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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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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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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 피드 번즈는 설명을 시작했다.

"자, 여기 걷는 사람의 모습을 카메라로 연사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샤샤샤샤샤샤샷"

그의 '샤샤샤샤샷'하는 발음이 웃겼는지, 좌중의 웃음이 터졌다. 익살 맞은 표정으로 잠시 말을 멈추었던 번즈는 말을 이어나갔다.

"자 그럼 여기 그의 걷는 모습 사진이 스무장 찍혔습니다. 물론 우리의 시간적 개념상으로는 이 첫번째 사진 속 걷는 모습이 마지막 스무번째 걷는 모습보다는 이전의 시간입니다. 하지만 보세요. 우리의 눈에는 어쨌든 이 첫번째 사진과 스무번째 사진이 같은 시공간에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는 과학콘서트장 중앙으로 걸어나왔다.

"여러분이 과거에 겪었던 모든 일들, 그리고 우리의 조상들이, 그리고 인류가, 그리고 지구가, 우주가 겪은 모든 일들은, 우리가 생활하는 이 3차원 세계에서 살짝만 벗어나면 아까의 사진들처럼 그 모든 시간의 흐름을 객관적으로, 과거에서 현재까지 골라서 지켜볼 수 있습니다"

어깨를 으쓱한 그는 아쉽다는 듯 손을 맞잡았다.

"안타깝게도 현재의 기술로는, 우리가 직접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과거를 바라볼 수는 있게 되었죠. 소개합니다. '고디바 머신!'"

청중들의 엄청난 박수 소리와 함께 장막이 걷히고, 마치 '아주 커다란 현미경'처럼 생긴,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3미터씩은 되어 보이는 거대한 기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스마트폰, 양자컴퓨터, 핵융합 발전, 분자재구축 기술과 함께 21세기를 바꾼 5대 기술로 손꼽힌 과거투영기 '고디바 머신'이었다.





과거 관람





아주 작은 규모이기는 하지만, 무려 핵융합 반응을 에너지원으로 하는 고디바 머신은 군사용으로 전용된지 약 40여 년 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엄청난 고가의 머신이지만, 거의 전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상 기계의 가격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용시간은 3분입니다"

거대한 사회적 혼란 및 군사적 악용의 가능성, 양산을 위한 비용적 한계점 때문에 수많은 기능 제한이 추가되긴 했지만, 이제 우리 모두는 3분동안 자신이 원하는 어느 시기, 어느 나라, 어느 상황이든 그것을 입력한다면 그 상황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2092년 3월 4일 오후 7시 40분, 도쿄 미나토구 아자부주반 미노 빌딩 4층. 투영되었습니다"

오퍼레이터의 안내와 함께, 우아하게 생긴 귀부인은 머리에 고디바 머신에 무선으로 연결된 헬멧과 VR안경을 쓴 채 주변을 두리번 거리기 시작했다. "없잖아. 역시 거짓말이었어. 믿었는데" 하고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2092년 3월 4일 오후 7시 40분, 샤르망 호텔 로비"로 새로운 좌표를 지정했다.

"투영되었습니다" 오퍼레이터의 안내에 역시 정신없이 주면을 두리번 거리던 귀부인은 곧 그 직후 VR안경을 쓴 채 눈물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

"믿었는데… 믿었는데…"

자신의 무릎을 힘없이 몇 번이나 내리친 그녀는 아직 1분여의 시간이 남았음에도 힘없이 헬멧과 안경을 벗었다. 1회 이용에 100만엔이라는 상당한 가격을 생각해보면 그 1분도 귀중한 시간임에도, 그녀는 힘없이 고개를 젓고는 일어섰다. 오퍼레이터의 안내를 따라 복도로 나온 그녀는 무서운 얼굴로 어디론가 홀로그램 통화를 시작했다.



…과거를 본다는 것. 생각보다 그 용처는 다양했다. 역사의 위대한 순간을 확인하고 수많은 중요한 순간들을 확인하는 흥미로운 경우도 있었지만, '현실을 지키기 위해' 사용하는 이들도 많았다. 바로 배우자의 외도를 확인한다거나, 범인의 얼굴을 다시 한번 똑똑히 확인한다거나, 사고 현장을 다시 한번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어서 등. 물론 이제는 만날 수 없게 되어버린 가족이나 연인의 모습, 혹은 소원해진 부부가 함께 그때 그 순간을 다시 한번 보고 싶어서 같은 이유도 많았지만.

"이거 영상을 녹화는 못하는건가요"
"네, 불가능합니다"

아쉽게도 고디바 머신으로 확인한 모든 상황들은 학술적/법적 증거자료로 사용이 불가능하고, 녹화 또는 녹취 역시 불가능했다. 일부 업체가 고디바 머신으로 바라본 모습들을 뇌파 분석을 통해 일부 아주 흐릿한 화질로 재구성해주긴 하지만, 기술적으로 한계가 분명했고, 설령 그것이 명확하다고 한들 역시 그 어떤 근거자료로도 사용이 불가능했다. 물론 엄청난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함이었다.



"2088년 11월 6일, 오전 5시 30분…, 서울 강남구 뱅뱅사거리…"

오퍼레이터로서 가장 가슴 아픈 것은, 고객들이 '가장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을 스스로 다시 한번 확인할 때이다. 그래서 보통은 코디네이터가 상담 및 계약 과정에서

"사랑하는 가족의 사고장면이나, 이별의 순간, 무언가 큰 인생의 실패를 하는 장면은 권하지 않습니다"

라고 수차례 안내를 하지만,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구태여 그 장면을 다시 돌려보고 좌절을 한다. 물론 오퍼레이터 희진 자신도 과거 채용 과정에서 한 차례 주어지는 무료체험 때 키웠던 고양이 '해시'를 버리는 순간을 돌려본 바보 같은 경험이 있지만.

"투영되었습니다"

그 다음은 예상대로다.

"초롱아…초롱아…"

고객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발을 동동 구른다. 그리고 아흐흑 하는 통곡을 터뜨린다. 행색만 보아도 그리 풍요로운 지갑사정을 가진 고객이 아니다. 모처럼의 고디바 머신이라면 조금 좋은 기억만 되새겨도 좋았을 것을. 1분 22초, 1분 21초… 관제 모니터에 비치는 남은 시간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희진이었지만, 곧 고객은

"2089년 4월 3일, 오후 6시 30분 서울 강남구 도미안 아파트 110동 202호…"

하고 다음 좌표를 제시한다.

"투영되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 고객은 "허억" 하며 손으로 입을 막는다. 크게 놀란 모습. 보안 규정상 고객이 어떤 영상을 보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고객의 안전을 위해 항상 관찰을 해야하는 만큼, 그 분위기만으로도 대략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다. 고객은 크게 놀란 직후 다시 또 엉엉 울며

"자기 혼자 가면 나는 어떻게 하라구우, 나는 어떻게 해… 이렇게 가면 나 어떻게 해 여보, 나 데려가, 나도 데려가지 그랬어, 왜 혼자 이렇게 죽어버리면 어떻게 하냐구…나는 이제 어떻게 해"

하면서 가슴을 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혈압이 치솟고 눈물 콧물을 다 줄줄 쏟는 고객. 보안 요원을 부를까 말까 망설이는 순간 드디어 영상이 꺼졌다.

"흐으으읍"

여전히 고객은 헬멧을 벗을 생각조차 못하고 그 안에서 그저 엉엉 울기만 하지만, 빨리 이 분이 나가야 다음 고객의 기회가 온다.

"고객님…"

고객에게 다가간 그녀는 그러나 문득 '어떤 생각'을 한다. 자식과 남편의 죽음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조금 어려워보이는 옷차림의 고객. 그리고 불과 10초 전까지 엉엉 울더니 이제는 차갑게 냉정해진 얼굴의 그녀. 어쩌면 그녀는 무서운 결심을 위해 용기를 낸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일개 오퍼레이터로서는 그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었다.



"생각보다 까다롭군요"

코디네이터와 상담 중인, 낡은 정장을 입은 사내는 씁쓸하게 고개를 저었다. 보고 싶은 장소의 GPS 기반의 정확한 물리적 좌표와 보고 싶은 순간을 분 단위까지 지정해야 되는 제약. 미국과 영국에 있는 군사, 학술용 기기는 그런 제약이 없다고 하지만, 일반인이 그것을 접할 기회는 사실상 없다고 보아야 하니까.

"네, 하지만 개개인의 일상으로 본다면 여전히 놀라운 가치가 있지요"

코디네이터의 말에도 살짝 고개를 저은 사내는 꺼내놓았던 메모장을 다시 접었다. 한자가 빼곡한 메모라서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었지만, 1482년이라는 숫자와 전투 등의 한자를 보고서는 역사 관련된 호기심이었구나 하는 것을 어렴풋하게 추측할 수 있을 따름이었다.

"몇 가지, 추천하는 역사적 명소가 있습니다. 한국사 관련 527건, 세계사 관련 22,945건 등"

매우 까다로운 이용방법 때문에, 그 이용을 돕기 위해 미리 몇 가지 공유 중인 순간들이 있었다. 물론 이것은 한국에서 정식 서비스가 시작되기 전, 본사 차원에서 학술용 기기를 통해 미리 체크해 놓은 중요한 몇 가지의 순간들이었다.

위화도 회군, 세종 즉위식, 탄금대 전투, 명량대첩, 노량해전(이순신 장군 저격 순간), 장희빈, 이토 히로부미 저격 순간 등 총 527건의 장면들이었다. 아쉽게도 대부분 조선시대부터 근대사에 국한된 것이었지만.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보다는…"

남자는 35년 전의 한 순간을 적었다.

"실례가 안된다면 이 시기가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있을까요"

안내 메뉴얼에 따라, 시간좌표의 내용을 물어본 코디네이터. 남자는 잠시 답변을 주저하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우리 외동딸 태어나던 날입니다"

코디네이터가 안심하며 미소를 지어보이자, 남자는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아내가 죽던 날입니다. 그때 저는 한국에 없었고, 발굴현장에 있었죠. 중국에서 발굴 허가를 딱 이틀 밖에 내주지 않아서 첫 아이 출산 보는 것도 포기하고 현장에 있었습니다. 아내가 마지막까지 저를 찾았다고 하더라구요."

간신히 표정 관리를 한 코디네이터가 "아 그렇다면, 저희 측에서는 가급적…" 하고 다른 제안을 하려고 했지만, 남자는 "괜찮습니다" 라는 말로 의견을 관철했다.

"제 목소리가 닿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뒤늦게나마 미안하다는 말은 하고 싶습니다. 하긴, 여기 찾아와서도 먼저 찾아보고 싶었던 것은 아내가 아니었네요. 저는 참 이기적인 인간인가 봅니다"




대부분의 이용객들은 자신이나 가족의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순간들을 관람하며, 인생에서 가장 밝게 웃는 모습을 확인한다. 합격, 데뷔, 성공, 우승, 프로포즈 등… 그리고 감동에 젖어 눈물을 흘리곤 한다.

"네, 그럼 어떤 순간이 좋으실까요?"

코디네이터의 질문에 노인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2021년 4월 말이었나, 5월 초였나 조금 헷깔리는데… 아 이건 확인을 해봐야겠네요. 아주 오래 전의 아카이브를 뒤져야겠지만" 하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코디네이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무래도 3분이라는 제한시간이 있다보니 가급적 정확하게 체크하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날짜는 계약일까지만 말씀해주시면 되고, 또 현장에서도 수정하실 수 있습니다. 그럼 실례가 안된다면, 그 날짜는 어떤 날짜인지 여쭈어 보아도 될까요"

노인은 "아무렴요"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도 잘 아실, 대작가 스타일박스의 유료 메일링 서비스를 신청한 날이거든요"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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