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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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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하니까 청춘이 아픈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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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궤적이야 수도 없겠지만 '적당히 그렇고 그런 20대 중후반 년놈'들의 인생 루트는 보통 이런 식
으로 전개된다.

3점대 내외의 학점을 갖고 졸업한 후에 여기저기 이력서를 뿌리고 면접을 보러 다니지만 썩 이거다
싶은 길은 보이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취업난에 대한 한숨과 초고스펙자들에 대한 막연한
열등감, 취업사이트를 뒤지면서 느끼는 숨막힐 듯한 답답함에 그저 머리만 복잡해지는데…

그 와중에 잘 풀려서 벌써 자기보다 반년, 1년 이상 인생을 앞서나가는 친구들이 하나둘씩 등장하고
개중에는 아주 간간히 벌써 장가/시집 가는 애들마저 있다. 그네들은 벌써부터 인생의 기반을 잡고
출발하는 듯 하여 부럽기도 하지만 애써 '에이 그래도 젊을 때 누릴거 누리다가 하는거지, 결혼은'
하는 유부남 유부녀 인생 선배들의 조언으로 마음을 달래본다.

그러던 중 옳다꾸나 취업이 되기는 되는데 그래봐야 연봉은 쥐꼬리만해서 1800~2500 내외. 대기업
취업한 친구/형/선배들 이야기 들어보면 3천은 기본이요 4천 5천도 심심찮게 보이는데 이대로 정말
좋은 것일까 우울하고 막막함에 눈물만 나올 것 같고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다른 용빼는 재주가 뭐
있는 것도 아니요 내세울 스펙이 있는 것도 아니요 무엇보다 은근히 빨리 취업해서 자리잡고 돈 좀
벌기 시작하기를 바라는 집안 눈치에 '그래 일단은' 정도로 눈 딱 감고 입사를 하고야 만다.


대딩 시절 '인생 몇 년 선배'들이 그토록 허세를 떨면서 씨부리던 '사회생활'이라는 단어에 담겨있던
그 수많은 의미를 온 몸으로 겪으면서 희노애락을 느끼고 돈도 모으고, 가끔은 막연하게 꿈꿔오던
'직장인, 어른'들의 행동들을 직접 해봄으로서 묘한 뿌듯함과 자부심도 느낀다.

용돈 기십만, 알바 기십만원도 엄청나게 크게 느껴졌던 처지에서 그래도 통장에 기백의 돈이 딱딱
꽂혀주니 그 기분도 묘하고, 씀씀이도 엄청나게 커지게 되는데 이쯤해서 사지멀쩡하고 정신 똑바로
된 인간이라면 '어른의 연애'도 시작을 하는데(그래, 만약 여기까지 충실히 루트를 밟아왔는데 그 후
몇 년간 연애를 못했다면 너는 전문직의 길을 걷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그냥 찌질이다. 인정해라)
 
어중간한 사회초년생의 연애는 서툴다.

씀씀이와 차림은 어른이요 동경하는 삶, 머릿 속에 그리는 꿈은 드라마의 그것인데 현실은 다람쥐
쳇바퀴 도는 느낌의 경제 뺑뺑이에, 미래에 대한 고민은 참으로 암울하다. 사랑하는 그 사람과의 연애
는 즐겁고 아름답지만 어딘가 그저 생각없이 둘만 좋아하면 그게 전부였던 학생의 연애와는 분명하게
다른 그 무엇을 느끼게 된다. 그쯤해서 '돈과 성공'에 대한 강렬한 갈증을 느끼는데

재테크 재테크 하지만 당최 돈 벌기가 그리 쉽다면 세상 그 많은 사람은 왜 고생을 하겠나. 그래도
욕심 많고 스스로가 좀 똘똘한 놈이라 자처하는 놈들은 용감하게 주식이니 뭐니 손도 대지만 모은
돈도 쥐뿔엾는 놈이 주식은 개뿔이.

그쯤해서 무수히 많은 '20대론'에 대한 썰들과 책에도 관심이 가고, 세상이 밉기도 하고 정치와 사회가
뭐 어떻게 해줬으면 싶은 마음도 있는데 솔직히 어찌봐도 하나같이 죄 병신들 뿐이니 기대도 안 가고
묘하게 억울하기도 한데 20대 맘 달래준다는 책 따위는 백날 들여다봐야 맨날 똑같은 소리 뿐이다.

1. 꿈을 가져라
2. 자신을 갈고 닦아라
3. 용기를 내라
4. 원하는 일을 해라
5. 시간을 헛되이 쓰지마라

…원 씨팔 '잘 자고 잘 먹고 잘 싸라' 소리를 안 하는게 희한할 정도로(정말 그런 이야기 하는 책도 있다) 
뻔한 이야기들을 썰과 함께 푸는 이야기들인데 이럴 줄 알았으면 중학교 도덕 교과서를 한번 더 들여다
보는게 나을 거 같다 하는 생각만 그득해지는데 출판사/작가들도 병신이 아닌 만큼 날이 갈수록

'우울한 젊은이'들의 등 두드려주면서, 간간히 뼈아픈 일침도 해줘가며 귀얇고 우울한 그네들의 마음을
후벼놓고 그렇게 약을 판다.

진정으로 그들이 20대를 위한다면 그땐 뻔한 소리로 권장 1만원 내외의 책값 쳐날리게 하지 않는 것이
맞지 않나 싶어지는데 아 출판사도 밥은 먹고 살아야겠지 갑자기 궁금해지는데 스타일박스는 책 많이
팔았을까 하고 넘어갈 무렵…

남자라면 한번쯤 '경제력 때문'이라는 변명을 해도 크게 어긋나지 않을 이별 한번쯤 경험하게 되는거고
여자라면 한번쯤 '불안한 미래 때문'이라는 이유로 이별을 고민하게 되는데 더 적절한 사유는 어차피
남자가 알아서 툭툭 그 다음부터는 알아서 제공해줄 것이다. 

여튼 그렇게 카카오 99% 같은 쓰디쓴 맛의 이별 한번 겪고나면 그제서야 이제 본격적인 '어른'으로
거듭나는데 그쯤해서는 이직도 한번 고려해보게 되는데 허어.

이직이 잘 되면 연봉도 오르느 살짝 웃음도 나오고 '아 이게 진짜 직장인의 맛이구나' 하는 마음으로
일하는 재미 좀 느껴보는거고 이직이 잘 안 되면 '씨발 진짜 내 인생은 개좆같네' 하는 마음으로 한동안
우울함에 빠지는거고.

그 다음 연애부터는 이제 진짜로 '어른들이 하는 연애'를 하는데 그래도 아직은 마음 속에 어린 맘이
남아있으면서도 현실과 꿈에 대해 아주 가끔 문득문득, 결코 오래는 아니고 정말 문득문득 출퇴근길에
'이대로 과연 괜찮을 것일까' 하면서 고민을 하게된다.


한없이 꿈은 높다.

높다고 해봐야 거창하고 웅장한 꿈은 아니다. 이미 그럴 나이도 아닌 것 같다. 그저 남들보다 더 멋진
차에 멋진 옷 입고 멋진 몸매 만들어서 멋진 곳에서 멋지게 놀면서…그 '남들보다 나은'…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남부럽지 않은' 삶을 영유하는 것.

그냥 그게 전부다. 허세라고 해도 좋고 허영이라고 해도 좋은, 어찌보면 천박하기까지 한 그런 부와
소비에 관한 아주 짜릿한 쾌감과 그에 대한 욕망!

그게 '꿈'이고…

더 나이먹고 '현실'을 인정하게 되면, 즉, '꿈'이라는 단어의 뜻을 더이상 '목표'나 '골'이 아닌 '망상',
'수면 시에 보고 듣는 정신현상' 정도로만 받아들이게 되는 적당히 철든 나이가 되어 자기 스스로의
능력에 한계와 단점을 분명히 인지하고 그것에 원망하는 마음까지 적당히 품을 정도가 되면 이제부턴
슬슬 '남보다 쳐지지만 않았으면' 하는 정도의 '꿈'을 갖게 된다.

그게 요즘 젊은이들의 꿈인 것이다.


이걸 보고 한심하다느니 진정한 꿈이 어쩌고, 도전하는 정신이 어쩌고 하는 놈도 있는데 뭐 다 그래,
그 멋있는 말들 다 좋으니까, 그렇게 한심하다고 생각하면 '정말로 니가 한번 도전해서 성공하시던가
그렇게 도전하다가 진짜 개좆되고 남들보다 인생 몇 년 뒤져서 명절마다 친척들한테 죄 탈탈 털리고
지 부모 등골이나 빼먹고 주변 사람 다 힘들게 하면서 살게 되봐야 지 말이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지
알지' 하고 코웃음 지으면서 너털웃음 짓는데 문득 잘나가는 친구들, 잘 사는 친척들, 아니 하다못해
길거리에서 적당히 가정 꾸려서 무탈하게 사는 사람들이라도 보노라면

그저 마냥 부러우면서도 답답하게 한마리 새처럼 창공을 날고 싶어지는 그런 그것이 슬픈 20대요
우울한 30대인 것이다.

무슨 얼어죽을 청춘이요 무슨 얼어죽을 꿈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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