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ntcast
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703

호구의 연애학

$
0
0

그 슬픈 이름, 호구.

만약 이 세상 모든 연인들이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고 아끼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그런 아름다운 사랑만
나눈다면 이 세상은 정말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문득 생각을 해봅니다. 하지만 매우 안타깝게도 사실
세상은 그렇지 않지요.

비록 처음에는 뜨겁고 불꽃같은 사랑일지라도 시간이 흐르면 그 사랑의 불길은 조금씩 사그라들기 마련이고
심지어 애초에 처음부터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 진실로 뜨거운 적은 단 한번도 없는, 그런 매우 슬픈 사랑마저
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은 그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깁니다. 만약 스스로에게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며 그 상대를 바로 유혹해서 넘어오게
할 수 있는 그런 배짱 좋은 사람이라면 어쩌면 일은 쉬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바로 문제가 생깁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스스로에게 그다지 자신이 없거나
혹은 그 상대와 비교했을 때 스스로가 쳐진다는 생각이 들면, 결국 사리분별이 있는 사람은 당연히 주저하게
되는 법입니다. 무슨 장비, 마초 같은 성미의 소유자 아닌 다음에야 그 상대가 자신에게 소중하면 소중할 
수록 더 그런 주저하는 마음이 더 클 수 밖에 없습니다. 고백했다가 상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쩌지? 
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주변의 눈까지 의식해야 되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 벽은 높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 후 뭐 어찌어찌해서 운명의 끈이 맺어지고 서로에게 믿음과 매력을 느껴 연애를 시작한다고 쳐봅시다.

그러나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연애를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연애를 잘 이어나가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법입니다. 프리미어 리그 진출도 어렵지만, 프리미어 리그에서 활약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것처럼 말입니다.

특히 자기 자신에 대한 확고부동한 믿음이나 상대가 분명한 매력으로 느낄 수 있는 아주 스페셜한 자신만의
무기가 있지 않은 한, 연애에 위기가 닥쳤을 때마다 더욱 긴장을 하지 않을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나에게 탁월한 외모가 있다면?
만약 나에게 엄청난 재산이 있다면?
만약 나에게 화려한 화술이 있다면?
만약 나에게 놀라운 정력이 있다면?
만약 나에게 대단한 센스가 있다면?

등등등 무언가 상대가. 혹은 비록 그 상대는 아니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나에게 이성으로서 매력을 가질 수
있는 그 어떤 매력이 있다면 까짓거 최악의 경우 그 사람과 헤어지더라도 다른 누군가를 만나면 그만입니
다. 안 그렇습니까. 당장 그 사람 아니면 죽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바로 그런 것을 갖지 못한 사람이라면… 혹은 자신에게 그런 매력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라면 어쩌겠습니까?

지금 이 사람, 물론 나라고 이 사람에게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정말 과분할 정도로
매력 넘치는 이 사람… 심각한 경우에는 '그래도 그나마 이 사람이니까 나를 받아주었지, 아니라면 그
누가 나같은 사람을 이렇게라도 좋아해주겠어' 하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할 경우 이제 결론은 단 하나가
되는거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사람을 잡아라' 

사실 여기서라도 뭔가 근본적으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 같으면 뭔가 공격적인 포지션을
취할 것입니디만, 세상에 그런 승부사는 그리 많지 않지요. 특히나 반발보다는 순종에 익숙한 우리네
사람들은 그딴거 얇짧없고 그저 방어적인 포지션닝을 취하기 시작합니다.

아 그리고 이제부터가 눈물나는 고행길 시작입니다. 설령 상대가 나를 서운하게 하더라도 나는 꾹 참고
상대의 비위를 맞춰야하며, 모든 스케쥴이나 활동, 만남, 장소 이런 것도 상대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됩
니다. 그 모든 가운데 상대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는 것은 물론입니다. 당연히 나의 행동을 그 사람에게
맞추는 것은 기본이요, 그 사람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제 그 생활이 익숙해지면 그야말로 자타가 공인하는 '호구'가 되는 겁니다. 

물론 호구라고 그 생활이 어디 좋기만 하겠습니까. 로보트도 아니고 줏대와 감정이 있는 사람인데 당연히
가끔은 짜증도 나고 서운하기도 하고, 정말 가끔은 '이건 아니다' 같은 생각도 들고 그러겠지요. 하지만
꾹 참는 겁니다. 왜? 

'이 사람 아니면 안 되니까'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랑이라는게, 아 물론 말이야 아릅답습니다만 그 '모든 것' 안에는 분명 자존심과 
심지어 수명까지 들어가 있는게 틀림없습니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니까.

이게 호구의 상황이 악화되면 근본적인 연인간에 지켜야 할 최소한의 어떤 금기마저도 서서히 깨져
나가기 시작합니다. 사실 사람의 자존심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죠. 돈, 육체, 식욕,
공포 등 아니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뭐 생각보다 그리 별 대단한 것도 아닌 것에 얼마든지 사람의 자존
심은 굽혀지기 마련입니다. 하물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라는 그럴듯한 명분까지 있는데 자존심 꺾는
거야 별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점점 꺾어서는 안되는 수준까지 자존심을 꺾고, 그렇게 점점 연애의 
주도권이 6:4, 7:3을 넘겨 8:2, 9:1, 9.5:0.5, 9.9:01 식으로 서서히 넘어가는 순간… 


잠깐. 하지만 여기서 호구의 생각도 해볼 필요는 있습니다. 호구가 과연 무조건 그저 좋기만 해서 죄
퍼주는 걸까요? 그렇지 않죠. 호구에게는 호구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기본적으로 상호주의 원칙. '내가 이만큼을 하는데, 그럼 뭐 똑같이는 못해도 최소한 어느 정돈 
나한테 잘하는게 맞지 않냐' 라는 식의 발상. 물론 상대가 염치가 있다면 당연히 어느 정도까지는 꽤
씨알이 먹힙니다. 뭐 곧이어 '그건 걔가 나한테 해주는거지 내가 해달라는게 아니잖아' 식의 자기합리
화와 '호의가 지속되면 그것이 권리인 줄 알게 되는' 인간 본연의 그 쓰레기 같은 심리 탓에 별 효과가
없어지지만.

다음으로는 상호 투자의 원칙. 물론 이쪽이 그쪽에 대해 물심양면으로 어마어마하게 투자가 되면서
그 투자 대비 퍼포먼스가 심각하게 낮다는 문제가 있기는 합니다만 어쨌든 내가 그쪽이 돈과 마음을
투자하는 만큼, 그리고 관계를 이어가는 이상은 상대 역시 나에게 관심과 시간을 투자하게 되고 바로
그 상대가 나에게 투자한 비용이 커질수록 상대 역시 나를 쉽게 버리지 못하게 됩니다. 생각보다 이
부분은 의외로 의미가 큰데요 '여성의 결혼 적령기'는 특히나 그런 문제가 더욱 있어서 이를테면 '3년
이나 사귀어놓고 다시 처음부터 다른 누군가와 사귀는 것' 자체에 대한 아득함과 그동안 투자해 온
어떤 시간과 기억에 대한 매몰비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죠. 

또한 '구속과 집착'에 대한 세간에 널리 퍼진 부정적인 인식과 자기 자신도 그런 어떤 구속과 집착을
하는 매력없는 사람이 될까 싶어 진짜 마음과는 달리 그저 방목을 해버린다거나, 반대로 그러면 찌질
하고 안된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끝내 집착하고 구속해버리고야 마는 뭐 그런 것.

마지막으로는 '정'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문득문득 느끼죠. 부모님의
한결같은 지극한 사랑과 애정… 너무나 당연하고 따스해서 그저 무시하고 넘기지만 문득 바로 그 
마음을 새삼 깨닫는 순간 그저 눈물이 왈칵 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어떤 지극한 사랑에 대한
그런 마음, 그리고 그리 썩 마음에 내키지는 않아도 그저 나를 이토록이나 좋아해주는 어떤 사람에
대한 고마움과 측은함, 그런 정은 참 더럽고 모질기도 한 것이지요. 


호구에게도 바로 그런, 나름의 전략은 있는 법입니다. 아 미쳤다고 그 많은 시간과 돈과 열정을
쏟아붓겠습니까. 아 물론 호구들이 그것까지 다 일일히 계산하고 행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대부분의 호구들은 정말로 그저 마냥 좋아서 퍼주다보면 어느새 호구가 되어 있는 케이스가 대부분
이고 그 이후에 상대의 점점 돌아서는 마음을 붙잡으려다보니 무리를 하게 되고 개호구, 씹호구가
되는 것 뿐입니다. 

생각해보면 참 안쓰러운 존재들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누군가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한없이 많은
애정과 관심과 시간과 열정을 쏟는다는 것이. 물론 적지 않은 수의 호구가 그 '열정'을 어떻게
쏟아야 하는지를 제대로 몰라서 엉뚱하게 쏟아붙다가 개좆되는 수가 많지만 여러분도 사실 그
호구의 마음, 원래 뜻이 무엇이었는지는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아아 정말로 안쓰러운 존재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혀 마음에 없는 사람을 사귀어 주는 것도 또
당연히 나름대로 문제가 큰 이야기입니다만. 

그리고 이쯤해서는 또 이런 이야기도 나올 것입니다. '나도 처음에는 그런 호구가 안쓰러웠는데, 나중에
돌변하는 모습 보고 충격먹었다' 

음. 

그 호구 참 나쁜 호구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나쁜 호구가 되기까지… 그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많은
가슴의 스크래치를 입었길래 그렇게 되었을까를 생각해보면 또 마냥 비난하기에 앞서서 또 마음이
짠해지는 데가 있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세상 만사가 그런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정말 죽어라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
성공하는게 맞는건데, 꼭 그렇지는 않잖습니까? 

돈이고 시간이고 노력이도 다 쏟아부어도 끝끝내 안되어 그 고단한 노력 앞에 울먹이며 좌절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적당히 대충 간보면서 아주 가끔 사알짝 신경 좀 썼더니 그게 바로 성공해서 쉽게쉽게 가고, 또 그
이후에도 적당히 대충 하는데 또 오히려 그게 더 여유있고 유도리 있고 편해서 잘 되는 뭐 그런 경우
말입니다. 

여튼 정리해보자면, 호구들의 어떤 그 애틋하고도 짠해지는, 그러나 아무리 마음이 짠하더라도 그
마음이 설레여지지는 않는… 아주 극히 드문 확률로 뭉클해지기는 하지만 연애 본연의 어떤 '설레
이고 두근대며 짜릿한 그 무엇'이 없는 마음에 의한 연애…  

그리고 그런 바보 같은 연애 방법을 취할 수 밖에 없는, 그리고 그 외의 방법은 알지도 못하는 참
불쌍한 호구들…

조금만 더 호구에 대해 자비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단
한가지, 이거 하나는 말해둡니다. 

그 호구의 참으로 애틋하고 가련한 그 마음의 대상은, 이쁜 여자-잘난 남자 한정이라는 것을.


Viewing all articles
Browse latest Browse all 703

Trending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