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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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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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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고가의 현대미술 작품에 관한 기사가 이슈가 되면 의례 비판적인, 아니 그것을 넘어 거의 비아냥 수준의 댓글들이 뒤따른다. 

척 보아도 아름답다, 멋지다, 어떻게 그렸을까, 어떻게 깎았을까 같은 감탄이 흘러나오는 고전 미술과 달리 이게 뭘 말하고 싶은지조차 이해가 쉽지 않은 불친절한 현대미술이 문외한들에게 쉽게 이해 받기란 당연히 어려울 것이다. 애시당초 미술품이라는 것이 정량적인 가치 평가가 어려운 것이다보니 가끔 전문가들마저 속아 넘어가는 도발이나 미술적 실험에 의해 더욱 더 그러한 비판의 목소리는 설득력마저 얻는다.

그러나 관점을 살짝 다르게 접근해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현대미술은 눈속임이야, 장난이야, 허세질이야"라고 비판하는 네티즌의 삶 속으로 들어가보자.

오늘도 그는 인터넷의 수많은 글들을 읽으며 분노하고 낄낄댄다. 고가의 현대 미술품을 보며 "저거는 나도 만들겠네" 하며 혀를 찬다. 그리고는 즐겨 방문하는 유머 사이트에 접속한다. 조금 눈팅을 하노라니 요즘 한창 이슈가 된 한 인터넷 밈(meme)을 활용한 드립에 빵 터졌다. 방청소를 하러 들어왔던 엄마가 묻는다.

"뭐가 그렇게 웃기냐? 엄마도 같이 좀 웃자"

함께 웃고 싶긴 한데 설명이 어렵다. 이 밈을 설명하자니 그 밈이 형성되기까지의 흐름을 모조리 설명해야 할 판이다. 내가 즐겨하던 게임에 이런 캐릭터가 나오는데, 이 캐릭터의 명대사가 이거고, 이걸 이용해서 누군가가 인터넷에 꾸준글을 써왔는데 그걸 또 다른 누군가가 절묘하게 활용한 드립을 쳐서 대박이 된데다 이제는 전혀 다른 맥락과 상황에서 그 드립이 활용된다, 라는 것을 설명하기도 번거롭고 그걸 설명한다고 해봐야 그 전후 맥락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숙련이 없는 엄마가 웃을 성 싶지도 않다. 실제로 몇 번 비슷한 사례를 장황하게 설명하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그게 뭐 웃기다고" 하는 시큰둥한 반응만 얻었다. 

"아 엄마는 몰라도 돼. 어차피 설명해도 몰라"

엄마는 입을 삐쭉 대밀며 "그게 뭐 재밌는거라고" 하며 혀를 차며 문 밖으로 나선다. 그 말에 울컥한 그는 "뭘 모르니까 재미가 없지" 하고 닫힌 문 뒤로 중얼거린다. 그리고 마침 생각난 김에 그 밈의 유래가 된 게임의 후속작을 켠다. 마침 엊그제 출시해서 곧바로 질렀다. 

…아마 방금 전 상황과 대사를, 조금 전 그가 비판했던 미술품의 작가와 미술 전문가가 보고 들었다면 "그래! 그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고전 미술에서 현대 미술로 넘어가면서, 수많은 작가들의 실험과 도전, 그리고 어떠한 분명한 경향성에 대한 도전과 참신한 아이디어에 대한 맥락적 이해가 없이 감흥이 있을 리 없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에 대한 새삼스러운 해설이다. 또한 이것은 세상 모든 '프리미엄'에 대한 존중이고 접근의 기본방식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는 똑같은 그저 "비싼 한끼 식사"일 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치열한 고민 끝에 완성된 완벽한 맛의 성찬을 멋진 공간에서 기분좋게 접하는 시간"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비싼 천 쪼가리"가 누군가에게는 "누구나 생각했지만 그 이전의 누구도 감히 접근하지 못했던 색다른 감각적 도전"이기도 한 것이다. 

식재료의 선택과 조리법, 색다른 재료와의 조합, 코스에서의 순서, 플레이팅에 대한 예술적 고민, 기존의 틀에 대한 비틀기 등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접근이 가능하다면 파인다이닝에서의 식사도 마치 게임의 챕터 리뷰하듯 즐겁게 접근이 가능할 것이며, 사실 그 모든 것에 대한 이해가 없다 한들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만 있어도 "비싸빠졌네"보다는 "맛있다" 라는 순수한 평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세상 모든 감흥도 결국 '어쨌든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는 생각에 모처럼 살짝 열어가던 마음의 문을 굳게 걸어잠그기도  하지만, 그러한 거리감을 그저 삐딱한 심보의 탈을 쓰고 욕하기에 앞서서 "왜 누군가들은 그것에 그리도 열광을 할까" 하는 최소한의 존중을 갖춘다면 훨씬 더 나은 교양과 이해의 폭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게임과 만화 보는게 뭐 그리 나쁜 거라고 그렇게들 나쁘게만 보시나요?" 라고 울먹이며 항변하면서도, 현대 미술과 패션, 해외여행, 순문학 등 또다른 취미-문화에 대해 몰이해와 조롱, 비난을 미친듯이 쏟아내는 '어린 꼰대'들은 한번쯤 스스로의 모습들을 뒤돌아 볼 필요가 있다. 이 글을 읽느 모든 이의 연인, 배우자, 가족, 친구의 취미와 문화생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고. 나 역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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