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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nel: 생각보다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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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의원님 지금 진짜 뭐하시는 겁니까?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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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소설에 등장한 모든 조직이나 인물, 사건 등은 허구의 것으로, 현실과 아무런 연관이 없음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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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대의원 회의, 벌써부터 격앙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아니 도대체가, 사람이 눈치가 없어도 정도껏 없어야죠. 지금 전 국민 시선에 거기 쏠려서 박수치고 있는데 거기에 대고 그런 말을 왜 합니까? 예? 지금 이게 제정신 가진 사람의 행동머립니까? 우리 진짜 좀 생각을 하고 삽시다 생각을!"

사실 정상적이라면 옛날 옛적에 나가리 됐어야 되는 인물이다. 하지만 군소정당 특유의 '그래도 다음 번에 저 양반 말고 선거 나가서 국회의원 될 가능성이 1%라도 있는 놈 있어?' 식 '대세론'에 항상 모두들 작아졌건만, 이번에 아주 큰 핵폭탄으로 자폭해버렸다. 당연히 그 자리 노리고 있는 당 내의 다른 대의원들에게는 이런 기회가 또 없었다.

"참 거 한심합니다 진짜. 사람이 경거망동도 정도가 있죠. 그래요, 그 지적, 일리있을 수도 있어요. 근데 사람이 장례식장 가서 육계장 퍼먹으면서 맵고 짠거 먹으면 빨리 죽는다 이딴 소리 하면 어디가서 사람 대접 받겠습니까? 지금 딱 그 짝이에요. 예? 진짜 좀, 평소에 그래서 다들 자중하자 자중하자, 어? 우리 같은 정당은 말 한 마디에 살고 말 한 마디에 죽는거다, 그리들 강조 안 했습니까"

대의원 김 모는 자리 앞의 에비앙 생수를 따 마시며 말을 이었다.

"우리 지금 풀뿌리단의 저 밑의 대학생들, 얼마나 힘든 줄 아십니까? 점심값 지원이 안 되서들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활동해요. 단돈 오천원이 안 나와서. 깁밥 한 줄로 때우면서 활동하고, 나이 서른 먹고 엄마한테 용돈 받고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활동하는 당원들도 있단 말입니다. 지금 이런 상황에 그 말조심 하나 못 해서 당원들 자괴감 주고 지지율 폭락시키고, 지금 이거 어쩔 거에요? 예?"

당 내의 청년단 고생을 어필하는 그를 필두로 당 내의 여성위원회 소속 의원들, 소외계층 돌보미 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돌아가며 서 의원을 성토했다.

목을 숙인 채로 그저 고개만을 끄덕이며 말을 다 듣고 있던 서 의원의 얼굴이 시뻘개지기 시작했지만 이런 기회가 또 얼마나 있으랴. 당 내 의원회에서도 강경한 목소리들이 추가로 터져 나왔다.

"이거 말이죠, 빨리 제대로 하는 모습 못 보이면, 결국 이거 우리 당 전체로 돌아옵니다. 아니, 이미 돌아왔어요. 지금 우리 당 게시판 실시간으로 난리 났거든요? 포털 검색 순위 떴죠, 뉴스 기사 댓글은 아예 볼 생각도 마세요. 다들 혈압 올라서 쓰러지십니다. 이게 현실이에요. 아니 솔직히 지금 저도 이해가 안 가요. 뭘 위해서 그런 글을 쓴 건지. 말 좀 해보세요"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린 가운데, 서 의원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감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 진중한 모습에 보통이었다면 다들 말을 아꼈겠지만, 상황이 상황인만큼 "뭐라고 말 좀 해보세요!", "지금 주무십니까!" 같은 모욕적인 말까지 튀어 나왔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고개를 들었다. 눈가에 그렁그렁한 눈물. 나이 적당히 먹을만큼 먹은 양반의 눈물은 순간 회의실의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들었고 다들 입을 다물었다. 그제서야 그는 말을 이어갔다.

"여러분 보기에 제가 많이 부족하고, 종종 실언도 하고, 또 제가 맡은 당무에 있어서도 비판의 목소리 종종 나오는거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서종원이, 마음 하나 만큼 언제나 진실된 사람입니다"

비례대표니 뭐니 해도, 아무리 우습게 보여도 결국은 현역 정치인. 필요한 순간에 뜻 맞는 사람 몇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카리스마는 분명히 그에게도 있었다.

"이번에 제가 실언한거, 책임 지겠습니다. 어떻게든 수습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일로 당에 끼친 잘못이 있다면 그것도 책임 지겠습니다. 아시잖습니까. 제가 책임지겠다고 한 거는 항상 책임진거"

그랬던가, 하는 의문이 모두를 살짝 아연하게 했지만 그래도 그 비장한 목소리에 다들 고개는 적당히 끄덕일 수 있었다. 그에 힘을 얻은 그는 술술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저 서종원이, 한번도 나라 위한 마음은 접힌 적이 없습니다. 제가 그런 말 쓴게, 어디 저 혼자 잘 되자고 한 말입니까? 제가 무슨 관심종자입니까. 모두 우리나라 잘 되자고, 어? 잘못 돌아가는거 나 혼자라도 목소리를 내서 바로 잡아야겠다, 그런 뜻에서 꺼낸 말이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 어디 우리 당 뭐 잘 되지 말라고 생각하는 분 한 분이라도 계십니까? 하나로 똘똘 뭉쳐도 힘든 판에, 그렇게들 싸우는게 좋으십니까? 다들 우리나라, 우리나라 사람들 다 잘 되자고 정치하는거 아닙니까!"

확실히, 울림이 있었다. 정치를 향한 풍운의 꿈을 꾸었던, 혹은 지금도 꾸고 있는 그들의 큰 뜻. 그것을 새삼 일깨우는 말에 모두는 살짝 반성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말이 없어진 그들을 향해 서 의원은 회의실 한 켠의 김정은 액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제발 이제 그만들 싸우고 다들 우리 마음을 하나로 모아 조국을 위해 최선을 다해봅시다!"

그 말에 회의실의 모두는 눈물을 펑펑 흘리며 일어나 박수와 함께 명곡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를 연창하니, 사분오열 됐던 모두가 진실로 하나됨을 느끼는 열광의 감동은, 가히 수령님이 생전에 말씀하신 '전인민 총폭탄화'에 다름 아니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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