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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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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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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반년 넘게 끊었던 담배에 다시 손을 댔다. 정확히 말하자면 금연한다고 서랍 속 깊숙히 묻어뒀던 담배가 어느새 내 손에 들려있었다. 흐름이 안 좋았다.

"아, 진짜"

우리나라 정부가 2개의 부실 거래소 폐쇄와 수익의 60%에 달하는 양도소득세 부과 정책 발표를 한 날, 중국 정부가 해외로 나간 중국계 채굴 업자 및 업체의 중국 내 자산에 대해서까지 몰수를 포함한 강력한 추가제제를 진행할 것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뉴스까지 전해졌다.

이미 거기까지만 해도 상승세였던 흐름이 꺾이고 베인코인의 2.5만선이 뚫리는 등 투자 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이 간 상황이었건만, 그날 오후 시총 3위였던 니어코인의 하드포크가 뜻밖에 실패로 돌아갔다는 루머가 돌기 시작했다. 설마설마 하는 상황 속에 결국 세 시간 후 니어코인의 공식 트위터에 실패 소식이 떴고 전체 장 분위기가 삽시간에 싸해지기 시작했다.

"이 놈들은 왜 또 이래"

이어 하락과 횡보를 거듭하던 그 며칠 후, EU 차원의 암호화폐 규제 조치가 발표되었다. 특히 프랑스의 경우 1인당 거래금액 제한 같은 조치까지 부가되어 논란을 일으킨 통에 더욱 분위기가 안 좋아졌다. 그 즈음하여 나스닥의 베인코인 옵션 만기일이 도래함에 따라 대거 몰린 숏 포지션의 마진 거래가 장에 추가적으로 부정적인 부담을 주었다. 근 1년 만에 1베인코인당 2만 달러가 무너졌고, 장의 분위기가 차갑게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뭐?!"

그 이틀 후, US디터로 발행된 금액 전체에 대한 일시적 지급 보증 유예 소식이 시장에 타격을 입혔다. 그 이유가 알려지지 않아 흉흉한 루머들이 도는 가운데, 시장에 결정타가 터졌다. 미국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코인베이직의 해킹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확인된 피해 규모만 1천 8백억 달러가 넘는, 현 시점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악재였다. 모든 지표가 사상 유래 없는 속도와 규모로 일제히 급선직하했다.

차갑게 얼어붙던 시장 분위기에 이미 휘청대던 1만 6천선이 단번에 무너졌고, 채 두 시간이 지나지 않아 9천선이 무너졌다. 공포가 모두를 휘감았고, 가뜩이나 "요즘 왜 이러냐?" 싶던 구름 낀 분위기가 삽시간에 지옥으로 변했다.

"아…"

코인 시장이 진짜 망하려는 것인지,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이미 1년 반 이상 미뤄졌던 JN모건의 암호화폐 거래소 오픈이 결국 취소되었다는 오피셜 소식이 발표되었고 그 영향으로 최후의 보루로 일컬어진 7천선에서의 반등이 실패했다. 시세가 무서운 속도로 추락했고 급기야 영원히 오지 않으리라 누구나 확신했던 3천선이 붕괴됐다. 헤더리움의 성장이 채 끊나지 않은 가운데 코인판의 기축통화, 베인코인이 무너지는 것은 공멸을 뜻했다.

사람들은 이제 하락이 문제가 아니라, 코인 시장의 존립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이미 5천선의 붕괴에 코인 관련 포럼과 커뮤니티에선 "낙동강 방어선이 뚫렸다…" 소리가 힘없이 터져나온 상태였고, 상황이 심각해지자 그동안 수많은 최악의 상황에 단련되었던 역전의 존버족들조차 마지막 패닉셀에 참여했다. 코인 시장 자체가 최후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하"

베인코인 갤러리 및 국내외 암호화폐 관련 모든 커뮤니티에서 "나 이제 어떻게 하냐…" 라는 곡소리가 이어졌고 안티 암호화폐쟁이들의 풍악이 울려퍼졌다. 지난 12년 간 일절 흔들리지 않던 결사적인 신앙적 존버족들조차 "10%라도 건져야지…" 와 "10% 건지나 그냥 버리나…" 에서 갈등이 이어졌다.

"아"

골이 지끈지끈했다.

"하, 진짜 아 이건 뭐…"

2천 7백을 찍고 있던 내 코인 투자 평가액은 그 사이 800만원, 아니 350만원이 되어 있었다. 진작에 현금화 좀 해놓을 것을, 후회가 머리를 채우기 시작했고, 감히 던질 생각조차 들지 않는 압도적인 하락장에 나는 일곱 대째의 줄담배를 입에 물었다. 진정하기 위해 떨리는 손으로 물을 한잔 마시고 왔더니 평가액은 19만원으로 추락한 상태였고, 나는 컵을 벽에 던져버렸다.






가즈아 



by stylebox 




꿈이었다. 코인 시장이 딱 일주일만에 붕괴되는 무시무시한 꿈이었다. 온 몸이 다 축축했다. 눈을 뜨자마자 습관처럼 벽 모니터를 보며 실시간 시세를 확인했고, 여전히 내 평가액이 5억 언저리에 있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후우… 꿈자리 사납네. 어후"

꺼끌한 입맛을 다시며 침대에서 일어나 새삼 방 안을 둘러보았다. 지난 주에 새로 이사한 송파구의 28평 아파트였다. 전세이긴 해도, 어쨌든 내 평생에 한강 이남 아파트에 살게 될 줄은 누가 알았으랴. 아직 짐도 채 안 풀었는데, 이번 주말에는 꼭 다 풀어야지 하고 다짐해본다.

"크흠"

어쨌거나 이제는 출근할 시간이다. 새삼 침대 옆 협탁에 올려놓은 신형 그렌디아의 차 키가 눈에 들어왔다. 저 놈도 당연히 코인 덕분에 산 거다. 그리고는 화장실 문 앞에 붙여놓은 최민구의 합성 포스터를 보며 오늘도 외친다.

"가즈아!"





"대리님, 헤더리움 다음 달에 진짜 5백만원 갈까요?"

아영씨가 출근하자마자 인사와 함께 그 큰 눈으로 생글생글 웃으며 묻는다. 작년 초, 코인 정보를 몇 개 흘려줬더니 과감하게도 결혼 자금으로 모아놓은 3천을 들입다 투자해서 그걸 5배로 불렸단다. 결혼 자금 불렸으니 호텔에서 결혼식 하는거냐고 웃으며 물었더니 "이제는 남자만 찾으면 되요" 하는 말에 빵 터졌더랬지.

그 이후로는 나를 무슨 코인의 신처럼 모시며 얼굴 볼 때마다 코인 정보를 묻는데, 그때마다 그녀의 옷과 악세서리가 명품으로 바뀌는 것을 확인하며 새삼 흐뭇한 웃음을 짓게 된다. M&H, SAZA에서도 세일기간이 아니면 옷을 안 산다고 했던 그녀였는데.

"뭐, 가긴 갈거야. 시간이 얼마나 걸리냐가 문제지"
"정말요?"
"…그렇다고 너무 무리한 투자는 하지 말고"

사실 그녀 말고도 사무실에 나 덕분에 꽤 돈 번 사람들이 있다. 다들 베인코인이 난리라는 것은 알았지만 직접 뭘 해보기는 두려웠던 차에 내가 점심시간이나 퇴근 시간에 막간을 이용해서 조금 가르쳐줬더니 쌈짓돈으로 시작해서 은근히들 용돈들 좀 번 모양이다. 적게는 30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까지. 아영씨는 그 중에서도 유달리 더 대박이 난 케이스고.

베인코인의 3만불 돌파 및 헤더리움 ETF 승인과 함께 코인 시장이 대상승장에 돌입한 덕분에 나도 대박이 났고, 그녀들도 대박이 났다. 회사에는 그냥 가볍게 차 한 대 뽑을 정도 벌었다고 말해뒀지만 사실 내가 번 돈은 총 11억 8천만원이었다.





"븅신들, 이런거에 돈 빨리는 호구도 있냐"

베인 코인이 채 1달러가 안되던 시절, 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그 정보를 들었었다. 꽤 전문적이고 흥미로운 내용이 적힌 게시물이었지만, 온갖 찬미와 미사여구 때문에 오히려 신뢰가 안 갔다.

단지 베인코인으로도 결제할 수 있다는 스트리밍 포르노 사이트의 주소를 얻은 것은 꽤 기쁜 소득이었다. 하드코어 장르의 야동이 꽤 많은 사이트였다. 바로 즐겨찾기 해뒀다. 그게 내 첫 베인코인과의 만남이었다.

"와"

이윽고 몇 년이 흐른 시점에 다시 소식이 들려온 베인코인은 어느새 30만원이 되어 있었다.

"이거 뭐야 진짜…"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때까지도 베인코인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블록체인이니 뭐니 하는 기술은 개념조차 잘 이해가 가지 않았고 제대로 들여다 볼 생각도 없었다. 그냥 글로벌 버전 도토리라는 생각만 했을 뿐이지. 그렇지만 요는 엄청난 속도로 가격이 올랐다는 거였고, 그때 내가 단돈 10만원만 넣었더래도 그게 3천만원이 됐을거라는 생각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렇지'

누구나 인생에는 기회가 세 번 온다지 않는가.

"오케이"

그래서 차세대 베인코임이라고 일컬어진 헤더리움에 10만원을 투자했다. 이후 정신없이 석 달이 흘렀고, 문득 생각이 나서 접속해보니 거래소의 내 헤더리움은 개당 9천원짜리가 7만원이 되어 있었다. 10만원이 80만원이 넘는 돈이 되어 있던 것이다.

'헐'

믿기지 않는 숫자에 나는 입이 떡 벌어졌고, 마침 술값에 빵구났던 카드값을 그렇게 갚았다. 성공한 투자였다. 그러나 그 두 달 후 나는 땅을 쳤다. 개당 7만원짜리가 31만원이 되었으니까. 그래, 베인코인 그 천원짜리가 100만원이 되는 것을 보고서도 헤더리움을 고작 10배에 만족했나.

그래서 결단을 내렸다.

곧바로 은행에 가서 대출 3천을 땡겨서 들이부었다. 10만원만 투자했으면 3천을 벌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걸 벌었다고 치기로 하고 후회를 없앴다. 이제는 조금 공부도 했다. 여전히 이해 가지 않는 부분이 많았지만, 적어도 무슨 의도에서 이게 그렇게 학자들과 개발자들에게 주목 받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나보다 더 똑똑한 실리콘 밸리와 뉴욕 금융가의 빠끔이들이 손을 댄다는데 내가 그들의 안목을 부정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3천만원이 딱 3개월만에 1억 7천만원이 됐고, 2년 반 만에 11억 8천이 됐다. 끝과 끝을 오가는 미친 시장에서 네 번의 지옥과 다섯 번의 천국을 맛 보며.




퇴근길, 테헤란로의 빌딩 숲을 가르며 새 차 냄새를 만끽한다. ZZ코인을 잠깐 만져서 14억까지 갔지만, 헤더리움 골드의 시세 추락 & 에이저, 덴츄, 블루펄스 같은 잡코인 투자 실패, PNP, COCOIN 같은 거래소 코인 투자 실패가 이어지며 2억을 날렸다. 그러자 조금은 현자 타임이 온 나는 그 시점에서 리프레시를 위해 절반 정도를 현금화를 하여 차와 아파트를 구한 것이다.

"차가 막히네"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성공했더라면, 그랬더라면 희수와도 그렇게 헤어지지는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에 눈 앞의 신호를 놓칠 뻔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지금처럼 여유 있는 싱글이 차라리 더 내 삶의 풍요를 보장했다. 그리고 어쨌든 그녀는 잘 되지 않았던가. 애도 낳았다는데.





"으아아~ 넘나 좋다"

거실에는 2천만원짜리 초대형 TV를 틀어놓고 영화 보다가, 치킨에 피자에 이것저것 잔뜩 배달음식 시켜놓고 배 터지게 먹다가 다시 컴퓨터로 시세창 좀 보다가 다시 통장 확인하고… PS5와 스위치와 수많은 게임들을 쌓아놨다. 어제는 즈팀에서 한번에 300만원어치 게임을 질렀다. 운동화도 조던 시리즈만 13켤레를 샀다. 거기에 주말에는 돈 걱정 없이 쇼핑하고, 여기저기서 인심 턱턱 쓰고.

"너무 좋다"

사실은 회사를 다닐 이유가 없었다. 이미 돈은 큰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나를 안다. 최소한의 브레이크가 없다면 아마 나는 선을 벗어나 일탈하고 말 것이다. 그렇게 현실감을 잃고 나면 나의 투자촉도 사라질 것이다. 적어도 최소한 다른 사람들의 삶을 곁에 두어야 투자심리라던가, 버블의 끝이 어디인가에 대한 감도 잡힐 것이고. …고작 10억에 만족할 수는 없으니까.




"나 뭐라고 욕해도 좋은데, 근데 차라리 나 이렇게라도 해결하고 싶어"

희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너도 알잖아. 우리 집 사정 많이 어려운거. 얼만지 말해줄까? 한달에 이자만 550만원이 나간다? 원금 말고, 이자만. 엄마 입원도 해야 되는데, 못 하고 있어…돈 벌어야 되니까. 온 가족이 돈 벌어서 빚 갚아야 되니까!"

여유 있게 말하던 목소리는 어느새 울음이 섞였고, 그녀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나는 콧김을 내뿜으며 그저 듣고만 있었다.

"그냥…내가 그 사람 만나면, 나 하나만 눈 꼭 감고 살면, 그럼 되거든. 상가 명의 내 명의로 해준대. 솔직히 이런 사람, 이런 기회가 어딨어. 완전 호구지 호구. 머리 좀 까지고 결혼 좀 해봤으면 어때. 나도 연애 해봤잖아. 쌤쌤이지"

온 몸을 휘감는 패배감. 희수가 물었다.

"너 한달에 500만원씩 꼬박꼬박 우리 집에 보내줄 수 있어? 매달. 말해봐. 말해봐. 그럼 내가 너랑 결혼해줄게, 아니 할께"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어쩌면 분노한 목소리로, 어쩌면 간절히 바라는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 당시의 내 급여는 171만원이었고, 500만원이라는 돈은 도저히 대답할 수 없는 숫자였다. 아니 몇 번인가 내가 말했던, 그녀도 나도 믿지 못할 그 지킬 수 없는 허풍을 지금 또 칠 수는 없었다.

"투잡이든 쓰리잡이든, 해서 줄 수 있어? 없잖아. 아니 애초에 니가 왜 그렇게 해야돼. 니 빚도 아닌데. 그렇잖아. 또 니가 그렇게 힘들게 번 돈, 우리 집에 보내서 빚쟁이들 주면 내 기분은 어떨까? 그치?"

아무 말도 하지 못한 나를 보며 희수는 눈물을 닦고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니 잘못 없어. 그냥… 우리가 때가 아니었다고 생각하자. 대신에, 다음에… 다음에 언젠가 다시… 음… 우리가 만날 인연이 되면… 그때는 정말 더 잘해줄게. 더 많이 잘해주고 싶었는데… 내가 너무 힘들어서 많이 못 해줬어. 그게… 참 미안했어…"

주루륵 흐르는 내 눈물을 닦아준 그녀는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감추며 내 대답도 듣지 않은 채로, 다시 그녀가 사는 집 건물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그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참 많이도 울었다. 만약 돈을 벌 기회가 온다면, 그래서 그녀의 한을 풀어줄 수 있다면 내 영혼을 팔아서라도 벌 거라고 다짐했다. 뭐, 결국 이렇게 벌고 난 시점은 모든게 끝나버린 너무 늦은 시점이지만.





"예예, 아니 무리하게 버티지 마시고, 그냥 에어드랍만 받으면 바로 처분하고 나오세요. 제가 아까 그 선동이 형한테도 말 들은게 있는데, 지금 추세선이 너무 좀 그렇다고, 너무 티나게 작전 같다고, 예 괜히 무리하지 말자구요. 예예, 그럼 또 보다가 뭐 건 생기면 말씀해주세요. 네에"

자칭 '왕개미'들끼리 주고 받는 정보들. 잘해봐야 아마추어 차트쟁이, 보통은 그저 다른 놈들보다 눈치코치 조금 빠르고 조금 더 대담한 놈들에 불과한 찌질이들이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의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 뿐이지만, 세상 뭐든 그렇듯이 감 좋고 운 좋은 놈들이랑 함께 뭘 하면 확실히 성과가 좋다.

전화를 끊고 모니터를 좀 보다가 다시 침대에 눕자, 이번에는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용돈 보내준 거 고맙다는 전화였다. 얼마 전부터 집에 50만원씩 보내고 있다.

"용돈 보내준거 고마워. 잘 쓸게. 니도 돈 없을텐데…"
"아 걱정말고 써"

집에는 사실 내가 대박을 터뜨렸다고 말하지 않았다. 말해봐야 괜히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들로 걱정이나 하고, 재수 없으면 사기꾼이나 돈 냄새 맡은 아귀 같은 친적들 중의 누군가가 덤벼들지도 모른다. 세상이 다 그런거 아닌가.

그저 일시불로 3천, 이후로는 한달에 드리는 용돈만 50만원으로 늘렸을 뿐이다. 집에는 주식 투자 좀 했던게 잘 됐다고 뻥을 쳤다. 그래도 걱정하길래 "아 진상전자에 투자한거야. 진상전자. 여기 주식이 망할 정도면 뭐 다른 놈들은 멀쩡하겠어? 그러니까 걱정을 하덜덜 말어" 하고 말았다.




"그래도 엄마는 진심으로 하는 걱정이기라도 하지"

하지만 다른 놈들은?

"미친 새끼들이지"

코인 시장으로 재미를 살짝 본 초창기, 주변 친구 몇 놈과 인터넷 커뮤니티로 알던 몇 놈에게 나름의 요령과 코인 투자의 의의를 좀 가르쳐 줬다. 그런데 그게 독이 되어 돌아왔다.

하라는대로 안 하다가 다 털어먹은 놈, 그래도 나 덕분에 몇 백은 벌었을텐데 무슨 불만인지 궁시렁대고 내 욕을 하고 다니는 놈, 하랄 때 안하더니 뒤늦게 도박이네 사기네 하면서 나를 죽도록 미워하며 3년째 헛소리 하고 다니는 놈까지.

아니 뭐, 사람 마음이라는게 나 때문에 돈 털어먹은 놈이야 그럴 수 있다지만, 하랄 때 안 해놓고 뒤늦게 나를 사기꾼으로 매도하는 놈들은 뭔가. 3년째 게시판에서 여전히 사기네 뭐네 하면서 난리다. 언젠가는 이거 다 거품 꺼지고, 그땐 다들 죽는거라고.

"아예 인디언 기우제를 지내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기사 그 마음 모를 것은 아니다. 나 역시도 처음에 '그때 큰 돈 집어 넣었으면' 하는 후회에 속이 꽤나 쓰렸으니까. 이미 늦었다는 생각에 '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리겠어' 하는 심리가 드는 놈도 있겠지. 단지… 인터넷에서 저 난리 굿을 피우며 "코인지옥 도박사범" 타령을 3년 동안 할 시간에 알바라도 해서 그 돈으로라도 투자를 했으면 지금쯤 아무렴 몇 백인들 손에 못 쥐었을까.

"당연히 언젠가는 꺼지겠지"

지난 12년간 매 순간 그 이야기가 나왔다. 그 놈의 버렌 워핏 할배 이야기도. 그러나 부침은 있었을 지언정, 여전히 코인 시장은 성장 중이다. 언젠가는 이 대세 상승장도 끝나고 한동안 재미없을지도 모른다. 정말로 그들의 말따라 망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건 당연한 것 아닌가. 요는 그러니까 지금 당장 재미 좋을 때 뛰어들어 벌면 되는 것 아닌가.




"이해는 가요 저는 솔직히"

아영씨, 혜란씨와 함께 점심을 먹는 도중 혜란이 말했다.

"우리 아버지 친구 분 중에, 진짜 사업 잘하시는 분이 있거든요. 막 큰 사업을 하는 건 아닌데, 유행하는 장사는 다 손대서 성공을 하는 거에요. 불닭, 찜닭 장사부터 봉팔비어, 쥬디, 명예 핫도그, 홍콩 카스테라, 24시간 곱창 뭐 그런거. 그래서 아버지가 맨날 너는 참 대단하다 어떻게 그렇게 사람들 마음을 귀신같이 잘 아냐 칭찬했는데, 그 아저씨 말이 그게 아니래요."

재미있는 이야기다.

"그 아저씨 말이 '나는 유행하는걸 미리 알고 하는게 아니라, 유행을 한다는게 보이면 빨리 손을 대는거'래요. 사람들이 '아 이거 괜찮네, 이거 요즘 유행인가 보네' 하는걸 먼저 캐치해야 되는 부분도 분명히 있지만…돈 못 버는 사람은 그걸 알고도 미적미적 대다가 결국 안하던가 너무 늦게 손을 대는거죠. 근데 아저씨는 그걸 딱 일주일 내에 도장까지 찍는거래요. 그러면 유행이 오래가면 대박이 터지는 거고, 아니더라도 손해가 크진 않다는거죠. 한창 붐이니까. 근데 그거 아무나 못하는거잖아요. 그게 성공하는 사람하고 아닌 사람 차이 아닌가 싶어요"

꽤 깊이 있는 통찰 아닌가.

"와 혜란씨 사업해야겠네"

내가 웃으며 칭찬하자, 혜란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작년에 한창 유행했던거 있잖아요. 초미니 샐러드. 그거 제가 붐 일어나기 전에 미리 추천하고 아빠도 이거 장사 되겠네, 하고 생각은 했는데… 아버지는 결국 안 했어요. 이게, 여유 자금이 있는 사람하고 아닌 사람은 좀 다르잖아요. 이 돈을 쓸 수 있나 아닌가가"
"그렇지"
"저는 코인투자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그리고 반대로 여유 자금이 엄청 많은 사람이면 굳이 위험한 코인투자 할 필요가 없는거구"
"그렇네"

묘하게 뼈가 있는 말이라 이해가 가면서도 씁쓸해졌다. 물론 아영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걔가 원래 그런 애에요"

아영은 혀가 꼬인 목소리로 또 한잔을 들이키곤 말했다.

"걔네 아버지, 인도네시아에서 요트 사업 크게 하시는 분이에요. 그니까 우리 앞에서는 무슨 아부지가 소시민이라서 투자 안 한 거처럼 말했지만, 실제로는 돈이 많아서 그런 푼돈 사업은 할 필요가 없다 이거에요"

그랬구나. 하기사 묘하게 귀티 난다고는 생각했더랬다.

"저번에 은영씨 결혼식 때는 버키니 백 들고 왔었어요. 집도 블랙스톤레전드 혼자 살구 있구. 차도 세 대랬나. 솔직히 회사 왜 다니는지 몰라"

문득, 요 한동안 돈 좀 벌었다고 그녀 앞에서 깝죽대지는 않았나 뒤돌아 보게 된다. 혼자 그렇게 말 없이 곰곰히 생각해보노라니, 아영이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대리님은 안 외로우세요?"

아 그랬나. 그러고보니 요 한동안 그녀가 묘한 신호를 보내긴 했었지. 조금 고민했지만, 딱히 거절할 이유도 생각나지 않았다. 하기사 이쁘고 똑똑하고 내 말이라면 껌뻑 죽는데 싫을 이유가 뭐가 있는가. 마지막으로 한번 더 '뭐 별 일 없겠지?' 생각을 해봤다.

'응, 오케이'

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바의 상들리에 불빛이 조금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나는 그녀에게 얼굴을 가까이 했다. 그리고는 숨을 고르며 생각했다.

'우선 오산에서 출퇴근 하는 그녀에게 우리 집 방 하나를 쓰라고 주고, 출퇴근을 내 차로…아니, 아예 아영이는 집에서 쉬라고 하지 뭐. 그래, 그렇게 동거를 시작하자. 그리고 투자금은 합치자. 어, 내 투자금 총액이 지금 19만원이니까…엥? 19만원? 뭔 소리야. 내 투자금이 지금 얼만…'






…눈을 떴다. 바닥에는 깨진 컵조각이 널부러져 있었고, 사방으로 튄 물이 벽을 흠뻑 적시고 있었다. 나는 방바닥에 쓰러진 채 였다. 정신이 조금 들었다. 아까 순간적으로 너무 화를 내서 그대로 쓰러진 모양이다. 뒷통수가 욱씬 아팠다. 넘어지며 머리를 찧은 모양이다. 뇌진탕이 크게 안 온게 다행이다. 타고난 돌머리가 이럴 때는 도움이 되는 모양.

'꿈 속의 꿈이었나'

그 새하얀 인테리어의 깔끔한 새 아파트 대신, 5.5평짜리 좁은 원룸과 싯누런 형광등 불빛이 나를 재빨리 현실로 데려다 주었다. 나는 지끈지끈한 뒤통수를 조심스레 매만지며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후우"

개당 4만원까지 떨어졌던 베인코인은 다시 150만원대를 향하고 있었고, 헤더리움도 13만원을 향하고 있었다. 19만원까지 추락했던 나의 평단가도 지금 260만원을 돌파했다. 시장은 딱 4년 전으로 돌아간 셈이었다.

"흐흐, 흐흐흐"

나는 실없이 웃었다. 꿈에서 본 아영씨가 왠지 낯이 익어 한참을 생각해봤더니, 어제 실업수당 타먹으러 다녀온 상담원 얼굴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가 차서 또 웃었다.

"괜찮아, 괜찮다고! 야, 괜찮아"

스스로를 다독이는 말과 함께 얼른 여기저기 게시판과 지표들을 훑기 시작했다. 사상 최대 폭락의 상황에 게시판이 절망으로 뒤덮여 있었지만, 빠른 반등에 만세를 외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 그래, 그래"

그 사이 베인코인은 300만원을 넘어가고 있었고, 그 무서운 기세에 더이상 추매할 돈이 없다는게 한스러울 뿐이었다. 물론 게시판에서는 데드캣이다, 일시적인 기술적 반등일 뿐이다, 마지막 설거지다 어쩐다 하는 말들이 또 나오기 시작했지만 괜찮다고 나를 다독였다. 딥블루곡스 사태 때도, 중국발 하락장 때도 다 망하는 줄 알았잖는가.

"안 망한다고! 망해도 안 망해!"

타는 목마름을 느끼며 주변을 돌아보다, 문득 방문 앞에 붙어있는 포스터에 눈이 멈췄다. 그래, 바로 이거지. 나도 그 박력 있는 최민구 사진처럼 크게 외쳤다.

"가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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