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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식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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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드시는 것은 '폭력'입니다"

그들의 주장에 절반은 코웃음을 쳤고, 절반은 화를 냈으며, 그 어느 쪽에도 포함되지 않은 극소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채식주의자 식당에 들어가 식물을 먹지 말자면서 소리를 지르고 촬영을 막는 자들에게 "신체접촉 하지 마세요, 카메라 건드리지 마세요" 하며 경고하는 모습은 온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풀떼기만 쳐먹자더니, 한 수십 년 전에 지들 선배들이 한 일 고대로 돌려받네. 꼴 좋다"

극히 일부의 잡식주의자 노인들은 그런 식으로 낄낄대며 통쾌해했지만, 그들의 조롱은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이미 육식은 세상에서 사라진 식성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혐식주의자





2010년대 후반부터 유럽을 시작으로 곧 전 세계에 들불처럼 번진 레디컬 채식주의 운동. 사육 과정에서의 동물학대와 도축에 대한 동물생존권을 기치로 하여 시작된 소수 주장이었지만 생각보다 오래지 않아 그 주장은 힘을 받기 시작했다.

"채식주의는 돈이 됩니다"

인종 및 성별, 동성애 등, 기존의 소셜운동권 세력이 선점한 프레임이 공고해지고 주류의 위치에 올라와 더이상의 신선함을 찾기 어려워짐에 따라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헤메이던 세계의 운동권 단체들이 찾아낸 키워드는 '채식'이었다.

'기존 사회에 충격을 줄 수 있을 정도의 센세이셔널함, 왠지 모를 진보적 이미지, 소수자 위치이기는 하나 적당히 힘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는 깔려있는 저변, 동물생존권 및 동물학대 등 적당히 그럴싸한 명분, 대기업이나 부자들에 대한 저항자적 포지션, 기존 소셜 운동권 세력과의 연대가 가능한 정치적 호환성' 등, 완벽하게 그들이 추구하던 키워드 그 자체였다.

"정말 왜 이런 키워드를 이제까지 놀려두고 있었는지 모르겠다니까, 퍼펙트해"

게다가 타이밍도 좋았다. 지지세력을 얻기 위한 세계적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윤리가 아닌 경제적 이유에서.

"우리도 고기를 먹게 해달라"

전세계 인류가 90억을 돌파한 것은 물론, 중국 및 인도 등 전통적 인구대국의 경제력이 상승함에 따라 세계의 육류 소비량 역시 엄청난 속도로 늘어났다. 그러나 한 마리의 소를 키우는데 들어가는 직접적, 사회적 비용은 결코 작지 아니한 것이었고, 그 많은 수요는 공급이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수준이었다. 서서히 오르기 시작한 세계 육류시장의 물가 머지않아 폭발적인 수준으로 상승했고 어느새 서민들은 소, 돼지는 물론이요 닭조차 좀처럼 먹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부자만을 위한 고기, 꺼져라!"

식량공급의 위기가 도래하자 정치인들은 부단한 수를 썼지만, 애시당초 수요공급의 문제를 정치가 해결할 수는 없는 법. 수많은 부작용만을 발생시킨 채 결국 그들은 채식주의 운동을 해결사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소 한 마리를 키우기 위해 소비되는 물자가 얼마인지 아십니까?"
"우리 꿀꿀이, 꽥꽥이, 음메음메를 지켜주세요"
"여러분이 먹는 것은 폭력입니다!"

일부 소수자들의 사상, 소셜 소수자들의 레디컬 운동이던 채식주의가 어느새 사회적 교양운동이 되고 세력화가 되었으며 곧 정부의 정책이 되었다. 그런 급격한 변화에 기존 육류 소비자들은 당황하며 반박을 시도했지만 '기득권', '변화를 거부하는 꼴통'으로의 프레임이 씌워졌다.

"캬, 뜨신 흰 쌀밥에 말이야 고깃기름 자글자글 흐르는 구운 스팸 이렇게 딱 얹어서 계란후라이랑 뜨악 캬~"
"저기요, 죄송한데 채식주의자 앞에서 그런 말 하시는거 식희롱인거 아시나요?"
"뭐? 아니 무슨, 이건 그냥 내 취향이고 내 개인적인 취향인데"
"그걸 입 밖으로 내는게 문제라구요"
"아니 무슨 미친"
"미친건 그쪽이구요"

사회적인 오랜 통념을 깨는 것에는 분명히 많은 저항이 있었다. 그러나 그 주장에는 생각보다 적지 않은 힘이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유난히 까탈스러운 사람들의 정신나간 헛지랄"이었고, 누군가에게는 "그동안 인지하지도 못했던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 필요한 끔찍한 사회적 폭력"이었다.



"물론 일부 사육장 환경이 매우 열악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네, 인정하셨고요. 소나 돼지의 축사 때문에 오염되는 환경비용이 얼마인지는 아십니까?"

'아니 상식적으로…'하는 식의 일반론을 들고 어설프게 비거니즘에 저항한 이들은 곧 처참한 패배와 손가락질을 마주해야 했다. '불편의 시선'으로 보노라면 이미 그동안의 육식이 저지른 죄악(?) 자체가 결코 적지 않았으니까. A.I에 대한 로봇인권이 서서히 거론되는 시기에 동물들의 목숨은 분명히 쉽게 묵과하기 어려운 가치였다. 게다가 백년 전의 인종 이슈까지 예시에 섞여들자 더이상 육식은 공적인 자리에서 대놓고 말하기 어려운 위치에 이르렀다.

"시청자 여러분, 지금으로부터 약 백여년 전 우리의 선조들은 아프리칸 어메리칸들을 돈을 주고 사고 팔았으며 그들의 목숨값을 자산가치로 매겼습니다. 우리와 같은 존재로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소비하고 소모해야 할 자원으로만 따졌을 뿐입니다. 우리와 똑같이 심장이 뛰고, 생각을 하며,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들을 말입니다. 우리는 그런 선조들의 사상을 잘못된 것으로 가르치고 반성해왔습니다. 자 이제 우리를 돌아봅시다. 지금 우리는 동물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습니까? …이상입니다"

몇몇 진보적 성향의 정당과 단체들이 비거니즘을 주요한 가치로 내세웠고 이후 오랜 싸움 끝에 드디어 꽤 큰 목소리로 받아들여 지게 되었다. 곧 여야를 막론한 주요 정치인들, 사회적 명망 있는 이들이 비거니즘 지원을 주장하고 그들을 위한 사회적 배려와 지원이 이어졌다. 청소년 급식이나 군대 메뉴에서도 채식이 주류가 되었다.

"한정된 자원 안에서, 잡식 메뉴와 채식 메뉴를 따로 준비하기가 쉽지 않아요. 비용적으로도 그렇고 시간적으로도 그렇고. 결국 그럼 못 먹는 사람이 있는 메뉴를 버리는게 현실적이죠. 우리 학교도 채식주의 식단만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일부 지식인들과 여전히 육류를 원하는 이들은 '채식의 위험성'과 '육류 선택의 자유'를 주장하며 싸웠지만 이미 대세는 넘어간지 오래였다. 애시당초 환경오염과 가격폭등을 이유로 선진국 및 중진국 서민들의 육류 소비가 2000년대의 1/10 수준으로 줄어든 상황에서 더이상 육류에 대한 옹호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많지 않았다.

소비의 경험이 사라지자 입맛 역시 변했고, 정책 및 사상, 교육이 가미된 사회적 입맛의 변화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중진국, 후진국으로 이어져 결국 전체 수요의 감소로 이어졌다. 취향의 변화는 단기적 수요 감소 그 이상의 힘을 갖고 있었다. 결국 사람들은 서서히 육류 소비를 줄이다 못해 터부시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수십 년이 흘렀다.




"아니 그럼 채식을 안 하면 뭘 먹고 살라는건데?"

채식주의자들의 분노에 대해 혐식주의자들은 "인공합성 사료"를 대안으로 내밀었다. 식물의 희생이 없는, 순수 인공단백질과 무기질 합성체로 제조된 '인간 사료'는 이미 소수자들의 훌륭한 대안이었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아주세요. 우리가 식물의 잎사귀나 줄기를 꺾을 때 식물에서는 강력한 경계 호로몬이 발산되고 분명한 전기적 신호와 충격이 줄기와 뿌리, 잎파리까지 전달됩니다. 그리고 제발 < 잎, 줄기, 뿌리 그리고 삶 > 이 책을 보아주세요!"

혐식주의자들이 채식주의 식당에 함부러 쳐들어가 소리를 지르고 시위 영상을 온라인에 올리는 이들을 향해 네티즌들은 많은 분노와 코웃음을 표풀했다.

[ 저거 주장한 사람 트윗스타북에 들어가보니까 한 3개월 전 쯤에 '아 당근쥬스 너무 맛있다' 써놓은 내용있던데? ]
[ 맛없는 합성사료는 지들이나 쳐먹으라고 해. 아 고사리 살살 녹는다 ]
[ 응 오늘 밤은 새싹무침비빔밥, 어린 새싹 개꿀맛 완전 조타 ]
[ 저거 영업방해 아님? ]
[ 거대 팜과 플랜트에서는 하지도 못하면서, 꼭 저런 영세한 식당 들어가서 저 난리더라 ]
[ 님? 님님? 님들 작년에 비빔밥 스까묵은 사진 개털림요ㅋㅋㅋㅋ 얼른 사진 내려요ㅋㅋㅋ ]

혐식주의자들의 주장을 사람들은 그저 황당하다는 듯 조롱과 비아냥으로 흘러 넘겼지만, 그들은 진지했다.

[ 역사상 단 한번도 조롱이 진실된 주장을 이긴 적은 없습니다. 우리는 식물생존권을 주장합니다 ]
[ 제가 그때 먹은 당근쥬스는 당근 원액주스가 아니라 '당근향 쥬스'였고, 비빔밥이 아니라 비빔맛밥입니다. 물론 그것도 이제는 먹지 않고 있구요 ]
[ 제발 제 작은 티끌이 아니라, 제가 말하는 목소리에 집중해주세요. 식물도 우리의 친구입니다 ]

물론 그들의 '진지함'은 '순진함'과는 또 별개였지만.

"아니 정부에서 비거니즘에 40조를 지원하면 뭐하냐고. 그거 다 지들 카르텔에만 지원되는데. 그리고 다들 지들끼리 인맥이잖아. 새로운 먹거리 찾아야지"
"근데 나 정말 앞으로 채식 안 하고 살 수 있을까? 월급날에 쟁반 샐러드 안 먹고 어떻게 버팀? 해초무침은? 아 진짜"
"야, 요즘에 초무침 맛 합성사료 나온거 몰라? 과일맛도 종류별로 다 있어. 걍 뿌려 먹어"
"아 그래? 좋아 그럼"
"원영이 선배, 지금 행복당에 있잖아. 연락해볼까?"
"이건 기회야. 우리가 선점해야 된다고"
"오케이!"
"더이상 언니들이 허용한 혐식주의는 없어. 이제 우리들의 시대야"
"응!"

…그들의 운동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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