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무렵이었을까, 명절을 하루 앞둔 나는 장염에 단단히 걸렸다. 하루에 수십 번씩 화장실을 드나들며 아래 위로 토사와 설사를 쏟아내던 나는 엄마 손에 이끌려, 후들거리는 다리와 꾸륵 거리는 배를 부여잡고 겨우 병원으로 갔다.
"아후, 이 기집애 그러게 어쩐지 미련하게 집어먹더니만"
가뜩이나 힘들어 죽겠는데 엄마의 핀찬까지 겹치자 정말 길 한복판에서 서러움에 눈물이 핑돌았지만 그 순간 나는 보았다. 온 세상이 싯누래진 것을. 정말 아프고 힘들 때 '하늘이 노랗다'라는 말을 왜 쓰는지 처음으로 깨달았다. 정말 세상이 노란 색이었다.
"내일이 명절이니까, 약 일주일치 처방해 드릴께요"
"네 감사합니다"
그로부터 근 20년 가까운 십수 년이 지난 오늘, 나는 오늘도 병원에서 약을 타왔다. 물론 장염 약은 아니다. 장염은 그 이후 나를 딱 나흘간 더 괴롭혔을 뿐이지만, 이 조현병은 십수 년의 세월동안 나를 괴롭혀 왔다. 시기에 따라 널뛰는 마음, 때때로 죽음을 각오하게 만들 정도로 찾아오는 허무함, 한없이 깊이 가라앉는 무기력함, 수십 명이 귓가에서 동시에 떠드는 듯한 어지러움…. 나의 세상은 끈적하다. 모든 사람이 수시로 눈빛의 창을 찔러와 온 세상은 나의 피로 피범벅이 된다. 붉디 붉은 어지러움이 삶의 현기증이 되어 나를 괴롭힌다.
"택시…온다"
제일 힘든 것이 사람들의 시선이다. 나는 사람들을 마주치는게 어렵다. 무섭다. 세상 모두가 내 흉을 보는 것 같고, 그들의 눈빛과 모든 말들이 나를 향하는 것만 같다. 이미 국가등록까지 마친 완벽한 조현병 환자.
"어디로 모실까요"
"미성동, 정록고개 쪽으로 가주세요"
"네에, 알겠습니다!"
친절한 택시기사님. 그러나 언뜻 언뜻 룸미러로 마주치는 그의 눈빛 역시 부담스럽고 괴롭다. 살짝 눈을 감았다가 다시 끈다.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지만 나는 여전히 그가 그저 시뻘건 눈으로 룸미러를 통해 계속 나를 쳐다보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괴롭다. 주먹을 꼭 쥔다. 괴롭다.
"후우"
집에 왔다. 물을 떠놓고 한 20분을 고민한 것 같다. 사실은 약도 먹고 싶지 않다. 하지만 요 며칠 전부터 환청이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괴롭다. 그래서 병원으로 내키지 않는 걸음을 내딛었다. 며칠 전, 집에 오빠가 들린 이후부터다. 그는 또 나에게 돈을 빌리고자 했다. 하지만 백수 5개월째인 나에게 무슨 목돈이 있겠는가. 아빠는 나에게 전화로 욕을 했다.
"음"
약을 삼킨다. 이제 삼십 분 정도 지나면 잠이 스르륵 올 것이다. 아주아주 깊은 잠이. 심하면 20시간도 자는 그런 잠 말이다. 아무리 전화벨 소리를 크게 해도 깨지 못하는 지옥 같은 잠이. 꿈조차 잘 꾸지 않는 그런 잠. 하지만 악몽도 자주 꾸는 그런 잠.
"좋은 소식이 있어요"
약 일주일 후 병원에 들리자 선생님은 나에게 흥미로운 제안을 하나 해주셨다.
"모든 것은 환자 분이 결정해야겠지만…"
지미타르를 개발한 제약회사에서 이번에 새로 내놓은 신약의 임상실험에 참가하면, 당분간의 병원비와 통원비는 물론, 소정의 돈까지 준단다. 물론 신약의 효과가 좋다면 내 병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나는 그러자고 했다. 돈이 필요하니까. 병이 나으면 더 좋고.
"고맙습니다"
약 한달 간의 통원. 별 거 없었다. 약 먹고, 피 검사하고. 통원하고 약 먹고, 간단한 문진표 작성하고. 그게 전부였다. 큰 돈은 아니었지만 생활비 정도의 돈도 받았다.
"히히"
돈이 생겨서일까, 아니면 다시 살짝 조증이 강해지는 시즌인가, 아니면 새 약 때문인가. 묘하게 몸이 덜 무겁다. 기분도 그리 썩 나쁘지 않다. 그러고보니 환청도 많이 나아졌다. 정말로.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좋아질 수가. 이제 더이상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끼우고도 머릿 속을 가득 채운 지랄 같은 말 폭탄 속에 혼자 조용히 해 죽어 시끄러워 시발 시발 죽고 싶다 화난가 빡쳐 같은 말을 중얼거리지 않아도 된다.
"정말인가요?"
임상실험을 소개해 준 담당 선생님도 많이 좋아하셨다. 몇 달 만의, 의례적인 문진표를 작성하면서 새삼 깨달았다.
"어…"
이제 교차질문 몇 개를 제외하면 정말로 체크 박스 중에 [ 해당 없음 ] 항목이 더 많았다. 내 눈빛을 본 담당 선생님은 "그래도 아직은 완벽한 건 아니니까요. 아시잖아요. 이 병은 마라톤처럼 해야하는거요" 하면서 웃었지만 사실 난 이미 깨달았다. 나 정말 병이 나았다고. 물론 나도 잘 안다. 조현병 환자들의 전매특허 '나 다 나은 거 같아요' 착각. 근데 이건 분명 알 수 있었다. 그런게 아니었다. 심지어 의사 선생님도 말했잖아.
"아주 좋은 흐름입니다"
병원을 나서면서 비로소 완벽히 깨달았다. 머릿 속도 안 복잡하고, 아니 당연히 고민은 산처럼 많긴 하지만 그래도 지옥 같은 환청은 없었다. 세상은 온통 잿빛의 어두운 색도 아니고, 찬란한 노란색, 아니 아이보리색 ,아니 그냥 총천연색의 밝고 예쁜 세상이었다.
"와"
생각난다. 중학교 어느 겨울방학 때의 그 기분이었다. 사람없는 조용한 골목에서, 온 세상 나 혼자 신난 바로 그 기분.
'나 병 다 나았어! 나 이제 조현병 환자 아니야!'
미친듯이 소리 지르고 싶을 정도였다. 눈물이 흐를 정도라는건 오바지만, 그랬다. 소리를 지르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제자리에서 혼자 펄쩍 뛰었다. 평일 살짝 늦은 오전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어서 별 일 없었지만.
'어'
그리고 그때 느꼈다. 소름끼치는 어떤 기분을.
무서운 기분에 택시를 탔다. 집에 가서 쉬고 싶었다.
"미성동, 정록고개 쪽으로 가주세요"
기사님은 대답도 없이 바로 택시를 출발시켰다. 힐끔 룸미러 쪽을 쳐다보았지만 그는 말없이 운전을 할 뿐이었다. 나 역시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30분을 말 없이 집까지 왔다.
"기사님 저기 앞에서 세워주세요"
일부러 큰 길에서 내렸다. 횡단보로를 건너고, 맥도리아 앞을 지났다.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저 앞에서 걸어오며 스쳐 지나간 아저씨도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뭐야'
언제나 눈빛의 창에 찔려 피를 철철 흘려가던 가녀린 나는 어디 갔을까. 그 누구도 나를 눈여겨 보지 않았다. 알 수 있었다. 단 한 명도 나를 주의깊게 보지 않는다. 그냥 나는 길가에 세워진 입간판이나 마찬가지였다.
'뭐냐고'
보이지만 읽지 않는, 눈에 띄기야 하지만 전혀 관심조차 가지 않는.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콧김이 거세졌다. 더 무서워졌다.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 마치 온 세상 사람들이 철저히 차가운 마음의 벽이라도 치고 있는 기분이었다.
엄청난 거리감, 말도 안되는 소외감, 그 누구도 나를 상대해주지 않을 것 같은 외로움. 몸이 떨려왔다. 너무나도 고독했다. 괜히 일찍 내렸다. 그냥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뭐야…"
새삼스럽게 내 집이 엉망진창으로 보였다. 처음으로 내 집이 아늑한 아지트가 아니라 지옥 같은 쓰레기장으로 느껴졌다. 생각해보니 그 기분은 약을 먹기 시작한 얼마 전 즈음부터 였던 것 같다. 오빠가 올 때마다 "이게 사람 사는 집이야? 돼지우리도 이거보단 낫겠다"라며 하던 말이 처음으로 이해가 갔다.
헛구역질까지 하며 방을 치우기 시작했다. 물론 몇 시간으로는 어림도 없는 아수라장이었지만 적어도 침대 근처는 어느 정도 정리하는데 성공했다.
'시발'
알 수 있었다. 난 이제 정말로 병이 나은 것이다. 일시적으로 병이 나은 것으로 느끼는 어떤 착각이 분명 아니었다. 뒤틀려 있던 내 안의 어떤 축이 다시 자리를 잡은 것을 깨달았다.
그러자 꼬여있던 내 안의 어떤 사상과 이론, 현실들이 명확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돼'
그건 엄청난 고통이었다. 가족을 제외한 그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지 않는 나. 지난 시간을 난 도대체 어떻게 버텨낸 것일까. 왜 단 한번도 외로움을 겪지 않았을까. 지금 이렇게나 고독하고 외로운데. 누군가와 말을 나누고 싶었지만, 오빠도 아빠도 전화가 되지 않았다. 거의 인터넷으로 만난 친구들도 마찬가지. 번호가 바뀌었는지 없는 번호로 뜨는 친구들도 많았다.
세상 지독한 고독함이었다.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보게 되지 그 고통은 몇 개로 찾아왔다. 남자친구도, 말 나눌 동성친구도, 가족다운 가족도 없었다. 나는 그저 덩그러니 세상에 놓인 독립개체였다. 이제 실업수당 끊기는 한달 뒤에는,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 보낼지 전혀 가망 없는 미래가 기다리는 그런 떨거지.
"하하"
그제서야 깨달았다. 나는 그 약을 먹으면 안됐다. 차라리 남은 평생동안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혼자 괴로워 하는게 나았다. 내 병은, 나를 괴롭히는 흉기가 아니라 나 스스로가 나를 지키기 위한 갑옷이었다.
'그랬어'
아빠의 정리해고와 알콜중독, 부모의 이혼, 자퇴, 성추행, 오빠의 사업실패, 나의 이별, 첫 발작, 부쩍 심해진 우울, 부분 탈모, 거의 모든 주변 사람과의 싸움, 외톨이, 일방적인 업무 계약해지, 전세금 사기, 막막한 미래, 추해진 외모, 비참한 일상…
지난 몇 년 간의 일들이 눈 앞을 스쳐 지나갔다. 맙소사. 그걸 견뎌낸 나 자신이 안쓰러웠다. 안아주고 싶었다. 나는 나를 꼭 안았다. 그래, 더이상은 힘들지 말았으면 좋겠어. 정말로. 그리고 매번 커터칼, 약물 대량 섭취 따위와는 전혀 다른 '진짜'의 방법을 시도했다.
15층의 바람은 시원했다. 나는 이미 한참 전에 눈을 감고 있었다. 아파트 옥상 난간 위에 서서 말이다. 다행히 관리실에서는 이쪽이 보이지 않는다. 오늘 한 일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방금 전 오빠에게 보냈던 카라멜톡의 메세지가 오타를 친 거 같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들었지만 더이상은 뭐 어떻게 더 하기가 싫었다.
'잔인하다. 정신병보다 더 무서운게 현실 세상이라니, 세상에. 이럴 바에야 그냥…'
나는 그냥 그렇게 가볍게 몸을 아래로 숙이기로 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금만 더어, 그래, 이렇게, 붕.
"선생님"
그는 간절한 눈빛으로 소매를 붙들었지만, 의사 선생님은 그저 안타까운 표정을 지을 따름이었다. 그리고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몇 시간 더 지켜봐야겠지만, 의식이 다시 돌아올 확률은 낮습니다. 그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데 즉사가 아닌 것이 기적일 정도니까요. 경과를 지켜봅시다"
"흐읍 선생님, 제 동생한테, 한번만, 미안하다고 말할 기회를 주세요 제발. 흐, 흐허, 그런 부탁을 하는게 아니었는데"
의사는 침통한 표정으로 남자의 손을 가볍게 무르고는 병실을 나섰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순수히 놀라기도 했다. 어째서 환자는 저렇게도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일까. 뭐가 그렇게도 기분 좋을까.
"아후, 이 기집애 그러게 어쩐지 미련하게 집어먹더니만"
가뜩이나 힘들어 죽겠는데 엄마의 핀찬까지 겹치자 정말 길 한복판에서 서러움에 눈물이 핑돌았지만 그 순간 나는 보았다. 온 세상이 싯누래진 것을. 정말 아프고 힘들 때 '하늘이 노랗다'라는 말을 왜 쓰는지 처음으로 깨달았다. 정말 세상이 노란 색이었다.
"내일이 명절이니까, 약 일주일치 처방해 드릴께요"
"네 감사합니다"
그로부터 근 20년 가까운 십수 년이 지난 오늘, 나는 오늘도 병원에서 약을 타왔다. 물론 장염 약은 아니다. 장염은 그 이후 나를 딱 나흘간 더 괴롭혔을 뿐이지만, 이 조현병은 십수 년의 세월동안 나를 괴롭혀 왔다. 시기에 따라 널뛰는 마음, 때때로 죽음을 각오하게 만들 정도로 찾아오는 허무함, 한없이 깊이 가라앉는 무기력함, 수십 명이 귓가에서 동시에 떠드는 듯한 어지러움…. 나의 세상은 끈적하다. 모든 사람이 수시로 눈빛의 창을 찔러와 온 세상은 나의 피로 피범벅이 된다. 붉디 붉은 어지러움이 삶의 현기증이 되어 나를 괴롭힌다.
"택시…온다"
제일 힘든 것이 사람들의 시선이다. 나는 사람들을 마주치는게 어렵다. 무섭다. 세상 모두가 내 흉을 보는 것 같고, 그들의 눈빛과 모든 말들이 나를 향하는 것만 같다. 이미 국가등록까지 마친 완벽한 조현병 환자.
"어디로 모실까요"
"미성동, 정록고개 쪽으로 가주세요"
"네에, 알겠습니다!"
친절한 택시기사님. 그러나 언뜻 언뜻 룸미러로 마주치는 그의 눈빛 역시 부담스럽고 괴롭다. 살짝 눈을 감았다가 다시 끈다.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지만 나는 여전히 그가 그저 시뻘건 눈으로 룸미러를 통해 계속 나를 쳐다보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괴롭다. 주먹을 꼭 쥔다. 괴롭다.
"후우"
집에 왔다. 물을 떠놓고 한 20분을 고민한 것 같다. 사실은 약도 먹고 싶지 않다. 하지만 요 며칠 전부터 환청이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괴롭다. 그래서 병원으로 내키지 않는 걸음을 내딛었다. 며칠 전, 집에 오빠가 들린 이후부터다. 그는 또 나에게 돈을 빌리고자 했다. 하지만 백수 5개월째인 나에게 무슨 목돈이 있겠는가. 아빠는 나에게 전화로 욕을 했다.
"음"
약을 삼킨다. 이제 삼십 분 정도 지나면 잠이 스르륵 올 것이다. 아주아주 깊은 잠이. 심하면 20시간도 자는 그런 잠 말이다. 아무리 전화벨 소리를 크게 해도 깨지 못하는 지옥 같은 잠이. 꿈조차 잘 꾸지 않는 그런 잠. 하지만 악몽도 자주 꾸는 그런 잠.
"좋은 소식이 있어요"
약 일주일 후 병원에 들리자 선생님은 나에게 흥미로운 제안을 하나 해주셨다.
"모든 것은 환자 분이 결정해야겠지만…"
지미타르를 개발한 제약회사에서 이번에 새로 내놓은 신약의 임상실험에 참가하면, 당분간의 병원비와 통원비는 물론, 소정의 돈까지 준단다. 물론 신약의 효과가 좋다면 내 병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나는 그러자고 했다. 돈이 필요하니까. 병이 나으면 더 좋고.
"고맙습니다"
약 한달 간의 통원. 별 거 없었다. 약 먹고, 피 검사하고. 통원하고 약 먹고, 간단한 문진표 작성하고. 그게 전부였다. 큰 돈은 아니었지만 생활비 정도의 돈도 받았다.
"히히"
돈이 생겨서일까, 아니면 다시 살짝 조증이 강해지는 시즌인가, 아니면 새 약 때문인가. 묘하게 몸이 덜 무겁다. 기분도 그리 썩 나쁘지 않다. 그러고보니 환청도 많이 나아졌다. 정말로.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좋아질 수가. 이제 더이상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끼우고도 머릿 속을 가득 채운 지랄 같은 말 폭탄 속에 혼자 조용히 해 죽어 시끄러워 시발 시발 죽고 싶다 화난가 빡쳐 같은 말을 중얼거리지 않아도 된다.
"정말인가요?"
임상실험을 소개해 준 담당 선생님도 많이 좋아하셨다. 몇 달 만의, 의례적인 문진표를 작성하면서 새삼 깨달았다.
"어…"
이제 교차질문 몇 개를 제외하면 정말로 체크 박스 중에 [ 해당 없음 ] 항목이 더 많았다. 내 눈빛을 본 담당 선생님은 "그래도 아직은 완벽한 건 아니니까요. 아시잖아요. 이 병은 마라톤처럼 해야하는거요" 하면서 웃었지만 사실 난 이미 깨달았다. 나 정말 병이 나았다고. 물론 나도 잘 안다. 조현병 환자들의 전매특허 '나 다 나은 거 같아요' 착각. 근데 이건 분명 알 수 있었다. 그런게 아니었다. 심지어 의사 선생님도 말했잖아.
"아주 좋은 흐름입니다"
병원을 나서면서 비로소 완벽히 깨달았다. 머릿 속도 안 복잡하고, 아니 당연히 고민은 산처럼 많긴 하지만 그래도 지옥 같은 환청은 없었다. 세상은 온통 잿빛의 어두운 색도 아니고, 찬란한 노란색, 아니 아이보리색 ,아니 그냥 총천연색의 밝고 예쁜 세상이었다.
"와"
생각난다. 중학교 어느 겨울방학 때의 그 기분이었다. 사람없는 조용한 골목에서, 온 세상 나 혼자 신난 바로 그 기분.
'나 병 다 나았어! 나 이제 조현병 환자 아니야!'
미친듯이 소리 지르고 싶을 정도였다. 눈물이 흐를 정도라는건 오바지만, 그랬다. 소리를 지르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제자리에서 혼자 펄쩍 뛰었다. 평일 살짝 늦은 오전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어서 별 일 없었지만.
'어'
그리고 그때 느꼈다. 소름끼치는 어떤 기분을.
무서운 기분에 택시를 탔다. 집에 가서 쉬고 싶었다.
"미성동, 정록고개 쪽으로 가주세요"
기사님은 대답도 없이 바로 택시를 출발시켰다. 힐끔 룸미러 쪽을 쳐다보았지만 그는 말없이 운전을 할 뿐이었다. 나 역시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30분을 말 없이 집까지 왔다.
"기사님 저기 앞에서 세워주세요"
일부러 큰 길에서 내렸다. 횡단보로를 건너고, 맥도리아 앞을 지났다.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저 앞에서 걸어오며 스쳐 지나간 아저씨도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뭐야'
언제나 눈빛의 창에 찔려 피를 철철 흘려가던 가녀린 나는 어디 갔을까. 그 누구도 나를 눈여겨 보지 않았다. 알 수 있었다. 단 한 명도 나를 주의깊게 보지 않는다. 그냥 나는 길가에 세워진 입간판이나 마찬가지였다.
'뭐냐고'
보이지만 읽지 않는, 눈에 띄기야 하지만 전혀 관심조차 가지 않는.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콧김이 거세졌다. 더 무서워졌다.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 마치 온 세상 사람들이 철저히 차가운 마음의 벽이라도 치고 있는 기분이었다.
엄청난 거리감, 말도 안되는 소외감, 그 누구도 나를 상대해주지 않을 것 같은 외로움. 몸이 떨려왔다. 너무나도 고독했다. 괜히 일찍 내렸다. 그냥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뭐야…"
새삼스럽게 내 집이 엉망진창으로 보였다. 처음으로 내 집이 아늑한 아지트가 아니라 지옥 같은 쓰레기장으로 느껴졌다. 생각해보니 그 기분은 약을 먹기 시작한 얼마 전 즈음부터 였던 것 같다. 오빠가 올 때마다 "이게 사람 사는 집이야? 돼지우리도 이거보단 낫겠다"라며 하던 말이 처음으로 이해가 갔다.
헛구역질까지 하며 방을 치우기 시작했다. 물론 몇 시간으로는 어림도 없는 아수라장이었지만 적어도 침대 근처는 어느 정도 정리하는데 성공했다.
'시발'
알 수 있었다. 난 이제 정말로 병이 나은 것이다. 일시적으로 병이 나은 것으로 느끼는 어떤 착각이 분명 아니었다. 뒤틀려 있던 내 안의 어떤 축이 다시 자리를 잡은 것을 깨달았다.
그러자 꼬여있던 내 안의 어떤 사상과 이론, 현실들이 명확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돼'
그건 엄청난 고통이었다. 가족을 제외한 그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지 않는 나. 지난 시간을 난 도대체 어떻게 버텨낸 것일까. 왜 단 한번도 외로움을 겪지 않았을까. 지금 이렇게나 고독하고 외로운데. 누군가와 말을 나누고 싶었지만, 오빠도 아빠도 전화가 되지 않았다. 거의 인터넷으로 만난 친구들도 마찬가지. 번호가 바뀌었는지 없는 번호로 뜨는 친구들도 많았다.
세상 지독한 고독함이었다.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보게 되지 그 고통은 몇 개로 찾아왔다. 남자친구도, 말 나눌 동성친구도, 가족다운 가족도 없었다. 나는 그저 덩그러니 세상에 놓인 독립개체였다. 이제 실업수당 끊기는 한달 뒤에는,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 보낼지 전혀 가망 없는 미래가 기다리는 그런 떨거지.
"하하"
그제서야 깨달았다. 나는 그 약을 먹으면 안됐다. 차라리 남은 평생동안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혼자 괴로워 하는게 나았다. 내 병은, 나를 괴롭히는 흉기가 아니라 나 스스로가 나를 지키기 위한 갑옷이었다.
'그랬어'
아빠의 정리해고와 알콜중독, 부모의 이혼, 자퇴, 성추행, 오빠의 사업실패, 나의 이별, 첫 발작, 부쩍 심해진 우울, 부분 탈모, 거의 모든 주변 사람과의 싸움, 외톨이, 일방적인 업무 계약해지, 전세금 사기, 막막한 미래, 추해진 외모, 비참한 일상…
지난 몇 년 간의 일들이 눈 앞을 스쳐 지나갔다. 맙소사. 그걸 견뎌낸 나 자신이 안쓰러웠다. 안아주고 싶었다. 나는 나를 꼭 안았다. 그래, 더이상은 힘들지 말았으면 좋겠어. 정말로. 그리고 매번 커터칼, 약물 대량 섭취 따위와는 전혀 다른 '진짜'의 방법을 시도했다.
15층의 바람은 시원했다. 나는 이미 한참 전에 눈을 감고 있었다. 아파트 옥상 난간 위에 서서 말이다. 다행히 관리실에서는 이쪽이 보이지 않는다. 오늘 한 일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방금 전 오빠에게 보냈던 카라멜톡의 메세지가 오타를 친 거 같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들었지만 더이상은 뭐 어떻게 더 하기가 싫었다.
'잔인하다. 정신병보다 더 무서운게 현실 세상이라니, 세상에. 이럴 바에야 그냥…'
나는 그냥 그렇게 가볍게 몸을 아래로 숙이기로 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금만 더어, 그래, 이렇게, 붕.
"선생님"
그는 간절한 눈빛으로 소매를 붙들었지만, 의사 선생님은 그저 안타까운 표정을 지을 따름이었다. 그리고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몇 시간 더 지켜봐야겠지만, 의식이 다시 돌아올 확률은 낮습니다. 그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데 즉사가 아닌 것이 기적일 정도니까요. 경과를 지켜봅시다"
"흐읍 선생님, 제 동생한테, 한번만, 미안하다고 말할 기회를 주세요 제발. 흐, 흐허, 그런 부탁을 하는게 아니었는데"
의사는 침통한 표정으로 남자의 손을 가볍게 무르고는 병실을 나섰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순수히 놀라기도 했다. 어째서 환자는 저렇게도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일까. 뭐가 그렇게도 기분 좋을까.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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