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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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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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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적 꽤 똘똘한 아이였다. 제법, 상당히. '그때 그 시절'에 교장 선생님을 통해 영재교육을 권장 받을 정도였고, 교육열이 꽤 치열한 동네에서 성장했음에도, 학원 한번 다닌 적 없이 언제나 전교권에서 놀던 우수한 수재였다.

"그냥 수업만 들으면 되는데"

재수 없는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당시의 나는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면 정말로 '왜 학교 수업을 듣는데 성적이 그 모양일까'를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생전에 시험공부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었음에도, 기껏해야 시험 당일 아침에 10분 남짓 교과서 훑어보는 것이 내 시험공부의 전부였다. 그럼에도 성적은 언제나 전교 최우수권.

"아하하하!"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영 잼병인 아이였다. '요즘 수재'들과 달리 그 시절의 어린 수재들이 의례 그랬듯이 난 운동도 못하고 생긴 것도 그저 통통한 것이 딱 전형적인 '공부 잘하게 생긴 놈'이었고, 체육시간은 언제나 떨리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물론 그것은 망신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바람에 의한 떨림. 물론 안타깝게도 그런 바람은 이뤄진 적이 없고 누군가가 자신의 멋짐을 마음껏 뽐내는 순간에 나는 짝사랑 하던 여자아이 앞에서 망신이나 당하지 않았으면 하며 누군가에게 들릴 리 없는 소원을 빌 뿐이었다. 그게 무려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아 진짜 웃기다"
"괜찮아? 안 다쳤어?"
"넌 어떻게 거기서 그렇게 넘어지냐"
"드응신"

'나는 똑똑하고 잘난 놈'이라는 자부심에 걸맞지 않는 스스로의 참담한 모습에 나는 두 배, 세 배로 상처를 받곤 했다. 둔한 운동신경에 대한 아쉬움은 곧 일종의 컴플렉스로 발전했고, 누군들 안 그렇겠냐마는 특히 나는 남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노출하는 것에 대해 매우 민감한 아이가 되었다.

"저를 반장으로 뽑아주시면, 이 반을 전교 최고의 학급으로 만들겠습니다!"

다만 그런 아이들이 보통 소극적인 성격으로 자라나는 것과 달리, 나는 '나에 대한 자존감'이 미치도록 대단했던 아이였다. 항상 '나같이 우수한 사람은 다른 평범한 아이들을 이끌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내 능력에 대한 책임이다' 같은 근거 없는 내 안의 엘리트주의에 의해 매년 반장선거에 출마하곤 했다. 매번 아쉽게 몇 표 차이로 반장선거에서는 곧잘 탈락했지만, '반장선거에 출마한 아이'는 언제나 교사의 주목을 받기 마련이고 거기에 학업성적까지 우수했으니 당연히 내 학교생활은 언제나 탄탄대로였다.

"이번에도 또 최우수상이구나"

매달 상장을 몇 개씩 타왔고, 학교 대표의 경시대회에 나가서도 종종 상을 타왔으며 그 종목들은 백일장과 수학 올림피아드, 사생대회 등 과목을 가리지 않았다. 그러니 더욱 더 내 안의 엘리트주의는 커져갔고, 그러한 성적과 반비례하는 부족한 '운동신경과 운'은 나를 곧잘 괴로운 상황에 빠뜨리곤 했다.

"넌 진짜 재수도 없다"

살다보면 유독 그런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걷는데 꼭 혼자만 개똥을 밟는다거나, 다같이 뭘 사도 혼자 꼭 불량품에 당첨된다던가 갑자기 문이 확 열려서 괜히 다친다거나, 무언가의 오물을 혼자 뒤집어 쓴다거나 하는 류의, 그냥 순전히 '남들보다 유달리 운이 좋지 않은 아이'. 뭐, 그러한 '재수없는 놈' 기믹이 '공부만 잘하는 놈'에 대한 묘한 시샘을 감쇄해주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만큼 매번 '쪽팔림'에 대한 상처는 배로 더 커지곤 했다.

"넌 진짜 대가리와 운동신경을 딱 반비례한 거 같다"
"차가 똥물을 튀긴 것도 운동신경 문제냐?"
"피하면 되지. 니가 둔해서 못한거지"
"아 꺼져"

내 안의 방어기제라고 해야할까. 나는 그러한 자괴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우수한 인재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에 비례한 시련을 수도 없이 겪는 것이다. 위인전 속 인물 중에 어디 한평생 편히 영웅이 된 인물이 하나라도 있던가. 언젠가 큰 시련을 이겨내기 위해 이러한 작고 작은 시련들을 끝없이 겪음으로서 단련하게 되는 것이다' 라는 이론으로 내가 겪는 그러한 일들을 신념으로 극복해내곤 했다.

"시발"

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여자아이들'에 대한 시선을 더욱 의식하게 된 순간부터는 그 괴로움은 전과 비할 수 없이 커지게 되었다. 종교색이 거의 없던 우리 집안의 특성답게 나 역시도 신 따위는 믿지 않았지만 그 어느 날 달리기에서 넘어지며 여자들 앞에서 망신을 당했던 날 나는 진심으로 기원했다. 정말 진심으로.

"위대한 영웅이고 나발이고 간에, 그냥 별 볼일 없는 찌질이로 살아도 되니까, 공부 좀 못해도 되니까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망신 같은거 안 당하고 그냥 그렇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진짜. 예수든 부처든 누구라도 좋으니까 제발 좀! 나에게도 '평범한 행복'을 누리게 살게 해달라고!"




그 소원이 곧바로 이루어질 리 없건만, 그렇다고 정말 효과가 아예 없던 것도 아니였다. '행복'은 몰라도 '성적'은 확실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중학교를 진학하면서 잠깐 휘청했던 집안 사정에 의해 멘탈이 흔들렸던 나의 성적은 꽤 폭락했다.

"전교 2등으로 들어온 놈이 성적이 이게 뭐야. 집에 무슨 일 있기라도 한거야?"

한번 하강을 시작한 성적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애초에 나는 정석적인 시험공부를 하는 방법도 몰랐고 여전히 하지도 않았다. 그저 좋아하는 수업만 반짝 집중할 따름이었고 덕분에 국어와 역사 시험만 다행히 성적이 좋았다.

"너가 이 반에서 혼자 100점이더라. 너가 국어부장 해"
"뭐하는건데요"
"수업 전에 궤도 걸어놓고, 뭐 칠판 지워놓고. 시험보면 채점 도와주고"
"꼭 해야되는거에요?"
"넌 얌전하게 생긴 애가 은근 꼬박꼬박 말대꾸 잘한다? 대신에 가끔 맛있는 간식 줄게. 때되면 편지 카드도 써주고"
"오 할래요"

프로야구 선수를 남동생으로 둔 20대 중후반의 예쁜 여자 국어선생님 덕분이었다. 섹시한 사회 선생님은 가슴이 어마어마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동기부여만 제대로 되었더라도 분명 내 성적은 어느 시점에서 다시 회복할 수 있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입학시험 당시 전교 2등이었던 나는 중학교 3학년 마지막 시험에서 무려 '반에서 27등'을 하고야 만다. 한 학급에 40명 중후반대를 넘나들던 시기이니 그 정도면 평균에 못미치는 성적이었다. 그 이전의 나를 알던 사람들은 기겁할 성적이었다. 또, '학급 임원이 되면 돈이 든다' 라는 사실을 언젠가 엄마의 한숨소리로 깨닫게 된 이래 나는 반장선거 출마는 눈꼽만큼도 고려하지 않았다.

"야, 너도 같이 갈래?"
"어딜?"
"노래방. 여자애들도 간대"

그러나 그런 만큼 나의 인생도 서서히 '보통 사람의 행복'을 찾기 시작했다. 성적이 급하락하자 걱정이 되어 부모님이 부랴부래 보낸 학원에서는 연애를 시작하는가 하면, 2차 성징과 함께 체력도 제법 좋아져 더이상은 '체육수업이 두려운 일'은 사라졌다. 뭐 그렇다고 해도 딱히 운동을 잘하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더이상 망신당할 정도는 아니였다. 평범한 아이였다.



"너 진짜 장난 아닌데?"

소원은 이루어졌다. 조금 과할 정도로.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래 나의 성적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국어와 사회 계열 과목만큼은 모의고사에서도 1등급을 유지하여 체면치례를 했지만, 그 외의 과목은 처참할 지경이었다. 심지어 수학은 17점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집안사정도 그와 반비례 해서 좋아지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나에게는 '여자'가 있었으니까.

"누나가 더 대박인데"

방학 중 아르바이트 하던 가게에서 만난 연상의 누나와 사귀게 된 나는, 미성년자와 성인의 벽을 넘어 모텔과 누나의 자취방을 오가며 '어른의 세계'를 탐닉했다. 그리고 내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운동신경과 침대에서의 그것은 생각보다 별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렇게 자부심을 갖고 살게 된다. 뭐, 케바케이긴 하지만.

본격적인 2차성징을 맞이하여 살이 쪼옥 빠지고 엄연한 한 마리의 수컷으로 거듭난 나는 결국 그 이래로 소위 '지잡대'에 입학하며 '엘리트의 삶'과 맞바꾼 또 다른 행복을 누리게 된다.

내 인생에는 항상 여자들이 넘쳐났다. 그렇다고 무슨 매번 뼈와 살이 불타는 그런 뜨거운 밤을 보낸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항상 외롭지는 않았다. 이성적으로는. 내 주변에는 여자친구와 여자인 친구가 있었고, 여자 사람 친구는 항상 남자인 친구들보다 많았다. 남자인 친구들과는 다른, 존재 자체로 묘한 성적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그녀들은 그렇지 않았더라도- 그들과의 소소한 인연들은 항상 즐거웠다.

"오빠 주변에는 여자가 너무 많아. 그래, 오빠가 바람을 막 피우고 그런 사람이 아닌건 아는데, 그래도 불안함은 어쩔 수 없다고"

그것에 힘들어 한 여자친구가 날 떠나가도 곧 머지않아 또다른 인연이 그 허전함을 달래주었다. 그리 대단한 외모도, 천하의 달변가도, 어마어마한 갑부도 아니었음에도 그렇게 항상 주변에는 여자들이 많았고 친구들은 그런 나를 보며 곧잘 부러워 하곤 했다. '운 좋은 놈'이라고 부르며.



"오빠는 꿈이 뭐야?"

사회에 나와서도 나는 막연히 행복했다. 어린 시절 생각했던 나에 대한 확신이 막연했듯, 성장한 이후의 행복도 그저 막연했다. 그만큼 '위대한 영웅의 길'에서는 더욱 멀어졌다. 언젠가 사귀었던 누군가의 질문. 그리고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한 나. 물론 무언가 막연하고 거대한 무엇은 있었지만 끝내 명확하게 그림을 그리지 못한 그 무엇.

"너는?"

나는 생각 끝에 답변 대신 질문을 던졌고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나도 잘 모르겠어" 한 그녀. 그리고 머지않아 떠난 그녀. 역시나 또 머지 않아 그 자리를 메운 또 다른 여자, 그리고 그 다음의 여자. 다음의 여자. 이번에야말로 미래를 함께 할 사람이라 생각한 그 다음의 여자친구. 그리고 그 다음의 진짜 미래를 꿈꿀 여자친구.

"이번에 새로 오신…"

수많은 인연들을 거친 덕분일까. 나는 꽤 훌륭한 가면을 쓸 줄 알았다. 어떻게든 면접까지만 가면, 특히나 여자 면접관을 만나면 나는 높은 확률로 입사에 성공했다. 아니 사실 이제껏 여자 면접관들과 진행된 모든 면접에서 나는 합격했다. 덕분에 내 하찮은 스펙에 비해 그럭저럭 좋은 회사들도 많이 거쳤다. 그러나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 안에서 오래 있지는 못했다. 언젠가의 면접자리에서 나를 보며 면접관이 "하하, 우리 업계의 명멸이 이 분 이력서에 고대로 다 나와있네" 하며 웃었을 정도로 화려하면서도 씁쓸한 이력으로 가득찬 그런 기록들. 그런 면에서는 '운'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애기 이쁘지?"
"오. 두 딸이 다 너 안 닮아서 다행이네. 니 닮았으면 진짜 아"

둘째를 낳은 친구가 사진으로 보여주며 팔불출 짓을 한다. 나는 피식 웃으며 농담을 던졌고, 친구는 "넌 장가 언제 가냐? 니 그 여친 만난지 꽤 됐잖아?" 하고 묻는다. 나는 이번에도 대답을 슬그머니 피하면서 "애 키우는거는 안 힘드냐?" 하고 묻는다.

"야, 말도 마라. 죽겠다. 넌 절대 장가가지 마라. 만에 하나 가더라도 애는 절대 낳지 말고. 진짜 조혼나 힘들어. 뒈질거 같다"
"그러면서도 넌 둘째까지 낳았잖아"
"그러니까 낳지 말라고. 야 혼자가 좋아. 아예 장가를 가지마"
"1분 전까지 애 자랑하던 놈이"

언제부터인가 '보통의 삶'도 나에게는 꿈처럼 느껴진다. 평범한 결혼, 평범한 육아, 그 나이 때 의례 그러기 마련인 그런 평범한 삶. 마음 먹고 한다면야 아예 못할 일은 아니겠지만 그 '마음 먹고'가 힘들고, 이런저런 세세한 계산들이 그 결심을 막는다. 무엇보다 애를 낳기는 부담이 된다. 잘 키울 자신도 없고.



결국 어느새 떠밀려 온 중소기업 직장에서는 일에 치인다. 하지만 어느새 완벽한 사회인의 가면을 쓰게 된 나는 그 누구보다 둥글둥글하게 웃으며 훌륭하게 업무를 짬시키고 조율하며 떠넘기고, 티가 나는 일들은 그 누구보다 완벽하게 소화한다. 결국 어설프게 나를 엿먹이던 팀장을 부하로 부리게 되는 직급 역전을 이뤄내기까지 한다. 다른 부서의 상급자 하나가 그 상황을 축하하며 나에게 말한다. 모르고 보면 곰인데, 알고보면 이런 여우도 없다고. 자기가 본 최고의 '삶의 고수'라고 나를 평가한다.

그리고 문득 떠올린다. '평범한 삶'을 포기하니 다시 조금씩, 아주 미력하지만 어떤 막연한 성공의 길로 다시 접어들 기회가 다시 보이는 것이 아닐까 하고.

그렇게 피식 웃는다. 어린 시절 '나는 장차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이라서 이런 재수없음의 시련을 겪는 것'이라고 자기합리화를 하던 놈이, 커서는 '내가 남들처럼 평범하게 장가가고 애 낳고 하지 못하는 것은 내 인생의 진정한 성공을 위해서'라고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다고. 어쩌면 그리도 초등학생 시절에서 한 발자국도 못 나갔느냐고.

하지만 그렇기에 또 한번 다시 그때 그 마음처럼 간절히 빌어본다.

"남들 눈에 추하고 더럽게 보여도 상관없고, 욕을 먹고 비난 받아도 상관없으니… 부디 성공하게 해주세요. 애 안 낳아도 좋고, 결혼식 같은거 안 해도 좋아요. 그냥 평생 같이 할 사람 하나만 옆에 있으면 나는 그걸로 충분하니까. 뭐 아직 그리 늦은 나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나보다 더 나이 먹고도 뒤늦게 성공한 위인들 많으니까. 부처든 예수든 알라든 뭣이든간에, 그 누구든간에 상관없으니 나 좀 성공하게 해주세요. 제발,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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