 데이터 형태로 온라인에 업로드 된 망자들을 뉴바디에 역이식하는 데에는 더 유리했다. 그러나 존의 회사 뉴바디 코퍼레이션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여 이미 그러한 수요에 대비를 마친 상태였다.
"다만, 미국 의회에서의 로비도 필요하고 그 전에 SS바이오텍, CTON과의 추가적인 기술협약도 원합니다. 무엇보다 사자 부활이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시행된다면 저희 뉴바디 코퍼레이션이 향후 30년간 독점적인 사업우선권을 보장받았으면 합니다"
2069년 현재, 출산율이 0.1%대까지 떨어진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인구감소로 인한 수혜와 후유증을 가장 극단적으로 겪고 있는 나라 중 하나였다. 그들은 결국, '온라인 추모관'에 업로드 되어 있는 '죽은 국민'들을 뉴바디에 역이식하여 부활시키는 어마어마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자 한 것이다.
"우리 정부는 그에 대해 어떤 지원이든 아끼지 않을 각오를 하고 있소. 다만 우리 정부로서는 자국의 기업들을 우선적으로 키워야 한다는 명분과 책임이 있소"
한국 정부는 자국의 바이오 테크놀러지 기업 SS바이오텍과 CTON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해당 사업의 완벽한 독점권 보장은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의료원이라는 공기업을 국가사업의 중심에 두고 세 기업이 지원하는 합자회사 형태, 혹은 SS바이오텍을 중심으로 사업을 추진하며 CTON의 지원, 뉴바디 측의 뉴바디 본체에 대한 공급권 독점이라는 형태로 사업을 추진하고 싶어했다.
"음, 해당 사안은 제가 이 자리에서 답변을 드리긴 어려울 것 같군요"
한국 정부가 목표치로 제시한 것은 10년 간 안정적인 100만 구의 뉴바디 공급이었다. 물론 이미 '사자 부활'은 대다수의 국가에서 군사, 첩보, 정치적 목적으로 비밀 리에 진행하고 있었으며, 중국 같은 경우에는 이미 3만 명이 넘는 부활자가 있다는 폭로가 있기도 했지만, 한국 정부는 아예 정책적으로 사망한 국민들을 부활시키고 싶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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