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노스웨일즈 의과대학 맥 돕슨 교수 연구팀은 뇌에서 분비되는 피로회복물질(FRS-b)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다. 크게 주목할 것 없는 평범한 의학 논문이었지만 그 안에서 힌트를 얻은 세계적인 제약회사 노바스틱스 측은 이후 근 10여년 간의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인체의 피로회복에 대한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그것은 압도적인 효능의 피로회복 약물 '프레쉬(Presh)'로,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프레쉬 몇 알이면 완벽히 피로가 회복될 수 있었다. 물론 안구건조증이나 식이장애 등 자잘한 부작용의 우려는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체내 생성물질에 의한 피로회복제'이기 때문에 상당히 안정적인 약물이었다. 이론적으로는 프레쉬만 복용하면 24시간 내내 수면을 취하지 않아도 전혀 건강에 지장이 없었다.
사실상 인류는 드디어 '수면'을 정복한 셈이 되었고, 프레쉬는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딱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화학적 합성이 불가능하여, 오로지 실제로 사람의 수면을 통해서만 그 원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노바스틱스는 그 피로회복물질을 수집하기 위한 자회사 '에버드림'을 설립했다.
"당신의 잠을 삽니다"
새하얀 옷을 입은 매혹적인 여인이 잠자는 근육질 남성과 입술을 맞추며 잠을 깨우는 선정적인 광고. 그것은 최근 모바일, 인터넷, TV, 드론 및 옥외광고, 하이비전, VR, 브레인비전, 잡지 등 온갖 광고 채널을 통해 몇 달 째 사람들이 질리도록 보고 있는 에버드림 사의 광고였다.
"어우 지겨워 진짜 저 놈의 광고는 염병, 아주 신물이 나네"
"근데 저거 돈 많이 준대"
하지만 누군가들은 그 '에버드림'의 광고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수면 1시간 당 1만원을 지불한다는데 한달이면 30만원이고, 2시간씩만 팔면 한달에 무려 60만원 아닌가. 귀에 블루투스 이어폰만한 크기의 수면채취기만 꽂고 자면 한달에 제법 큰 목돈이 생기다는데 서민들 입장에서 그에 혹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긴, 우리 회사 김만복 부장 마누라는 아예 회사 때려치우고 하루종일 잠만 잔댄다"
오랜 경체 침체로 인해 20년 가까운 디플레이션이 지속된 사회에서 '시급 1만원'의 수면비는 최저임금보다 살짝 낮은 수준이었고, 때문에 보다 쉽고 편하며 저렴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에버드림은 사회적, 아니 전세계적 신드롬을 부르기에 충분했다.
"인도에서는 시간당 350원이라더라"
"캬, 근데 그럼 뭐하러 다른 나라에서 비싼 돈 주고 채취하는거래? 그냥 인도나 무슨 다른 못사는 나라에서 채취하면 되지"
"EU에서 트집 잡았거든. 그래서 나라마다 프레쉬 판매수량의 20%인가를 그 나라에서 에버드림으로 채취해야 된대. 근데 한 알에 10만원 넘는 약을 거지나라에서 얼마나 팔 수 있겠냐. 선진국에서 많이 팔리는 약이니 결국 선진국에서 채취도 많이 해야지"
"EU가 신의 한 수를 뒀구만"
'프레쉬' 신드롬은 노바스틱스의 시가총액을 전 세계 1위로 끌어올리기에 부족함이 없었지만 새삼스레 빈부격차를 극단적으로 가르는 지표가 되기도 했다.
"야, 오빠 시원하게 달린다!"
"와 오빠 진짜 부자네"
누군가들은 프레쉬로 아예 며칠씩 잠도 안 자고 무한체력으로 놀고 일하며 그 '길어진 삶'을 즐기게 되었지만, 누군가들은 말 그대로 '살기 위해' 먹고 싸는 그 이외의 모든 시간을 잠자는데 쏟아붓게 되었다.
"뭐, 그렇잖아요. 잠만 계속 자면 허튼 돈 쓸 일도 없고, 시간도 잘 가고, 다른 할 일도 딱히 뭐 없으니까…"
머지않아 휴대폰 앱이나 브레인비전과 연동된 귀 뒤의 피로회복물질(FRS-b)의 채취시간을 설정하고 잠을 자는 것으로 생계를 잇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하루 최대 14시간까지 FRS-b의 채집이 허용된 한국에서는 '14시간 채취수면 + 6시간 개인수면 + 4시간 생계시간'의 14,6,4의 라이프를 사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슬리피 세대'라는 유행어가 생기기도 했다.
"한달 내내 그렇게 살진 않아요. 그냥, 일주일에 5일 정도만, 그것도 꼭 매주 그러는건 아니구. 보통 그래서 한 230~320 정도 버는 듯요. 왔다갔다 해요. 연애요? 에이, 그럼 끝이죠"
평범한 삶을 구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슬리피 세대'를 상당히 부정적으로 보았지만, 그런 이들조차도 한두번쯤은, 혹은 꽤 자주 에버드림을 이용했다.
"자기야, 다음 달에 명절인데, 이번 주는 그냥 어디 가지 말고 잠만 자자"
"그래 여보. 미안해, 신혼인데…"
"에이 그게 무슨 상관이야."
수면을 정복하게 된 인류, 아니 '부유층 인류'에게 있어서 프레쉬는 그야말로 의학 혁명 그 자체였다. 잠을 자지 않아도 된 것만으로 이미 30% 가까운 수명연장 효과가 생긴 셈이었으며, '피로 그 자체'를 회복시킨다는 점에서 수많은 성인병에 대한 예방제이기도 했다. 또 간이나 심혈관 치료의 보조 치료제로도 많이 사용되었다.
"참고인은, 마지막으로 잠을 잔 게 언제입니까"
국회 청문회에서 대기업 진상전자 김대용 회장이 "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대략 2년 전쯤으로 기억합니다" 라고 당황하며 언급한 내용은 당시 세계적인 이슈가 되기도 했다.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았다는 것은 프레쉬의 복용을 인정하는 것과 다름 없는 것으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부작용을 우려하여 프레쉬의 복용을 꺼려하던 세계 각지의 상류층이 그 일을 계기로 많이들 복용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알에 10만 5천원. 하루 7시간 수면을 기준으로 하면 하루 73만 5천원. 그것을 1년간 지속하면 무려 2억 6천 8백 2십 7만 오천원. 2년을 지속했다면 무려 5억 3천 6백 5십 5만원.
김대용 회장의 무수면 발언은 곧 "잠의 가치"라는 제목으로 뉴욕 데일리의 칼럼에도 인용되어 그 금전적 가치를 새삼 돌아보게 되었으며, 역으로 "에버드림 네버드림 뻐킹머니 자도자도 피곤한 너와 삼육오일 잠안 자는 그 놈들의 삶의 질에 새삼 질려" 라던 어느 3류 랩퍼의 노랫말처럼 "난 그냥 자, 귀에 뭐 꽂으면 잠이 안 와서" 라는 식의 허세가 잠시 유행하기도 했다.
"I just wanna drowse in my sorrow I wanna sleep, I wanna sleep~♪"
스티비 무어의 노래를 부르며 행진하던 그들의 모습은 꽤나 참혹했다. 피로에 절여진, 뼈만 앙상한 볼품없는 몸매, 해를 보지 못해 새하얗다 못해 피부병이 생긴 피부, 눈 밑이 퀭한 도시 빈민들.
"I Wanna Sleep"
프레쉬가 세상의 빛을 본 지 10년. 인도와 브라질 등의 개발도상국들을 중심으로 에버드림과 노바스틱스에 대한 반발운동이 일어났다. 그도 그럴 것이, 에버드림의 과도한 이용으로 인한 과로사나 성장부진 등의 혹독한 부작용을 얻은 빈민층들의 숫자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사실 그것은 해당 국가들의 잘못도 있는데, 프랑스나 캐나다 등의 선진국들이 하루 최대 수면 채취시간을 3시간 이하로 엄격하게 제한한 것과는 달리-물론 그들 국가에서도 해킹을 통해 더 많은 잠을 판 빈민층은 존재했지만-,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들은 10시간은 기본이고 아예 수면 제한시간 자체가 없던 나라들도 있었다.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한국이 무려 14시간의 수면 채취가 가능한 것은 좀 이례적인 케이스였지만.
지나친 수면채취로 인한 과로사나 영영실조, 발육부진 등의 다양한 병이나 장애를 걷게 된 이들이 지난 10년간 몇 십 만명에 이를 정도로 후유증이 컸으며, 결국 네팔과 베네수엘라 등의 나라에서는 프레쉬의 판매와 에버드림의 수면 채취가 금지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다양한 문제가 드러났음에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여전히 노바스틱스와 에버드림이 승승장구 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적지 않은 노인들이 잠을 팔아서 생계를 잇고 있었으니까.
[ 일주일 내내 잠도 안 자고 놀았던 푸켓의 추억 ]
데일리그램 등의 소셜 미디어에는 신혼여행을 가서 잠도 안 자고 놀았던 것을 인증하는 영상들이 종종 올라오기도 했다. 부의 과시였다. 종종 자신들도 프레쉬를 먹은 척 하며 무리하게 잠 안 자고 놀다가 과로사를 하거나 다크서클 낀 얼굴로 무리수를 띄우는 철없는 청춘들이 놀림거리가 되기도 했지만.
그러나 프레쉬가 꼭 소모적으로만 이용된 것은 아니었다. 빠르고 부작용 없는 피로회복능력으로 인해 다양한 운동선수들의 훈련량도 폭발적으로 늘어나 거의 모든 스포츠 경기의 신기록이 갱신되었으며-물론 그 반대로 관절이나 근육의 부상으로 인해 선수생명이 빠르게 끝나버린 선수들도 늘었다-,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능력자'들의 결과물 역시 양과 질 모든 측면에서 엄청나게 늘어났다.
그도 그럴 것이, 업무 및 연구 등에 있어서 그 연속성이 비약적으로 갱신 가능하게 되었기에 수많은 성과들이 빠르게 탄생하였으며, 건설업이나 컨텐츠 업계에서도 프레쉬는 가히 기적의 약물이었다.
"배우들은 살판 났죠. 한달 찍을거 일주일만에 다 찍을 수 있으니까. 스태프들만 죽어나는거지. 뭐, 그래서 프로덕션에서 아예 프레쉬 뿌리기도 해요, 좀 여유있는데는"
"요샌 다 철골로 짓죠. 빨리빨리가 이젠 완전히 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됐으니까"
"꿈"
이라는 제목의 프랑스 영화가 새삼 한국에서 이슈가 되기도 했다. 수면채취 앱 해킹을 통해 하루 15시간의 시간을 파는 알제리계 프랑스 빈민층 소년이 잠을 자지 않고 사는 부유층 백인 여학생을 짝사랑하는 내용의 이 영화는, 그 애틋한 스토리와 '억지 잠의 삶'과 '24시간의 에너지 넘치는 삶'의 극단적인 비교를 통해 진한 여운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전날 밤에 꾼 부끄러운 꿈'에 대해 소년이 수줍은 표정으로 이야기 하자 "꿈이 뭔데?" 하고 이상하다는 얼굴로 되묻는 여주인공의 모습에서 수많은 관객들이 충격을 느꼈으며, 해킹한 앱의 오류로 인해 일주일 가까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소년이 소녀가 선물로 준 프레쉬를 손에 꼭 쥐고 웃는 얼굴로 죽는 장면은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한편으로 "야 프랑스는 해킹해서 15시간인데 한국은 노멀버전이 14시간이다" 라는 사실이 뒤늦게 크게 이슈가 되어 결국 국회에서 프레쉬의 일 최대 채취시간이 8시간으로 주는 해프닝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또 노인들이 "생존권"을 주장하며 대규모 반대집회를 열기도 했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사회는 노인들의 주장에 대해 조롱만을 남발할 뿐, 별 관심이 없었다.
일각에서는 음모론도 제기 되었다. 노바스틱스의 프레쉬 매출과 에버드림의 수면 채취량이 상식적으로 매칭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우리도 아주 급할 때는 먹기는 먹지만, 그거 뭐 먹는 사람 몇이나 되요. 근데 에버드림은 거의 뭐 다 쓰지 않나? 한두시간이라도? 프레쉬 매출이 생각보다 그렇게 어마어마하지가 않은데 에버드림 운영비가 엄청나잖아. 이거 뭔가 다른데 쓰는거 아님?"
체내 생성물질의 다른 목적으로의 전용은 엄청난 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는 대형 사건이었기에 물론 노바스틱스에서는 즉각적으로 반박성명을 내었다.
"에버드림에서 채취하는 FRS-b의 질이 다 같지가 않다. 누군가는 매우 순도 높은 FRS-b을 생성하는데 비해 누군가는 피로회복능력이 떨어지는 잠을 판다. 그 정제과정에서 손실되는 양이 상당히 많으며, FRS-b 자체가 장기 보관이 어려운 물질이라 운송 및 보관 과정에서도 만만찮은 양이 훼손된다"
라고 해명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의심을 거두지 않았으며 노바스틱스의 공식적인 매출로 집계되지 않는 거대한 검은 돈의 흐름이 추적되기도 하였다. 그것은 먼 훗날 미 국방부의 자금으로 드러나 또다른 음모론을 생성하기도 하였다.
"뭐하러 10만원도 넘게 주고 먹어. 도매로 사면 6만원이면 되는데"
하지만 진짜 노바스틱스의 골머리를 썩힌 것은 중국제 짝퉁 프레쉬의 유통 문제였다. '피로 회복'이라는 것은 꽤 주관적인 것으로, 몇 알을 동시에 먹는다면 곧바로 효과가 드러나니 확인이 쉽지만, 한 알에 10만원이 넘는 약물을 그렇게 마구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결국 잘해야 한두알로 최악의 피로만 가시고자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경우 짝퉁을 먹어서 효과가 없음에도 플라시보로 "어, 잠이 좀 깨네" 하는 케이스도 있는가 하면, 짝퉁을 먹어서 효과가 없는 것임에도 "먹어도 별 효과가 없네. 생각보다 프레시 별 거 아니네" 하는 케이스도 있었다.
특히 운송업을 하는 이들은 프레쉬의 주 고객층 중 하나였는데, 이 짝퉁의 유통으로 인해 유발되는 사고는 꽤 큰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체내 생성물질 기반의 생화합물이라는 점은 그 덕택에 도핑검사로도 쉽게 복용 여부를 밝혀내기 어려워 스포츠계에서 널리 사용되는 계기가 되었지만, 반대로 짝퉁의 유통시에는 노바스틱스의 "우리 책임이 아님"을 밝히기 어려운 이유가 되기도 했다.
노바스틱스는 개별 포장 단위의 실시간 판로 인증 및 품질인증제를 실시하기도 했지만, 짝퉁은 쉽게 없애기가 어려웠다. 고가의 약물이라는 점은 짝퉁의 유통을 더욱 부채질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리고 노바스틱스의 프레쉬 시판 20주년 기념일에 또다른 큰 문제가 터졌다. 프레쉬의 또다른 신봉자였던 칠레의 몬탈라고스 대통령이 2055년 대통령 신년사 생방송 중에 심정지로 사망한 것이다.
가뜩이나 프레쉬의 신약 특허 만료를 목전에 둔 시점에서, 프레쉬의 강력한 후원자이자 애호가였던 정치인이 생방송으로 사망하는 것이 중계된 것은 "프레쉬를 장기복용하면 심장에 무리를 준다" 라는 의학계 일각의 주장에 강력한 힘을 실어주었고 노바스틱스의 주가에 충격을 주었다.
이 역시 노바스틱스는 즉각적인 반박 성명을 내었지만, 가뜩이나 '비싼 가격'에 의한 반발심을 갖고 있던 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건강염려증 환자들은 루머를 양산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프레쉬의 매출은 딱히 크게 줄지 않았다. 애초에 비싼 가격인만큼 프레쉬를 먹는 것은 '어쩔 수 없이라도, 꼭 필요한 사람들'과 '이미 지난 20년 동안 검증된 효과'를 믿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그저 원래부터 먹지 못했던 이들이 여우의 신포도 욕하기 마냥 루머를 양산하고 욕을 할 따름이었다.
"슬기야, 이제 그거 하지 마라"
"응?"
"이제 그냥 푹 자라고"
승남의 말에 슬기는 고개를 기우뚱 했다.
"왜?"
승남은 고개를 저었다.
"아버님 대장암이었담서. 가족력까지 있는데… 이제 안 그래도 되잖아. 잠 부족하면 대장암 많이 생긴다는데"
"나 진짜 괜찮은데"
"이제 우리 둘이 충분히 먹고 살만 하잖아"
"오빠…"
수면 부족으로 인한 대장암 발병 확률 증가는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다. 이미 전세계 사망 인자 1위는 고혈압, 흡연을 뛰어넘어 '수면부족'이었다. 그리고 수면부족으로 인한 대표적인 질병이 바로 대장암이었다.
한때 '고기 많이 먹어 생기는 부자병'의 대표격이던 대장암은, '잠 파느라 정작 자기 잠을 못자 생기는 가난병'의 대명사가 되었고, 전 세계적으로 대장암 환자가 해가 갈수록 폭발적으로 늘어 일부 나라에서는 무상의료 체계가 붕괴되는 현상을 낳기까지 했다. 덕분에 수많은 나라에서 뒤늦게 '에버드림'의 영업이 중단되거나 FRS-b의 채취 기준이 상당히 까다로워졌다.
사실 프레쉬의 특허가 만료되었음에도 복제약물이 쉽게 쏟아지지 않은 것은 일찌기 노바스틱스도 밝혔듯이 FRS-b의 입수 및 관리가 상당히 어려운 부분도 있었고, 이미 그 시기에는 전세계적으로 프레쉬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빈부격차 늘리는 약", "가난뱅이를 잠으로 죽이는 약", "인류에게서 잠의 축복을 빼앗은 약" 등 수많은 수식어들이 프레쉬를 비난하는데 사용되었고, 당초부터 제기되었던 "인간을 도구로 이용하는 약물 생산"의 윤리 문제에 대해 새삼스러운 격렬한 논쟁이 유발되었다.
결국 EU의 다수 국가들과 캐나다를 중심으로 프레쉬의 시판 자체가 판매 중지절차 심의에 들어가는 등-해당 안건은 부결되었지만- 근 20년 만에 노바스틱스의 프레쉬는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사실 노바스틱스와 애버드림으로서는 꽤 억울하기도 했던 것이, 지난 20년 간 전 세계가 프레쉬를 열심히 애용해 놓고서는 갑작스레 별 황당한 이유로 그 판매 자체를 막으려는 것은 황당하기만 할 뿐이었다.
노바스틱스 측의 로비와 실제 프레쉬를 장기간 애용했던 찬성론자들의 의견이 간신히 프레쉬의 판매중지는 막아냈지만, 그 매출은 1/3 토막이 났다. 그럼에도 노바스틱스는 여전히 전 세계 시가총액 1위의 굳건한 제약회사였으며, 그들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들은 '생명연장의 꿈'을 가진 수많은 권력자들이었다.
또한 그들 덕분에 생계를 꾸려가고 있던 수많은 전 세계 서민, 빈민들 역시도 그들을 지지했으며, 사실 노바스틱스와 에버드림을 욕하는 서민들조차 입사할 수만 있으면 영혼을 팔아서라도 입사하고 싶은 회사가 바로 노바스틱스였다.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연봉과 네임밸류를 가진 회사, 시가총액 1위의 강력한 자금력, 어마어마한 후원자들과 근무 중 얼마든지 자유롭게 프레쉬를 복용할 수 있는 사풍, 사원들에 대한 사측의 엄청난 재투자 등 다양한 매력을 가진 회사였으니까.
한편, 에버드림에 오늘도 잠을 팔고 온 김박스는 새벽까지 게임을 달리며, 혀를 끌끌 차며 생각했다.
'이 시간에 잠을 한 시간 더 자면 만원이 더 생기고, 일찍일찍 남들처럼 밤 8시에 자서 아침 8시에 일어나면 막 4만원 5만원도 벌텐데, 그걸 게임으로 날리고 있네, 등신 같은 놈'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 아까 통장으로 들어온, 엄마가 잠을 팔아 보내준 자취비 60만원을 떠올렸다. 지난 주에 회사 건강검진 때 엄마 대장에서 용종이 다섯개나 발견됐다던데, 하는 생각과 함께. 물론 그 와중에도 게임을 끄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 끝 -
그것은 압도적인 효능의 피로회복 약물 '프레쉬(Presh)'로,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프레쉬 몇 알이면 완벽히 피로가 회복될 수 있었다. 물론 안구건조증이나 식이장애 등 자잘한 부작용의 우려는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체내 생성물질에 의한 피로회복제'이기 때문에 상당히 안정적인 약물이었다. 이론적으로는 프레쉬만 복용하면 24시간 내내 수면을 취하지 않아도 전혀 건강에 지장이 없었다.
사실상 인류는 드디어 '수면'을 정복한 셈이 되었고, 프레쉬는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딱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화학적 합성이 불가능하여, 오로지 실제로 사람의 수면을 통해서만 그 원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노바스틱스는 그 피로회복물질을 수집하기 위한 자회사 '에버드림'을 설립했다.
에버드림
"당신의 잠을 삽니다"
새하얀 옷을 입은 매혹적인 여인이 잠자는 근육질 남성과 입술을 맞추며 잠을 깨우는 선정적인 광고. 그것은 최근 모바일, 인터넷, TV, 드론 및 옥외광고, 하이비전, VR, 브레인비전, 잡지 등 온갖 광고 채널을 통해 몇 달 째 사람들이 질리도록 보고 있는 에버드림 사의 광고였다.
"어우 지겨워 진짜 저 놈의 광고는 염병, 아주 신물이 나네"
"근데 저거 돈 많이 준대"
하지만 누군가들은 그 '에버드림'의 광고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수면 1시간 당 1만원을 지불한다는데 한달이면 30만원이고, 2시간씩만 팔면 한달에 무려 60만원 아닌가. 귀에 블루투스 이어폰만한 크기의 수면채취기만 꽂고 자면 한달에 제법 큰 목돈이 생기다는데 서민들 입장에서 그에 혹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긴, 우리 회사 김만복 부장 마누라는 아예 회사 때려치우고 하루종일 잠만 잔댄다"
오랜 경체 침체로 인해 20년 가까운 디플레이션이 지속된 사회에서 '시급 1만원'의 수면비는 최저임금보다 살짝 낮은 수준이었고, 때문에 보다 쉽고 편하며 저렴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에버드림은 사회적, 아니 전세계적 신드롬을 부르기에 충분했다.
"인도에서는 시간당 350원이라더라"
"캬, 근데 그럼 뭐하러 다른 나라에서 비싼 돈 주고 채취하는거래? 그냥 인도나 무슨 다른 못사는 나라에서 채취하면 되지"
"EU에서 트집 잡았거든. 그래서 나라마다 프레쉬 판매수량의 20%인가를 그 나라에서 에버드림으로 채취해야 된대. 근데 한 알에 10만원 넘는 약을 거지나라에서 얼마나 팔 수 있겠냐. 선진국에서 많이 팔리는 약이니 결국 선진국에서 채취도 많이 해야지"
"EU가 신의 한 수를 뒀구만"
'프레쉬' 신드롬은 노바스틱스의 시가총액을 전 세계 1위로 끌어올리기에 부족함이 없었지만 새삼스레 빈부격차를 극단적으로 가르는 지표가 되기도 했다.
"야, 오빠 시원하게 달린다!"
"와 오빠 진짜 부자네"
누군가들은 프레쉬로 아예 며칠씩 잠도 안 자고 무한체력으로 놀고 일하며 그 '길어진 삶'을 즐기게 되었지만, 누군가들은 말 그대로 '살기 위해' 먹고 싸는 그 이외의 모든 시간을 잠자는데 쏟아붓게 되었다.
"뭐, 그렇잖아요. 잠만 계속 자면 허튼 돈 쓸 일도 없고, 시간도 잘 가고, 다른 할 일도 딱히 뭐 없으니까…"
머지않아 휴대폰 앱이나 브레인비전과 연동된 귀 뒤의 피로회복물질(FRS-b)의 채취시간을 설정하고 잠을 자는 것으로 생계를 잇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하루 최대 14시간까지 FRS-b의 채집이 허용된 한국에서는 '14시간 채취수면 + 6시간 개인수면 + 4시간 생계시간'의 14,6,4의 라이프를 사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슬리피 세대'라는 유행어가 생기기도 했다.
"한달 내내 그렇게 살진 않아요. 그냥, 일주일에 5일 정도만, 그것도 꼭 매주 그러는건 아니구. 보통 그래서 한 230~320 정도 버는 듯요. 왔다갔다 해요. 연애요? 에이, 그럼 끝이죠"
평범한 삶을 구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슬리피 세대'를 상당히 부정적으로 보았지만, 그런 이들조차도 한두번쯤은, 혹은 꽤 자주 에버드림을 이용했다.
"자기야, 다음 달에 명절인데, 이번 주는 그냥 어디 가지 말고 잠만 자자"
"그래 여보. 미안해, 신혼인데…"
"에이 그게 무슨 상관이야."
수면을 정복하게 된 인류, 아니 '부유층 인류'에게 있어서 프레쉬는 그야말로 의학 혁명 그 자체였다. 잠을 자지 않아도 된 것만으로 이미 30% 가까운 수명연장 효과가 생긴 셈이었으며, '피로 그 자체'를 회복시킨다는 점에서 수많은 성인병에 대한 예방제이기도 했다. 또 간이나 심혈관 치료의 보조 치료제로도 많이 사용되었다.
"참고인은, 마지막으로 잠을 잔 게 언제입니까"
국회 청문회에서 대기업 진상전자 김대용 회장이 "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대략 2년 전쯤으로 기억합니다" 라고 당황하며 언급한 내용은 당시 세계적인 이슈가 되기도 했다.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았다는 것은 프레쉬의 복용을 인정하는 것과 다름 없는 것으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부작용을 우려하여 프레쉬의 복용을 꺼려하던 세계 각지의 상류층이 그 일을 계기로 많이들 복용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알에 10만 5천원. 하루 7시간 수면을 기준으로 하면 하루 73만 5천원. 그것을 1년간 지속하면 무려 2억 6천 8백 2십 7만 오천원. 2년을 지속했다면 무려 5억 3천 6백 5십 5만원.
김대용 회장의 무수면 발언은 곧 "잠의 가치"라는 제목으로 뉴욕 데일리의 칼럼에도 인용되어 그 금전적 가치를 새삼 돌아보게 되었으며, 역으로 "에버드림 네버드림 뻐킹머니 자도자도 피곤한 너와 삼육오일 잠안 자는 그 놈들의 삶의 질에 새삼 질려" 라던 어느 3류 랩퍼의 노랫말처럼 "난 그냥 자, 귀에 뭐 꽂으면 잠이 안 와서" 라는 식의 허세가 잠시 유행하기도 했다.
"I just wanna drowse in my sorrow I wanna sleep, I wanna sleep~♪"
스티비 무어의 노래를 부르며 행진하던 그들의 모습은 꽤나 참혹했다. 피로에 절여진, 뼈만 앙상한 볼품없는 몸매, 해를 보지 못해 새하얗다 못해 피부병이 생긴 피부, 눈 밑이 퀭한 도시 빈민들.
"I Wanna Sleep"
프레쉬가 세상의 빛을 본 지 10년. 인도와 브라질 등의 개발도상국들을 중심으로 에버드림과 노바스틱스에 대한 반발운동이 일어났다. 그도 그럴 것이, 에버드림의 과도한 이용으로 인한 과로사나 성장부진 등의 혹독한 부작용을 얻은 빈민층들의 숫자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사실 그것은 해당 국가들의 잘못도 있는데, 프랑스나 캐나다 등의 선진국들이 하루 최대 수면 채취시간을 3시간 이하로 엄격하게 제한한 것과는 달리-물론 그들 국가에서도 해킹을 통해 더 많은 잠을 판 빈민층은 존재했지만-,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들은 10시간은 기본이고 아예 수면 제한시간 자체가 없던 나라들도 있었다.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한국이 무려 14시간의 수면 채취가 가능한 것은 좀 이례적인 케이스였지만.
지나친 수면채취로 인한 과로사나 영영실조, 발육부진 등의 다양한 병이나 장애를 걷게 된 이들이 지난 10년간 몇 십 만명에 이를 정도로 후유증이 컸으며, 결국 네팔과 베네수엘라 등의 나라에서는 프레쉬의 판매와 에버드림의 수면 채취가 금지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다양한 문제가 드러났음에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여전히 노바스틱스와 에버드림이 승승장구 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적지 않은 노인들이 잠을 팔아서 생계를 잇고 있었으니까.
[ 일주일 내내 잠도 안 자고 놀았던 푸켓의 추억 ]
데일리그램 등의 소셜 미디어에는 신혼여행을 가서 잠도 안 자고 놀았던 것을 인증하는 영상들이 종종 올라오기도 했다. 부의 과시였다. 종종 자신들도 프레쉬를 먹은 척 하며 무리하게 잠 안 자고 놀다가 과로사를 하거나 다크서클 낀 얼굴로 무리수를 띄우는 철없는 청춘들이 놀림거리가 되기도 했지만.
그러나 프레쉬가 꼭 소모적으로만 이용된 것은 아니었다. 빠르고 부작용 없는 피로회복능력으로 인해 다양한 운동선수들의 훈련량도 폭발적으로 늘어나 거의 모든 스포츠 경기의 신기록이 갱신되었으며-물론 그 반대로 관절이나 근육의 부상으로 인해 선수생명이 빠르게 끝나버린 선수들도 늘었다-,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능력자'들의 결과물 역시 양과 질 모든 측면에서 엄청나게 늘어났다.
그도 그럴 것이, 업무 및 연구 등에 있어서 그 연속성이 비약적으로 갱신 가능하게 되었기에 수많은 성과들이 빠르게 탄생하였으며, 건설업이나 컨텐츠 업계에서도 프레쉬는 가히 기적의 약물이었다.
"배우들은 살판 났죠. 한달 찍을거 일주일만에 다 찍을 수 있으니까. 스태프들만 죽어나는거지. 뭐, 그래서 프로덕션에서 아예 프레쉬 뿌리기도 해요, 좀 여유있는데는"
"요샌 다 철골로 짓죠. 빨리빨리가 이젠 완전히 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됐으니까"
"꿈"
이라는 제목의 프랑스 영화가 새삼 한국에서 이슈가 되기도 했다. 수면채취 앱 해킹을 통해 하루 15시간의 시간을 파는 알제리계 프랑스 빈민층 소년이 잠을 자지 않고 사는 부유층 백인 여학생을 짝사랑하는 내용의 이 영화는, 그 애틋한 스토리와 '억지 잠의 삶'과 '24시간의 에너지 넘치는 삶'의 극단적인 비교를 통해 진한 여운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전날 밤에 꾼 부끄러운 꿈'에 대해 소년이 수줍은 표정으로 이야기 하자 "꿈이 뭔데?" 하고 이상하다는 얼굴로 되묻는 여주인공의 모습에서 수많은 관객들이 충격을 느꼈으며, 해킹한 앱의 오류로 인해 일주일 가까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소년이 소녀가 선물로 준 프레쉬를 손에 꼭 쥐고 웃는 얼굴로 죽는 장면은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한편으로 "야 프랑스는 해킹해서 15시간인데 한국은 노멀버전이 14시간이다" 라는 사실이 뒤늦게 크게 이슈가 되어 결국 국회에서 프레쉬의 일 최대 채취시간이 8시간으로 주는 해프닝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또 노인들이 "생존권"을 주장하며 대규모 반대집회를 열기도 했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사회는 노인들의 주장에 대해 조롱만을 남발할 뿐, 별 관심이 없었다.
일각에서는 음모론도 제기 되었다. 노바스틱스의 프레쉬 매출과 에버드림의 수면 채취량이 상식적으로 매칭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우리도 아주 급할 때는 먹기는 먹지만, 그거 뭐 먹는 사람 몇이나 되요. 근데 에버드림은 거의 뭐 다 쓰지 않나? 한두시간이라도? 프레쉬 매출이 생각보다 그렇게 어마어마하지가 않은데 에버드림 운영비가 엄청나잖아. 이거 뭔가 다른데 쓰는거 아님?"
체내 생성물질의 다른 목적으로의 전용은 엄청난 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는 대형 사건이었기에 물론 노바스틱스에서는 즉각적으로 반박성명을 내었다.
"에버드림에서 채취하는 FRS-b의 질이 다 같지가 않다. 누군가는 매우 순도 높은 FRS-b을 생성하는데 비해 누군가는 피로회복능력이 떨어지는 잠을 판다. 그 정제과정에서 손실되는 양이 상당히 많으며, FRS-b 자체가 장기 보관이 어려운 물질이라 운송 및 보관 과정에서도 만만찮은 양이 훼손된다"
라고 해명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의심을 거두지 않았으며 노바스틱스의 공식적인 매출로 집계되지 않는 거대한 검은 돈의 흐름이 추적되기도 하였다. 그것은 먼 훗날 미 국방부의 자금으로 드러나 또다른 음모론을 생성하기도 하였다.
"뭐하러 10만원도 넘게 주고 먹어. 도매로 사면 6만원이면 되는데"
하지만 진짜 노바스틱스의 골머리를 썩힌 것은 중국제 짝퉁 프레쉬의 유통 문제였다. '피로 회복'이라는 것은 꽤 주관적인 것으로, 몇 알을 동시에 먹는다면 곧바로 효과가 드러나니 확인이 쉽지만, 한 알에 10만원이 넘는 약물을 그렇게 마구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결국 잘해야 한두알로 최악의 피로만 가시고자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경우 짝퉁을 먹어서 효과가 없음에도 플라시보로 "어, 잠이 좀 깨네" 하는 케이스도 있는가 하면, 짝퉁을 먹어서 효과가 없는 것임에도 "먹어도 별 효과가 없네. 생각보다 프레시 별 거 아니네" 하는 케이스도 있었다.
특히 운송업을 하는 이들은 프레쉬의 주 고객층 중 하나였는데, 이 짝퉁의 유통으로 인해 유발되는 사고는 꽤 큰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체내 생성물질 기반의 생화합물이라는 점은 그 덕택에 도핑검사로도 쉽게 복용 여부를 밝혀내기 어려워 스포츠계에서 널리 사용되는 계기가 되었지만, 반대로 짝퉁의 유통시에는 노바스틱스의 "우리 책임이 아님"을 밝히기 어려운 이유가 되기도 했다.
노바스틱스는 개별 포장 단위의 실시간 판로 인증 및 품질인증제를 실시하기도 했지만, 짝퉁은 쉽게 없애기가 어려웠다. 고가의 약물이라는 점은 짝퉁의 유통을 더욱 부채질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리고 노바스틱스의 프레쉬 시판 20주년 기념일에 또다른 큰 문제가 터졌다. 프레쉬의 또다른 신봉자였던 칠레의 몬탈라고스 대통령이 2055년 대통령 신년사 생방송 중에 심정지로 사망한 것이다.
가뜩이나 프레쉬의 신약 특허 만료를 목전에 둔 시점에서, 프레쉬의 강력한 후원자이자 애호가였던 정치인이 생방송으로 사망하는 것이 중계된 것은 "프레쉬를 장기복용하면 심장에 무리를 준다" 라는 의학계 일각의 주장에 강력한 힘을 실어주었고 노바스틱스의 주가에 충격을 주었다.
이 역시 노바스틱스는 즉각적인 반박 성명을 내었지만, 가뜩이나 '비싼 가격'에 의한 반발심을 갖고 있던 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건강염려증 환자들은 루머를 양산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프레쉬의 매출은 딱히 크게 줄지 않았다. 애초에 비싼 가격인만큼 프레쉬를 먹는 것은 '어쩔 수 없이라도, 꼭 필요한 사람들'과 '이미 지난 20년 동안 검증된 효과'를 믿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그저 원래부터 먹지 못했던 이들이 여우의 신포도 욕하기 마냥 루머를 양산하고 욕을 할 따름이었다.
"슬기야, 이제 그거 하지 마라"
"응?"
"이제 그냥 푹 자라고"
승남의 말에 슬기는 고개를 기우뚱 했다.
"왜?"
승남은 고개를 저었다.
"아버님 대장암이었담서. 가족력까지 있는데… 이제 안 그래도 되잖아. 잠 부족하면 대장암 많이 생긴다는데"
"나 진짜 괜찮은데"
"이제 우리 둘이 충분히 먹고 살만 하잖아"
"오빠…"
수면 부족으로 인한 대장암 발병 확률 증가는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다. 이미 전세계 사망 인자 1위는 고혈압, 흡연을 뛰어넘어 '수면부족'이었다. 그리고 수면부족으로 인한 대표적인 질병이 바로 대장암이었다.
한때 '고기 많이 먹어 생기는 부자병'의 대표격이던 대장암은, '잠 파느라 정작 자기 잠을 못자 생기는 가난병'의 대명사가 되었고, 전 세계적으로 대장암 환자가 해가 갈수록 폭발적으로 늘어 일부 나라에서는 무상의료 체계가 붕괴되는 현상을 낳기까지 했다. 덕분에 수많은 나라에서 뒤늦게 '에버드림'의 영업이 중단되거나 FRS-b의 채취 기준이 상당히 까다로워졌다.
사실 프레쉬의 특허가 만료되었음에도 복제약물이 쉽게 쏟아지지 않은 것은 일찌기 노바스틱스도 밝혔듯이 FRS-b의 입수 및 관리가 상당히 어려운 부분도 있었고, 이미 그 시기에는 전세계적으로 프레쉬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빈부격차 늘리는 약", "가난뱅이를 잠으로 죽이는 약", "인류에게서 잠의 축복을 빼앗은 약" 등 수많은 수식어들이 프레쉬를 비난하는데 사용되었고, 당초부터 제기되었던 "인간을 도구로 이용하는 약물 생산"의 윤리 문제에 대해 새삼스러운 격렬한 논쟁이 유발되었다.
결국 EU의 다수 국가들과 캐나다를 중심으로 프레쉬의 시판 자체가 판매 중지절차 심의에 들어가는 등-해당 안건은 부결되었지만- 근 20년 만에 노바스틱스의 프레쉬는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사실 노바스틱스와 애버드림으로서는 꽤 억울하기도 했던 것이, 지난 20년 간 전 세계가 프레쉬를 열심히 애용해 놓고서는 갑작스레 별 황당한 이유로 그 판매 자체를 막으려는 것은 황당하기만 할 뿐이었다.
노바스틱스 측의 로비와 실제 프레쉬를 장기간 애용했던 찬성론자들의 의견이 간신히 프레쉬의 판매중지는 막아냈지만, 그 매출은 1/3 토막이 났다. 그럼에도 노바스틱스는 여전히 전 세계 시가총액 1위의 굳건한 제약회사였으며, 그들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들은 '생명연장의 꿈'을 가진 수많은 권력자들이었다.
또한 그들 덕분에 생계를 꾸려가고 있던 수많은 전 세계 서민, 빈민들 역시도 그들을 지지했으며, 사실 노바스틱스와 에버드림을 욕하는 서민들조차 입사할 수만 있으면 영혼을 팔아서라도 입사하고 싶은 회사가 바로 노바스틱스였다.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연봉과 네임밸류를 가진 회사, 시가총액 1위의 강력한 자금력, 어마어마한 후원자들과 근무 중 얼마든지 자유롭게 프레쉬를 복용할 수 있는 사풍, 사원들에 대한 사측의 엄청난 재투자 등 다양한 매력을 가진 회사였으니까.
한편, 에버드림에 오늘도 잠을 팔고 온 김박스는 새벽까지 게임을 달리며, 혀를 끌끌 차며 생각했다.
'이 시간에 잠을 한 시간 더 자면 만원이 더 생기고, 일찍일찍 남들처럼 밤 8시에 자서 아침 8시에 일어나면 막 4만원 5만원도 벌텐데, 그걸 게임으로 날리고 있네, 등신 같은 놈'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 아까 통장으로 들어온, 엄마가 잠을 팔아 보내준 자취비 60만원을 떠올렸다. 지난 주에 회사 건강검진 때 엄마 대장에서 용종이 다섯개나 발견됐다던데, 하는 생각과 함께. 물론 그 와중에도 게임을 끄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