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병리학과 김박스 교수의 강의는 언제나처럼 자신의 경험에 입각한 사례와 그에 대한 소견으로 마무리 된다.
"현대의학의 도움을 받는다 하더라도, 결국 병마와 싸우는 것은 환자 자신이다. 아무리 의사가 적절한 처방을 하고 치료를 실시한다고 해도, 환자 본인이 치료나 교정의 의사가 없거나 부족하다면 결국 그 효과는 제한적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폐 질환이 있는 환자가 흡연을 고집한다거나, 대사증후군이 있는 이가 생활습관을 바꿀 의지가 없는 경우가 대표적으로 그러하다"
김박스 교수는 잠시 좌중을 둘러보다가 입을 다시 열었다.
"하지만 현실을 놓고 보았을 때 의사가 그들의 삶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매우 적고, 또 환자 역시도 자신의 삶을 갑자기 바꾸기는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예를 들어 의사 그 자신의 삶을 놓고 보아도 과연 '푹 자고,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하며,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로 사는' 의사가 몇이나 될 것이며, 문제를 체감한들 그 패턴을 실제로 바꾸는 것이 가능한 의사가 얼마나 될까?"
강의실의 모두는 씁쓸한 얼굴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김박스는 언제나와 같은 한 마디로 강의를 마무리 지었다.
"따라서 의사가 현재의 의료환경에서 환자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진료는 결국 '외과는 솜씨, 내과는 독설'이라는 것이 내 결론이다"
김박스 교수는 자신의 앞에 앉은 환자에게 몇 가지 문진을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그래도 본인이 '아저씨' 소리 들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죠?"
"본인의 개그감각이, 백점 만점에 그래도 최소한 60점 이상, 컨디션 좋을 때는 70점은 넘는다고 생각하죠?"
"귀여운 부하 여직원들과 이야기를 할 때 자기도 모르게 텐션이 오른다거나, 혹은 기분이 좋아지죠?"
"어쨌든 현재 본인의 나이에 비해서 본인의 생각이나 사고는 젊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등등, 몇 가지의 질문에 환자는 모두 그에 대해 "그렇습니다" 혹은 "네 좀 그런 편이죠…" 또는 "예전에는 분명 그저 그랬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확실히 좀 그렇습니다" 같은 류의 대답을 해왔다.
"아재증후군입니다"
김박스의 말에 환자는 혀로 입술을 적시며 잠시 당황하더니 곧 "네, 역시 그렇군요" 하며 수긍했다. 사실 이런 솔직한 환자들의 경우에는 보통 치료에도 협조적이며, 그 예후도 좋은 편이다. 이후의 치료 방법과 시술 일정을 간단히 체크하고 일단은 "말 수 줄이기"를 처방한다.
그러나 언제나와 같이, 쉬운 환자 다음에는 까다로운 환자가 나타난다.
"전 그래도 정말로 객관적으로 평균보다는 그 한참 위라고 생각하는데요. 지금 만나고 있는 애도 그렇고, 어떤 라이프 스타일이나 삶을 대하는 자세, 관심사라거나 외모도 그렇고요"
아재증후군의 제 2형 증상으로, 제 1형 아재증후군이 보통 전형적인 '아저씨'들에게서 보이는 무너진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도피성 현실감각 저하-즉, 환자 본인도 자신의 현실을 알고 있지만 애써 부정하는-증상이라면, 제 2형 아재증후군은 '관리하는 나 자신'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강력한 자아도취-으로 균형감각이 깨지는 경우가 곧잘 그 원인이 된다.
"상대의 미소 속에 어느 정도의 진심이 담겨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특정한 상대가 아닌, 보다 대중적인 기준으로 본인의 현재를 평가한다면 어떨까요"
"나 자신에서 껍질을 살짝만 벗겨내고 생각해보기로 하죠"
김박스도 몇 가지의 추가적인 질문을 더 했지만, 환자는 그때마다 꽤 일리있는 항변을 해왔다. 그리고 듣다듣다 환자는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이 꽤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선생님, 제가 아재증후군이라고 이미 결론을 내리고 접근하시는 것 같은데, 좀… 글쎄요. 후, 글쎄요… 이건 좀 아닌 것 같군요"
김박스 역시도 매우 곤란하다는 듯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몇 가지 검사를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이 제 2형 아재증후군은 의사 입장에서도 매우 진단과 처방이 어렵고, 실제 일부 국가에서는 아예 병리적인 접근 자체를 주저하는 경우도 있다. 기본적으로 아재증후군이 무엇인가. '자신의 현실과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여, 주변에 다양한 이상행동으로 피해를 끼치는 노화 속의 한 병리적 증상' 아닌가.
나이에 맞지도 않고 상대가 부담스러워하는 터무니 없는 로맨스를 혼자 꿈꾼다거나, 자신의 사회적 입지를 악용하여 주변 사람에게 다양한 정신적 민폐를 끼치는 이상행동(아재개그, 잦은 비위생적인 행위, 철면피 또는 파렴치, 성적 이상행동, 지나치게 까다롭거나 소심해지거나 하는 정서불안 등)을 하는 짓 등이 결국 정신질환으로 인정되어 WHO에 의해 질병코드가 등록된 것인데…
제 2형 아재증후군은 그런 면에서는 조금 미묘한 점이 있었다. 확실히 주변에서 보기에는 이미 '저래봐야 아저씨인데' 싶은 주책이며 그로 인해 주변에 다양한 민폐를 끼치는 자아도취성 정서장애 증세이지만, 어쨌든 그 자신에 대한 노력과 관리가 이어지고 있는데다 그 덕택에 환자 본인과 그 주변의 일부 코드가 맞는 이에 대해서는 전혀 피해를 끼치지 않는 안정적인 유대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에 이를 정말 병리적 증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는 학계에서도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 이 사례가 바로 좋은 예인데, 이 환자는 40대 중반에 접어든 돌싱 사장님이다. 애는 없고. 현재 근 5년간 이어오고 있는 헬스와 자전거 타기, 수영으로 탄탄한 몸매를 유지해오고 있고 사회적으로도 충분히 안정된 사람이야. 사회 문제에도 관심이 많고, SNS 활동이나 온라인 활동도 적극적이고, 젊은 취향의 취미생활로 20대들과도 교류하며 젊은 감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지."
잠시 말을 쉰 김박스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객관적으로는 40대 이혼남이니 조건만 들으면 누가 봐도 아저씨지. 거기다가 자기 관리에 대한 부심이 지나쳐서 종종 젊은 남자 사원들한테 운동 하라고 구박하고 오지랍까지 부리는 꼰대짓까지 생각하면 더할 나위 없는 아재인 것은 맞아. 본인은 아저씨 소리 듣기 싫어한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여기서 김박스는 다시 의문을 던졌다.
"그러나 어쨌든 스타일이 좋고 외모도 훌륭한데다 사회적 조건도 충분히 갖출만큼 갖췄어. 신선함만 제외하면 어설픈 20대보다는 훨씬 매력적인 사람이지. 실제로 주변 몇몇 이성과는 묘한 성적 긴장감도 충분히 형성할 정도이고. 약간의 꼰대 기질과 어쩔 수 없이 스며든 약간의 환경적 사상 한계점만 제외한다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아저씨'와는 실제로 크게 다른 사람이야. 이런 사람의 정서를 병리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일까? 개인주의적 관점에서 본다면 확실히 무리가 따르는 일이고, 몇몇 서구 나라에서는 때문에 이 제 2형 아재증후군은 아예 질병으로 취급하지 않는 나라들도 많아. 이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지?"
강의실이 순간 조용해졌지만, 한 여학생이 번쩍 손을 들었다.
"저는 여전히 제 2형 아재증후군도 충분히 병리적 증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아재증후군이 질병으로 규정된 것은, 자기객관화 실패가 주변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결국 자기 자신에게 가장 큰 피해로 돌아가는 정서적 이상증상이기 때문입니다. 설령 제 2형 아재증후군에 해당하는 이들의 행동이 당장은 1형 증후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증상이 양호하다고는 하나, 결국 언젠가 피해자는 발생할 수 밖에 없고 그때의 피해는 오히려 1형보다도 더 돌이킬 수 없이 큰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김박스는 그녀의 답변에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exactly"
김박스는 '심박계를 여러개 붙인 채로,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은 제 2형 아재증후군 의심환자'에게 문진을 계속했다.
"지금 본인은 18살 차이의 연하 여자친구와 말이 잘 통한다고 생각한다고 이미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전의 퇴사한 부하직원 아영, 유라, 소영과의 관계가 시작 이전에 처참하게 깨진 것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환자가 답변을 하기도 전에 심박계가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환자는 무어라 조리있는 답변을 하려 했지만 곧 한숨을 쉬며 "카사노바도 모든 여자와 다 잘 된 것은 아니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면서 흔해 빠진 변명을 했다. 이어 "그리고 같은 20대끼리도 성격따라 환경따라 말이 잘 안 통하는 경우도 있구요" 하면서 역시 흔한 변명을 이어갔다. 하지만 가타부타 말없이 김박스는 문진을 계속했다.
"분명 요즘에도 핫한 걸그룹 신곡들은 많이 듣고 있음에도, 본인의 노래방 선곡 업데이트는 이미 8년 전에 끊긴 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분명 젊고 어린 여자들과도 말이 잘 통한다고 했으면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 여직원들과의 대화가 20대 초반 여직원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애시당초 여자를 만나는 루트 자체가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 또는 유흥업소가 대부분이라는 사실 자체가 상당히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일련의 미투 사태들을 보면서 묘한 공포를 느낀 경험이 있습니까"
"'취향이 올드하다' 소리를 듣기 싫어서 과도하게 젊은 친구들의 취향을 의식한다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습니까"
"주변 또래와 다른 삶을 추구하는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에 높은 점수을 주면서도 가끔 현자타임이 오지 않습니까"
"실패한 개그를, 성공한 다른 개그에 대한 기억으로 지우며 애써 부정하지만 분명 그 실패한 순간에 느낀 어떤 소름과 적막, 이후의 억지반응들을 보면서 더 큰 비참함을 느낀 적 없습니까"
…수없는 질문에 드디어 환자는 감은 눈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그리고는 갑자기 큰 소리를 지르며 자기 뺨을 후려치는 자해를 이어갔다.
"맞습니다. 저는 아저씨 맞아요! 맞습니다! 맞다구요! 저는 아재에요 아재! 그것도 철없이 20대들과 놀고 싶은 똥아재요! 나는 아재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지만 사실은 그냥 흔한 아재들보다 더욱 나쁜, 쓰레기 같은 아재 맞다구요!"
환자는 뒤이어 우어어 하는 고함까지 지르고 격렬한 발작을 시작했지만, 김박스 교수의 노련한 손길로 곧바로 입에 투입된 아재용 신경안정제 '우황청심환' 덕분에 그는 다시 매우 안정적으로 본래의 상태로 돌아갔다.
어린 시절 크게 놀랐을 때마다 할머니가 한번 씹은 뒤 입에 넣어주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과 '아 맞어, 이런 것을 먹어본 기억이 있는 한 나는 결코 아재임을 부정할 수 없어' 하는 깊은 회환의 눈물로 그는 그렇게 제 2형 아재증후군에서 드라마틱하게 상태가 호전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요즘 저는 오랜만에 다시 연락한 친구들과 함께 골프, 낚시를 다니며 활기를 되찾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친구 소개로 비슷하게 나이 먹어가는 외로운 처지의 좋은 인연도 만나게 되었구요. 새삼 이 나이에 클럽 다닐라고 테이블 잡고 그랬던 기억들이 비로소 부끄럽게 생각이 듭니다. 이게 다 선생님 덕분 아니겠습니까, 허허"
몇 주 뒤, 이미 웃음소리마저 "허허"로 변한 그의 상태를 보며 김박스 교수는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김박스는 "우선 이번 주까지는 조금 더 낚시, 트로트, 바둑 채널을 보시고, 다음 주부터는 자동차 채널이나 야구 채널을 곁들여 보셔도 됩니다. 지금은 치료 때문에 연배에 비해 다소 과한 약을 쓰고 있는 것이니까요." 하고 구두 처방전을 곁들였다.
환자의 자동차 키에 달려있던 카카오 프렌즈 키링이 어느새 서비스 센터의 순정 70만 포인트 고객대상 증정품 키링으로 바뀐 것을 보며 김박스는 다시 한번 흐뭇한 미소를 짓고는 그렇게 환자를 돌려보냈다.
"다음 환…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어느덧 진료 시간이 끝났음을 깨닫고 김박스 교수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잠시 눈을 비비다가 노트북을 폈다. 그러나 노트북 속 논문 초록, 서론의 내용은 한 단락만 읽어보아도 방금 전의 진료와 전혀 반대되는 매우 파격적인 것이었다.
"…아재증후군 치료에 있어서 현대의 치료법상 그 최선의 방법이 본인의 철저한 반성과 현실 자각에 있음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제 1형 아재군의 희귀 사례 및 제 2형 아재증후군의 일부 사례에서 관찰된 '젊은 감각을 가진, 분명히 정서적인 노화가 느리고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하여 일련의 미래지향적 자아를 가질 수 있는 것으로 예측되는 소수의 케이스'마저도 결국 자아 파괴에 가까운 형태의 자기 반성만으로 접근해야 하는가는 여전히 큰 의문의 여지가 있다.
다수의 케이스에서 그들의 행동발생적 동기가 의외로 심히 불순한 것에 있음이 발견되었으며, 과정상의 과도한 자기애가 추가적인 정서적 불안정을 유발한다손 치더라도, 긍정적이며 지속적인 행동의 강력한 유인요소가 될 수 있다는 사실 역시 부정할 수 없다면 이 지점에 대한 보다 근본적이며 전면적인 재검토의 여지가 있다.
아래 14건의 케이스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된 행동특성은…"
그렇다. 사실 김박스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단지 환자들의 빠른 사회화와 안정적인 치료, 그리고 심평원의 의료수가 이슈 때문에 획일화 된 '자아파괴'라는 방법으로 현재의 아재증후군 환자들을 진료하고는 있지만, 그는 여전히 탈아재에 대한 긍정론적 접근을 검토하고 있다.
언젠가는 자신 같은 못 생기고 센스없는 똥아재들도 총각, 아가씨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고 그들과 즐겁게 어울리며 긍정적이며 행복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으리라는 덧없는 꿈을 꾸고 있기에.
- 끝 -
"현대의학의 도움을 받는다 하더라도, 결국 병마와 싸우는 것은 환자 자신이다. 아무리 의사가 적절한 처방을 하고 치료를 실시한다고 해도, 환자 본인이 치료나 교정의 의사가 없거나 부족하다면 결국 그 효과는 제한적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폐 질환이 있는 환자가 흡연을 고집한다거나, 대사증후군이 있는 이가 생활습관을 바꿀 의지가 없는 경우가 대표적으로 그러하다"
김박스 교수는 잠시 좌중을 둘러보다가 입을 다시 열었다.
"하지만 현실을 놓고 보았을 때 의사가 그들의 삶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매우 적고, 또 환자 역시도 자신의 삶을 갑자기 바꾸기는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예를 들어 의사 그 자신의 삶을 놓고 보아도 과연 '푹 자고,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하며,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로 사는' 의사가 몇이나 될 것이며, 문제를 체감한들 그 패턴을 실제로 바꾸는 것이 가능한 의사가 얼마나 될까?"
강의실의 모두는 씁쓸한 얼굴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김박스는 언제나와 같은 한 마디로 강의를 마무리 지었다.
"따라서 의사가 현재의 의료환경에서 환자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진료는 결국 '외과는 솜씨, 내과는 독설'이라는 것이 내 결론이다"
아재증후군
김박스 교수는 자신의 앞에 앉은 환자에게 몇 가지 문진을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그래도 본인이 '아저씨' 소리 들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죠?"
"본인의 개그감각이, 백점 만점에 그래도 최소한 60점 이상, 컨디션 좋을 때는 70점은 넘는다고 생각하죠?"
"귀여운 부하 여직원들과 이야기를 할 때 자기도 모르게 텐션이 오른다거나, 혹은 기분이 좋아지죠?"
"어쨌든 현재 본인의 나이에 비해서 본인의 생각이나 사고는 젊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등등, 몇 가지의 질문에 환자는 모두 그에 대해 "그렇습니다" 혹은 "네 좀 그런 편이죠…" 또는 "예전에는 분명 그저 그랬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확실히 좀 그렇습니다" 같은 류의 대답을 해왔다.
"아재증후군입니다"
김박스의 말에 환자는 혀로 입술을 적시며 잠시 당황하더니 곧 "네, 역시 그렇군요" 하며 수긍했다. 사실 이런 솔직한 환자들의 경우에는 보통 치료에도 협조적이며, 그 예후도 좋은 편이다. 이후의 치료 방법과 시술 일정을 간단히 체크하고 일단은 "말 수 줄이기"를 처방한다.
그러나 언제나와 같이, 쉬운 환자 다음에는 까다로운 환자가 나타난다.
"전 그래도 정말로 객관적으로 평균보다는 그 한참 위라고 생각하는데요. 지금 만나고 있는 애도 그렇고, 어떤 라이프 스타일이나 삶을 대하는 자세, 관심사라거나 외모도 그렇고요"
아재증후군의 제 2형 증상으로, 제 1형 아재증후군이 보통 전형적인 '아저씨'들에게서 보이는 무너진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도피성 현실감각 저하-즉, 환자 본인도 자신의 현실을 알고 있지만 애써 부정하는-증상이라면, 제 2형 아재증후군은 '관리하는 나 자신'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강력한 자아도취-으로 균형감각이 깨지는 경우가 곧잘 그 원인이 된다.
"상대의 미소 속에 어느 정도의 진심이 담겨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특정한 상대가 아닌, 보다 대중적인 기준으로 본인의 현재를 평가한다면 어떨까요"
"나 자신에서 껍질을 살짝만 벗겨내고 생각해보기로 하죠"
김박스도 몇 가지의 추가적인 질문을 더 했지만, 환자는 그때마다 꽤 일리있는 항변을 해왔다. 그리고 듣다듣다 환자는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이 꽤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선생님, 제가 아재증후군이라고 이미 결론을 내리고 접근하시는 것 같은데, 좀… 글쎄요. 후, 글쎄요… 이건 좀 아닌 것 같군요"
김박스 역시도 매우 곤란하다는 듯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몇 가지 검사를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이 제 2형 아재증후군은 의사 입장에서도 매우 진단과 처방이 어렵고, 실제 일부 국가에서는 아예 병리적인 접근 자체를 주저하는 경우도 있다. 기본적으로 아재증후군이 무엇인가. '자신의 현실과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여, 주변에 다양한 이상행동으로 피해를 끼치는 노화 속의 한 병리적 증상' 아닌가.
나이에 맞지도 않고 상대가 부담스러워하는 터무니 없는 로맨스를 혼자 꿈꾼다거나, 자신의 사회적 입지를 악용하여 주변 사람에게 다양한 정신적 민폐를 끼치는 이상행동(아재개그, 잦은 비위생적인 행위, 철면피 또는 파렴치, 성적 이상행동, 지나치게 까다롭거나 소심해지거나 하는 정서불안 등)을 하는 짓 등이 결국 정신질환으로 인정되어 WHO에 의해 질병코드가 등록된 것인데…
제 2형 아재증후군은 그런 면에서는 조금 미묘한 점이 있었다. 확실히 주변에서 보기에는 이미 '저래봐야 아저씨인데' 싶은 주책이며 그로 인해 주변에 다양한 민폐를 끼치는 자아도취성 정서장애 증세이지만, 어쨌든 그 자신에 대한 노력과 관리가 이어지고 있는데다 그 덕택에 환자 본인과 그 주변의 일부 코드가 맞는 이에 대해서는 전혀 피해를 끼치지 않는 안정적인 유대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에 이를 정말 병리적 증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는 학계에서도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 이 사례가 바로 좋은 예인데, 이 환자는 40대 중반에 접어든 돌싱 사장님이다. 애는 없고. 현재 근 5년간 이어오고 있는 헬스와 자전거 타기, 수영으로 탄탄한 몸매를 유지해오고 있고 사회적으로도 충분히 안정된 사람이야. 사회 문제에도 관심이 많고, SNS 활동이나 온라인 활동도 적극적이고, 젊은 취향의 취미생활로 20대들과도 교류하며 젊은 감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지."
잠시 말을 쉰 김박스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객관적으로는 40대 이혼남이니 조건만 들으면 누가 봐도 아저씨지. 거기다가 자기 관리에 대한 부심이 지나쳐서 종종 젊은 남자 사원들한테 운동 하라고 구박하고 오지랍까지 부리는 꼰대짓까지 생각하면 더할 나위 없는 아재인 것은 맞아. 본인은 아저씨 소리 듣기 싫어한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여기서 김박스는 다시 의문을 던졌다.
"그러나 어쨌든 스타일이 좋고 외모도 훌륭한데다 사회적 조건도 충분히 갖출만큼 갖췄어. 신선함만 제외하면 어설픈 20대보다는 훨씬 매력적인 사람이지. 실제로 주변 몇몇 이성과는 묘한 성적 긴장감도 충분히 형성할 정도이고. 약간의 꼰대 기질과 어쩔 수 없이 스며든 약간의 환경적 사상 한계점만 제외한다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아저씨'와는 실제로 크게 다른 사람이야. 이런 사람의 정서를 병리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일까? 개인주의적 관점에서 본다면 확실히 무리가 따르는 일이고, 몇몇 서구 나라에서는 때문에 이 제 2형 아재증후군은 아예 질병으로 취급하지 않는 나라들도 많아. 이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지?"
강의실이 순간 조용해졌지만, 한 여학생이 번쩍 손을 들었다.
"저는 여전히 제 2형 아재증후군도 충분히 병리적 증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아재증후군이 질병으로 규정된 것은, 자기객관화 실패가 주변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결국 자기 자신에게 가장 큰 피해로 돌아가는 정서적 이상증상이기 때문입니다. 설령 제 2형 아재증후군에 해당하는 이들의 행동이 당장은 1형 증후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증상이 양호하다고는 하나, 결국 언젠가 피해자는 발생할 수 밖에 없고 그때의 피해는 오히려 1형보다도 더 돌이킬 수 없이 큰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김박스는 그녀의 답변에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exactly"
김박스는 '심박계를 여러개 붙인 채로,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은 제 2형 아재증후군 의심환자'에게 문진을 계속했다.
"지금 본인은 18살 차이의 연하 여자친구와 말이 잘 통한다고 생각한다고 이미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전의 퇴사한 부하직원 아영, 유라, 소영과의 관계가 시작 이전에 처참하게 깨진 것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환자가 답변을 하기도 전에 심박계가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환자는 무어라 조리있는 답변을 하려 했지만 곧 한숨을 쉬며 "카사노바도 모든 여자와 다 잘 된 것은 아니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면서 흔해 빠진 변명을 했다. 이어 "그리고 같은 20대끼리도 성격따라 환경따라 말이 잘 안 통하는 경우도 있구요" 하면서 역시 흔한 변명을 이어갔다. 하지만 가타부타 말없이 김박스는 문진을 계속했다.
"분명 요즘에도 핫한 걸그룹 신곡들은 많이 듣고 있음에도, 본인의 노래방 선곡 업데이트는 이미 8년 전에 끊긴 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분명 젊고 어린 여자들과도 말이 잘 통한다고 했으면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 여직원들과의 대화가 20대 초반 여직원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애시당초 여자를 만나는 루트 자체가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 또는 유흥업소가 대부분이라는 사실 자체가 상당히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일련의 미투 사태들을 보면서 묘한 공포를 느낀 경험이 있습니까"
"'취향이 올드하다' 소리를 듣기 싫어서 과도하게 젊은 친구들의 취향을 의식한다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습니까"
"주변 또래와 다른 삶을 추구하는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에 높은 점수을 주면서도 가끔 현자타임이 오지 않습니까"
"실패한 개그를, 성공한 다른 개그에 대한 기억으로 지우며 애써 부정하지만 분명 그 실패한 순간에 느낀 어떤 소름과 적막, 이후의 억지반응들을 보면서 더 큰 비참함을 느낀 적 없습니까"
…수없는 질문에 드디어 환자는 감은 눈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그리고는 갑자기 큰 소리를 지르며 자기 뺨을 후려치는 자해를 이어갔다.
"맞습니다. 저는 아저씨 맞아요! 맞습니다! 맞다구요! 저는 아재에요 아재! 그것도 철없이 20대들과 놀고 싶은 똥아재요! 나는 아재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지만 사실은 그냥 흔한 아재들보다 더욱 나쁜, 쓰레기 같은 아재 맞다구요!"
환자는 뒤이어 우어어 하는 고함까지 지르고 격렬한 발작을 시작했지만, 김박스 교수의 노련한 손길로 곧바로 입에 투입된 아재용 신경안정제 '우황청심환' 덕분에 그는 다시 매우 안정적으로 본래의 상태로 돌아갔다.
어린 시절 크게 놀랐을 때마다 할머니가 한번 씹은 뒤 입에 넣어주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과 '아 맞어, 이런 것을 먹어본 기억이 있는 한 나는 결코 아재임을 부정할 수 없어' 하는 깊은 회환의 눈물로 그는 그렇게 제 2형 아재증후군에서 드라마틱하게 상태가 호전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요즘 저는 오랜만에 다시 연락한 친구들과 함께 골프, 낚시를 다니며 활기를 되찾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친구 소개로 비슷하게 나이 먹어가는 외로운 처지의 좋은 인연도 만나게 되었구요. 새삼 이 나이에 클럽 다닐라고 테이블 잡고 그랬던 기억들이 비로소 부끄럽게 생각이 듭니다. 이게 다 선생님 덕분 아니겠습니까, 허허"
몇 주 뒤, 이미 웃음소리마저 "허허"로 변한 그의 상태를 보며 김박스 교수는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김박스는 "우선 이번 주까지는 조금 더 낚시, 트로트, 바둑 채널을 보시고, 다음 주부터는 자동차 채널이나 야구 채널을 곁들여 보셔도 됩니다. 지금은 치료 때문에 연배에 비해 다소 과한 약을 쓰고 있는 것이니까요." 하고 구두 처방전을 곁들였다.
환자의 자동차 키에 달려있던 카카오 프렌즈 키링이 어느새 서비스 센터의 순정 70만 포인트 고객대상 증정품 키링으로 바뀐 것을 보며 김박스는 다시 한번 흐뭇한 미소를 짓고는 그렇게 환자를 돌려보냈다.
"다음 환…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어느덧 진료 시간이 끝났음을 깨닫고 김박스 교수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잠시 눈을 비비다가 노트북을 폈다. 그러나 노트북 속 논문 초록, 서론의 내용은 한 단락만 읽어보아도 방금 전의 진료와 전혀 반대되는 매우 파격적인 것이었다.
"…아재증후군 치료에 있어서 현대의 치료법상 그 최선의 방법이 본인의 철저한 반성과 현실 자각에 있음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제 1형 아재군의 희귀 사례 및 제 2형 아재증후군의 일부 사례에서 관찰된 '젊은 감각을 가진, 분명히 정서적인 노화가 느리고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하여 일련의 미래지향적 자아를 가질 수 있는 것으로 예측되는 소수의 케이스'마저도 결국 자아 파괴에 가까운 형태의 자기 반성만으로 접근해야 하는가는 여전히 큰 의문의 여지가 있다.
다수의 케이스에서 그들의 행동발생적 동기가 의외로 심히 불순한 것에 있음이 발견되었으며, 과정상의 과도한 자기애가 추가적인 정서적 불안정을 유발한다손 치더라도, 긍정적이며 지속적인 행동의 강력한 유인요소가 될 수 있다는 사실 역시 부정할 수 없다면 이 지점에 대한 보다 근본적이며 전면적인 재검토의 여지가 있다.
아래 14건의 케이스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된 행동특성은…"
그렇다. 사실 김박스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단지 환자들의 빠른 사회화와 안정적인 치료, 그리고 심평원의 의료수가 이슈 때문에 획일화 된 '자아파괴'라는 방법으로 현재의 아재증후군 환자들을 진료하고는 있지만, 그는 여전히 탈아재에 대한 긍정론적 접근을 검토하고 있다.
언젠가는 자신 같은 못 생기고 센스없는 똥아재들도 총각, 아가씨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고 그들과 즐겁게 어울리며 긍정적이며 행복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으리라는 덧없는 꿈을 꾸고 있기에.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