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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 저 너머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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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와 같은 아침, 나는 출근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포털의 뉴스를 보며 스윽 하루의 이슈를 훑는다. 다이나믹 코리아답게 '대충 보자' 라고 생각했음에도 도저히 클릭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쇼킹한 뉴스들이 몇 개씩이나 있다. 그것도 매일매일. 정말 대단한 나라다.

"와 이건 뭐…"

진짜 미친거 아닌가 싶은 뉴스 몇 개를 클릭하며 다이어리에 오늘의 이슈 몇 개를 적어놓는다. 회사의 SNS 담당자로서, 이렇게 하루하루의 이슈를 정리해놓으면 나중에 생각보다 꽤 도움이 된다. 이슈 중심의 아이디어 짜내기도 쉽고, 써먹기 좋은 드립도 쉽게 나오고.

당연히 댓글도 본다. 기사를 죽 보면서는 생각치도 못했던 문제나 색다른 방향에서의 접근도 많고 때로는 기사 보며 답답했던 내용에 대한 신랄한 사이다 같은 속풀이 댓글도 많으니까. 물론 안 보느니 못한 쓰레기 댓글도 많지만.

"응?"

근데 못보던 기능이 생겼다.

"작성자 프로필?"

닉네임 옆에 작게 그려진 초상화 아이콘에 마우스를 가져다대자 '작성자 프로필'이라는 문구가 뜬다. 뭔가 싶어 클릭하니…

[ Glassgun : 한승원, 42세,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84-5 (대치동) 디오하우스 402호, 액티브원(IT보안, 과장) 재직 중, 연봉 4400만원(세전), 기혼(임경아), 자녀 없음, 신장 176cm, 체중 74kg, 한국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 (기타 정보)]

같은 개인 프로필 내용이 다 보인다. 순간 기가 막혀서 마시고 있던 커피를 뿜었다. 당황하며 휴지로 책상을 닦아내고 다시 확인했다.

"뭐야 이거, 레이버 이 새끼들 미쳤나? 신상정보인데 이거. 법적으로 문제 있는거 아닌가?"

이토록 적나라하게 한 개인의 신상정보를 보는 기능을 만들다니. 심지어 밑줄이 그어진 링크를 타고 가면 그 회사나 배우자의 신상 역시도 그대로 보여졌다.

[ kalim0412h : 임경아, 39세,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84-5 (대치동) 디오하우스 402호, 열림출판사(출판사, 과장) 재직 중, 연봉 3700만원(세전), 기혼(한승원), 자녀 없음, 신장 167cm, 체중 56kg, 단원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기타 정보)]

"이거 뭐지 진짜, 근데 레이버 이 새끼들이 연봉 정보는 어떻게 알았대. 키랑 체중은? 이거 본인이 입력하는건가?"

그때였다. 혼자 기가 막혀하며 중얼중얼 대자, 옆 자리의 제아 주임이 "대리님 뭘 그렇게 혼자 중얼중얼 거리세요" 하며 웃는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아니 레이버 이 놈들 미쳤나봐요" 하고 제아 주임에게 말했다.

"아니 레이버 지금 뉴스 댓글창에, 아이디 옆에 작성자 프로필이라는 버튼 누르면, 그 사람 신상정보가 다 보이는 미친 기능이 생겼네? 이거 완전 난리 날 거 같은데?"
"네에?"

제아 주임은 기가 막혀하며 내 모니터를 흘낏 보다가 다시 자기 키보드를 다다다 타이핑 한다. 나는 혀를 차며 다른 사람들의 프로필들을 훑어봤다. 하… 다들 이렇게나 사는구나, 와 이 사람은 연봉이 3억이 넘네, 오, 박사 학위자네? 하면서 하면서 보고 있노라니 제아 주임이 다시 말을 건다.

"대리님, 어떤 거에요? 안 보이는데"

나는 가르쳐 주려고 일어나 제아 주임 자리로 갔다. 스크롤을 내리고 댓글 아이디 옆의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이거요. 완전 미친거 같지 않아요?"

하지만 나의 말에 제아 주임은 "뭐가요?" 하고 되물었다. 나는 모니터를 가리키며 "이거요 이거, 여기 연봉, 주소, 나이, 뭐 신상 다 보이잖아요" 하고 피식 웃으며 말했지만 제아 주임은 "네?" 하고 그저 되묻는다. 나는 답답함에 "이거요 이거" 하며 모니터의 프로필 박스 영역을 손가락으로 짚었지만 여전히 그녀는 무슨 헛소리 하느냐는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 본다.

"응?"

일단 옆 자리의 태민 과장님한테 말을 걸었다.

"과장님 이거 좀 보세요"

저혈압인지 아침마다 기분이 영 다운되어 있는 그는 "뭐가" 하면서 고개를 돌린다.

"이거요, 프로필 써있는 박스요"

과장님은 "뭐? 광고? 이거?" 하며 엉뚱한 소리를 한다. 아니 이 사람들이 지금 나를 놀리나 싶어서 "이거 이거요 이거. 프로필 기능" 하면서 손톱으로 찍는다. 그러나 여전히 무슨 헛소리냐는 식으로 못 알아먹다가 "아 뭐냐고" 하며 짜증까지 부린다. 제아 주임도 "뭐에요, 재미없어" 하면서 나를 실없는 사람 취급한다.

나는 코웃음을 치며 자리로 돌아온다. 뭐야 시발. 눈깔이 삐었나. 기분마저 나빠졌다. 짜증나서 혀를 끌끌차며 자리로 돌아와 업무를 시작한다. 회사 페이크북 계정에 접속한다.

"어?"

놀랍게도, 회사 페이크북 계정의 댓글을 남긴 고객의 이름 옆에도 프로필 기능이 달려 있었다. 방금전 레이버의 그것과 같은 UI의. 클릭을 해보니 이것 역시 개인의 신상 정보를 그대로 담고 있는 말도 안되는 기능이었다.

'뭐지'

전혀 다른 두 회사에 이런 동일한 UI의 동일한, 그것도 어떻게 보아도 법적으로 문제 있는 기능이 동시에 들어간다는건 말이 안된다. 내가 지금 뭐 헛거를 보고 있나, 꿈인가, 싶어 눈도 비벼보고 꿈에서 깨어자 하며 번쩍 눈을 떠보기도 하지만 그대로다. 이건 꿈이 아니다.

"해킹인가"

아 망할. 뭔가 애드온 형식의 랜섬웨어나 바이러스 툴 같은게 깔려서 보이는건가. 그걸 또 좋다고 이것저것 클릭해댔으니. 병신. 이상한 뭔가에 감염되었나 싶어 나는 재빨리 바이러스 검사부터 돌렸다. 하지만 간이검사 결과에는 뭐 뜨는게 없었다. 하긴 이미 감염됐으면 소용 없겠지. 아니 애초에 이런 듣도보도 못한 미친 툴이 깔렸다면 업데이트도 안 한지 오래된 이 회사 똥컴 백신 따위에 체크될 리가 없지. IT 일을 맡고 있는 재원씨에게 전화했다.

"재원씨, 나 컴퓨터가 좀 이상한데… 어어, 아니, 사이트의 유저 정보나 뭐 댓글창 이런게 보면, 그 유저에 대한 신상정보가 고스란히 노출되는 이상한 현상이 보이거든? 응, 뭐 랜섬웨어나 이런거 아닌가 싶어서. 잠깐만 와서 봐줘, 어어"

전화를 끊자, 옆에 있던 제아 주임이 피식 웃으며 말한다.

"아 대리님, 진짜, 재미도 없는 장난 왤케 오래 쳐요"
"장난 아닌데, 내 자리에서 보세요 그럼"

나는 다시 모니터를 가리켰지만, 제아 주임은 내 모니터를 보고서도 말한다. "너무 진지하길래 또 속았네, 아 보이긴 뭐가 보여요!" 하며 웃는다. 그리고 나는 그제서야 지금 좀 상황이 이상함을 느낀다. 제아 주임도, 태민 과장님도 장난이 아니다. 나만 보인다. 잠시 후 온 재원씨도 "뭐 말씀하시는거에요?" 하며 당황한다. 제아 주임이 "아 대리님이 장난친 거에요. 미안해요" 하며 그를 돌려보낸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다시 자리에 앉는다. 그런데 지금도, 내 눈에는 개개인의 프로필과 신상정보가 그대로 보인다. 뭐야 이거.






모니터 저 너머의 사람 






인터넷 웹사이트 뿐만이 아니었다. 휴대폰의 메신저, 온라인 게임 속 아이디, 심지어 백업용으로 항상 찍어두는 거래처 명함의 이미지 파일에서도 그 상대의 프로필이 뜨며 보였다. 점심시간에 날아온 여친 소원의 카톡 옆 프로필 정보 보고는 놀라서 사레까지 들렸다. 휴대폰을 들여다 본다.

[ happy2lo : 장소원, 27세, 안양 동안구 경수대로 14-77 (호계 3동) 신월아파트 210동 702호, 삼원통상(무역, 사원) 재직 중, 연봉 2900만원(세전), 미혼(남친:조유민), 자녀 없음, 신장 163cm, 체중 57kg, 대원대학교 중국어과 (기타 정보)]

'뭐야 시발'

심지어 적힌 정보들은 사실이었다. 연봉이랑 체중까지는 몰랐지만. 나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기타 정보 탭을 눌렀다. 그러자 놀랍게도 카테고리 탭들이 보였다.

[신체] [성격] [재산] [인간관계] [히스토리] [심리상태] [소셜포지션] [성격] 등등등… 제일 앞에 있던 [신체]탭을 누르자 그녀의 몸에 대한 세부적인 정보들이 보였다.

키, 몸무게, 각종 건강상태, 운동능력, 신체 사이즈, 지능, EQ 등등. 모든 정보가 다 있었다. 난 소원이가 100미터 달리기 24초라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운동신경 둔한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그보다 변비와 치질도 있었다. 뭐 그거야 알고 있었지만. 신체 사이즈는 뭐 서로 볼 거 못 볼거 다 본 사이에 궁금할 것도 없지. 근데 지능에는 놀랐다. 141이라니. 몰랐다. 근데 왜 그렇게 멍청하지.

혼자 피식 웃다가 슬슬 다른 탭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히스토리…그 맨날 툭하면 이야기 하던 '재성 오빠', 사귄 적 없다더니 사귀었네 뭐. 나 말고 사귄 남자가 총 5명이구나. 첫 경험은 스무살, 대학 선배 규영. 모르는 이름이다. 25세 이후로는 나와만 만났구나. 그래 우리 벌써 2년 다 되어가네. 나에 대한 감정이 '사랑하지만 권태기에 접어드는 것이 아닌가 혼란을 느끼는 중'이라고 기록된 부분이 좀 씁쓸했지만.

재산은 볼까말까 고민하다 열었다. 1,200만원. 그래도 열심히 모았네. 한달에 60만원씩 적금 붓는구나. 인간관계… 아영이, 진아, 소미, 세미, 재원, 상원, 경호… 익숙한 그녀의 친구 이름들과 내 친구들의 이름들. 이어서 김대권, 윤지호, 송민섭 등등등. 들어본 것도 같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남자 이름들도 엿보인다. 심지어 그에 대한 감정상태까지 표시되고 있다. 다행히도 크게 신경쓸만한 남자는 없는 것 같다.

성격 탭이 있는데도 심리상태 탭이 따로 또 있는 것은 뭔가, 싶어 심리상태를 열어보니 놀랍게도 현재의 심리상태가 실시간으로 기록되고 있었다. 아쉽게도 문장형태는 아니고 그냥 [짜증 +2(32)], [분노 +7(66)] 등의 순간순간의 감정들이 보인다. 지금 뭔가 열 받고 있는 모양이다. 피식 웃었다.

소셜포지션은 뭔가 싶어 열어보니 직장 및 사회에서의 소속된, 혹은 되었던 단체나 집단, 동호회, 인터넷 사이트 등이 죽 나열되어 있었다. 일화여고, 대원대학교, 삼원통상, 안양 몽키띠모임, 여성세계, 소울앤커피, 카시오스타… 뭐, 그렇고 그런 사이트들.

"재밌네"





이게 꿈인지 아닌지 싶어 몇 번을 스스로 몸을 꼬집어 봤다. 이게 참 디게 영화에서도 보기 싫은 클리셰인데, 이게 지금 꿈인가 아닌가 믿기지 않는 상황에서는 확실히 그거만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더라. 그리고 매번 아팠다. 그리고 내가 미쳐버린 것은 아닌가 싶어 천천히 스스로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회사 끝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한숨 푹 잤다. 밤 11시 반에 눈을 번쩍 떴다. 허둥지둥 휴대폰을 확인했지만 역시나 프로필 보기 기능은 그대로 있었다.

"후"

이게 뭘까.

"초능력?"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 아닌가. 세상 모든 사람들의 개인정보를 나는 볼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해서. 문득 언젠가의 과학잡지에서 봤던 우주론 하나가 떠올랐다.

"시뮬레이션 우주론"

쉽게 말하자면 내가 게임 속 캐릭터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우주 전체가 말이다. 그 게임 속, 그 세계관에서 정교하게 시뮬레이션 되고 있는 캐릭터는, 자기 자신이 누군가에 의해 창조된 하나의 캐릭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까.

내가 만약 스타크래프팅의 마린이라면, 그리고 사실 내 모든 생각과 감정과 감각과 내 주변의 모든 것이 아주 지극히 정교하게 시뮬레이션 된 무엇이고 그렇게 누군가의 조종 하에 움직이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나는 그것이 내 생각이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살아가겠지. 누군가 "너는 그저 게임 속 캐릭터일 뿐이야" 라고 말해줘도 "응 그래" 하고 웃어 넘길 뿐이겠지. 그게 사실인데도.

…그런데 만약 진짜 내가 바로 지금 그런 것이라면? 지금 이 터무니 없이 말도 안되는 현상도 설명이 된다. 나를 조종하는 누군가가 일부러 나라는 캐릭터를 해킹 했거나 혹은 시스템에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한 것이라면 말이다. 일종의 버그 플레이가 되는 것이겠지.

"아…뭔 개소리냐"

스스로에게 긴 한숨을 내쉰 나는 어쨌거나 다시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아참! 오 맞네"





레이버 뉴스 메인 화면에 뜬 흔한 가십성 기사. 인기 걸그룹 팝스걸즈의 소영과 인기 남성 R&B 듀오 데이웍스의 준이 사귄다는 기사. 둘은 소속사의 말을 빌어 "좋은 선후배 관계일 뿐"하고 밝혔지만 임마, 너네는 나한테는 안돼.

데스패치 저리 가라의 정보력을 얻은 나다. 곧바로 팝스걸스 소영의 뉴스타그램에 접속했다. 역시나 아이디 옆에 프로필 보기 기능이 있었고, 곧바로 클릭했다.

[ s0sopop : 전소영, 19세, 서울 강남구 논현로 227길 13 (논현동) 예지빌 202호, 소라 엔터테인먼트(연예기획사, 사원) 재직 중, 수익미배분, 미혼(남친 : 오혁준), 자녀 없음, 신장 161cm, 체중 44kg, 서원예고 재학 중(기타 정보)]

"거봐! 사귀는거 맞네! 둘이 잠은 잤나?"

곧바로 기타 정보의 히스토리 항목을 봤다. 현재까지 오혁준과의의 성관계 2회.

"캬! 했네 했어! 했네! 어이 했어! 얼씨구, 했구나! 고딩이랑 했구나!"

뭐, 내가 그다지 좋아하는 그룹도 아니고 그저 웃기고 재밌었다. 문득 이 능력으로 연예부 기자를 하면 나는 진짜 연예 기사로 퓰리처상 탈 수도 있는 미친 기자 되겠다 싶어 낄낄 웃었다.

"아니지"

아예 정치계로 나아가서 정치인들 약점 잡고 뒤흔들면 세상 무서울 것이 없으리라. 아니, 뭐 그랬다가는 목숨이 위태롭겠지만. 어쨌거나, 거기서 삘 받은 나는 거의 2시간을 탑 연예인들 히스토리를 뒤지고 다녔다. 세상에 이런 재주로 그딴 짓을 한다는게 누구 눈에는 한심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쩌겠는가. 내 능력 내가 이렇게 쓰겠다는데.





"진짜 대박이다"

별별 더러운 일들이 다 있었다. 걸그룹과 보이그룹 멤버들끼리의 얽히고 얽힌 지저분한 치정관계와 스와핑, 온갖 변태적인 성관계들, 탑모델 송민영이 한국발전당 대선후보 서원섭 그 늙은이 애까지 낳아준 것도 그렇고, 역시나 UN미디어 사장 조섹스 그 새끼가 자기 기획사 아이돌 에이스 멤버들 거의 다 건드린 것도 그렇고… 김정아 나간 이유도 결국 그 변태 새끼의 끝없는 요구 때문이라는 사실에 내가 다 속상했다. 진짜 좋아했는데. 내가 요즘 최애하는 토마토 다영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도 솔직히 좀 충격이었고.

거기서 삘 받은 나는 카시오톡이나 페이크북을 통해 내 주변 사람들의 신상도 거의 다 까봤다. 회사 사람들, 친구들, 전 여친들…

그리고 세상에 멀쩡한 사람이 생각보다 드물다는 사실도 알았다. 태민 과장은 지금 내연녀를 두고 바람 피우면서 임신 중인 자기 마누라 툭하면 때리는 인간 쓰레기였고, 권제아 주임은… 도벽이 있었다. 회사 여직원들 화장품을 꽤나 훔친 듯 하다. 에휴. 내 전에 회식자리에서 잃어버린 갤럭시스7도 저 년이 훔쳐간 거였다. 시발. 그 폰에 별별 자료들 다 있었는데.

뿐만 아니었다. 친구 놈들도 치정관계로 엃긴 경우가 꽤 있었고, 특히 상원이 이 새끼가 나랑 소원이랑 술자리에서 나 자리 비운 사이에 소원이 뉴스타그램 아이디 따고 DM으로 꽤나 지분대다가 바람 피우자는 제안까지 했었다는 사실에 소름과 분노를 함께 느꼈다. 소원이 언제부턴가 상원이가 나오는 자리는 피하는게 그 이유였었다. 시발. 개새끼. 나한테 소원이 그 사실을 숨긴 것에도 짜증과 분노를 느꼈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와 상원의 친구관계 때문에 그런 것이겠지 하는 생각에 혀를 차며 넘어가기로 했다. 어쨌거나 상원이 이 새끼는 다음에 한번 날잡고 골통을 깨버려야겠다.

전 여친년들도 참 개짓거리 많이 한 것을 발견했다. 나 몰래 다른 놈들과 자고 다닌 것도 그렇고, 효영이 이 년의 나에 대한 평가가 '키스 더럽게 못하는 찐따 새끼'로 기록된 것에선 그냥 허탈하게 웃었다. 시발. 그래 니는 그렇게 깨끗하게 잘해서 양다리까지 걸쳤냐.

뭐랄까,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크나큰 실망감까지 느껴지는 수많은 내 주변인들의 기록을 훑어보다가 차마 두려워서 부모님 신상은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리고는 한참 이것저것 둘러보다가 정치, 경제인들에게까지 관심이 갔다. 국내 정치인부터 워싱턴의 현자, 위버 피렌까지. 영어가 짧아서 그 냥반들의 생각을 깊숙히 알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단지 가상화폐가 내년부터는 진짜 장난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 정도나 얻어본 정도.




"뭐야 이 새끼는"

다음으로 내가 한 일은 예전에 블로그나 커뮤니티에 내가 쓴 댓글과 게시글 찾아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달린 다른 사람들의 댓글보기. 이게 꿀잼이었다.

"얼척이 없다, 얼척이 없어"

지난 주에 IT기업들의 불합리한 인사관행에 대해 나와 밤새도록 토론했던 유저 tguys 이 새끼는 나이 마흔 넘게 쳐먹도록 평생 회사는 커녕 알바조차 해본 적 없는 방구석 히키코모리 백수였고, 예전에 한번 나와 정치관을 이유로 토론한 이래 수시로 악플 달아대는 찌질이 ss2000 이 새끼는 19살짜리 고딩이었다. 지 말로는 40대 중소기업 오너라더니. 사실 몇몇 놈 수준이 아니었다. 게시판 리스트 따라서 죽 훑어보노라니…

한 절반은 대학생인데, 연애하고 있는 놈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남은 절반의 절반은 평범한 직장인. 개중에 드물게 대기업 직장인이 있고, 더욱 드물게 전문직이 한 서너 페이지에 한 명 정도 보일 정도.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해도, 생각보다 적당히 벌만큼 버는 사람들이 드물었다. 겨우 연봉 3천 버는 사람이 한 페이지당 서너명도 안된다.
그리고 남은 인원은 좀… 뭐 백수 찐따라던지, 뭐 그런 양반들. 아 고도 비만 환자는 왜 그리 많던지. 솔직히 놀랐다. 나도 똥배 나온 놈이지만, 우리나라 비만지수 낮은 나라 아니던가. 아니면 이런 사람들이 인터넷을 유달리 많이 하는 것이던지.

어째 연애 중, 혹은 기혼자로 뜨는 비율이 너무 적길래 좀 이상해서 3페이지 째부터는 히스토리도 훑어봤는데, 정말이지 놀랐다. 모태솔로나 나이 먹을만큼 먹고도 연애 경험이 거의 없는 케이스가 30%는 충분히 넘어보였다. 모쏠 그거 다 드립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다. 찐따라서 하릴없이 인터넷이나 주구장창하고, 또 인터넷이나 주구장창 하다보니 사회성 개나 주고 점점 더 찌질이가 되어가는 것일까. 뭐, 이런 생각도 꼰대적인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모니터 저 너머의 사람'들은 생각만큼 보편적인 사람들의 비율이 높지 않았다. 뒤늦게 새삼스러운 현자타임이 온다.




"생각보다 별 것 없네"

세상에 대한 치트키. 마치 온 세상에 대한 black sheep wall 치트키를 쓴 기분이고, 물론 지금도 들여다보자면 한도 끝도 없이 들여다 볼 거리가 널려있는 셈이지만 그만큼 빠르게 무언가를 상실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능력을 바탕으로 쉽게 돈을 벌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에 조금은 두근거렸지만.

연애… 휴대폰이든 모니터든 무언가의 화면 너머로 인터넷 정보창을 통해서만 이 치트를 사용할 수 있다는게 좀 아쉽지만 어쨌거나 최소한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거나 혹은 짜증을 느끼거나 하는 것을 나는 이제 거의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아, 혹시 나 좋아하는 사람 있나? 싶어서 당장 내 인간관계 탭을 보노라니 역시나 우리 엄마와 아빠, 소원이 압도적인 수치로 나를 좋아하고, 호감 정도의 레벨로 회사 인사팀 승아씨와 민 팀장님이 있었다. 물론 둘의 호감 수치는 사랑이 아니고 그냥 순수히 호감. 뜬금없이 누군가가 뒤에서 나를 보며 두근두근할 그런 사람이 있을 리도 없지만 있기를 기대한 내가 좀 무안했다.

"쩝"

다시 나를 들여다 본다.

[ GTman009 : 조유민, 32세, 서울 구로구 경인로 61길 25 (천왕동) 아트빌 102호, 대명비전(SI, 대리) 재직 중, 연봉 3100만원(세전), 미혼(여친:장소원), 자녀 없음, 신장 172cm, 체중 66kg, 원흥대학교 환경공학과 졸업 (기타 정보)]

기타 정보 내역을 훑어 보노라면 그 정확하면서도 신랄한 평가들에 웃음마저 나온다. 근데 말이다. 정말로 이런 세세한 디테일은 누가 만들었을까. 그럴싸하지 않나. 심지어 GTman009 저 아이디는, 내가 쓰는 몇 가지 아이디 중에 제일 자주 활용하는 아이디이고, 그걸 클릭하면 내가 사용하는 인터넷 모든 웹사이트 아이디가 주르륵 뜬다. 이런 미친 디테일이라니. 이 세계관 전체를 만들고, 그 디테일을 다듬었다는 것은 얼마나 고생스러운 일이었을까. 심지어 캐릭터 하나하나마다 이 정도의 섬세한 디테일과 지속적인 상호 연계와 감정선까지 구현한다는 것은 정말로 놀랍다. 이 모든 것을 시뮬레이팅 하는 시스템의 연산 능력은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한두 사람이 만든 것은 아닐 것이다. 수없이 많은 이들이 달라붙어서 구현했겠지. 아니, 어쩌면 그냥 지금의 우리 시대 컴퓨터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떤 거대한 능력을 가진, 사실상 '신'이라 불러도 할말 없을 정도의 어떤 위대한 연산능력을 가진 컴퓨터가… 실시간으로 시뮬레이팅을…

아니. 꼭 그럴까.

생각해보면 그렇다. 이를테면 피파 게임을 생각해보면, 그리고 그 안의 캐릭터들을 떠올려보면 결국 그 놈들은 꽤 리얼한 축구를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캐릭터들이 뜬금없이 게임 속에서 전투기를 몰고 다니지는 않는다. 그냥 제작한 놈은 축구장과 각각 녀석들의 축구하는 모습만 리얼하게 구현하면 그만이다.

마찬가지다.

나라는 인간도 결국 그냥 평범하게, 아주 단편적으로… 그냥 사무실에 앉아 일하고, 연애하고, 뭐 그런 류의 디테일만 구현하면 그만이다. 내가 뜬금없이 항공기를 몬다거나 그럴 일은 없으니….

아니지, 애초에 그 정도까지는 이미 게임엔진 차원에서 구현이 된 셈일게다. 마치 게임 GRA5처럼. 적어도 내가 나라는 인간의 현실세계에서 할 수 있다고 믿는 대부분의 것들까지는 실제로 구현이 가능할 것이다. 생각보다 엄청난 자유도 아닌가.

단지, 내가 불가능하다고 믿는 것, 이를테면 차원을 뛰어넘는다거나 우주 끝이 어떻게 생겼는지 관찰한다거나 하는 것까지는 구현이 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음, 오케이, 이건 좀 말이 되는 것 같다. 실제로 피파 게임 속 축구선수 놈들은 F-15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겠지.





웅웅- 우우웅- 웅웅- 우우웅-

전화가 울린다. 소원이다.

"어, 소원아. 퇴근했어?"
"응, 오늘은 좀 늦게 퇴근했어"

그녀의 예쁜 목소리와 함께 전화기 너머로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 깔깔대며 웃는 여자애들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참 새삼스레 이 모든 디테일을 구현한 이 세상의 창조자에게 감탄을 느낀다.

"피곤하지? 저녁은 어떻게 했어? 배 안 고파?"
"아 괜찮아. 아까 한 네 시쯤에 민아 언니랑 나가서 커피 한잔 마셨어. 집에 가서 밥 먹으면 돼. 근데 오빠, 뉴스 봤어?"
"무슨 뉴스?"
"인천 여자아이 납치사건, 그거 애기 목소리 녹음된거 공개된거"
"뭐? 아이 목소리 공개를 했어?"
"어 이따 봐봐. 애기 목소리가 막 너무, 그 엄마랑 이야기 하는거 나 듣고 울었어"
"하…"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내 능력의 위대함을 떠올렸다. 유괴사건. 나는 범인을 지목할 수 있다.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이미 사건은 공개수사로 전환된 상태였다. 난 최대한 정보를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나의 능력은 '온라인상에서 누군가와의 연결고리'를 찾아야 한다. 그래야 타고 넘어가고 넘어가고 하는 것이다. 생각보다 쉬웠다. 아이가 재학 중인 석원 초등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홈페이지 학교 소개란 메인 페이지의 교장 이미지와 그 옆의 "바르게 크는 어린이" 라는 교훈 옆에 교장 선생님의 프로필 보기가 떴다.

[ Presidentk : 고원구, 56세, 인천 연수구 비류대로 1길 15 (선학동) 선학아파트 110동 505호, 선학 초등학교(교육, 교장) 재직 중, 연봉 10,200만원(세전), 기혼(한기숙), 자녀 고동욱, 고동민, 고선아, 신장 169cm, 체중 85kg, 서울종합교육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기타 정보)]

곧바로 [기타 정보]-[인간관계] 항목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최근 이슈가 되고 있다보니 담임 교사로 보이는 31세의 여자 선생님 '최송혜'가 높은 [짜증] 과 [우려] 관계로 이어져 있었고, '최송혜'를 따라가다보니 드디어 피해 어린이 '안유진' 양이 떴다. 오케이.

'어…'

그러나 안유진의 프로필은 회색빛으로, 접근 금지 상태로 되어 있었다. 클릭이 되지 않는다. 이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아마 죽었을거야"

네 말에 소원은 "아니야, 아까 오빠 기사 안 봤어? 엄마랑 통화하는 음원이 있었다니까?" 하고 반박했다. 나도 이미 열 번도 넘게 돌려봤지만, 사실 그건 정상적으로 이야기가 오간 대화라고 볼 순 없었다. 그저 엄마 살려줘, 엄마 무서워 하고 우는 아이의 목소리에 자지러지는 엄마의 비명 소리에 불과했으니까. 아이의 목소리 쯤은 죽이기 전에 녹음해놨으면 그만인 것이다. 아니면 뭐 그때까지만 해도 살아 있었지만 그 이후에 죽였다던가.

"오빤 꼭 그러더라. 세상 만사가 시니컬해"

갑자기 대화가 가라앉는다. 소원이는 뭔가 내가 자신의 의견에 동조해주지 않으면 꽤 감정 상태가 급변한다. 슬몃 웃으며 컴퓨터로 새삼 소원의 프로필에서 [심리상태] 탭을 본다.

[ 짜증 +30(79) ], [ 분노 +54(74) ], [ 서운 +22(65) ], [ 나른함 -40(11) ]

…아니 세상에 그저 지 말 지 편 한번 안 들어줬다고 이렇게 감정이 급변하나. 결국 전화는 대충 수습하고 얼버무리며 끊었다. 아니 그보다 잠깐만. 유괴범죄는 보통 면식범 아니던가? 아닐 수도 있지만, 나는 다시 담임교사 최송혜를 따라 가서, 인간관계 탭에서 피해 어린이 안유진의 엄마, 윤석희를 따라간다. 그리고 윤석희의 [ 인간관계 ] 탭에서 어떤 힌트를 얻었다.




[ PEPPA77 : 윤재승, 41세, 인천광역시 연수구 해돋이로 56번길 28 (송도동), 무직, 연 수입 22만원, 기혼(이혼소송 중:도윤아), 자녀 없음, 신장 177cm, 체중 81kg, 명진전문대학교 기계학과 중퇴 (기타정보) ]

바로 납치 아동의 어머니, 윤석희의 오빠 윤재승. 그의 윤석희에 대한 감정은 놀랍게도 [ 분노 ] 와 [ 증오 ] 로 가득차 있었다. 처음에는 아이를 똑똑히 간수 못했다고 분노하는 그런 식의 짜증인가 했지만, 히스토리 항목을 읽어보니 윤재승이 윤석희의 돈을 약 5천만원을 빌려썼고, 그 빚을 갚으라는 윤석희와의 갈등이 꽤 골이 깊어보였다. 특히 잦은 독촉에 결국 아내가 못 참고 이혼을 요구했고 그것을 거절당하자 아내는 이혼소송까지 낸 상태.

"흠"

이 정도 갈등이라면 당연히 경찰도 최우선 용의자로 올릴 것 같은데, 못 잡은게 이상하다 싶다가 윤재승의 현재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주소란을 클릭하니 과연 현재 위치로 표기 되었다.

"전남 함평까지 갔네 이 놈. 번개 같구나"

아까 기사에서는 대포 휴대폰의 전파발신지 추적을 통해 파주시로 추정하던데. 빠르게 움직인 모양이다.

"…아니야"

그러나 마음을 돌렸다. 이걸 제보하는 것도 조금 마음에 걸린다. 어떻게 알게된 제보냐고 경찰이 연락이나 문의라도 들어오면? 무속인이라고 둘러댈까. 미친 놈이 되겠지. 게다가 지금의 이 '인생 버그 플레이'를 오래 즐기고 싶은데 굳이 눈에 띄는 플레이를 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잠시 망설이다, 그냥 입을 닫기로 했다. 어차피 아이는 이미 죽었고, 범인은 경찰이 알아서 잡을 것이라 믿으니까.




"배고프다"

조금 마음이 찜찜해졌지만, 이게 최선이라 생각했다. 나는 다시 내 프로필의 기타 항목을 클릭했다. [성격] 탭을 클릭하자 과연 '게으르고 소심함'이라는 언급이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

어쨌거나…

인생 치트키를 얻어 활성화를 시켰다. 아니아니, 어느 날 갑자기 치트키가 '켜졌다'. 나는 이제 무엇을 하면 좋을까. 연예인 루머 뒷조사부터, 정재계의 핵심 비밀을 틀어쥐거나, 바르지 못한 범죄자들을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는 힘. 이 세상 전체에 대한 정보를 가진 나는 전성기의 애드거 후버보다도, 미국 에셜런 프로젝트보다도 더 위대한 정보능력을 가진 사람이 됐다.

"흐흐"

물론 그런 힘을 갖고도 고작해야 연예인 가십이나 훑고 다닌 내 모습이 새삼 조금 웃겼지만, 뭐 어쩌겠는가. 내가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보니, 궁금한 것도 그 정도 수준인 것 뿐이다.

그보다 내 '초능력'의 기반이 내 상상대로 '시뮬레이션 우주' 같은 것이라, 누군가가 해킹을 했다거나 혹은 시스템의 오류 같은 이유로 나에게 부여된 힘이라면… 버그가 픽스되거나 해킹이 밴되는 상황이 온다면 나라는 인간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이 모두가 지금 내가 꾸는 꿈에 불과한 것이라면? 혹은 내가 무언가의 과대망상 증후군, 뭐 그런 정신병에 걸린 것이라면?

더 나아가…

'모니터 저 너머의 사람'이라는 것이, 그저 단순히 나랑 인터넷 같이 한 사람들을 넘어서… 지금 일종의 차원 벽 바깥에서 나를 조종하거나 만들어 낸 누군가들, 그리고 나를 지켜볼 수 있는 누군가들이라면, 그래서 나의 모든 생각과 일상이 까발려지고 있는 것이라면… 이런 혼자만의 망상 같은 생각마저 모조리 유출되고 있는 것이라면?

'어이 다 알고 있다고, 그만 쳐다봐! 부끄러워!'

혼자 마음 속으로 외쳐본다. 이거 무슨 초딩이나 중딩 때나 하던 짓 같은데. 어쨌거나 내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사람들이, 그저 주변의 친구들이 아닌 모니터 너머의 어떤 초월적인 존재들이라면… 그럼 그가 컴퓨터를 끄거나 혹은 뭐 게임을 종료하거나, 아니 이런 경우에는 그저 리부팅하면 나는 그 시점에서 재시작하겠지. 아예 캐릭을 삭제한다면, 그때 나는 죽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가만히 지켜보는 어떤 시뮬레이션 형식의 그 무엇일까.

"…검증할 방법도 없잖아."

나는 스스로를 타이르고, 복잡한 머리를 가라앉히며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내가 할 일이 생각났으니까.

"야, 나도 사생활 좀 갖자"

또 혼자 '누군가들'을 향해 중얼거려 본다. 아니, 인정하기로 했다. 만약 정말로 그런 세상이라면 내가 뭐 어쩐다고 어쩔 수 있는게 아니잖는가. 나는 과감히 바지를 내렸다. 그리고 슬슬 고추를 주물거리며 시동을 건다. 마우스는 익숙한 손길로 어떤 폴더를 향한다.

"그래, 딸 좀 치자고"

나는 가볍게 콧바람을 내쉬며 힘차게 avi 파일을 더블클릭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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