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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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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결혼 언제할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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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이 아니구나. 벌써 결혼한지 2년 차에 접어든 태진이 형이 술을 마시다 불쑥 물은 질문이다. 나는
그저 멋쩍게 웃다가

"결혼은 뭐, 아직은 별 생각 없어요"

하고 받아넘겼다. 하지만 그는 나름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야 생각해봐. 나도 솔직히 니 맘때는 그냥 결혼 같은거 아예 생각도 없었는데, 혜주랑 그렇게 되고보니 뭐
어쩔 수 없이 결혼은 하게 됐는데…"
"아 형, 결혼 2년 차가 어쩔 수 없이 결혼하게 됐다는게 뭐에요. 아 진짜 혜주 누나한테 일러야지"
"아이 섀키야 말 끊지말고 들어"

영원히 바람처럼 살 것 같았던 자유로운 영혼 태진이 형. 차마 이런 말 하기는 좀 뭐해도 제 3자 입장에서
그 착한 혜주 누나가 많이 아깝다고 느꼈지만 뭐 사실 태진이 형이 이래저래 남자가 봤을 때도 매력이 있는
남자인건 사실이지. 위태위태하게 '언제쯤 헤어질까' 생각하게 만들던 둘은 뜻밖에 혜주 누나의 임신으로
인해 급속도로 상황이 진전되었고… 그렇게 부랴부랴 결혼까지 이르렀다. 물론 한량 중의 한량이었던
태진이 형이 딱히 돈을 많이 모아놓았을 리 없고 혜주 누나집에서 거의 다 해준 것으로 안다.

"여튼간에, 내가 씨발 벌써 서른 넷 아니냐. 솔직히 나는… 진짜 혜주 아니었음 평생 장가도 못갔을텐데 아
아무튼간에 이제 우리 승민이도 있고 하니까 미래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잖냐. 근데 나야 평생 가진 재주가
바이크 만지는 거 밖에 없지만 또 이게 그렇다고 망할 일은 없는거 아니겠냐? 앞으로 한 10년만 더 형배
아저씨 밑에서 일하다가 그 때는 내 가게도 차리고 뭐 그럴 생각인데, 근데 암만 생각해도 답답하단 말야"

천하에 그 양아치 태진이 형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그러고보면 '부모'가
된다는 것은 정말로 위대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뭐가 답답해요?"
"그냥 뭐, 기왕 이렇게 될 거 같았으면 진작에 단칸방에서라도 혜주랑 시작했으면, 젊었을 때 시작했으면
어땠을까. 그 망나니 짓거리 안하고 다녔으면 내가 지금쯤 형배 아저씨처럼은 하고 살았을거 아니냐. 형배
아저씨가 그 가게를 몇 살에 냈는데"

으음.

"근데 형 옛날에 그때 혜주 누나 처음 만나고 다닐 때…"
"아 알아. 이 섀키야, 그땐 진짜 내가 개양아치였지. 뭐 지금이라도 크게 다른건 아니지만"
"여튼 형 말은 그거죠? 너도 빨리 좋은 여자 만나서 정착하고 살아라, 뭐 그런거?"
"그래"

나는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맥주를 죽 들이켰다. 뭐 사실 나라고 정착하고 싶은 생각이 없겠
는가. 여자는 둘째치고 모아놓은 돈도 없고… 장가를 갈래야 갈 수가 없는 거 아니겠는가. 문득 초라해
지고 마음이 괴롭다.

"형 솔직히… 아 모르겠어요. 결혼이라는게, 아 물론 나도 좋은 여자랑 정말 오순도순 살면 좋죠.근데 아
솔직히 형이야 혜주 누나처럼 진짜 성모 마리아 저리가는 여자를 만났으니까 그런거고… 당장 뭐 내가
여자가 있다고 쳐도 뭘 어떻게 결혼을 하겠어요. 모아놓은 돈이 있나, 뭐가 있나"
"대출 받으면 되지 대출 임마. 요즘에 누가 무슨 돈이 있어서 결혼을 해. 다 그런거지"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내 주제에 끽해야 뭐 몇 푼이나 대출이 되겠어요. 아 모르겠다 그냥 이러다가 평생 연애나 하다 죽죠 뭐"

여자는 여자대로 단칸방이던 초가집이던 어디든지 좋다고 하고, 그러면서도 결국 적당히 있는 집 딸내미
인만큼 그 집에서 결국 전세 아파트까지 해준 태진이 형이야 기가 막히게 잘 풀린 케이스 아닌가. 나는…

"박스야, 미안하다. 에휴 뭐 그냥 내가 헛소리 좀 했다"
"아니에요 형, 제가 취했나봐요"

속상했다. 왠지 괜히 푸념을 태진이 형한테 쏟아낸 기분이라.

"아 형 근데 요새 승민이는 잘 놀아요?"

분위기를 전환해서 물어보았다. 그저 젊은 부모들에게는 애 이야기가 항상 최고지. 태진이 형은 금방
고개를 끄덕이며 애 자랑을 늘어놓는다.

"아 그럼. 아 애가 운동신경이 존나 좋아. 나 닮았나 봐"
"왜요?"
"이제 14개월 된 애가 막 존나 뛰어다녀"
"아 정말요? 근데 14개월이면 존나 애기 아니에요? 막 아장아장 겨우 걸을 나이 아닌가? 아 뭐 애를
키워봤어야 알지"

그러자 흡족하게 웃던 태진이 형은 말했다.

"아 솔직히 뛴다는건 좀 구라고, 여튼 애가 걷는게 남달라. 빨라. 승민이는 아무래도 나 닮아서 운동
시켜야 할까봐"
"흐, 근데 생긴건 형보다는 혜주 누나 많이 닮았던데. 아 요즘에 찍은 사진 없어요?"
"잠깐만"

휴대폰을 꺼내 보인 태진이 형. 그러고보니 이 형이 아직까지도 스마트폰이 아니네. 허허 정말이지
가장 노릇하기 참 힘든 거 같다.

"봐봐"
"아 진짜 남자애가 뭐 이렇게 이쁘게 생겼냐"
"다들 그래"
"아 형 형이 그러면 팔불출이죠. 아 왕년에 개간지 태진이 형이 왜 이래"
"야야 너도 나이 먹어봐. 이제는 나 배도 나와. 존나 아저씨야"

그러고보니 은근히 형도 살이 붙었다.

"그래도 형이야 몸이라도 쓰니까 살이 덜 붙지. 나는 완전 쌩사무직이잖아요. 거기다가 운동도 막
이직하고 나서 1년 넘게 관두니까 아 완전 저 봐요 돼지됐잖아요. 이제 턱살 붙을 판이에요"
"아 맞어 지금 일하는 회사는 어때? 힘드냐? 아 여기 맥주 하나 더요"

맥주 500 하나를 더 시킨 형은 "뭐 더 먹을래?" 하고 안주를 추가할까 하다가 "아뇨 배불러요" 하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여기 땅콩이랑 뻥튀기 좀 더 가져다주세요" 하고 그 특유의 굵직하고 큰
목소리로 주문을 했다.

"아 뭐 솔직히 사무직이니까 육체적으로 힘든 일은 없는데, 존나 스트레스를 받아요, 꼰대들 밑에서
일하려니까 죽갔어요. 나 지금 이직자리도 알아보는 중이에요"
"어디로?"
"모르죠. 근데 나도 이제 뭐 해먹고 사나 싶기도 하고"
"니도 이제 그럴 나이 됐지. 여튼 힘내 임마. 니는 그래도 돈 잘 벌잖냐. 똑똑하고. 나처럼 씨발 맨날
기름 때 존나 묻히고 좆삐리 중딩 새끼들이랑 어울리는 일은 아니니까 간지도 나고"
"아휴 아니에요. 아 진짜 좀 아니에요"

새 500잔과 내 반 정도 남은 500잔으로 우리는 새삼 또 건배를 했다. 우리의, 그리 멋지지는 않을지도
몰라도 희망찬 미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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