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세용이는 무어라 말을 몇 번이나 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하다가, 겨우 간신히 생각을 정리한 듯 말했다.
"아름아"
"왜"
그리고 솔직히 속으로 조금 쫄렸다. 그저 내 말이라면 껌뻑 죽고, 흥분하면 말도 버벅이는 그이지만, 세용이가 저렇게 차분하게 나름의 생각을 정리할 때의 말은 언제나 내 정곡을 찔러왔으니까.
"니 말도, 맞는 말인데, 그렇지만…근데…"
"뭐"
나도 모르게 또 삐딱선. 저렇게 괴로워하며 겨우 말을 '토해내는' 그를 또 몰아붙인다. 미안함이 가슴 속을 파고 들지만, 잘못을 인정하기가 두렵다.
"그냥 나는 너가 미안하다는 한 마디만 하면 됐어"
순간 무거워지는 공기. 과거형의 말이 두렵다.
"다신 안 그런다고 말하면, 그걸로 괜찮다고 다짐했어. 나도… 많이 힘들지만 그럴라고, 여기 나온거야. 근데 너는 어쩌면…어쩌면…참 너는 어쩌면…"
저 울보. 또 눈물을 글썽인다. 혼자 북받혀 우는 눈물. 그리고 항상 나까지 미안함에 글썽이게 만드는 저 빙신같은 눈물. 저 바보 같은 눈물. 벌써 나도 찔끔한다.
"그냥 미안하다고 말하면 되잖아. 그게 그렇게 어려워?"
어려워. 나는 그 말이 안 나가. 미안해 세용아. 근데 정말로 나는 그게 그렇게 어려워. 어느새 내 입은 얼어붙은 듯 말이 나오지 않는다.
"크흠"
간신히 눈물을 닦아내며 코와 가래를 들이마시는 저 멍충이.
"알았어, 괜찮아. 내가 널 모르냐"
"…"
그렇게 그는 또 한번 큰 답답함을 혼자 먹어치운다. 말로 그를 짓누르고, 사랑을 무기로 휘두르며, 기어코 분함과 억울함에 그의 눈물까지 터뜨리게 만들었지만 내 속도 결코 편하지 않다. 내가 싫어진다. 내 자신에 대해 화가 치솟는다. 죽일 년. 쳐죽일 년. 미친 년.
'미안해'
마음 속으로 작게 말한다. 그리고 새삼 두려워진다. 언제까지 세용이가 나를 참아줄까. 이러다 어느날 갑자기 확 돌아서면 어쩌나.
"밥은 먹었어? 배고프지"
저 바보는 또 어느새 그 화난 말투를 지우고 다정하게 묻는다. 저 머저리.
"안 먹었어"
사실 저 다정한 말투에 가슴이 아리고 눈물이 왈칵하는데 또 쌀쌀맞게 대답한다. 그래도 웃는 세용.
"먹으러 가자. 나도 배고파"
"생각없어"
"그래도 가자"
그는 내 손을 잡아 이끈다. 항상, 싸워서 이기고도 마음에서 진 느낌이다. 이러다 정말 내가 더 많이 좋아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언제나처럼 모질게 굴다가 확 세용이 마음이 확 돌아서면 어쩌나. 나도 이젠…. 아니, 어쨌든.
"뭐 먹을건데"
내 질문에 또 혼자 마음이 풀어진 이 멍청이는 "너 먹고 싶은거" 하고 대답한다. 나는 그저 미안한 마음만 가득하다. 그리고 저 쪽을 가리킨다. 그가 좋아하는 메뉴를 고른다.
"김치찌개 먹으러 가자. 순이네"
"어 좋아"
나도 안다. 아무리 세용이라도, 그가 아무리 나 밖에 모르는 바보라도, 이렇게 사람 마음 속에 칼을 마구 찔러넣다가는 언젠가 크게 후회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아무리 내가 말로 그를 짓눌러도 결국은 매번 지는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사과 대신 억지와 적반하장으로 소리만 치며 상황을 넘기는 이 '말로 다 해결하려는' 고질병은 정말 나쁜 습관이라는 것을.
"춥지"
그가 껴오는 깍지를, 오늘은 받아준다. 그의 미련한 사랑을 이렇게 오늘도 나는 받아준다. 언젠가 그가 흘린 모든 눈물을 열 배로 내가 흘리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하며.
- 끝 -
"아름아"
"왜"
그리고 솔직히 속으로 조금 쫄렸다. 그저 내 말이라면 껌뻑 죽고, 흥분하면 말도 버벅이는 그이지만, 세용이가 저렇게 차분하게 나름의 생각을 정리할 때의 말은 언제나 내 정곡을 찔러왔으니까.
"니 말도, 맞는 말인데, 그렇지만…근데…"
"뭐"
나도 모르게 또 삐딱선. 저렇게 괴로워하며 겨우 말을 '토해내는' 그를 또 몰아붙인다. 미안함이 가슴 속을 파고 들지만, 잘못을 인정하기가 두렵다.
"그냥 나는 너가 미안하다는 한 마디만 하면 됐어"
순간 무거워지는 공기. 과거형의 말이 두렵다.
"다신 안 그런다고 말하면, 그걸로 괜찮다고 다짐했어. 나도… 많이 힘들지만 그럴라고, 여기 나온거야. 근데 너는 어쩌면…어쩌면…참 너는 어쩌면…"
저 울보. 또 눈물을 글썽인다. 혼자 북받혀 우는 눈물. 그리고 항상 나까지 미안함에 글썽이게 만드는 저 빙신같은 눈물. 저 바보 같은 눈물. 벌써 나도 찔끔한다.
"그냥 미안하다고 말하면 되잖아. 그게 그렇게 어려워?"
어려워. 나는 그 말이 안 나가. 미안해 세용아. 근데 정말로 나는 그게 그렇게 어려워. 어느새 내 입은 얼어붙은 듯 말이 나오지 않는다.
"크흠"
간신히 눈물을 닦아내며 코와 가래를 들이마시는 저 멍충이.
"알았어, 괜찮아. 내가 널 모르냐"
"…"
그렇게 그는 또 한번 큰 답답함을 혼자 먹어치운다. 말로 그를 짓누르고, 사랑을 무기로 휘두르며, 기어코 분함과 억울함에 그의 눈물까지 터뜨리게 만들었지만 내 속도 결코 편하지 않다. 내가 싫어진다. 내 자신에 대해 화가 치솟는다. 죽일 년. 쳐죽일 년. 미친 년.
'미안해'
마음 속으로 작게 말한다. 그리고 새삼 두려워진다. 언제까지 세용이가 나를 참아줄까. 이러다 어느날 갑자기 확 돌아서면 어쩌나.
"밥은 먹었어? 배고프지"
저 바보는 또 어느새 그 화난 말투를 지우고 다정하게 묻는다. 저 머저리.
"안 먹었어"
사실 저 다정한 말투에 가슴이 아리고 눈물이 왈칵하는데 또 쌀쌀맞게 대답한다. 그래도 웃는 세용.
"먹으러 가자. 나도 배고파"
"생각없어"
"그래도 가자"
그는 내 손을 잡아 이끈다. 항상, 싸워서 이기고도 마음에서 진 느낌이다. 이러다 정말 내가 더 많이 좋아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언제나처럼 모질게 굴다가 확 세용이 마음이 확 돌아서면 어쩌나. 나도 이젠…. 아니, 어쨌든.
"뭐 먹을건데"
내 질문에 또 혼자 마음이 풀어진 이 멍청이는 "너 먹고 싶은거" 하고 대답한다. 나는 그저 미안한 마음만 가득하다. 그리고 저 쪽을 가리킨다. 그가 좋아하는 메뉴를 고른다.
"김치찌개 먹으러 가자. 순이네"
"어 좋아"
나도 안다. 아무리 세용이라도, 그가 아무리 나 밖에 모르는 바보라도, 이렇게 사람 마음 속에 칼을 마구 찔러넣다가는 언젠가 크게 후회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아무리 내가 말로 그를 짓눌러도 결국은 매번 지는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사과 대신 억지와 적반하장으로 소리만 치며 상황을 넘기는 이 '말로 다 해결하려는' 고질병은 정말 나쁜 습관이라는 것을.
"춥지"
그가 껴오는 깍지를, 오늘은 받아준다. 그의 미련한 사랑을 이렇게 오늘도 나는 받아준다. 언젠가 그가 흘린 모든 눈물을 열 배로 내가 흘리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하며.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